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일 월요일, 화창한 날씨였다.
전철에 올라, 2시간 반에 이르는 먼 거리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방문했다.
서울에 좀처럼 갈 일이 없는 천안 토박이였던 나는 (천안도 도시지만) 촌에서 온 사람마냥 행동했던 것 같다. 본래 길치기도 했지만, 명확히 안내판과 지도가 있는 곳에서 본인이 어디 있는지,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갈피조차도 잡지 못하다니.
아침에 출발했지만 도착하니 벌써 점심이 되었다. 지금 컨디션으로는 관람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겨우겨우 찾은 식당에서 한 끼를 때웠다.
총 3가지의 전시를 보고 왔다(모든 작품이 꼭 다 전시장에 놓인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데는 결코 짧은 시간이 걸릴 수 없었으리라.
첫 번째 전시『올해의 작가상 2016』
총 2개의 전시관을 차지하고 있던 『올해의 작가상 2016』이 가장 즐거웠다. 독특한 작품들이 많았고(독특해야 작품이지만!) 그 중에서 내 마음을 이끄는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믹스라이스의 영상 작품 『덩굴 연대기』.
영상 상영관을 나가면 사진이 한 장 걸려 있는데, 각각 앞면과 뒷면이다.
영상 자체도 몰입감이 좋았고(다만 옆의 어린이가 비염에 걸린 건지 자꾸 콧물을 들어마시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드르렁댔던 탓에온전한 집중은 어려웠지만), 비교적 단순한 문장 구성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 덕분인지 내용이 쏙쏙 들어왔던 것 같다.
이 외에도 갖가지 조형물이 놓여 있었지만, 아무래도 디자인공학 출신이다 보니 '저 작품을 찍어내려면 금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거지' '저만한 크기로 뽑아 내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깨지겠는걸'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벌써부터 직업병이 생기면 어떡하냐.
사진을 촬영하진 않았지만, 마음에 들었던 또 다른 작품 중 하나는 밑창에 글자가 새겨진 운동화 여러 켤레였다. 이 운동화를 신고 뛰면 꼭 글자 모양 그대로 자국이 남는 형식이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를 들자. 보통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표현 그대로, 내가 이 운동화를 신고 걸어간다면 내 발자국 대신 사랑스러운 말이 담긴 글자가 바닥에 새겨질 것이고, 내 뒤를 따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발자국으로 새겨진 글귀를 읽고 힘을 얻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 전시『공예공방│공예가 되기까지』
아쉽게도 두 번째 전시에서는 사진을 촬영하지 못하였다(솔직히 말하자면 사진으로 남긴 전시가 첫 번째 전시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수공예로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비록 요즈음 바빠서 많이 만들지 못하지만 공예공방이라는 두 번째 전시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시간을 두드리다』『공간을 주무르다』『관계를 엮다』 세 파트로 나뉘어 있는 이 전시 역시 2개의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 전시장『시간을 두드리다』에 들어가면 거대한 놋쇠 그릇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상을 보고 작품 설명을 읽어 보니 그릇이 아니라 종(鐘)이란다. 정해진 시간마다 종을 울리는 퍼포먼스가 있다는 안내도 있었다. 시각을 확인해 보니 퍼포먼스가 갓 끝난 후였기 때문에, 다음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작품을 구경하러 갔다.
다음 전시장『공간을 주무르다』에서는 공예가가 직접 손으로 도기를 빚는 모습이 있었다. 영상을 보고서는 '도기를 만드는구나, 손자국이 많이 나 있네' 이 생각에 머물렀지만, 실제로 전시된 작품을 보고 나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레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도기는 거의 완벽한 대칭을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이루고 있었다.
사실 난 지난 학기, 디자인공학 전공 과목 중 '디자인재료' 수업에서 직접 도자를 한 적이 있다. 청자토를 가지고 직접 자신만의 도기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내 손이 따뜻했던 탓에(절대 내가 손재주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청자토에 있던 물기가 내 손에 닿아 증발해 버려서, 만드는 족족 갈라지고 말았다. 전시되어 있던 멋진 도기를 보다가 내 두 손을 바라보았다. 아마 내가 저 경지까지 가려면 한 십만년은 기다려야겠다.
마지막 전시장『관계를 엮다』에서 가장 주의깊게 보았던 것은 모시 베틀이었다. 사실 우리 집에도 모시 이불이 있어, 여름에 덮고 자기 매우 좋다. 모시가 값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모시를 직접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하는 영상을 보며 그저 멍하니 있었다. 한 베를 짜는 데 무려 닷새가 걸린다니... 그렇게 짜여진 모시는 참 아름다웠다. 과연, 한 땀 한 땀 사람의 땀이 섞인 그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이 드신 분들께 모시로 만든 옷을 선물한다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의 전시를 관람한 뒤에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행히 제 4전시관 출구 바로 앞에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잠깐 동안 휴대폰 게임을 하며 휴식을 취한 후, 다음 전시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세 번째 전시『마음의 기하학』
아마 세 번째 전시에서 사진을 남기지 않은 이유는 들어갈 때 촬영을 자제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제를 요구받은 건 플래시 촬영뿐이었지만, 나는 잘 잊어버리는 성격이라 일반 촬영도 하지 않고 나온 것 같다)
다른 전시는 그냥 들어갈 수 있는 데 반해, 이번 전시는 기다린 후 들어가야만 했다. 바로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형식의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기다린 후 안내인의 안내에 따라 설명을 들었다.
"각각 색깔과 질감이 다른 4가지의 점토가 있습니다. 탁구공만한 크기만큼 떼어 가신 다음에, 자신의 마음을 깎아 둥글게 만들어 간다는 느낌으로 이 점토로 공을 만든 뒤 테이블에 두시면 됩니다. 다른 관람객과의 대화는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부드러운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4가지 점토를 모두 만져 본 다음 가장 부드러운 점토를 선택해서 가져갔다. 테이블 위에서 둥글게, 또 둥글게 점토를 공으로 만들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다 보면 마음의 어딘가가 모나 버리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떤 생각도 내 행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나는 점토를 둥글게 하는 데 신경썼다.
좋은 디자인은 기하도형을 알맞게 이용해 아름다운 조형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시 제목으로도 쓰인 마음의 기하학이란 무엇일까. 모든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얼마나 이끌어내느냐, 그리고 그 마음에서는 어떤 모양이 보이는가. 그것을 읽어내는 과정이 마음의 기하학이 아닐까.
마음에 와닿았던 김수자의 작품『호흡』
3가지 전시 관람을 마치고 그대로 나오기는 아까워, 나는 다른 전시가 혹시나 있을까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이끈 작품은 이번 전시 관람에서 내 마음에 가장 강하게 꽂힌 작품이 되었다.
복도를 거닐다가, 나는 형형색색 찬란한 빛에 이끌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람객들 또한 이 빛에 이끌린 듯, 일제히 창문을 내다보며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창문 안쪽을 들여다본 풍경이다. (나는 이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출입구가 있었다는 것을 아직 알기 전이었다)
필름 때문인지, 작품은 흔들려 보였다. 꼭 작품이 진동하면서 무지개빛을 내뿜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저것이 무엇이기에 우리에게 아름다운 색상의 무지개를 보여주면서 정작 자신은 보여주지 않으려는 걸까.
나중에서야 알아낸 출입구를 통해, 나는 이 작품을 좀 더 가까이 가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작품이 전시되어 있던 곳에는 천장이 없었고, 이곳에도 비가 약간 내렸었기 때문에 작품 주변을 둘러싸던 흙은 질척해져 있었다. 철없는 어린이들이 진흙을 밟으며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고 있었고, 그런 아이들이 혹시나 작품을 둘러싼 울타리를 넘어갈까 부모들이 아이들을 단속하고 있었다.
비가 왔다는 사실을, 작품 바로 아래에 놓인 거울이 알려 주고 있었다. 거울은 내린 비를 맞고, 본래의 평평한 형태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왜곡된 모습은 거울을 더욱 더 아름답게 만들었고, 그런 거울이 만든 알의 반사된 모습이 작품을 더 신비하게 만들었다.
비가 갠 뒤 화창한 날씨, 모처럼의 공휴일에 미술관을 두루 다니며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요즘 들어, 바쁜 일정과 많은 과제, 그리고 중간고사를 핑계로 이런 예술적인 것과 접촉할 시간을 내기 힘들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번 과제를 통해 (어쩌면 이번 과제를 핑계로) 다양한 작품관을 엿볼 수 있어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작품에 비친 또 다른 나와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