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거창교회에 부임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정목사: 네 어떻게 보면 인간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솔직하게 가장 근본적인 동기를 말하라면 어머니 때문입니다. 지난 96년도에 아버지가 소천하셨는데, 부모님은 못난 자식의 뒷바라지만 하시다 가셨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린 것이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제법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으나, 추운 방에 보일러 하나 설치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조금 형편이 되면 보일러를 놓아드려야지 하던 중 소천하셨습니다. 변변히 학교도 보내지 못한 부모님들도 자녀들 덕을 보며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사시는데, 목사 뒷바라지 한 제 부모님은 평생 늘 힘든 노동만 하며 사신 것이 씻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다가와 1년이 넘도록 잘 때마다 아버지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주 찾아뵙고 잘 모셔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 들자 86세인 어머니는 응급실에 입원하는 등 급속도로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하였고, 저는 경기도 양주에서 부산과 하동까지 한 달에 2-3번 다녔습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한번 갔다 오면 경비가 50-80만원이 들었고 개척교회를 하는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양주로 모시고 왔으나, 며칠 안 계셨는데도 고향으로 가시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거창교회 김목사님으로부터 제의가 들어왔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 그러하기에 형제보다 더 정이 들고 신뢰하는 성도들에게 이 사정을 이야기 하고서, 참으로 헤어지기가 힘들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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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수 담임목사 |
| 편집장: 거창교회에 부임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정목사: 거창에 와 본 적은 거의 없었고, 거창교회는 책을 통해 더 많이 접하였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에 관한 “해와 같이 빛나리” 등을 비롯하여, 거창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던 전영창 선생님의 저서는 거의 다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고신교단의 모태교회로서의 거창교회를 많이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거창을 기독교의 성지로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거창교회문제가 단순히 노회 문제만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지역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갔을 때 어떤 분은 “오죽 갈데가 없으면 여기 왔겠나?” 하며 저를 측은히 여겼습니다. 아마 제가 담임하고 있던 푸른초장교회에서 심각하게 배척을 받아 갈데없는 처지가 되었기에 여기에 온 것으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구상에서 푸른초장교회만큼 좋은 교회, 좋은 성도는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처음에 저를 오도 갈데없어 온 목사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강권적인 축복으로 바탕이 좋은 거창교회는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너무도 좋은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당시 당황했던 것은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지 서로 맞바꾸는 것은 철저하게 신중해야 한다는 것과, 가능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이 옳고 정의로우며 복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편집장: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요?
정목사: 제가 북서울교회가 750여명 되는 성도를 수용할 수 없어 새로운 1500평 부지로 이전하려고 했을 때 총회 유지재단에서 부결시키므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환멸과 아픔과 모함을 당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극복해 냈습니다. 빈손 들고 개척을 시작하여 기댈 언덕이라고는 하나님께 울며 부르짖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고, 그 어떤 사람도 환경도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의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거창교회에 부임하여 처음은 말할 수 없이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이사한 뒷날부터 새벽에 나가 그냥 맨바닥에 꿇어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뭐라 하겠냐?’ 하는 생각은 사치였습니다. 맨바닥에 꿇어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 북서울교회에서의 고통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하며 울었습니다. 권사님들이 방석을 만들어 제가 꿇어 엎드리는 바닥에 깔아 주셨습니다. 지금도 새벽이건 언제든지 그 방석에 꿇어 엎드려 기도합니다.
수요 예배 때마다 하시는 권사님들의 대표기도의 내용은 구구절절이 힘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이었습니다. 장로님들의 대표기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 시마다 때마다 기도해 주셨습니다. 교회는 눈에 띄게 변화되고 안정이 되어갔습니다. 역시 전통이 있고, 바탕이 잘 되어 있는 교회는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거창교회는 참으로 좋은 교회이며, 바탕이 튼튼한 교회입니다. 주남선 목사님 때의 영광을 반드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령을 힘입는 것은 목사의 가장 큰 무기이지 않습니까?
편집장: 진주노회에서 거창노회로 옮기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정목사: 저는 처음부터 노회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회 문제만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선뜻 응한 것입니다.
목사님 장로님들의 신앙 양심과 인격은 다 좋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두 노회 임원들은 서로 양보하며 무난히 잘 합의가 되었습니다.
특히 박정원 총회장님은 많은 기도와 사랑으로 사명을 가지시고 임하셨고, 그 사랑과 희생에는 눈물이 날 정도였고, 모두가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편집장: 부임 당시의 교세와 지금의 회집수는 어느 정도인지요?
정목사: 네 부임당시는 약 350여명이 회집했습니다. 지금은 매주 480-500여명이 회집하고 있고 젊은 층들이 많이 등록하고 있습니다.
편집장: 그외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목사: 과거에는 거창노회가 이 지역의 정신적 신앙적 중심지였습니다. 군수를 비롯해 지도자들이나 유지들이 올 때는 반드시 거창교회를 찾았고, 기도 받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약 10여 년 동안은 거창교회는 지역 사회에서 도외시 되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주남선 목사님 때의 그 영광을 회복하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교단의 모태인 거창교회가 총회를 위해서도 섬기며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