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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독서 에세이】
책 읽는 즐거움
◆ 새해 아침 문학평론가 송백헌 박사가 주신 두 권의 책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새해 아침 ‘카카오스토리’에 『과거의 오늘 있었던 추억들』이 올라왔다. 제목은 【책 읽는 즐거움】이다. ‘과거의 오늘’이란 2019.01.29. 을 말한다. 바로 6년 전 ‘오늘’이다. 더 많은 독자와 <공유>하라는 뜻이다.
▲ 새해 아침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과거의 오늘 있었던 추억들】 : 2019.1.29.
저자 송백헌(宋百憲 1935 ~2021, 아호 초강) 박사님은 저 멀리 여행을 떠나셨지만 저서에서는 여전히 특유의 체취가 묻어난다.
친필 서명 덕분이다. 송 박사님은 내게 책을 보내주실 때마다 ‘글로 맺은 인연 오래 간직하렵니다’라는 표현을 즐겨 쓰셨다.
<소람(笑覽) 하소서>라는 표현도 즐겨 쓰셨다. 저자의 겸허한 인품이 돋보이는 책이다.
▲ 송백헌 박사가 보내준 저서와 친필 서명
그 어른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일까. 추억의 글을 다시 읽으니, 존경했던 마음이 새롭게 다가온다. ■
2025. 1. 29.
윤승원 소회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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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문학관 중견작가전 윤승원 작품 앞에서 - 문학평론가 송백헌 박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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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글
어느 노학자의 여행기에서 발견한 ‘나라꽃 무궁화’
― 문학평론가 송백헌 박사의 『해외여행기』를 읽고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박사님, 이것 좀 보세요. 참으로 놀라운 사진입니다.”
대전문인총연합회 연초 모임에서 송백헌 박사(문학평론가, 충남대학교 명예교수)에게 내가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감탄하는 말이었다.
소주잔이 오가는 술자리는 왁자지껄하기 마련이다. 약주 좀 드실 줄 아는 지역 문인 20여 명이 자리를 함께하다 보니, 바로 옆자리 사람과도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술자리는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상태였다.
“뭔 사진인가요?”
송 박사님이 곁에 바짝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사실, 이런 모임에서 나는 송 박사의 옆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분의 옆자리에 앉으면 무엇이든 한두 가지 새로운 정보나 유익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
격의 없이 소탈하게 전해주는 말씀도 구수하거니와, 그분의 책에서 읽을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재미있고 유익하니, 이런 돈 안 들이고 얻어 가는 ‘공짜 강의’가 어디 있나?
◆ 박학다식(博學多識) 무불통지(無不通知)의 문학평론가
그뿐이 아니다. 내가 송 박사를 남달리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연세임에도 총기(聰氣)가 뛰어나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는 애칭이 늘 따라다닌다.
지역 문인들의 웬만한 프로필은 죄다 꿸 뿐 아니라 본관(本貫)이며, 이름을 떨친 조상까지 기억해 낸다.
공식적인 칭호는 ‘문학박사’지만 ‘만물박사’라 불릴 만큼 역사와 지리, 풍속 분야에도 박학다식(博學多識) 무불통지(無不通知) 한 학자다. 풍부한 유머에 재담(才談)도 뛰어나니, 그분과 함께 있으면 엔도르핀이 솟는다.
모임에 가면 으레 그분이 내 손목을 이끌고 “윤 선생, 내 옆으로 와 봐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지만, 오늘 이 자리에선 내가 먼저 그분의 옆자리에 자진해서 앉았다. 오늘은 ‘내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아서였다.
“이게 어떤 사진인 줄 아시지요? 박사님이 오래전에 제게 주신 여행기 『삿포로에서 카사블랑카까지』에 나오는 사진입니다.”
송 박사는 신기한 듯 내가 보여드리는 스마트폰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송 박사가 내게 준 저서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한 대목을 밑줄 긋고 사진 찍어뒀던 것이다.
▲ 면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 - 송백헌 박사의 여행기 『삿포로에서 카사블랑카까지』에 나오는 사진이다. ‘순국비(殉國碑)’ 뒤편으로 ‘나라꽃 무궁화’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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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 이 사진을 보면 비석 뒤편에 활짝 핀 무궁화가 보이지요? 저는 이 사진 한 장이 갖는 상징성이 대단히 크다고 보았어요. 얼마나 귀한 사진인가요. 저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송 박사님 여행기 중에서 이 사진이 최고 가치 있는 사진으로 봅니다. 나라꽃 무궁화를 누가 면암 선생 비석 뒤에 심어놨는지, 놀라운 일이고, 그 의미가 각별해요.”
그러면서 일본 땅 슈젠지[修善寺]에 세워진 면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를 언급한 송 박사의 여행기 한 대목을 내가 읽었다.
“최익현 선생은 한말의 대유학자이자, 정치가요, 구국 항일투쟁의 상징 인물로 익히 알려진 분이다. 그는 1906년 말에 이곳에 강제로 유배되어 오면서 신발 속에 우리 땅의 흙을 집어넣어 일본 땅은 절대로 밟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 후 이곳에 와서 일본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끝내 1907년 1월 1일 숨을 거두었다.”
▲ 밑줄을 그으면서 감명 깊게 읽은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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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 이르러 나는 송 박사에게 “애국심과 지조라는 말 한마디로 그분을 추앙하기엔 부족하다"라고 말씀드렸다.
◆ 자연스럽게 만나는 ‘역사적 인물’에 얽힌 숨은 일화
일본 땅에 강제로 유배되어 오면서 신발 속에 우리 땅의 흙을 집어넣어왔다는 대목을 보라.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듣는가?
백 마디 애국을 가르치는 것보다 이 한 마디 대목을 읽으면 ‘나라 사랑 정신’이 온전히 전이(轉移) 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려온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여행기에는 내 고향 충남 청양에 면암 선생의 위패를 모신 모덕사(慕德寺)가 있다는 사실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송 박사에게 여쭈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종손 최창규(崔昌圭, 전 독립기념관장, 충남 청양 출생) 교수와 송 박사님이 세의(世誼)로 맺은 친구여서 이곳에 올 때마다 감회가 남다르다고 하셨잖아요? ‘세의’란 ‘대대로 사귀어 온 정情’을 뜻하는데, 송 박사님과 최창규 교수와 그렇게 깊은 인연을 맺고 살아오셨군요.”
그러자 송 박사는 “그래요. 최 교수와는 대대로 각별한 인연이지요. 최 교수가 사문학회(斯文學會, 우암 학문을 추앙하는 학회) 회장도 지냈어요. 1970년대 초에 우암 종중에서 우암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문학회를 만들어 사무실을 인사동에 두었는데, 그때 최 교수가 회장을 맡았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송 박사의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후손이다.
머리 좋은 학자 가문의 후손답게 오늘날 송 박사가 펴내는 훌륭한 저서들도 현세(現世) 뿐 아니라 먼 훗날까지 귀중한 사료적 가치로 인정받으리라 믿는다.
마침 삼일절이 다가오는 시점이다. ‘독서 여행’을 즐기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 땅에 세워진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를 송백헌 박사의 여행기를 바탕으로 단편적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 한 권의 여행기(旅行記)는 새로운 지식의 보고(寶庫)
이 밖에도 이 여행기에는 공무 출장, 또는 동료 교수들과 단체 여행, 자녀들이 보내준 효도 여행까지 무려 40여 개국의 여행기를 담고 있다.
여행기 어느 쪽을 펼쳐봐도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전통까지 상세하게 기술돼 있어,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해외여행도 그 나라에 대한 깊이 있는 상식과 지식을 가지고 떠난다면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이 되리라 믿는다.
우편물이 또 도착했다. 송백헌 박사가 보내준 『해외여행기 두 번째 이야기 - 파타야 해변에서 별을 헤다』이다.
▲ 송백헌 박사의 『해외여행기 두 번째 이야기 - 파타야 해변에서 별을 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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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또 어떤 풍부한 여행 지식과 그동안 내가 몰랐던 의미 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자못 기대하며 열어본다. (2019, 『한국문학시대』 봄호)
◆ [後記] 책과 맺은 인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뒷이야기
이 글을 충남 청양 장평초등학교 선배이자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회장인 낙암(樂庵) 정구복(鄭求福) 교수에게 보여드렸더니, 이런 귀한 답글을 주었다.
“송백헌 교수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충남대학교에서 함께 모시고 지냈습니다. 송 교수님의 해학(諧謔)은 잊히지 않습니다. 윤 선생님의 소개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새해에 많은 글을 보여주시고 건승하시기를 두 손 모아 바랍니다.”
정구복 박사의 답글 중에 송백헌 박사와 과거 충남대학교에서 같이 근무하였다는 대목이 있어, 다시 송백헌 박사에게 안부 겸하여 전해드렸더니, 송 박사께서 바로 답글을 주었다.
“정구복 교수는 내가 충남대학교 재직할 때 전북대학교에서 충남대학교로 전입해 와서 절친하게 지낸 사이였습니다. 뒤에 정신문화연구원(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전출을 갔지만, 그 교수의 학구적인 태도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대단했습니다. 언젠가 읽은 기억이 있지만, 어머니의 생애를 어머니가 살았던 역사적 배경을 깔고 서술한 일대기여서 오래도록 남을 ‘효도 교과서’라고 칭할 만합니다. 윤승원 선생님도 가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만약 받아보지 못하셨다면 한 권 달라고 해서 읽어보세요. 꼭 읽어야 할 책이니까요.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은 대전문학관에 기증하였기에 그 책 제목을 잊었군요. 건필을 기원합니다.”
▲ 송백헌 박사가 『효도 교과서』라고 극찬하면서 대전문학관에 기증하셨다는 정구복 교수의 저서 《우리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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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화가인 아들이 ‘삼족오(三足烏)’를 그려준 사연
송 박사는 이런 메일을 내게 보내주고 나서 곧바로 전화를 주셨다. 정구복 박사의 저서 『우리 어머님』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동향同鄕 선배님의 저서여서 저도 그 책을 받아 읽었어요.”라고 했더니, “그냥 예사 책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효심을 담은 책이지요. 역사 전공 학자답게 시대적 배경도 체계적으로 잘 담아놓은 훌륭한 책”이라고 거듭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귀한 말씀을 전해 듣고 혼자 간직할 수 없어 다시 정구복 박사에게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전해드렸다. 정구복 박사 역시 가만히 계실 리 없었다.
내게 이런 답글을 또 주었다.
“윤 선생님! 그대를 삼족오(三足烏)에 비유한다면 실례가 될는지요.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마시고 좋게 이해해 주세요. 50년 전의 송백헌 박사와 저를 그렇게 연결해 주시고, 그 만남의 중심에는 청양 모덕사(慕德寺)의 ‘면암 이야기’에 청양과 대전, 용인(*필자주: 정 박사 거주지) 그리고 일본까지, 시공(時空)을 따지면 수백 년(우암까지), 수만 리의 거리를 그렇게도 쉽게 연결해 주시는 ‘전령의 신 삼족오’에 비유합니다. 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삼족오’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발이 셋인 까마귀로, 지상의 인간과 천상의 해와 달을 연결해 주는 전령의 상징입니다. 그 연결의 고리가 그처럼 문학적이어서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 아들이 그려준 삼족오(三足烏) - 서양화가인 아들이 정 박사와 내가 나눈 이야기를 듣고 “문학적인 비유가 멋있고 재미있다”면서 ‘삼족오’를 그려줬다.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해 주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라고 하니, 신비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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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과분한 답글을 받고 필자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무리 인사를 드려야 도리일 것 같았다.
“참으로 멋진 비유! 영광입니다. 하지만 과분합니다. 문학, 특히 ‘수필’이란 바로 거창한 시대적 담론을 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지만 따뜻한 인연과 끈끈한 정이 묻어나는 인간애를 순수한 가슴으로 나누는 아름다운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분 학자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따뜻한 답신 옥고에 감동합니다.” (2019.01.31. 윤승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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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페이스북에서 방경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