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9:29-10:3
찬송가 489장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부림일의 제정(9:29-32절)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을 위협했던 하만의 모든 공격이 도리어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일련의 급박했던 사건들이 정리되면서 오늘 본문은 그 모든 날을 기념하여 어떻게 부림일이 제정되었는지 이야기를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29-32)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게 지키게 하되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의 나라 백이십칠 지방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정한 기간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가 명령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하게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부림’은 ‘부르’라는 단어의 복수형태인데, ‘부르’는 ‘제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하만이 유다인들을 학살할 날짜를 제비 뽑은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제비’를 뽑는 행위는 성경에 자주 기록 되어 있는데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이는 ‘운’에 맡기는 것 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오늘 에스더서에서 ‘제비’는 의도하지 않는 사람의 행위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음을 나타내주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하만은 스스로 제비를 뽑으면서 그 날이 도리어 유다인들의 손에 의해 원수들이 죽임을 당하는 날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왕에게 받은 권한으로 유다 사람들에게 부림일을 지켜 행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이 부림일은 대대로 유다인들에게 기억되며 징계와 고통의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셨음을 알려주는 귀한 날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고통의 밤이 찾아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순간,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묻게 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밤처럼 캄캄한 민족적 고난의 시기에 별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겠습니까?
제가 직접 들었던 한 여성분의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이 여성분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복지관에 취업을 하기 위해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인물에다 ‘예수님, 사도바울’을 적었습니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아무리 기독교인이라도 그건 너무 종교색이 짙지 않냐며 만류했지만 본인은 솔직하게 적는다며 그렇게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면접일이 잡혀서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 복지관의 관장님이 무교였습니다. 그래서 이력서를 검토하다가 그 여성분이 쓴 내용을 보고 기분 나빠하면서 탈락을 시키려고 하는데, 하필 그 순간 기독교인인 이사장님이 면접 장소에 구경을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력서를 물끄러미 보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이 친구 좋네요’하고 가셨답니다. 그래서 관장님이 어쩔 수 없이 뽑고 나서 사람들에게 ‘저 사람 내가 몇 달 안에 퇴직시켜 버릴거야’라고 말하고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이 그 여성분을 쳐다볼 때마다 불쌍하게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뒤 실제로 퇴직이 되었겠습니까? 안되었겠습니까? 퇴직이 되었습니다. 바로 ‘관장님’이 퇴직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기관 감사가 있었는데 재정적인 사용에 비리가 있었던 관장님이 책임을 지고 퇴직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그 여성분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한 사람이 그 여성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난 교회를 다니지 않는데, 아무개씨를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긴 한 것 같아’ 저는 이 과정을 들으면서 에스더서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우연이겠지만 믿음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매번 이렇게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에스더서를 묵상하며 소망을 가지곤 했고, 에스더서를 소지하고 있다가 들킨 포로들은 처형에 처해 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역사는 피의 역사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에도 순교와 고통의 역사는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에스더와 같이 용기를 낸 믿음의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 역사하시고 어떤 경우에 침묵하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공식’ 혹은 ‘이적의 도식화’같은 것을 추구합니다. 마치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를 듣고 따라하듯이 누군가 신앙의 스토리를 듣고 그것을 공식화, 도식화 해서 따라하면 동일한 복과 은혜가 임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금식도, 기도도 우리가 하나님께 자율적으로 드릴 수 있지만 응답의 시기와 방법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선하심을 믿기에 눈 앞에 보이는 부조리와 악의 출현에도 우린 소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손에 팔렸지만 요셉의 고난을 통해 도리어 가족을 구원하는 길이 열린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길을 여신 것처럼 말입니다. 양화진에 묻히신 선교사님들의 삶에도 그런 흔적들이 많습니다. 배우자와 자녀들을 먼저 풍토병으로 보내야 했던 선교사님들의 마음속에는 ‘왜’라는 질문이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왜 막지 않으셨을까? 왜 보호하지 않으셨을까? 원망과 아픔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때론 구원하심으로 자신의 섭리를 드러내시고 때론 고통과 죽음으로 숨겨진 섭리를 훗날 드러내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고통중에 기도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왜?’가 아닌 ‘아멘’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르드개의 존귀함(10:1-3절)
(1-3)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아하수에로 왕의 왕권을 소개함과 동시에 그가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왕의 다음 위치에 올라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권위와 능력을 하만처럼 자신의 복수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한 이익을 도모하여 모두의 안위를 챙겼습니다. 이는 바람직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 이 자리는 하만의 자리였지만 하나님께서 모르드개가 달릴 뻔 한 장대에 하만을 다시고 하만이 누리던 왕의 옆 자리에 모르드개가 앉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에스더서를 읽으며 단순히 유다인들의 구원 이야기 혹은 민족적 승리의 서사로 비춰진다면 우리는 숨겨진 의미를 다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에스더서에는 중요한 단어로 ‘잔치’가 반복해서 나오며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먼저 제일 처음 잔치는 아하수에로 왕이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한 잔치를 베풀었고 이어서 도성 수산에 있는 백성들을 위해 왕궁 후원에서 잔치를 베풀며 에스더서는 두 잔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론부에서 전국 유다인을 위한 부림 잔치와 수산 유다인을 위한 두 번째 날 부림 잔치로 대칭을 이루게 됩니다. 또한 에스더의 왕후 즉위식을 위한 잔치는 모르드개의 등극을 축하하는 잔치로 대칭을 이루게 되고, 중간에는 왕과 하만을 위한 에스더의 첫 번째, 두 번째 잔치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의도적인 배열을 통해 각 잔치마다의 성격과 주인공이 다르며 점점 쾌락중심의 잔치에서 구원의 기쁨을 향한 잔치로 변화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또한 와스디와 하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잔치가 바뀌어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중심으로 하는 잔치로 변경이 됩니다. 특히 하만을 위한 두 번째 잔치가 그를 위기로 몰아넣는 반전의 시작이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모든 잔치의 스토리에서 중요한 것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잔치 주인공들이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요한계시록 18장 2절입니다.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대표적 호칭인 ‘바벨론’이 멸망하는 내용을 적어 놓은 것입니다. 심판 전 호화로운 축제와 잔치가 끊이지 않고 하나님없는 쾌락에 몰두했던 바벨론의 최후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요한계시록 19장 7절에서 9절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곧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어린 양 예수님을 따른 성도를 위로하시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자리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까? 우린 모두의 인생에서 항상 ‘부림일’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우린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구원과 회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세례 요한과 사도 바울의 삶처럼 고난 가운데서 삶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잔치가 끝난 후에 우리의 잔치가 시작될 날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에스더서는 바로 그 반전의 잔치를 우리에게 소망하게 해주는 귀한 말씀이 됩니다. 우리를 괴롭히던 악한 하만과 같은 세상의 권력과 공격도 결국 무너지고 최후의 반전의 잔치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되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통치를 누리며, 존귀한 그 백성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눈앞의 고난과 아픔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도, 어린 양 예수님을 따라가며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사는 것이 손해보는 것 같고 바보같이 보인다 할찌라도 모르드개처럼 묵묵히 우리의 길을 걸어 가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존귀하게 높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 이 땅에서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것이 때론 너무나 힘에 겨울 때가 있습니다. 악하고 이기적 본성에 충실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기에는 마치 낚시바늘에 낀 이끼처럼 무기력하게 세상에 먹히기만 할 것 같아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땅의 잔치가 끝날 때, 그 잔치의 주인공이 바뀌고 성문 앞에 앉아 있던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게 될 그 날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잔치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바라보시며 영원한 기쁨의 자리로 인도하실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 주어진 인생의 도화지를 아름답게 채워나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창문을 열고 기도했던 다니엘처럼 우리 또한 매일의 창문을 열고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는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에스더에 나오는 잔치들을 살펴보면서 그 중심인물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살펴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묵상해 봅시다.
2. 하만의 제비가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도구가 된 것을 살펴보면서 내 삶에 우연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었던 사건이 있었다면 묵상해 봅시다.
3. 요한계시록 18장에서 22장을 읽으며 우리의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하여 묵상해 봅시다.
4. 하만과 모르드개의 위치가 서로 바뀐 것을 살펴 보면서 우리는 어떤 인생의 순간을 목적 삼고 살아가야 할지, 무엇이 참된 승리인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강요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