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4장은 엘리후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공의에 대해 말하는 내용입니다. 욥기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왜 의인에게 고난을 주시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입니다. 욥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탄을 통해 욥을 시험하셨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죄로인해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엘리후는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였습니다. 사람이 고난을 받는 것은 꼭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신다면 우리는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며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불의하다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래 타락하였기 때문에 고난은 죄의 결과입니다.
10-12절에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은 불의하다 생각되어도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지 않으십니다. 18-19절에 “그는 왕이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으로 엘리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31-32절에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사람이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역시 사람이 결정할 수 없고 하나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다윗이 인구조사 할 때에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삼하24:1)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17절에 엘리후가 말하기를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 정죄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항상 하나님은 불의하고 불공정하게 보입니다.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가? 라고 질문하고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그러나 형통한 것이 절대 행복이 아니며 고난이 절대 불행이 아닙니다. 훗날 형통이 저주가 되고 고난이 축복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일수록 근심과 고통이 많고 그로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항상 불안하고 단명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적은 소유 가운데 항상 기뻐하고 행복하고 잠을 잘 이루고 장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29절에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여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니라”(롬8:33,34)고 하였습니다.
셋째,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1-22절에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어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뜻을 정해 놓으시고 관망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