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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대회를 신청하면서 2년전 아픈 기억이 많이 되살아 났었다.
남들에게는 흔하고 뻔한 많은 대회들 중 하나로 밖에 기억 남았겠지만 나에겐 잊을 수 없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기 때문,
하프대회에서 두번 완주를 못했었는데 한번은 성남에서 또 한번은 여수에서 ...
두번의 경우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먼저 공통점은
첫째, 달리다가 개인의사에 따라 포기한 것이 아니고 쓰러져서 엠블란스에 실려갔던 것
둘째, 성남은 이른가을, 여수는 늦은 봄이었지만 둘다 더운날 열사병으로 떨어졌다는 것.
셋째, 기록단축을 위해서 지나치게 무리했다는 것
(결과적으로 성남은 40분 이내에 들기 위해서 여수는 20분대에 들기 위해서???)
차이점은
성남에서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병원에서야 깨어 났지만 여수에서는 그나마 잠시 실신한 수준이고 병원이 아닌 대회장으로 후송되었고 과거의 경험(?) 으로 스스로 응급조치를 취하고 회복했다(냉수끼얹기 등)
하여간 두말할 나위없이 부끄럽기 그지 없는 아픈 과거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겨울엔 클럽에 합류한 뒤에 처음으로 참가했던 여의도 대회에서의 부진을 설욕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었고 이번에는 여수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각오를 다진다.
2002년 5월초 어느날 25인승 마이크로버스에 몸을 싣고 화기애애하게 도착한 여수망마경기장은 한눈에 봐도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바닷가 도시의 특성대로 바다에서 벗어나자 마자 바로 산으로 이어지는 지형인데 산중턱에 걸려 있는 경기장에서 해안도로와 표고차 심한 도로를 두루두루 돌아오는 코스가 그것이었다.
하여간 출발한 뒤로 당시 평년 수준의 페이스로 그럭저럭 잘 달리다가 돌아오는 길에 철수형님을 비롯해 여러 형님들을 차례로 하나씩 따라 잡고 막바지엔 김진환 회장님까지 앞질러 경기장으로 향하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끄트머리의 긴 오르막 한쪽에서 드디어... ....
어질어질~비틀거리다가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아! 내가 드디어 클럽에서 두 송씨 다음으로 들어오는 행운을 잡는 구나!'
'잘 하면 30분 내외로 끊을 수도 있겠다!'
'~~~ ~~~'
2년이 지난 뒤~
설욕이라는 이름을 걸고 다시 찾은 망마경기장은 봄날 아침의 평화롭고 한가로운 풍경 그대로이다.
대회가 예정보다 십여분 늦게 진행이 되었지만 어김없이 출발을 알리는 신호는 주자들의 심장을 사정없이 요동치게 한다.
기나긴 여행길, 떠나면 반드시 내발로 돌아 와야 되는 이 신나는 고행길에 다시 또 접어든다.
출발 직후 운동장을 벗어나면서 부터 이어지는 삼백여미터의 내리막 그리고 좌회전후 삼백여미터의 직선평로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곧이어 정신없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니? 여기서 오르막이???
망마경기장이 표고 60미터대의 높이에 있는데 1차반환점은 여수방향으로 5Km지점의 해안도로니까 거기까진 내리 내리막이어야 할것 같은대도 오르막이 있다는 것은 한술을 더 뜬다는 소린지...
하성실여사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이정순씨가 성급하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려는 듯 하기에 천천히 페이스조절을 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지나쳐 간다.
한참 험하고 긴 오르막 끝에 이르니 오른편에 바다가 훤하게 들어오고 넓직한 외곽도로가 시원하게 바다를 향해 뻗어 있다.
이것 저것 머리 쓸 것 없이 자유낙하의 법칙에 따라 내리막을 사정없이 솟구쳐 내려간다.
하지만 얼마뒤 다시한번의 오르막이 의욕을 꺾는듯 버티고 있다.
'이건 해도 너무하는 것 아냐?'
작년부터 이 코스를 이용한다는데 2년전 첫 회 대회 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처음부터 사람 맥 빠지게시리....'
선두주자가 1차 반환점을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내 앞에 달리는 사람들의 수를 세어 보니 대략 20명 내외인 것 같다.
'햐~! 오늘 목표가 50등 이내에 들어서 갖김치 타가는 것인데...'
반환점은 놀랍게도 감지기가 설치 되어 있다.
감지기와는 별도로 표식리본까지 나누어 준다.
5Km구간 시간이 정확히 19분을 가리킨다.
'적당한데...음!!'
경기장 앞 삼거리까지 이르는 길은 또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의 조합인데 아무래도 표고차가 나는 만큼 오르막이 강세이고 거기다가 맞바람까지 분다.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게 제대로 뛰고 있는 것인지...
이런 무지막지한 코스에서 이대로 끝까지 퍼지거나 쳐지지 않고 밀어부칠수가 있을 것인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채 경기장에서 600미터 쯤 못미친 삼거리에 이르니 10km주자들과 5Km주자들은 경기장으로 보내고 하프코스 주자들은 왼쪽으로 유도를 하는데 정말 걱정된다.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한번더 갔다와야 된다니...으~
그나마 긴 내리막이라 호흡과 다리힘을 회복하는데 한결 도움이 되니 다행이다.
바로 이지점이 재작년에 쓰러진 곳이다 싶으니 한결 긴장이 되면서~
좌로 우로 몇차례 꺽이며 한참을 달려 내려오니 기다리던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하따~기네잉!"
"니그미 이따가 올라올때 돼졌다!"
모든 신경은 막바지 2Km에 이르는 이 오르막에 쏠린다.
출발해서 대열이 정비된 뒤로 단 한사람에게 추월을 내주고 몇사람을 따라 잡았을 뿐 앞서가는 사람들은 나보다 실력이 앞서는 고수들이고 또 뒤따라 오는 사람은 나를 따라잡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뭐시기한 사람들인가 보다.
덕분에 해안도로를 2차 반환점까지 오가는 동안 외로운 싸움이 계속된다.
100여미터 쯤이나 되어보이는 앞에 두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티격거리고 있을 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제대로 뛰고 있는지 아님 속도가 저하되고 있는지 앞선 주자와 거리차가 유일하게 가늠해 주고 있다.
15Km표지판이 보이고 여전히 외로운 싸움이 계속될 무렵, 언제부턴가 윗배가 복통을 일으키더니 점점 심해진다.
'우이쒸! 이럼 안돼지!'
'아! 여수는 이렇게 또 나를 침몰시키는가?'
'이게 뭐란 말인가?'
'다시 또 실패를 맛볼 것인가?'
'인생살이 참 기구하다! 에구!!!'
어떤 모습으로 또 한번의 실패를 맞이 할 것인가를 면밀히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간사한게 인간이라고 그 와중에도 핑곗거리를 생각하게 된다.
핑계거리???
없다!
그럼???
이대로 페이스를 죽여서 끝까지 간다면 기록은??? 순위는???
그리고 ...
... ....
만약 이때 뒤에서 몇 사람이 치고 나갔더라면 정말 그대로 침몰했을지도 모른다.
2년전보다 한술 더 떠서 이번엔 고작 15Km지점에서 망가진 폐선이 되어 인양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으란 법은 없던지 추월해 나가는 주자가 없다.
내가 힘들고 고통스런 만큼 뒤따라 오는 사람들도 죽을 맛일게다.
'하긴 뭐 나를 추월하기는 커녕 거리가 더 벌어질 수도 있겠지!'
그러던 차에 15Km지점에서 기록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아니니니니??? 이럴수가????"
54분대에서 기록이 찍혀있다.
생전없던 복통이 일어나고 난리를 쳤던 것이 악수가 퍼지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지난 겨울 이후 달리는 폼을 여러차례 잊어버리고 그에 따라서 페이스가 턱없이 올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죽네 죽네 하면서도 앞서가는 고수들 뒤를 쫒아 간격을 유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페이스오버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죽을 쒀도 이대로 주저 앉지만 않으면 ....
걷지만 않으면....
아니 막바지 오르막에서 퍼지지만 않으면....
오늘 역사는 다시 쓰여진다!
2차 반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지만 한결 힘이 난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확인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다시또 선두가 맞은편에 보이기 시작한다.
수를 세어보니 여전히 20등!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대로 간다!
이대로 경기장에 간다!
실패는 없다!
빠샤!!!!
반환점을 돌고서 이번엔 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분포를 눈여겨 보게 된다.
7Km지점 쯤에서 나에게 추월당한 분이 150미터 가량 뒤진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고 듬성듬성 주자들의 분포가 한가하다.
한참 뒤에 눈에 힘을 주고 신경을 써가며 바라보던 맞은편 도로에서 이정순씨가 선두로 달려온다.
주변을 아무리 눈씻고 봐도 경합하던 하성실여사는 보이지 않는다.
'아! 해내고 있구나!'
작년에 이대회에서 이코스에서 막강 위길숙여사를 2분 가까이 따돌리며 우승했던 그 대단한 여걸을 앞질렀다고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온다.
내려오는 길에도 하성실씨는 이기기 힘들테니 무리하지 말고 뒤만 잘 따라가다가 기회를 봐서 한번쯤 생각해보라고 주문했었는데....
발걸음에 힘이 솟아난다.
처음처럼 사쁜 거리지는 않아도 제멋대로 퍽퍽거리며 달릴지라도 의욕은 오히려 솟아나고 있다.
19Km표지판을 끝으로 이제 기나긴 마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앞서가는 두사람이 매번마다 꺾이는 모퉁이 끝에 보였다 사라지곤 한다.
'하나쯤은 퍼질 줄 알았더니....A~C!'
숨이 점점 차오르고 쓰러졌던 그곳을 지난다.
다급하게 나를 부르며 챙겨주시던 김진환 회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걱정스럽게 수발해주시던 정식형님이랑 그 수많은 얼굴들...
그 와중에 강기상이 드디어 이겼다고 좋아하시던 분도 생각나고...
하지만 그 뒤 2년동안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갖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따복따복 이렇게 자라왔습니다.
팔을 치는 손에 한결 힘이 솟는다.
오르막을 치고 오르던 형재영 선수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 그 대선수도 이를 악물고 팔을 좌우로 힘껏 치면서 라스트스퍼트를 했었지! '지난 역전경기때 오수주유소에선가... 아마 그랬지?'
삼거리에서 좌로 꺾여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그야말로 필사적이다.
뭤땜에 이렇게 죽기 살기로 마지막까지 댐벼야 되는지?
누가 알아주어서가 아니라 내 자신에 떳떳하기 위해서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그 성취감!
그것을 위해서 지금 초를 다투는 막판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리라!
경기장에 이르는 오르막을 좌우로 늘어선 사람들이 환호를 보낸다.
저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그냥 선두그룹에서 잘 뛰는 사람인줄만 알고 있다!
쪽팔리고 복잡한 사연을 안고 사력을 다하는 줄은 알지 못하고 그냥 잘 뛰는 사람이니까 으래 그러려니 하는 마음일께다!
경기장 트랙에 들어서서야 오르막이 멈춘다.
하지만 트랙을 한바퀴 돌아서 들어가란다.
'으이구! 18!!!'
아까 출발전에 김갑수님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수도 없이 물어 봤었다.
한결같은 대답이 '바로 갔다 바로 골인한다'였는데 ...
확신을 가지고 바로 피니쉬로 향하던 사람이 호각소리와 함께 뒤돌아서서 트랙방향을 잡는 촌극이 벌어진다.
익숙한 감촉을 발바닥을 통해 전달받으며 한바퀴를 돌아 피니쉬아치를 통과한다.
1시간 21분 01초!
하프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고창에서 온 주변분들이 뛰어 들어오며 축하와 덕담을 건내준다.
집사람은 이시간대에 들어올줄은 몰랐던지 한참 뒤에야 나타나서 잔디밭으로 가로 질러 걷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친다.
"아니, 산이아빠! 거기로 오면 어떻해요?"
"트랙을 돌아야쟎아?"
"... ..."
"아니? 그럼 당신 이번에도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