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관한 유명한 경구 중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말이 있다. 나온 지 백 년도 넘어 이젠 미이라가 될 지경이지만 이 낡은 선언은 아직 때때로 유효하다. 루이스 설리번의 이 격언에는 많은 변종들이 뒤따른다. “형태는 재미를 따른다”부터 시작해 “형태는 욕망을 따른다”는 식의 다소 으스스한 반론, 그리고 “형태는 감성을 따른다”까지.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만능 상자, 컴퓨터는 어때야 하는 걸까?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전에 없던 ‘기능’들이 추가되고, 재미있어지며, 자연스레 사람들의 욕망까지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이 요상한 상자는 도대체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 것인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으로 바로 이 사람, 애플의 디자인 부사장 조나단 아이브(Jonathan Paul Ive, CBE)의 작업을 꼽을 것이다. 푸른색의 유선형 모니터로 유명한 ‘아이맥 iMac’, 티타늄 소재의 맥북인 ‘파워북 Powerbook’, ‘아이팟 iPod’, ‘아이폰 iPhone’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 선보인 ‘아이패드 iPad’…. 그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기능, 재미, 욕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그 어느 것도 외면하지 않는다. 기능을 따르려니 재미가 없고, 감성을 반영하자니 기능을 드러낼 수 없다는 식의 변명은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조나단 아이브에겐 기능이 곧 재미고, 재미야말로 컴퓨터라는 물건의 가장 위대한 기능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직접 빌자면 이렇다. “컴퓨터처럼 기능 자체가 변하는 물건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우리는 컴퓨터로 음악을 듣고, 영화와 사진을 편집하고, 디자인을 하고, 심지어 책을 쓸 수도 있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새롭고 가변적이다. 때문에 나는 늘 새로운 재료와 형태를 쓸 수 있다. 가능성은 무한하다. 난 정말이지 이 가능성을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