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고트리 산괴 서부, 루드라가이라 빙하의 상류에 위치하는 강고트리 산괴를 대표하는 피크다. 강고트리라고 하면 보통 가장 높은 Ⅰ봉을 가리킨다. Ⅰ봉의 남동 2km에 Ⅱ봉(6599m)이 있고 남동쪽으로 2km 더 들어간 지점에 Ⅲ봉(6577m)이 있다. 남면은 암벽으로 자온리 빙하를 향하고 있으며 산 이름은 「갠지스강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1952년 영국대(J.B.타이슨 대장)가 9월 10일에 루드라가이라 빙하에서 북동릉을 경유하여 Ⅲ봉에 초등정한 후, 10월 3일 같은 북면의 북동릉에서 대장 외 3명이 Ⅰ봉을 초등정 했다. Ⅱ봉은 66년 인도대(B.슈크라 대장)가 루드라가이라 빙하에서 6월 20일 초등정에 성공했다.
닐칸타 [Nilkanth]6596
강고트리 산괴의 동쪽 끝, 힌두교의 성지 바드리나트의 서쪽 8km에 위치한다. 바드리나트에서 올려다보면 눈앞에 우뚝 솟은 빙벽은 압도적인 규모이며 가지런한 산의 모습은 마터호른같다. 영국의 F.스마이스는 이 산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중의 하나로 뽑고 있다. 그 아름다운 산의 자태 때문에 「가르왈의 여신」이라고도 불린다. 1937년 영국의 F.스마이스대에 의한 남동릉의 정찰, 47년 영국·인도 합동대에 의한 남동릉과 서릉, 51년 뉴질랜드대에 의한 북동릉, 52년 영국대에 의한 남동릉, 59년에 인도 공군대 등 많은 시등과 정찰이 반복되었다. 61년 6월 인도대(N.크마르 대장)가 북면의 사토판스빙하에서 서릉 상부로 초등정에 성공했다.
마나 파르바트 [Mana Parbat]6794
강고트리 산괴 북부, 차트란기 빙하를 사이에 두고 사토판스의 13km에 위치한다. 등반대가 그다지 많이 찾지 않아 지형에 관한 정보가 적다. Ⅰ봉에서 동쪽으로 뻗어있는 능선 위 1.5km에 Ⅱ봉(6771m)이 있다. 이탈리아대가 카린디 계곡 쪽에서 시등을 반복했지만 등정하지 못했다. 1970년 10월 8일 인도대(B.N.라크시트 대장)가 초등정하고, 95년 6월 인도대(V.헤그데 대장)가 북북서릉에서 재등정 했다.
메루 [Meru]6660
강고트리 산괴 중앙부, 메루마박 빙하의 상류, 쉬블링의 서쪽 3km에 위치한다. 주봉인 남봉(6660m) 외에 북봉(6450m)과 서봉(6361m)이 바위로 된 난봉을 이루며 늘어서 있다. 1980년 히다(飛彈) 산악회대가 북릉으로 9월 7일 초등정 했다. 같은 해 10월 10일, 11일, 12일의 3회에 걸쳐 도요(東洋)대학대[오타키(大瀧憲司郞) 대장]가 남릉을 초등정 했다. 81년 9월 1일과 4일의 2회에 걸쳐 오스트리아대가 북측의 콜에서 남봉을 등정했고 계속해서 서봉도 초등정 했다.
바기라티 [Bhagirathi]6856
강고트리 산괴 중앙부, 사트판트에서 북서쪽으로 뻗어있는 능선 위 6km에 있다. Ⅰ봉과 Ⅱ봉의 중간쯤에 Ⅲ봉(6454m)이 있다. Ⅰ봉은 바기라티 파르바트(Bhagirathi Parbat)라고도 부른다. 이들 피크는 서쪽의 강고트리 빙하와 동쪽의 차트란기 빙하를 나누는 산등성이 위에 있고 서면은 고도차 2000m를 넘는 암벽이다. 1980년 카가와겐(香川縣) 근로자 산악연맹대가 차트란기 빙하 동쪽의 빙하에서 남동릉을 루트로 하여 9월 24일에 초등정 했다. Ⅱ봉은 38년 9월에 독일·오스트리아대가 차트란기 빙하에서 초등정 했다. Ⅲ봉은 33년 6월에 영국대가 강고트리 빙하쪽에서 Ⅰ봉과의 콜을 거쳐 초등정 했다.
바수키 파르바트 [Vasuki Parbat]6792
강고트리 산괴 중앙부, 차트란기 빙하의 입구 왼쪽 벼랑에 있다. 바위와 얼음으로 된 난봉으로 정상부터 가늘고 긴 산등성이가 남서쪽으로 바기라티에 이어져있으며 1km 남쪽에 남봉(6702m)이 있다. 북면은 바수키탈(빙하 호수)로 급격하게 떨어지고 서벽도 수직으로 내리꽂혀 있다. 폭넓은 동벽은 슨다르 빙하에서 솟아올라 있으며 얼음과 바위로 형성되어 있다. 산 이름인 「바수키」는 "뱀의 왕" 이라는 이름이라고 한다. 1973년 10월 2일 인도의 ITBP대가 동면으로 초등정 했다. 84년에 스페인대(C.오쵸아 대장)가 북동면으로 등정했으며 남봉은 80년 9월 일본대가 동면의 스탄다르 빙하에서 동벽을 경유하여 알파인 스타일로 4일만에 등정했다.
반다르 푼치 [Bandar Punch]6316
톤스강의 지류인 루인사라 가드 안쪽의 반다르 푼치 빙하 상류, 바기라티 강 오른쪽 벼랑에 있다. 바위가 많아서 블랙 피크(Black Peak)라고도 부른다. 칼나크(Kalnak)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현재는 칼나크는 반다르 푼치의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위 3km의 봉(6387m)을 가리킨다. 서쪽으로 뻗어있는 능선 위 3km에 서봉(6102m)과 쌍봉을 이루고 있다. 서봉은 눈이 많아 화이트 피크(White Peak)라고도 불린다. 산 이름은 힌두어로 「원숭이 꼬리」라는 뜻이다. 1955년 6월 7일에 인도대가 서면에서 칼나크(6387m)를 초등정 했으며 반다르 푼치는 50년 6월 20일에 인도대가 초등정 했다. 칼나크에는 93년 6월에 뉴질랜드대가 등정했고, 화이트 피크에는 90년 6월에 인도대가 등정했다.
사토판스 [Satopanth]7075
인도 우타르 프라데쉬주, 강고트리 지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우타르카쉬에서 동북동으로 약 75km 떨어져 있다. 앞뒤 좌우를 강고트리 빙하와 차투란기 빙하가 둘러싸고 있다. 강고트리 지역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다리 꼴 모양이 인상적이다. 1940년, 스위스대(A.록 대장)가 서북릉을 시등한 뒤, 북릉으로 루트를 잡고 대장을 포함한 4명이 초등정 했다. 사토판스란 이름은 힌두어로 「일곱개의 고봉」이라는 뜻이다.
서부 가르왈 히말라야 [Western Garhwal]
마나 고개와 아라쿠난다강 상류의 사라스와티강을 동쪽으로 푸르게 하고, 여기부터 서쪽으로 보라스 고개에서 남하하는 톤스 강까지의 산군을 서부 가르왈이라고 부른다. 이 산군의 중간이 바기라티강으로 구분되어 그 동쪽으로는 장대한 지류가 많은 강고토리 빙하가 흐르며 상류에 강고토리 산괴가 있다. 여기에는 이 산군의 최고봉인 차우캄바(7138m)를 비롯하여 사토판스,바기라티, 케다르나트 등의 7000m 전후의 피크가 많이 있다. 강고토리 산괴에는 험난한 벽과 능선으로 형성된 난봉이 많아 과감한 첨예 등반이 많이 행해져 왔다. 서쪽에는 반다르푼치나 스와르가로히니 등이 있는 반다르푼치 산괴가 있다. 이 산괴는 이너 라인에 의한 입산금지, 진입로가 불편한 점, 7000m봉이 없는 점 등 때문에 오랫동안 등산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에 인도대가 등산을 하여 거의 모든 피크가 등정되었다. 서부 가르왈의 주된 등산기지는, 동부는 바기라티강 하류에 있는 우타르카쉬다. 여기에는 인도군대가 관할하는 히말라야 등산학교가 있어서 인도인 등산가의 양성이나 훈련을 하고 있다. 서부에는 등산기지가 되는 산기슭에 큰 마을은 없고 산에서 약간 먼 시므라나 데라돈 마을이 출발점이 된다. 서부 가르왈 히말라야 산중의 신성한 물은 바기라티강이 되어 중부·동부 가르왈 히말라야의 물이 모인 알라크난다강과 데바프라약에서 합류하여 성지인 하리드와르를 지나는데 여기부터 인도 평원이 시작된다.
쉬블링 [Shivling] 6543
@강고트리 산괴 중부의 강고트리 빙하 입구에 우뚝 솟아있는 날카로운 암봉으로 주봉 외에 남서봉(6038m)이 있다. 험한 산릉과 도중에 작은 돌기가 있는 동릉, 잘라 떨어뜨린 듯한 북벽으로, 산의 생김새가 울퉁불퉁한 이상한 모양이어서 괴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난봉이긴 하지만 등반 의욕을 자아내고 또한 강고트리에서 가우무크를 경유하는 접근로가 짧은 점도 있어서 많은 등반대가 도전하고 있다. 산의 이름은 힌두교 시바신의「린가므(남근)」이라는 뜻이다. 1938년에 오스트리아대가 정찰하고 73년과 74년에 인도대가 시등한 뒤, 74년 인도의 ITBP대가 메루바막(빙하)을 경유하여 서릉으로 6월 3일 초등정 했다. 81년에 영국을 주체로 하는 국제대가 동릉을 초등반 했으며, 남서봉은 83년 영국의 C.보닝톤과 J.호자링감이 남동릉에서 초등정 했다.
스와르가로히니 [Swargarohini]6252
반다르푼치 산괴, 톤스강의 상류 루인사라 가드의 상류에 위치한다. Ⅰ봉(주봉)은 동봉, 또는 수르그날린(Surgnalin)이라고도 부른다. 1km 서쪽에 서봉(6247m) 또는 Ⅱ봉, 1km 더 서쪽으로 Ⅲ봉(6209m)이 있다. 눈이 많고 동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산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천재(天帝)의 문」이라는 뜻이다. 90년 5월 3일에 인도대(A.K.싱 대장)의 8명이 남동벽으로 초등정 했다. 93년 6월 7일 스웨덴대가 남면에서 동릉을 경유하여 등정했다. 서봉에는 74년 10월에 인도·캐나다 합동대가 남서릉으로 초등정 했다. 85년 6월 3일, 인도대가 Ⅲ봉을 초등정하고 계속해서 서봉도 등정했다. 90년에는 인도를 주축으로 하는 국제대가 알파인 스타일로 서봉을 등정했다.
케다르나스 [Kedarnath]6940
강고트리 산괴 남부, 코라바리 빙하 상류에 위치한다. 북쪽은 강고트리 빙하, 남쪽은 만다키니 나라 계곡이 밑에서부터 밀리듯 높게 있다. 북동으로 뻗어나간 산등성이는 2km 치켜 올라가 케다르나스 돔(Kedarnath Dome: 6831m)에 연결되어 있다. 남측의 산기슭은 고원 모양으로 산 이름과 같은 케다르나스 사원이라는 힌두교의 성지가 있다. 사원의 뒤쪽의 모레인 언덕에서 바라보는 케다르나스의 남면은 매달려 있는 빙하와 윗부분의 암벽이 탁월하다. 1947년 스위스대(A.로크 대장)가 북서 산등성이에서 6월 25일에 케다르나스 돔을 초등정했고 같은 등반대 제2차대가 7월 10일 케다르나스를 초등정 했다.
난다 카트 [Nanda Khat]6611
난다데비 동봉의 남쪽 8Km에 위치한다. 서쪽의 난다데비 카르 고개는 날카로운 설릉이고 남면은 부드러운 설릉이다. 남면의 핑다리강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산 이름「난다」는 산스크리트로「운이 좋다, 축복 받았다」라는 뜻이고 「카트」는 힌두어로 「정원」을 뜻한다. 1961년 10월 P.쵸우두리라의 인도대가 북동면으로 초등정 했다.
난다군티 [Nanda Ghunti]6309
난다데비 산괴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리쉬강가 지류의 론티빙하 상부의 난다군티 빙하의 상류에 있으며 남동 8Km에 트리술이 있다. 산 이름 「난다」는「운이 좋다, 축복 받았다」라는 뜻이고 「군티」는 힌두어로 「휴식지」라는 뜻이다. 1947년 9월에 스위스대(A.로츠쿠 대장)는 강고트리 산군을 등반한 후 난다 키니 계곡으로 들어가 동릉으로 초등정 했다.
난다데비 [Nanda Davi]7816
난다데비 동봉(7434m)과 주봉인 서봉(7816m)으로 된 쌍봉이다. 보통 난다데비라고 말하면 높은 쪽의 서봉을 가리키며 가르왈 히말라야의 최고봉이다. 이 산괴는 갠지스강의 지류인 다우리강가에서 갈라져 나온 리쉬강가의 원류지대에 위치한다. 리쉬강가는 상류지대에서 깊은 고르쥬(복도모양의 협곡)을 형성하는 V자이며 고도 5500m를 넘는 장벽에 둘러싸인 곳은 난다데비 성역(벽 아래의 분지)이라고 불린다. 장벽을 넘오 성역에 들어가면 장벽 위에 있는 봉우리들에서 발원한 많은 빙사면이 있고 카르의 바닥에는 시즌이 되면 고산식물이 흐드러지게 피며 여기저기에서 야생염소를 볼 수 있어 문자 그대로 별천지다. 보통 성역에 베이스 캠프가 건설된다. 성역의 서쪽 끝에서부터 동남쪽으로 주릉이 뻗쳐 주봉에 닿아있고, 주봉에서 3Km의 날카로운 능선으로 동봉에 연결된다. 이 능선의 남면과 북면은 눈과 얼음과 바위의 벽이며 북면은 표고차 2800m이나 된다. 난다데비는 힌두교의 성산(聖山)으로 「난다」는 산스크리트로 「운이 좋다, 축복 받았다」라는 뜻이 있고 「데비」는 힌두교 여신의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쿠마온 왕의 딸인 난다 공주의 결혼이 파국에 이르러 상대편과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전쟁에 패한 난다 공주는 높은 산에 숨어살았다고 한다. 그 산이 난다데비라고 전해지고 있다. 1907년부터 난다데비 성역까지의 접근로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된 끝에 34년에 드디어 발견되었다. 36년에 영국·아메리카 합동대(H.W.틸만 대장)는 이 코스를 이용하여 리쉬 강가를 통해 난다데비 성역에 들어가 남쪽빙하에서 남릉을 거쳐 8월 29일 주봉을 초등정했다. 동봉은 39년에 폴란드대에 의해 초등정 되었다. 51년 7월에 프랑스대가 주봉에서 동봉까지의 종주를 계획했는데 최종 캠프에서 주봉을 향하던 두 사람이 조난사 했다. 76년 6월에 인도와 일본 산악회의 합동대가 동봉에 등정하고 계속해서 주봉까지의 종주등반에 성공했다. 78년의 등산 이후 환경보호 차원에서 난다데비 성역으로의 진입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그 후에는 성역을 경유하지 않고 더욱 어려운 진입로(북쪽 베이스캠프)를 통해 등산을 하게 되었다.
난다데비 동봉 [Nanda Devi East]7434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 있다. 가르왈 히말라야 난다데비 산군에서 두 번째로 높다. 조시마트에서 동남으로 약 46km, 난데데비 주봉(7816m)과는 약 3km 떨어져 있다. 북면은 고도차 약 2,000m의 암벽이다. 1905년, 영국의 T.G.롱스타프가 고리강가쪽에서 남쪽의 난다데비 칼 고개를 거쳐 호위봉까지 갔었다. 그 뒤 1939년에 폴란드대의 클라르너(M.Klarner)와 부야크(J.Bujak) 2명이 롱스타프 루트로 초등정 했다. 1976년에는 일본·인도 합동대가 동봉에서 주봉으로의 종주에 성공했다. 1981년에는 인도 낙하산부대가 동봉과 주봉을 등정했으나 내려오다가 5명이 희생당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던 곳이다
난다코트 [Nanda Kot]6661
난다데비 산괴 동부의 고리강가 오른쪽 벼랑의 라완 계곡이 있고, 북서쪽으로 뻗어나간 산등성이는 트레이르 고개를 사이에 두고 난다데비 성역의 대장벽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피라미드형의 설봉으로 정상부는 약간 평탄하다. 1936년 입교대학(立敎大學)대는 아르모라에서 15일간의 캐러반으로 라완 계곡의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는데 진입로 도중에 있는 아르모라 촌에서 하얗게 빛나는 난다코트를 전망할 수 있었다. 더우기 현재는 라완 계곡 입구의 마라토리까지 차로 들어갈 수 있어서 5일정도의 캐러반으로 베이스 캠프지에 도착한다. 산 이름인 「난다」는 산스크리트로 「운이 좋다, 축복 받았다」라는 뜻이고, 「코트」는 힌두어로 「요새」를 뜻한다. 1905년에 영국의 T.G.롱스타프는 라완 계곡에서 북동릉으로 6540m까지 진출했다. 36년 일본 등산대가 라완 계곡에 베이스 캠프를 설립하여 10월 5일 북동릉을 통해 초등정 했다.
데비스탄 [Devistan]6676
난다데비 성역 장벽의 남쪽에서 리시강가로 뻗쳐있는 능선상에 위치하며 난다데비의 서남서 10Km에 있다. 동면은 설릉이 펼쳐져 있고 서면은 매우 험하고 부서지기 쉬운 암벽이다. 1Km 북쪽에는 Ⅱ봉(6529m)이 있고 Ⅱ봉 북쪽에 Ⅲ봉(5977m)의 3개봉으로 되어있다. 1961년 6월 16일 인도대(G. 싱 대장)의 J.디아스 외 6명이 동면으로 초등정 했다. Ⅱ봉은 64년 6월 24일 인도대(N.쿠마르 대장)의 2명이 초등정 했다.
두나기리 [Dunagiri]7066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 난다데비 골짜기 북단에 있는 봉우리로, 조쉬마트에서 동으로 약 29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사방으로 암릉이 뻗어 있으며 서쪽에 있는 창가방(6964m)과 마주보고 있는 피라밋형태의 산이다. 1937년 7월에 스위스대가 서남릉 루트로 초등정 했고 1975년 6월 영국의 조 태스커와 딕 랜쇼우가 알파인스타일로 초등정 했다.
마이크톨리 [Maiktoli]6803
난다데비 성역의 남쪽 녹지에 있고 남리시 빙하와 므리그트니 빙하의 상류에 위치한다. 남면인 므리그트니 빙하측은 암벽지대이다. 마이크톨리의 북서에 있는 데비톨리(Devitoli: 6788m)와는 3Km 떨어져 있는데 서로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종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34년 다쿠니 리시 빙하에서 W.H.티르만과 E.시프톤대가 9월 12일에 초등정 했다.
차우다라 [Chaudhara]6510
판치 출리의 북북서 10Km, 라람 가드의 중류지역인 라람 마을에서 10Km 남동쪽에 있다. 라지람바 빙하와 나가라프 빙하의 상류에 위치한다. 산꼭대기에서 4개의 산등성이가 파생하여 남동으로 뻗쳐있는 주 산등성이는 판치출리 산군으로 이어진다. 북으로 뻗쳐있는 산등성이는 북방 2Km에 있는 라람 다우라(고개)까지 닿아있다. 북방의 카라바란드 빙하방면에서 보면 정상쪽으로 광대한 눈의 경사면이 펼쳐져 6145m의 무명봉이 솟아있고 그곳으로 부터 서면의 양쿠챠르 빙하로 절벽을 이룬다. 진입로는 고리 강가 중류부터 라람을 거쳐 시부 빙하에 이르는데 주변 지형에 관한 정보가 적고 등산허가를 취득하기 어려워 등산대가 적다. 산 이름은 힌두어로 「4각을 가진 산」을 뜻한다. 1973년 6월에 A.R.찬카르 대장이 인솔하는 인도대가 서면의 시부 빙하에서 초등정 했을 뿐이다.
창가방 [Changabang]6864
난다데비 성역의 북서장벽 위에 있고, 7Km 북서쪽에 있는 묵직한 생김새의 두나기리와 대조적인 화강암 오벨리스크 모양의 피크로 서부 가르왈의 쉬블링이나 캉첸중가 산군의 쟈누 등과 함께 히말라야의 난봉으로 알려져 있다. 가바니 빙하측으로 갑자기 절벽을 이루는 북벽, 라마니 빙하측의 서벽, 창가방 빙하측의 남벽이 모두 절망적인 암벽으로 되어 있어 칼란카로 이어진 동릉이 겨우 등반 가능성이 있을 정도이다. 등반기술이 발달할 때까지 이 어려운 루트에 성공한 등반대는 없었다. 1936년 영국대(E.쉽톤 대장)는 자신들의 부대가 이름 붙인 남서릉 위의 쉽톤의 콜에 도달했다. 74년 영국·인도 합동대(C.보닝톤 대장)가 등정에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는 동릉에서 6월 4일 초등정에 성공했다. 81년 10월에는 이탈리아대가 남릉을 초등반 했다.
칼란카 [Kalanka]6931
리쉬강가 상류의 창가방 빙하와 바가니 빙하의 상류에 위치하며 난다데비 성역 북쪽 녹지에 있는 설봉이다. 서쪽으로 뻗어있는 산등성이 위에 창가방이 있다. 진입로는 리쉬강가에서 라마니 빙하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타르 빙하에 들어가 빙하의 굴곡 부분 근처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한 등산대도 있다. 1975년 일본대가 라마니 빙하에서 쉽톤의 콜을 넘어 6월 3일에 초등정 했다
쿠마온 히말라야 [Kumaon Himalaya]
동부 가르왈 히말라야의 다른 이름. 네팔과의 국경인 카리 강부터 갠지스 강 상류의 다우리강가 강에 있는 산군이다. 이 산군에는 고리 강을 경계로 동쪽에 판치출리 산괴와 서쪽에 난다데비 산괴가 있다. 판치출리 산괴는 리푸키레 산마루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카리 강과 운타다우라의 산마루에서 고리강가 강의 계곡으로 구분된 범위의 산들이다. 이 산괴는 판치출리 Ⅰ봉에서 Ⅴ봉까지가 중심이고 최고봉은 판치출리 Ⅱ봉(6904m)이다. 판치출리에서 남서로 뻗어있는 산등성이 위에는 라지람바(Rajiramba: 6537m), 치링웨(Chiring We: 6559m)등의 6000m 봉우리가 있다. 이 산괴는 정치적인 이유로 최근까지 이너 라인에 의해 등산이 금지되어 있다. 그 상황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데 인도대와의 합동등반에 한해서는 특별히 허가를 내주어 극히 소수의 등반대가 입산하고 있다. 등반지대인 람강가 강 상류의 아르모라촌 부근부터 연이어 있는 눈 덮인 산을 볼 수 있는데 등정되지 않은 정상도 많아서 탐험적 요소가 많은 등반을 기대할 수 있다. 난다데비 산괴에는 맹주(盟主) 난다데비(7816m)를 시작으로 그 서쪽 20Km에는 인류에 의해 최초로 등정된 7000m봉으로 알려진 토리스루(7120m)나 므리그트니(Mrigthni: 6855m), 데비스탄(6678m) 등이 있다. 또한 북쪽 20Km에는 티르스리(7074m), 하르데오르(7151m), 리시파하르(Rishi Pahar: 6992m) 등이 있고 그 남서쪽에는 두나기리(7066m)나 창가방(6864m) 등의 난봉이 늘어서 있다. 이 산괴는 난다데비를 비롯하여 7000m 봉우리가 많고 비교적 진입로가 짧아서 옛날부터 많은 등반대가 입산하였고 1970년대까지 거의 모든 피크가 등정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너 라인의 관계로 북방의 일부가 등산 금지가 되었고 또한 난다데비 산괴의 일부는 히말라야의 자연보호를 위해 입산이 금지되어 있다. 등산지대로서는 아라쿠난다 강 하류에 있는 조시마트가 있다. 학교, 은행, 힌두교사원, 숙박시설, 시장 등이 있는 큰 마을이다. 이 산군은 네팔 히말라야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몬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등산에 적합한 기후는 몬순 전인 4∼5월경과 몬순 후인 9∼10월경이다.
트리술 [Trisul]7120
트리술빙하와 론티빙하의 상류에 위치한다. 산꼭대기에서 북쪽으로 뻗어있는 산등성이가 난다데비 성역의 서쪽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남쪽에서 보는 산의 생김새는 날카로운 봉우리이지만 북쪽에서 보면 소가 길게 엎드려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서면은 고도차 약 2000m인 빙설벽으로 되어 있다. 이 산괴에는 Ⅰ봉 외에 Ⅱ봉(6690m), Ⅲ봉(6008m)이 있다. 「트리술」이라는 것은 「끝이 세 갈래로 된 창」라는 뜻으로 남면에서 내려다보면 Ⅰ봉, Ⅱ봉, Ⅲ봉이 세 개의 창같이 보이기 때문에 이름 지어졌고 난다의 여신이 지키는 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1907년에 영국대(T.G.롱스타프 대장)가 리쉬강가를 지나 북릉의 루트를 통해 6월 12일에 초등정 했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빨리 등정된 7000m봉이며 그때까지 인간이 도달한 최고 고도였다. 60년에 유고슬라비아대는 Ⅱ봉과 Ⅲ봉사이에 있는 콜의 최종 캠프에서 6월 5일에 Ⅱ봉, 7일에 Ⅲ봉에 각각 초등정 했다.
티르술리 [Tirsuli]7074
난다데비 성역 북쪽의 리쉬 파하르(6992m)에서 북동으로 뻗어나간 산등성이 위 6Km, 미람 빙하와 바가니 빙하의 상류에 위치한다. 서쪽 2Km에 서봉(7035m), 남쪽 2km에 하르데올이 있다. 눈에 뒤덮인 피라미드형의 암산이다. 1936년에 스위스의 A.하임과 A.강사가 미람 빙하측에서 탐사했으며 39년 폴란드대(A.카르핀스키 대장)가 시등정했지만 티르술리의 동남릉에서 대장과 2명이 눈사태로 조난사 했다. 64년과 65년에 인도대가 시등정 했고 66년 10월 8일, 인도대(C.미트라 대장)가 미람 빙하측에서 남동릉을 경유하여 초등정 했다.
판치출리 [Panch Chuli]6904
람강가 강과 하마강가 강 사이에 나란히 줄지어 있는 판치출리 산괴는 Ⅰ봉(6355m)에서 Ⅴ봉(6437m)까지 있는데 Ⅱ봉(6904m)이 최고봉으로 아름다운 피라미드형의 피크다. Ⅰ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쳐있는 산등성 위로 Ⅱ봉, Ⅲ봉(6312m), Ⅳ봉(6334m), Ⅴ봉이 늘어서 있다. 가르왈 히말라야 동부의 전망대라고 불리는 아르모라촌에서 전망할 수 있다. 진입로는 보통 아르모라 또는 나이니카르 마을에서 고리강가 강을 북상하여 마타코트촌 부근에서 핑사니 가드헤라의 계곡에 들어가 판치출리 빙하에 도달한다. 판치출리 산괴는 등산허가를 취득하기 어렵고 진입로가 길어서 등반대가 적다. 따라서 진입로나 지형에 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산 이름은 힌두어로 「다섯개의 첨봉(尖峰)」을 의미한다. 1950년에 영국의 W.H. 마리라가 동면의 소나계곡을 정찰했다. 73년 인도대(M.신 대장)가 서면의 웃타리 바라티 빙하에서 약 3000m의 픽스 로프를 사용하는 어려운 등반 끝에 5월 26일 Ⅱ봉의 초등정을 달성했다. 92년에 영국·인도 합동대(C.보닝톤과 H.카파디아 대장)는 가시티 고데라 계곡을 거쳐 Ⅰ봉에서 서쪽으로 뻗쳐있는 콜을 넘어서 닥신 바라티 빙하의 상부로 나와 6월 8일 서릉으로 Ⅱ봉을 등정했다. 더우기 6월 20일에는 판치 츄리 빙하에서 테르코트(Telkot: 6102m)와의 콜에 도달하여 남릉에서 Ⅴ봉에 초등정했다. 95년 10월 뉴질랜드대(J. 난케르비스 대장)가 남서릉으로 Ⅳ봉을 초등정했다.
하르데올 [Hardeol]7151
인도 우타르프라데쉬(Uttar Pradesh)州에 있다. 난다데비 산의 북쪽 끝에서 북으로 3km에 위치하며 조쉬마트에서는 동으로 약 42km 떨어져 있다. 1978년 5월에 인도대가 미람 빙하쪽 루트로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후 37일만에 초등정 했다.
고리 파르밧 [Ghori Parbat]6708
카메트 산괴의 남쪽 끝, 하티 파르바트의 북쪽 4km에 위치한다. 코사 산괴 안에 있고 서쪽에서 밑으로부터 밀리듯 높아진 라리 방크 빙하와 하티 파르바트의 북쪽에 펼쳐지는 동쪽의 라지 방크 빙하를 나누는 산등성이의 중간에 있는 아름다운 얼음의 경사면이다. 진입로는 동쪽의 코사촌에서 라지 방크 빙하를 경유하는 코스와 서쪽에 있는 F.스마이스가 이름 붙인 「꽃의 계곡」에서 라리 방크 빙하를 거치는 코스가 있다. 「꽃의 계곡」의 동쪽에 있는 고도 약 4000m인 강가리아 언덕에는 시크교도의 절이 있어 여름철에는 순례자들이 방문한다. 「고리」는 힌두어로 「말(馬)」이란 뜻이고 「파르바트」는「산」을 뜻한다. 또한 빛나는 얼음 경사면을 가지고 있어서 「황금의 산」 이라고도 불린다. 시바신의 부인 이름에 연관지어 이름 붙였다고도 말한다. 1939년에 북쪽으로 옆에 있는 라타반(Rataban: 6166m)에 초등정한 스위스대(A.롴 대장)이 계속해서 이 산에 도전하여 라지 방크 빙하로 8월 18일에 초등정 했다. 이 산은 이너 라인의 규제로 인해 등산허가를 취득하기 어려우며 산기슭에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입산하는 등산대가 거의 없어서 그 후의 등정기록은 없다.
닐기리 파르밧 [Nilgiri Parbat]6474
카메트 산괴 남부, 카메트에서 남하하는 주릉이 동서로 나눠지는 분기점에 있다. 조쉬마트에서 북쪽 10km에 있는 분다르 계곡은 「꽃의 계곡」으로 1937년에 영국의 F.스마이스에 의해 소개되었는데 그 계곡의 북쪽 깊은 곳에 위부분이 눈에 뒤덮인 채 우뚝 솟아있는 아름다운 피크다.「닐기리」는 힌두어로 「푸르다」라는 뜻이고 「파르바트」는「산」이라는 뜻이다. 1937년 조쉬마트에서 마나를 거쳐 규리아 가르와 빙하에 들어간 영국의 F.스마이스는 셀파인 완지 누르부와 함께 북서릉으로 초등정 했다.
마나 피크 [Mana Peak]7276
인도 우다르 프라데쉬주에 있다. 가르왈 히말라야 카메트 산군에 들어있다. 조쉬마트에서 북으로 약 36km 떨어져 있다. 동릉은 20km나 길게 뻗어 있으며 남쪽으로는 분수령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만디르, 닐기리파르바트을 거쳐 코사(Kosa) 산군에 이어진다. 1937년 영국의 F.S.스마이스와 P.R.올리버가 남쪽 산릉 루트로 등정을 시도했으나 올리버는 정상 바로 밑 250m 지점에서 피로로 탈진, 움직이지 못한 채 후퇴하고 스마이스 혼자서 남릉으로 초등정 했다.
무크트 파르밧 [Mukut Parbat]7242
카메트의 북서 4km에 있는 중량감 있는 묵직한 피크로 Ⅰ봉과 쌍봉을 이루는 Ⅱ봉(7130m)으로 되어 있다. 이 두 봉 모두 남면인 파슈미 카메트 빙하측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인도 측의 등산로는 서쪽의 다크니 참라오 빙하쪽에서 부터이지만 북쪽 티벳쪽인 망낭 빙하에도 등산로가 있다. 산 이름은 힌두어로 「무크트」는「왕관」, 「파르바트」는 「산」을 뜻한다. 1848년에 영국의 R.스트레이치는 카메트 등 근처 산의 고도로부터 이 산의 고도를 측정했다. 55년 독일의 슐라긴트바이트 형제가 이 산괴에 접근한 후에 오랜 공백이 있었고, 1951년에 나중에 에베레스트에서 활약한 뉴질랜드의 E. 힐라리를 대장으로 하는 등산대가 서부 가르왈의 니르칸타에 시등정한 후, 이 산을 향해서 서면의 다크니 참라오 빙하 측에서 7월 11일에 초등정 했다.
아비 가민 [Abi Gamin]7355
인도 우타르 프라데쉬주, 가르왈 히말라야 카메트 산군에 들어있다. 조쉬마트에서 북으로 약 41km 떨어져 있다. 1855년 독일의 아돌프와 로베르트 슐라긴트바이트 형제가 티벳 쪽의 마낭 빙하를 거슬러 올라 6784m까지 올랐다고 한다. 아돌프는 티벳의 보코 라에서 주위의 파노라마 그림을 정밀하게 조사하여 그렸다. 1950년 영국과 스위스의 4명(R.디테르, A.티세르, G.세와르, 셀파 다와 통샤부가 티벳 쪽 망낭 빙하로부터 들어가 북면을 가로질러 북동릉을 따라 초등 했다. 산 이름은 슐라긴트바이트가 처음 이스턴 아비 가민(Eastern Abi Gamin)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뒤에 아비 가민으로 바뀌었는데 `완전한 눈의 할머니`라는 뜻이다.
중부 가르왈 히말라야 [Central Garhwal]
중부 가르왈은 다우리강가 강과, 중국 티벳 자치구와 인도와의 국경에 있는 마나 고개 부근에서 남하하는 사라스와티 강에 둘러싸인 비교적 좁은 산군이다. 이 산군에는 국경 근처의 무쿠트 파르밧, 아비 가민, 그 2km 정도 남쪽에 맹주(盟主)인 카메트(7756m), 카메트의 남동 5km에 마나(7272m)피크 등의 7000m봉이 있다. 카메트은 가르왈 히말라야 중에서 난다데비에 버금가는 높은 봉이어서 1855년 독일의 슐라긴트바이트 형제의 탐험을 시작으로 옛 부터 많은 등산가가 입산하여 과감한 등산이 행해졌다. 그러나 현재는 이 산군의 북쪽이 중국 티벳 자치구와의 국경에 접하고 있어서 등산이 제한되어 특별한 경우에만 등산허가를 받을 수 없다. 등산기지는 조쉬마트이고 학교, 은행, 힌두교 사원, 숙박시설, 시장 등이 있다. 중부 가르왈 산군의 서쪽 끝, 아라쿠난다 강 중류에는 힌두교의 큰 성지 중 하나인 바드리나트가 있고 사원이나 숙박시설, 온천도 있다. 바드리나트 사원주변에서 바라보면 닐칸트(Nilkanth / 6596m) 동면의 설벽이 매우 멋있다. 여름철 관광시즌에는 많은 힌두교 순례자나 관광객이 방문하여 마을은 활기를 띤다. 그리고 늦가을이 되면 순례자나 관광객은 거의 없지만 높은 산에서 티벳계의 민속의상을 입은 유목민들이 염소를 몰면서 내려오는 히말라야 산기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카메트 [Kamet]7756
인도 우타르 프라데쉬주에 위치하며, 가르왈 히말라야, 카메트 산군의 최고봉이다. 델리(Delhi)로부터 동북방으로 약 350km로 마나피크(Mana Peak: 7272m)를 거느리고 있다. 가르왈 히말라야에서는 난다데비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이 산군에서 시작되는 강은 알라크난다(Alaknanda)강이 되어 갠지스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가까이에 힌두교의 성지 바드리나트(Badrinath)가 있다. 1855년 독일의 아돌프(Adolphe)와 로베르트(Robert) 슐라긴트바이트(Schlagintweit)형제가 북쪽 중국으로부터 최초로 카메트를 오르기 위해 아비가민을 시등 하였으나 6784m에서 단념했다. 1907년, 영국의 롱스타프(T.G Longstaff), 브루스(C.G Bruce), 멈(A.L. Mumm)등이 동쪽으로부터, 1910년에는 영국의 미드(C.F Meade)가 서쪽으로부터, 1911년에는 영국의 슬링스비(A.M Slingsby), 켈라스(Kellas, Alexander M.)가 입산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1931년 영국대(대장·F. Smythe)의 F.B.보먼, F.S.J.바니, C.R.그린, R.C.홀즈워즈, E.E.쉽튼 등이 함께 입산, (이 팀은 최초로 시도된 기동성 있는 조직적인 소원정 팀으로 알려짐) 미드가 뚫은 동카메트 빙하로부터 미드 콜에 이르러 북사면으로 초등정을 이루었다.(등정자 F.스마이스, R.홀즈워즈, E.E.쉽튼, 셀파 레와가 등정한 데 이어 2차로 바니, 그린 그리고 셀파, 케살, 싱 등 대원 5명). 등정기록은 1936년, 난다데비가 초등할 때까지 인류가 도달한 최고점이었다. 1981년 5월에 인도대가 다시 올랐고 이때 대원 3명은 정상 부근으로부터 스키로 하강했다. 2차대전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외국인의 입산이 자주 금지되고 있다.
하티파르밧 [Hathi Parbat]6727
하티피크(Hathi Peak)라고도 불린다. 카메트에서 남쪽으로 뻗어있는 다울리강가 강과 사라스와티 강을 나누는 산맥의 남단에 있으며 라타반(Rataban: 6166m), 고리 파르바트 등과 함께 코사(Kosa) 산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산의 등산기지인 조쉬마트는 남서 20km에 있다. 진입로는 조쉬마트에서 다울리강가를 거슬러 올라가 말라리 앞쪽에 있는 코사까지 차로 들어가 코사부터 라지 방크 빙하에 도달한다. 「하티」는 힌두어로 「코끼리」를 뜻하며 「파르바트」는「산」을 뜻하는데 땅딸막한 코끼리 모양인 산의 생김새에서 이름 붙여졌다. 1963년 인도의 ITBP(인도·티벳 국경경찰대)대가 초등정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