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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33)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본문 : 삿9:22-29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시절
한 사람의 잘못된 야망과 정권욕이.....
역사와 민족의 미래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를
경험하였습니다.
민주화를 상당기간 뒤로 미루어놨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들의 잘못된 야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또 그들의 잘못이 완전히 밝혀지지도
청산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잘못된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고
그동안 쌓여온 폐단들을 적극적으로
바로잡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잘못된 야망>.....
그런데 잘못된 야망으로 인한 고통은
우리 민족만의 경험은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지난 시간 살펴본 아비멜렉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아비멜렉은 처세에 능하고
상황 판단이 아주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기드온이 죽자마자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실적으로
(태생적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첩의 자식인데다가 이미 자신보다
순위가 앞서는 70명의 정실부인들의
자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선택합니다.
세겜에 살고 있는 자신의
외가 친척들을 포섭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불법 자금을 받아 불량배들을 사고,
결국 70명의 형제들을
한 바위에서 몰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잘못된 한 사람의 권력욕이
기드온 집안에 엄청난
비극을 가져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도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왕이 되는 순간 하나님의 신정국가의
비전을 훼손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간신히 살아남은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나무’처럼,....
자신의 위치와 소명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올 수밖에 없습니다.
<악한 영을 보내신 하나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22-23절>
22절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불과 3년 만에 문제가 터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셨습니다.
이 표현은 귀신과 같은
‘악한 존재’를 보내셨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사탄을 심판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악한 영을 보내셨다’는
표현은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허락하셨던
일반은총을 거두시는 것을
성경은 ‘악한 영을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선재적 은총으로
모든 것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일반적인 은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질서를 보존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연이 질서대로 움직이고....,
생태계가 상생하며 살아가는 것도,.....
사람들이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총의 덕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우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셨다’는 표현은 ...
하나님께서 은총을 거두어
가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은총을 거두어가시면
모든 것이 뒤틀립니다.
내버려 두는 것이 저주입니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
내버려 두면 사단이 밥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가장 가까운 혈육들이,
가장 친했던 사람들이 배신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왕이 되는데 결정적인 지원을 했던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신합니다.
또 이런 배신이 일어난 정치적인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비멜렉은 비록 세겜 사람들의
도움으로 왕 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들을 중용하지 않은 듯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전체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귀족들과 손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외가 친척보다는 자신이 기드온의 아들임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겜에는
‘스볼’이라는 심복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습니다(28절).
<세겜 사람들의 반발>,,,,
그러나 세겜 사람들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밀어주었는데...
정작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푸대접이었던 것입니다.
3년간 참았지만 끝내
그 분노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분출되었습니다.
25절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엿보았습니다.
아비멜렉은 세겜에서 남동쪽으로
겨우 16㎞ 정도 떨어진 ‘아루마’란 곳에
거주하였습니다(9:41).
이는 아비멜렉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또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였습니다.
이는 아마도 아비멜렉에게 바치는
세금을 가로채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왕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겜 사람들은
그 문제에 관해서 아비멜렉이 자신들을
특별대우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결국 기대했던 대로 되지 못하자
이에 감정이 상한 세겜 사람들이
아예 세금을 강탈하여,..
초기에 아비멜렉에게 투자했던
정치자금을 회수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세겜 사람들이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약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네가 이렇게 우리를 무시하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네 약점을 세상에 드러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에게
잡힌 약점은 무엇입니까?
그는 정권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세겜 사람들과 공모하여
그들의 정치 자금을 받고 불량배들을 고용하여
기드온의 아들들,
즉 자기 형제들을 몰살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체적인 내용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이나
그의 아들 중의 하나가
왕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죽었고
그의 아들들도 어느 날 갑자기
몰살당해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다 죽었습니다.
막내 요담은 아직 어렸고
숨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어차피 자신들이 원하던 기드온의 아들이었기에
크게 반발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은 형제들을
죽인 이가 바로 아비멜렉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과격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계속 섭섭하게 하면
너의 모든 비밀을 다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정치계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을 쥔 자들은
이런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부당한 방법이라도
특혜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정치권에서도
상대방의 약점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전화 녹취는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불의한 정권의 불행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세겜 사람들의 이러한 반발 소식은
아비멜렉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가알을 세우는 세겜 사람들>....
아비멜렉으로부터 특별한 반응이 없자
세겜 사람들은 아예 정권교체에 나섭니다.
26절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니라.”
가알이란 사람을 자신들의
우두머리로 세운 것입니다.
가알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에벳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를 신뢰함으로
이제 아비멜렉과는 돌이킬 수 없는
원수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예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
27절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베풀고
그들의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참 무섭지요.
정치적인 동지의 관계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
신의가 아닌 철저히
이익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한 때 뜻을 같이하는 동지였다고 자랑하다가도 .....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저주를 퍼붓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사람은 변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였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라반은 자신의 조카 야곱을 처음에는 후대하였으나
점차 변하여 야곱을 품삯을 열 번이나 번복하였고,
결혼에도 사기를 쳤습니다(창31장).
사람은 영원히 신뢰할만한
존재가 되질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요
영원히 신뢰할만한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알의 허풍>......
가알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허풍을 떨기 시작합니다.
<28-29절>
28절 “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29절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거하였으리라 하고
아비멜렉에게 이르되
네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 하니라.”
포도주에 취한 가알은
노골적으로 아비멜렉을 저주했습니다.
그의 논점은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로서, 본래 세겜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비멜렉이 자기의 어머니와
외가 친척을 앞세워서 세겜 사람들의
형제임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아비멜렉을 섬기느니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기라”(28절)고 부추깁니다.
‘하몰’은 야곱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이곳 세겜을 다스리던
추장이었습니다(창34:2).
여기에서 가알이 언급하는
‘하몰의 후손’이 혹시 가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그것이 맞는다면,
가알은 세겜 추장 하몰의 몰락한 후손으로서,
역시 아비멜렉처럼 세겜 사람들을 이용하여
다시 왕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세겜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을 향해 ‘네 군대를 증원하여 나오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실제 왕이 될 만한
재목은 아닐 듯싶습니다.
허풍으로 가득한 사람쯤으로 여겨집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것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님에도,
불의의 방법으로 권력은 차지한 아비멜렉은
불과 3년 만에 그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결국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세겜 사람들의 배반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50-57절).
우리는 때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24절은
악한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4절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아비멜렉에게는 형제를 죽인
포학한 일을 갚아주는 것이고,
세겜 사람들에게는 아비멜렉을
도와서 피를 흘리게 한 죄를
돌아가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잠23:17 “네 마음으로 죄인 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잠24:19-20>
19절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20절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시37:16-18>
16절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17절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18절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볼 때 불평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고 잠잠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악인이 형통할지라도 ...
그들의 기한은 품꾼의 정한 해와 같아서 ...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끝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사21:6).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탐욕으로 가득 찬 잘못된
야망을 품지 말고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음모를 꾸미고,
사람들을 동원하여 자기편을 만들기 보다는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까를
고민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의지하거나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십시다.
그리하여 저와 성도님들이 !
오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