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
상징, 뜻을 사물에 숨기자
1. 한용운의 상징
한용운은 상징을 많이 사용한 시인입니다. 그는 시에서 님, 당신 등을 애절하게 부르면서 님이나 당신이 잃어버린 조국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만해와 동시대 시인인 최남선이나 김소월의 시에 나타나듯 당시 지배적인 시의 경향은 강탈당한 조국을 시적 대상으로 하고 ‘님’을 그 대상의 또 다른 명명으로 삼고 있지요. 만해의 시편들이 여성주의적 경향을 띠는 것은 이러한 사정의 한 가닥입니다. 그러므로 만해가 시 속에 설정한 님의 원관념은 강탈당한 조국이고, 그 조국을 향해 그의 시 정신이 가열된 것입니다.⁷⁹⁾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어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전문
이 시는 시집 『님의 침묵』에 나오는 표제시이면서 첫 번째 시입니다. 만해의 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작품입니다. 한용운 시인이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투사이고 승려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님은 조국이거나 부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송욱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민족에 대한 참된 사랑을 깨달은 순간도 되고, 견성의 진리를 깨친 찰나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님은 시를 읽는 사람에 따라서 사랑하는 연인이 될 수도 시인이 추구하는 진리나 절대적 가치를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징은 우리의 상상을 확대하거나 심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한용운이 말하는 님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시집 맨 앞에 있는 ‘군말’을 통해서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님은 님만 님이 아니라 그리운 것은 다 님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중생은 석가의 님이고, 철학은 칸트의 님이고, 장미꽃의 님은 봄비이고,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님은 여러 대상을 상징한다고 보면 됩니다. 독자에 따라서 여러 님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에서 ‘님은 갔다’라는 표현을 반복하는데, 이는 ‘조국을 상실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창작자가 3.1운동 당시 33인 중 실질적인 대표였다는 전기적 사실이 님의 상실을 조국의 상실로 추정할 수 있게 합니다. 한용운에게서 님은 절대적 존재이며, 님의 상실은 절대적인 존재의 상실인 것입니다.
이 시의 특징은 “님이 갔다”는 반복과 “~습니다.”의 높임말끝(어미)사용입니다. 반복과 높임말끝은 시집 『님의 침묵』에 나오는 대부분의 시에 사용됩니다. 또 하나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역설입니다.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다”는 표현은 님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대상을 보았을 때,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바로 역설화법입니다. 또 “그 소리에 귀가 멀었다.”고 했을 때, 소리의 대상이 아름다워서 다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라든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님이 떠나서 조국의 주권은 잃어버렸지만, 다시 조국을 되찾겠다는 화자의 강한 주관적 의지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님의 침묵은 님의 부재, 즉 주권을 상실한 조국을 상징한다고 보면 됩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변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전문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도 ‘가신 님’은 상실된 조국을 가리킵니다. 조국을 잃은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는 것입니다. 또 ‘인격이없는 거지’로 멸시까지 당합니다. 이러한 서러움 뒤에 조국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며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다고 합니다. 맨 마지막 연에서는 조국의 현실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조국으로 상징되는 당신을 보았다고 합니다. 3연에서 ‘장군’은 일제의 무력통치를 의미하며, 무력으로 조선인의 인권을 능욕하는 것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3연에서 ‘슬픔’이 있는 까닭은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 때문일 것이며, 이에 대한 자학입니다. ‘칼과 황금’은 권력과 돈을 의미합니다. 윤리와 도덕과 법률은 권력과 재력을 떠받드는 도구일 뿐, 연기처럼 헛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결입니다.
뽕나무 뿌리 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의가 무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복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 한용운, 「찬송」 전문
당신과 님은 같은 존재입니다. 당신과 님은 조국이자 부처를 의미합니다. 1연 “백 번이나 단련된 금결”은 고난을 겪은 부처나 조국의 상징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은 오랜 시간을 의미합니다. 조국이 오랜 시간 동안 하늘의 사랑을 받으라는 기원입니다. “아침볕의 첫 걸음”은 희망의 상징을 나타냅니다. 2연의 “옛 오동의 숨은 소리”, 3연의 “얼음바다에 봄바람” 역시 상징입니다.
김용직은 이 시를 반복과 병렬의 원리를 적절히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습니다. 각 연의 1행은 “님이여, 당신은”으로, 3행은 “님이여, 사랑이여”로 시작합니다. 각 행의 끝은 “~니다” “~읍(옵)소서” “~이여”로 마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정한모 · 김용직 공저, 『문학개론』, 박영사, 1973, 98쪽 참조)
이 시는 각 연의 1행은 1행끼리, 2행은 2행끼리, 3행은 3행끼리 대응되고 있습니다. 서로 반복과 병렬의 원리가 선명한 시입니다. 1연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결”이라는 님의 존재에 대한 작중화자의 판단이고, 2연은 “거지의 거친 밭에 복의 씨앗을 뿌”려 달라는 님에 대한 기원입니다. 3연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한다는 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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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김선학, 『현실과 언어의 그물』, 민음사, 1988, 24~37쪽 참조. 더하여 김선학은 한용운의 시는 김소월과 정지용의 전통적 한국시의 맥락과 전혀 판이하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시를 생각하는 입장이 달랐으며, 정지용이 개인적 정감을 정교하고 치밀하고 정치한 언어로, 김소월이 민요가락 속에 그것을 형상화했다면 한용운은 당대의 시대적 현실 내지는 역사적 현실과의 대응에서 개인을 그것과 합치시켜 상징적으로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소월이나 정지용과는 다른 산문적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2024. 3. 3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