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뛰고 세로 뛰고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올해도 이제 저물어갑니다. 새해에 들어 올해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사히 잘 지나갈까. 가족들은 무사하고, 건강은, 태풍은 몇 개나, 남북 관계는 좋아질까, 세계정세는? 올해도 어김없이 어려운 일들이 다가오고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한해를 넘기기도 점차 버겁기만 합니다.
난제(難提)들은 항상 있는 것이고, 따라서 ‘바쁘다’라는 망(忙)이란 말을 붙이면 올해도 역시 다사다망(多事多忙)한 한해였습니다. 이웃과 갈등으로, 관청 행정에 반대하는 시위와 봄부터 너무나 자주 내리는 비 때문에 주변의 밭과 정원에 풀을 뽑을 수 없어서 풀밭이 되어가고, 해가 드는 날에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풀밭을 헤매는 한 해가 되었습니다.
몹시 바쁠 때 어머니께서 자식들에게 꾸짖을 때 하시는 말귀가 이제 나이 들어서 새삼스레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동분서주(東奔西走)라는 말과 비슷한 말로 “얘들아!, 너희들은 엄마, 아부지가 가로 뛰고 세로 뛰는 것도 보지 못하네(니)!” 우리 형제들은 어리둥절해서 왜 어머니께서 그리 야단치시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여름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마당에 널어져 있는 고추 멍석을 재빨리 채서 거두어들이거나, 가을날 따가운 햇볕에 널어놓았던 나락 멍석을 해가 저물면, 모아서 덮어 두어야 하는데, 이미 어둑할 때까지 그대로 둔 우리를 야단을 치셨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어머니는 밥에 국을 말아 들고 다니며 식사를 하시면서 “뭘 알아야지!” 하는 넋두리를 하셨습니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전, 밖 날씨를 계산해 비 설거지해야 하는 것도, 우리가 먹을 나락이 이슬에 젖지 않게 덮어두어야 하는데, 그때 우리는 새 둥지에 모여있는 새끼 새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아기는 기어가다 넘어지면서 차츰 잘 기어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합니다. 기본적인 지식은 학교에서 배우지만, 사회의 일터로 들어가면 생각과 말과 행동은 ‘알아서’ 나름대로 듣고 보고 적응 방법을 터득합니다. 이 알아서 배우는 것은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함이지만, 또 공동선을 생각해야 합니다.
올해 대학교수가 뽑은 사자성어(四子成語)는 견리망의(見利忘義)라 합니다. ‘이익이 되는 것을 보고 의로움은 잊어버린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국민의 삶이 산란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많아졌습니다. 이익이 된다면 의로움은 잊어버려, 누가 돈을 어떻게 많이 벌었는지가 이야깃거리가 되며, 횡포에 가까운 정치 세력의 갈등들이 한국 사회의 공동체 요소가 사라지게 만들고, 사회의 연대 의식이 갈기갈기 찢겨가며, 세대- 또는 빈부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사회상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전보다 우리는 너무 잘 입고, 먹고, 좋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제쳐 두더라도 밥을 한번 실컷 먹어보았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근처로 소풍 갈 때 달걀 한 개만 삶아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기억은 슬픈 기억이지만, 가난을 통해 나의 삶을 강하게 만들고, 또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의 행동을 조심스레 만듭니다. 조금은 부족한 듯 살려 하고, 남에게 내가 조금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으로 살려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