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충무 정에 발전사
철 탄산 정기아래 자리한 영주는 신라 고 구려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천사를 거듭하여 오면 셔 불교문화를 꽃 피워왔고 또한 유교 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수많은 무인(武人)을 배출한 자랑스런 고장에 전통의 弓道場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고 1930년 지방인사 한복흥,(韓福興) 장석주,(張奭主) 박명덕,(朴命德) 석귀봉,(昔貴峯) 김주성 씨,(金珠先) 5人이ㆍ뜻을 같이하여 觀德亭(관덕정)이란 정 이름으로 영주 서천 교 및 로 천에 궁도장을 세위 습사(연습)를 하였으며 당시 사원들도 많이 증원되었다 1935년 7월 초 亭 名( 현판)을 忠武亭(충무정)으로 바꾸었고 1946년4월 현 영주초등학교 뒤편 옛 신사 자리로 사장을 옮겨 4년간 習射(연습) 하던 중 뜻하지 않앗 든 6,25동란으로 인하여 휴정 하였다가 수복 후 1953년 봄 원당 천에 임시 궁도장 을 세워 연습을 하여 오다가 1955년1월 초 위의 장소가 너무 나 협소하여 더 이상 연습을 할 수 없어 다시 영주 서천 교 밑으로 옮기는 산토끼 마냥 집을 등에 업고 쫓겨 다니는 수난을 격어 오든 중 1962년5월18일 영주 대 수해로 관혁을 물속에 떠내려 보내고 습사가(활연습) 또 중단 되었든 것을 수해 복구 사업으로 영주 공설운동장이 신설되어 영주 군청의 협조로 공설운동장 강변 쪽 부지에 새로운 궁도장을 마련하여 습사를(활연습) 하였다 당시 수해복구 사업으로 서천 직강 공사 착공식(着工式)을 본정 射場(활터) 에서 국가재건최고 위원회 박정희 장군이 발파 카운터 따운 을 누른 장소라 뜻깁은 장소 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射場(활터)은 확보 되었으나 정 건물이 없기에 궁시(활살) 장비를 보관, 관리할 수 있는 궁방이 없어 든바 다행스럽게도 1970년 도 전국 궁도 대회에서 우승하고 연이어 경북 도 궁도 정 대항 전 에서 우승의 영광을 얻게 되어 이 기회에 정 건립의 필료성을 가저 정 창건 기회가 발족 되 엇다 발기인으로 영주군 채육회장(군수) 김정식, 영주 경찰서장 송진수, 영주군 번영회장 정현석, 영주군 상공회의소 소장 김두혁, 영주군 궁도회장 양익호, 모두 8명으로 구성 되 엇으며 위 인사가 추진한 결과 금교성, 양익호, 전운학, 김두혁, 남봉석.등 5명의 희생적인 헌신과 본정 강창세 사우의 적극적인 섭외로 당시 국회의원 김 창근, 씨의 도움을 받아 1971년 4월에 구성산 기슭 서천 강변에 고희를 맏는 선배 동요 5友가 목조 와가 건물을 새우고 영광의 충무정의 현판식을 거행할 수 있는 꿈을 이루게 되었다, 이곳에서 23년이란 애환이 담긴 세월 속에 수많은 후배들을 양성하고 습사(활연습)를 해오는 대는 절대 없어서도 안될 한상기 사범이 전생을 궁도에 몸 바처 사우들에 고가의 활이여서 정을 숙직해야 하는 어혀움도 있어 활을보호하기 위라여 정이 옮겨 질 때 마다 가정을 뒤로한체 활을 뵤관 하고 점화(일정한 보관 온도)관리를 해야하는 사범에 주어진 보수없는 책임 자였다. 당시 한사범은 젊은나이에 아릿다운 신부를 독수공방 시키고 그림자처럼 정을 따라 다니며 손톱과 발톱을 깎아야 했다, 인생 철학에는 즐거우때 손톱이 자라고 고달풀때 발톱이 자란 다고 했으니 한 사범은(한상기) 씨는 손톱 보다 발톱을 더 자주 깎앗 으리라 본다 .정말 고생 많이 했다고 본다, 1994년 5월에 본 고장 영주에서 처음 게체 하는 제32회 경상북도 도민 채육대회 에 본정이 협소하여 궁도대회를 치룰 수 업음 을 안타 갑게 실감하고 1993년 김지순, 영주 시장과 영주 시 의회 전동호, 의장과 그리고 우영구,의장에 힘을 입어 본 충무정 전 회원이 헌신적인 혼을 쏫아 지금의 자리 영주시 휴천1동 1109번지에 부지를 매입하여 철근 콘크리트 와가 34평 사대55평으로 경북도 네에서도 가장 우수한 궁도장을 충혼탑 옆 아늑한 위치에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정을 건립하여 1994년 5월 10일 중공과 동시에 사정을 이전 하므로 서 후손들의 궁도발전을 육성할수 있는 큰 터전이 되었다.당시 고영기 사두(회장)을 비롯헤 부사두 (부회장)안세기 ,사법 한상기 씨에 명궁술로 키워 온 경북 도협회 출전 선수 등록 명단은 한상기. 강창세, 고영기, 최갑석, 안세기, 정규성, 심창용, 김홍기, 김규원, 이희양, 모두가 날아가는 참새도 떨어 트린다는 명궁으로 소문난 선수들 이지만 더 날고 기는 젊은 후배들 에게 기량을 전수 하고 지금은 모두가 휴정을 하고 아름다운 고희를 즐기고 있다, 옛 궁도는 문인 들만 할수있던 유희로서 활터에서 궁시를 즐기며 활을 쏘아 관중을 하면 시동이(화살을 줒어오고 관중을 알려 주는사람) 관중이요 하고 붉은 깃발을 헌들며 고함을 처 주면 그저 흥이나서 괴지나 칭칭 나네 하며 술상 을 빙글 빙글 돌며 한바탕 지화자 노레를 부르고 춤을치며 술상 앞에 둘러 안좌 술잔을 기울이며 시 한수를 안주 삼든 귀족 운동 이였지만 지금 은 누구나 참여할수 있는 스포츠화 되어가고 있어 참으로 아름 다운 시대적 변화 라본다 하지만 그러든 낭만에 옜 풍습도 한번 보고 십어 진다. 보도 실버기자 안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