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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성경은 나를 증거 한다.”
Scripture: 요5:30-47
Word: 요5:39
ἐραυνᾶτε τὰς γραφάς, ὅτι ὑμεῖς δοκεῖτε ἐν αὐταῖς ζωὴν αἰώνιον ἔχειν· καὶ ἐκεῖναί εἰσιν αἱ μαρτυροῦσαι περὶ ἐμοῦ·
Wrong translated Bible:
John.5:39 Search the scriptures; for in them ye think ye have eternal life: and they are they which testify of me. –KJV.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개역한글.
Word Parsing:
γραφάς (grafas: 경전들): “γραφή (grafe: 경전, G1124)”의 여성 대격 복수 명사이며, “성경 ”보다는 “경전” 또는 “쓰여진 것”이란 번역이 좋을 것 같다.
μαρτυροῦσαι (marturousai: 증언하다): “μαρτυρέω (marturew: 증언하다, G3140)”의 현재 능동태 주격 여성 복수 동사 이다.
περὶ (peri: ~를, ~관하여, G4012): 전치사.
Yah-Bible:
Translation: Yoh.5:39 Search the scriptures, your think in them for you have eternal life, and that they are which bearing witness concerning me.
번역: 요5:39 경전을 연구하고, 너희의 생각이 그들 안에 있는 이유는 너희에게는 영생이 있고,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Interpretation: 쓰여진 경전들은 모두가 예수를 증거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경전을 읽고, 연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Commentary: “경전은 영생하는 법을 기록하고 있고, 영생하는 법은 곧 예수를 아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알면 영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말로 경전은 예수에 관하여 기록하여 증거하고 있는가?
1. Introduction:
오늘 본문의 핵심은 “성경은 예수를 증거하고 있다”이다. 지난 2000여년 동안 기독교에 의해 세뇌된 거짓된 성경의 본질이다.
예수 시대의 히브리인들에게 경전은 구약 뿐이다. 신약은 예수가 죽은 후 300여년이 지나서 만들어진 이야기 책들이다. 수 많은 책들 중 요한복음5장30-47절에는 구약 경전의 본질을 바꾸어 버리는 참람한 구절이 쓰여있다. 그것은 “경전이 예수를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구약 성경이 신약 성경처럼 예수를 증거하고 있을까?
한번 살펴보자.
2. 구문 분해:
30절을 읽어보자. (개역한글)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질문1.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어떻게 이해 했는가?
이 문장만으로는 자신의 무능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수 자신 스스로가 아무런 능력도, 책임도, 의무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을 볼 때, 예수 자신이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 심판자이지만 자신 마음대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대로 심판한다는 뜻이다.
질문2.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어떻게 이해 했는가?
이렇게 한 구절을 완전히 읽었을 때는 예수가 심판자로서 자신의 뜻이 아닌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대로 심판하기 때문에 예수 자신의 판결은 정의롭다는 뜻이다.
질문 3. 누가 예수를 심판자로 보냈는가?
5장28-29절을 보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구약 성경에는 예수를 심판자로 보내겠다는 말이 없다. 물론 신약에도 누가 예수를 심판자로 보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단지 신이 신의 아들 예수를 심판자로 보내겠다고 기독교가 주장하는 말이다.
30절을 보면, 이 말은 기독교의 주장이 아니라 예수의 주장이다. 그럼, 예수의 주장이 옳은 주장일까?
예수의 심판은 언제, 누구에게 해당하는 심판일까? 첫째,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다. 살아있는 자들의 심판자가 아니다. 둘째, 선한 일을 행한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자들의 심판자가 아니라 오직 악한 일을 행한 자들로 심판의 부활로 나오는 자들의 심판자 이다.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이 아니라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이다. 예수 안 믿으면 죽어서 지옥간다고 말하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 예수 심판의 대상이다.
31절을 읽어보자.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질문4. 30절은 누가 누구를 증거하고 있는가?
30절은 분명, “내가, 나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이 증거는 거짓된 것이다. 왜, 기독교인들은 31절의 예수의 말을 믿지 않을까?
32절을 읽어보자.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질문5. 예수를 위하여 예수를 증거하시는 이는 누구인가?
구약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으면, 참 일수는 없다. 거짓말 이다.
33절을 읽어보자. “너희가 요하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하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질문6. 세례 요하난이 증거한 진리는 무엇인가?
요1장6-8절을 읽어보라. 세례 요하난이 증거한 진리는 “빛”이다. 예수가 아니다.
세례 요하난이 예수를 진리다 또는 빛이다 라고 증거한 구절이 있으면 구절을 말해 보라.
34절을 읽어보자.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함이니라”
질문7. 구약에도 증거가 없고,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라고 하는 세례 요하난에게도 증거가 없으면서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말하는 것은 순전히 거짓말 아닌가?
35-36절은 예수가 세례 요하난의 증거를 무시하는 구절이다. 때문에 37-38절을 읽으면 세례 요하난의 증거를 무시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질문8. 예수가 세례 요하난의 증거를 무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아버지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둘째,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셋째, 너희 속에 아버지의 말씀이 없다.
참으로 어이없는 논리이다. 아버지를 본 사람도, 아버지의 음성들 들은 사람도, 아버지의 말씀이 속에 있는 사람도 없다. 그럼, 예수를 증거한 아버지의 역사를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결국 예수의 말은 거짓말이다.
39절을 읽어보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지만,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잘못된 번역 개역한글을 읽어보면,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해서 성경을 연구하지만, 사실은 성경에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나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해석되어진다.
물론, 당신은 논자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신약에서 말하는 “γραφή (grape: 기록된 것)”은 구약 성경을 의미한다.
질문9. 과연 구약 성경에서 예수를 증거하는 구절이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보아라.
없다. 4복음서에 간혹 구약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마치 구약의 예언이 신약의 예수에게서 이루어진 것처럼 해석한 구절이 있다. 그리고 신약을 경전이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구약 성경은 모두 예수를 증거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세뇌당한 것이다.
신약에 인용된 구약 성경 구절은 절대로 예수에 대한 증거가 아니다. 모두가 거짓말이다.
40절을 읽어보자.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39절을 해석한 논자의 해석이 잘못된 해석인가? 아니다. 논자의 해석은 정확했다.
질문10. 당신이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는 이유는 영생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예수는 “영생을 얻기 위해 내게 오지 마라”라고 말한다. 예수는 예수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안 주겠다는 것인가?
41절을 읽어보자.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기독교인들은 참으로 이상하다. 논자는 30절에서 41절까지 읽으면서 도대체 예수는 무순 말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지 못하는데, 기독교인들을 참 잘도 이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위의 질문 10까지 정확한 답을 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아멘”하기 때문이다.
질문11. 자신이 자신을 증거하면 거짓이고, 타인이 나를 증거하면 참이다라고 말하면서 요한의 증거는 신뢰할 수 없고, 성경의 기록된 자신에 대한 증거는 참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구약 성경은 예수에 대하여 증거한 구절이 단 하나도 없다. 또 성경은 영생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거나 자신 앞에 나아와도 영생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라고 다른 주제로 말을 잇는다. 대체 앞, 뒤 논리가 맞지 않는 말을 이어가는 예수의 의도는 무엇일까?
41절의 정확한 번역은 “나는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지 않는다”이다.
누가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영광를 돌리겠다고 했는가? 한 사람도 없다.
42절을 읽어보자. “다만, 신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정확히 번역하면, “또한 너희 속에 신을 사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질문12. 예수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지 않는다는 것과 사람들 속에 신을 사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무순 연관이 있나?
예수는 자신이 “신(야웨)”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을 야웨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신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43절을 읽어보자.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질문13. 예수의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인가? 요쎞 일까? 야웨 일까? 아니면 신(하나님)일까?
헬라어 번역 성경(LXX)에는 예수의 아버지의 이름은 오직 “요쎞”이다. 헬라어 성경(LXX)를 번역한 성경은 육체적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름은 요쎞, 영적 아버지의 이름은 “신(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신(하나님)”은 일반 명사 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이 될 수 없다.
질문14. 그러면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일까?
히브리어 성경 타나크에 히브리인들이 믿는 신의 이름은 “הוָֹהיְ (yhwah: YHWH야웨, H3068)”라고 기록 되어있다. 곧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의 이름은 “야웨”인 것이다.
질문15. 예수는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라고 했는데, 예수라는 이름과 야웨라는 이름이 동일한 이름인가?
아니다. 전혀 다른 이름이다. 발음도 뜻도 전혀 다르다. “야웨”는 “나는 나다”라는 뜻의 이름이고, “Ἰησοῦς (이에수스)”는 “이에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예수와 야웨가 동일한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43절을 계속 읽어보자.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질문16.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영접하리라”라는 말을 예수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해석해 보라. 그래도 당신은 예수가 야웨와 같은 이름이라고 믿는가?
44절을 읽어보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신(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라는 뜻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받는다는 말이다.
질문17.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영광은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기독교인들은 사람이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상 숭배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영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억지 주장이다.
“δόξα (doxsa: glory 영광, G1391)”는 “칭찬, 명예, 존귀, 공경, 위엄”등을 나타내는 단어로 상대방을 크게 칭송하는 단어이다. 때문에 꼭 신을 향하여 쓰여지는 단어가 아니라 나라, 왕, 사람, 사물 등 여러 대상을 향하여 사용되는 단어이다.
“유일하신 신(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여기에 쓰여진 “구하다”라는 단어는 “ζητέω (ejtew: to seek 추구하다, G2212)”는 “찾다, 욕망하다, 요구하다”라는 의미의 단어로 “신이 사람에게 주는 영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질문18. 예수는 사람들이 유일한 신(하나님)이 주는 영광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왜 사람들은 하니님이 주는 영광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 근거를 요5장30-47절에서 찾아보라.
35-36절에 답을 제시하고 있다.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당연한 것 아닌가!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마음 속에 유일한 신의 말씀이 없는데, 유일한 신이 영광을 주었다고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증명도 안되는 예수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질문19. 증거도 없고, 증명도 안되는 예수의 말을 믿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참 믿음인가?
45-47절을 읽어보자. “45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쉫니라 46모쉫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참으로 어이없는 구절이라 설명하지 않겠다.
질문20. 모쉫가 예수의 아버지 유일한 신(하나님)에게 유대인들을 고소하는 자 인가?
질문21. 모쉫는 범죄한 이쉬라’엘을 야웨께 고소했나? 아니면 변호했나?
질문22. 유대인들은 모쉫를 믿었나? 아니면 안 믿었나?
질문23. 모쉫가 기록한 것은 무엇인가?
질문24. 모쉫가 기록한 것에 예수에 관한 글이 얼마나 있는가?
질문25. 유대인들은 모쉫의 글을 믿지 않았는가?
질문26. 당신은 이 글을 읽고도 예수의 말이 진리라고 믿겠는가?
3. conclution: “예수는 사기꾼 이다.”
힌두교와 그릭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에서는 사기는 범죄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기는 범죄가 아니라고 법률로 성문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기치다”라고 말할 때는 그 의미를 “누군가에게 거짓말로 속여 금전적, 물질적, 또는 정신적으로 손해를 입히는 행위”를 “사기”라고 말한다.
때문에 캐나다에서는 속임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모든 거래에는 항상 변호사의 싸인을 받아야 한다. 변호사의 싸인이 없는 거래는 절대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때문에 힌두교와 기독교 국가에는 사기꾼이 아주 많이 있고, 대부분 사기 사건은 초대형 사건이 많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 사기꾼에 의해 사기만 당하지 않으면,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당신은 지금도 사기꾼의 말에 속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의 본문 요5장30-47절은 전형적인 사기꾼의 언변이다. 이런식으로 말하는 놈은 100% 사기꾼이다.
렘14:14 “וַיֹּ֨אמֶר יְהוָ֜ה אֵלַ֗י קֶר הַנְּבִאִים֙ נִבְּאִ֣ים בִּשְׁמִ֔י לֹ֤א שְׁלַחְתִּים֙ וְלֹ֣א צִוִּיתִ֔ים וְלֹ֥א דִבַּ֖רְתִּי אֲלֵיהֶ֑ם חֲזֹ֨ון שֶׁ֜קֶר וְקֶ֤סֶם [וֶאֱלוּל כ] (וֶֽאֱלִיל֙ ק) [וְתַרְמוּת כ] (וְתַרְמִ֣ית ק) לִבָּ֔ם הֵ֖מָּה מִֽתְנַבְּאִ֥ים לָכֶֽם׃ ס
야웨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예언을 했으나, 나는 그들에게 명령하여 보내지 않았고, 거짓 계시와 복술을 말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속임의 속임으로, 허탄한 것의 허탄으로 너희에게 예연하였다.”
예레미야서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들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신약에 기록된 것들을 예레미아서와 비교해 보면서 읽어 보면, 신약 성경이 얼마나 거짓 증거인가를 잘 비교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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