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5:1-20/ 1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3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이는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밤낮 무덤 사에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6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8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11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2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15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이에 귀신 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17저희가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척에게 고하라 하신대
20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내용 전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떠나 가버나움에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오신 예수님은 이곳에서 군대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을 하셨습니다.마가와 누가가 거라사인의 지방(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마태는 가다라 지방(가다라 시와 그 근방 지역)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거라사인의 지방이 가다라 시의 관할 구역 안에 있기 때문에 폭넓은 지역관념에서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그러니까 예수님이 도착하셔서 군대 귀신을 쫓으신 곳은 거라사인의 지방인 동시에 가다라 관할 구역인 것입니다.마가와 누가는 거라사 지방을 지칭했고,마태는 가다라 구역을 지칭한 것입니다.가다라는 갈릴리 바다 최남단의 구릉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이 부근 지역은 갈릴리 저편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인구가 조밀하지는 않습니다.그리고 이곳은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자 그 지방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났습니다.귀신들린 자의 수에 대해서도 복음서 각 저자간에 기록이 다른데 마가는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라고 했고,마태는 '귀신들린 자 둘', 누가는 '귀신들린 자 하나'라고 하였습니다.이것은 마가가 귀신들린 자의 수를 염두에 두지 않고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마태는 귀신들린 자의 수를 염두에 두고 정확히 기록한 것이며,누가는 귀신들린 자의 수에 그리 마음을 두지 않고 다만 그들 중에서 대표격으로 예수님과 말한 한 사람을 기록한 것일 뿐이므로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거라사인의 지방에 도착하시자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가다라의 거라사인이 사는 땅에는 큰 묘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으며,당시 주민들은 무덤 사이에 귀신들의 거처가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그만큼 그곳은 사람들에게 불결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그런데 그곳에서 귀신들린 자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그들이 어찌나 사나운지 사람들은 감히 그곳으로 지나갈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마8:28).처음에는 사람들이 그 둘을 쇠고랑을 채우고 쇠사슬로 묶었으나 곧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여러번 쇠고랑도 채우고 쇠사슬로도 묶어보았으나 그때마다 쇠사슬을 끊고 쇠고랑을 깨뜨려버렸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사람들은 그 둘을 도무지 제어할 힘이 없음을 알고는 그들이 있는 곳에는 얼씬을 하지 않았습니다.그런 귀신들린 두 사람의 행세는 말이 아니었습니다.옷을 찢어 버리고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쳐 상하게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그런 귀신들린 자 두 사람은 바다 해변 쪽에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서는 그들이 거처하던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예수님은 그들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보고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자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께 큰 소리로 외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였습니다.사실 이 말은 더러운 귀신이 귀신들린 자의 정신과 입술을 압제하여 말을 하게 한 것입니다.예수님은 귀신에게 물었습니다."네 이름이 무엇이냐?" 더러운 귀신은 "내 이름은 군대입니다.우리의 수효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그리고는 예수님에게 간절히 구하기를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하였습니다.마침 그곳 산기슭에는 돼지의 큰 떼가 먹고 있었는데(방목) 그것을 보고는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하고 간청하였습니다.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시자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갔는데 그 수가 거의 2천 마리나 되었습니다.귀신들이 들어오자 돼지 떼들은 비탈길을 내리달려 바다에 빠져 몰사하였습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놀라 도망하여 읍내와 촌(마을 동네)의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렸습니다.마을 사람들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여 예수께서 계시는 곳으로 몰려 왔습니다.그리고는 군대 귀신들려던 자가 자기 옷을 갖추어 입고 온전한 정신으로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다들 두려워하여 어떻게 할 바를 몰랐습니다.그러자 귀신들렸던 자에게 있었던 일과 돼지의 떼들이 바다에 빠져 몰사한 그 모두를 처음부터 목격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본대로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이야기를 다 들은 마을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곳에 더 머물러 있다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슨 해를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에게 이 지방을 떠나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을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나오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떠나기 위하여 배가 있는 곳으로 가 배에 오르시고자 했습니다.그때 귀신들렸던 두 사람도 예수님을 쫓아와 자기들도 따라가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척에게 고하라"
이에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데가볼리 온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큰 일을 전파하였습니다.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하며 이상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들어가신 의미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무리를 떠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 지방 거라사인의 땅으로 들어가신 것은 자기 계시의 목적으로서 였습니다.앞서 갈릴리 바다에서 바람을 그치게 하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신 이적을 행하심에서 예수님은 자연계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해 주셨습니다.그런가 하면 거라사인의 지방에서는 더러운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이적을 행하심으로 영계를 주관하시는 권능을 가지신 전능자,곧 하나님이심을 계시해 주셨습니다.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능히 자연계와 영계를 주관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권세자이십니다.이 능력은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께로 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이적(표적)행하심에 의해 자기를 계시하심은 예수님이 함께 하신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러니까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귀신을 쫓아내시고 하는 것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는 현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적,표적)인 것입니다.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시며,사단보다도 권세가 크신 분이십니다.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자연이 순복하고 귀신이 물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을 하신 것에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서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상으로 귀신들려 있는 인간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예수님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심을 보여주어 그 지방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와 그 이름을 믿음으로 죄 사함의 구원을 받아 자신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은헤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요4:3-42에서의 예수님의 행적에서 예수님께서 굳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고자 하신 것은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사는 여인을 만나 자기를 증거하심으로 사마리아 사람들도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처럼,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들어가신 것도 같은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그러나 거라사인의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지를 못했습니다.단지,예수님에게서 무서운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만 보았을 뿐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거라사인의 귀신들린 자
거라사인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우리는 죄의 실체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거라사인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광기를 보게 되는데,옷을 찢어 던져 버리고 돌로 자기 몸을 짓이겨 상처를 입히고 집에 거주하지 않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아주 거칠고 미친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고서 하나님의 형상이 있지 않은 타락한 사람을 죄가 어떻게 힘있게 그를 억압하고서 그 인생을 학대하고 타락을 주도해 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사단에게 사로잡혀 있어서 죄의 힘에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미혹받은 정신으로 죄를 즐기며 죄를 사모하며 살아갑니다.이것이 타락한 사람의 특징입니다.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제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까? 생각하는 것에서 부터 어떤 행동 하나에 이르기까지 제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미혹받은 정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곧 광기로 살아가고 있습니다.우리는 그 광기를 가장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그들의 육체의 정욕에서,안목의 정욕에서,이 생의 자랑에서 말입니다.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이것들인데,사람들이 이것들을 좇아서 사는 결과 하나님과 대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사단이 가장 바라는 일입니다.그러니 사단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그게 제정신으로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지나치게 집착하며 사는 사람을 봅니다.젊은 사람들이 가장 최신의 패션 유행을 좇아 화장을 하고 배꼽을 내보이며 다니고 옷을 찢고 구멍을 내어서 입고 머리를 별의별 희한한 모양과 물을 들여 다니고 하는 것에서 무엇을 봅니까? 귀신들린 광기입니다,죄의 실체성입니다.음주문화와 그에 따른 성문란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찾고 쫓아다니는 의식주와 위락 문화에서 마치 그것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하나님없이 사단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불쌍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그러기에 우리는 현대인들에게서 귀신들린 거라사인의 광기를 보고 있습니다.
귀신들의 고백과 간구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와 엎드려 절하는 거라사인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그러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무덤을 거처로 하고서 미쳐 날뛰고 있는 두 사람의 실체는 그들을 제어하고 있는 귀신들이었습니다.귀신들은 자기 앞에 있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한눈에 알아챘습니다.귀신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았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거나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귀신들의 우두머리인 사단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운운하면서 시험하였었습니다(마4:3) 귀신들이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 어떤 점에 있어서는 사람보다 밝습니다"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그런데 귀신들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부르짖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공경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비록 귀신들이 예수님의 실체를 알고 있어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하고 부르짖었으나 이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인지를 알기에 그분을 두려워서 한 말일 뿐입니다.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로서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의 권세를 깨뜨리시고(12:28-29),지옥의 고통 가운데에 던져 넣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두려움을 가지고 예수님을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그것은 다음에 말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이것이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는 누가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눅8:31)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사단과 자신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일을 성취하실 때가 아직은 오지 않았음을 알고서(마8:29) 예수님에게 자신들을 괴롭게 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10절에서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는 귀신들이 자기들이 이방인인 거라사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에서 쫓아내지 말아달라는 것이 아니라,귀신들이 머물러 있는 장소로서의 땅,곧 이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거라사인 지방은 귀신들이 심판을 받기 이전까지 머물러 있는 땅 그 중의 한 곳일 뿐입니다.따라서 귀신들은 자신들이 머물러 있는 땅으로부터 쫓아내서 지옥으로 보내지 말아달라고 한 것입니다.그런 뜻으로 자신들을 괴롭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대답하기를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이름을 물은 것은 그의 이름이 궁금해서가 아니라,귀신의 실체를 드러내주기 위해서 입니다.귀신들린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군대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 많은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여기서 이름을 '군대'라고 한 것은 헬라 원어로 '레기온'(Legion)이라고 대답한 것인데,이것은 6,000명의 군인으로 된 「군단」이란 뜻입니다.그러니까 로마 군대의 이름입니다.귀신들린 사람이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군대라고 대답한 것은 자신에게는 사악한 귀신의 수효가 레기온(군단) 군대처럼 많다는 것인데,이는 그처럼 귀신의 수가 많다는 차원보다는 레기온(군단) 군대가 지니고 있는 막강한 군사력처럼 귀신들린 사람의 실체인 귀신의 세력,곧 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사람을 사로잡고 괴롭힘을 주고 있는 귀신의 힘,또는 죄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말하게 하여 드러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귀신들린 사람의 고백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귀신들도 예수님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것이며,이것은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일지라도 얼마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를 이루는 모습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그것은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과 교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귀신들이 아무리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갖고 교제를 갖지는 않습니다.귀신들은 사단의 통치를 받을 뿐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믿는 사람은 그분과 연합하여 그분의 몸을 이루고 있기에 무시로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갖고 교제를 갖습니다.나무의 좋고 나쁨은 그 나무에 열리는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각 사람이 뿌리를 박고 자라 열매를 맺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고 이름을 부르고 하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면 그의 삶에서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과 교제가 있습니다.그렇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고 하는 것이 귀신의 말하게 하는 것을 좇아서 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의 삶에는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과 교제가 없습니다.사람이 서로 몸만 자리를 같이하고 있으면 얼마나 무료하고 재미없습니까? 사람이 서로 만나서 인격을 같이하여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를 같이하며 움직이는 것에서 삶의 자랑이 있는 법입니다.우리가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여도 우리가 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아니면 그렇게 무료하고 재미없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인격적 만남을 갖고서 교제로서 하면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풍성해지게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때때로 단지 한 마디의 말씀을 읽어도 내 마음 속을 불붙게 하며,그리스도의 이름만 묵상해 보아도,하나님의 속성을 생각만 해도 심령에 불이 붙게 했다.하나님은 삼위일체이셔서 내게 영광스럽게 보였다.그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이 하나님께 대한 나의 생각들을 고양시켰다.내가 체험한 가장 달콤한 기쁨과 즐거움은 내 자신의 선한 상태에 대한 희망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복음의 놀라운 사건들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일어난 것이다.내가 이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 이 기쁨은 내 자신의 상태를 수준 이상으로 이끌어 올려서 이런 시간을 놓친다는 것이 내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내가 바라보는 영광스럽고 즐거운 일로 눈이 떠져서 내 자신과 내 자신의 선한 상태에 눈을 돌리게 하였다」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그분을 예배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과 그로 인한 교제에 의해 그분이 우리에게 행하신 구속의 은혜를 알아가는 것이 있으며,그래서 그분에 대해 우리에게 있어지는 관계는 지나치리만큼 그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 겁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쫓아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심
귀신들은 자기들을 괴롭게 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한 후 마침 가까이 산기슭에서 방목하고 있는 돼지 떼들이 이곳 저곳을 다니며 먹이를 찾아 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예수님에게 자신들을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해 달라고 다시 간구하였습니다.귀신들이 이처럼 간구한 것은 자기들이 그동안 지배하고 있던 그 두사람에게서 자기들을 쫓아내실 것이므로 그들에게서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아울러 예수님의 허락없이는 그 돼지들에게 조차 침범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그러므로 예수님의 허락을 간구하였습니다.이에 예수님이 허락하자 돼지에게로 들어갔는데 거의 2천마리나 되는 큰 떼였습니다.돼지 떼에 귀신들이 들어가자 돼지들은 비탈길을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 모두 빠져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처럼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을까요? 헤르만 리델보스(H.N.Riddervos)는 말하기를 "예수께서 귀신들의 요청을 승낙하신 이유는 주님은 사단의 고통받을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너무 잘 아셨기 때문이다.예수님의 전체 사역은 그에게 사단을 지배하는 권세가 있음을 나타냈다.그렇지만 그의 이적들은 아직 이르지 않은 때에 대한 서곡이요 보증일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예수님은 이 이적을 통하여 자신이 주가 되심을 거라사 지방에 사는 사람들 앞에 나타내셨습니다.귀신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 떼들이 바다에 빠져 몰사당하는 모든 광경을 목격한 자들이 있었습니다.돼지치던 자들입니다.그들은 자기들이 본 광경을 인하여 무서워하여 그 자리를 도망하여 동네로 들어와 자기들이 본 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그 소식은 빠른 속도로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그렇게 해서 거라사인 지방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단의 군대를 멸하여 사단의 군대에 사로잡혀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여 그들에게서 하나님과 그 나라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라고 하는 그 실체를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거라사인 지방 사람들이 예수님께 떠나가시기를 구함
거라사인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에 들어오심으로 해서 일어난 사건을 보고 예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그들이 두려움을 가진 것은 예수님에게서 사단의 군대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에 들어옴으로 해서 많은 돼지 떼를 잃은데 대한 마음의 두려움을 가져서 입니다.그러니까 예수님을 보고 무섭고 겁이났던 것입니다.예수님이 계속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에 머물러 있다가는 또 다시 재산상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거라사인 지방의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빛이 비취면 어둠 속에 있던 것들은 그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어둠 속에 있을 때는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질 않습니다.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그러다가 어둠에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물러가기 때문에 어둠 속에 있던 실체가 드러납니다.정체가 밝혀집니다.그렇듯이 예수님이 거라사인 지방에 오심으로 해서 거라사인 지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귀신들려 무덤 사이에 살고 있었던 두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이 바로 사단에 사로잡혀서 죄의 힘에 지배받으며 살고 있는 죄인들인 것입니다.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아니라 죄의 힘에 이끌려서 육의 욕망을 좇아 삽니다.그런 자신들임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해서 드러남으로 본능적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합니다.예수님을 싫어하여 거부하는 것입니다.마치 오랫동안 몸을 씻지 않아서 때많은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목욕하는 목욕탕에 가기를 싫어하는 것 같이 자기들의 실체가 드러나게 됨으로 예수님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에 계속해서 있는 것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방에서 떠나갈 것을 간구하였습니다.그들의 관심은 온통 물질적인 손해를 더 이상 입지 않으려는데 쏠려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로 인하여 예수님이 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이런 권세를 행하시는가 하며 고민하고 알아볼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쫓아내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자기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주실려고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는,귀신들도 알고 있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이런 거라사인 지방 사람들에 대해 박윤선은 말하기를 "그 지방 사람들은 돼지 떼가 희생 당하는 것을 보고 아까와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라고 청구하였다,그들은 이렇게 어리석고 생명의 구주를 귀한 줄 몰랐다.그들은 그리스도보다도 돼지를 더 사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이 예수님께 함께 있기를 구함
거라사 지방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므로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배에 오르셨습니다.그러자 그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자기도 예수님을 따라가 예수님과 함께 있겠다고 간구하였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저에게 이르시기를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척에게 고하라"고 하셨습니다.귀신들렸던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박윤선은 공관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습니다.「예수님의 행적이 아직 많이 나타나지 않은 가다라 지방 같은데서는 주님에게 대한 소문의 광포(廣布)가 필요하였다.그러므로 그 귀신나간 사람은 다른 지방으로 동행함보다,자기의 지방에 돌아가서 전도함이 필요하였다.주님께서 그 귀신 나간 사람더러 하나님의 행하신 큰 일을 널리 전파하라고 하셨으니 그 목적은, 그 지방에서는 이방 사람들이 많이 살므로 메시야의 천국 운동에 대하여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것이다.유대인은 에수님을 땅 위의 생활을 잘 되게 할 구주로 오해하였으나,이방인들은 그렇지 않았다.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 한 것처럼(마8:4) 그의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하실 필요가 없었다.」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단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으로 누구나 예수님이 걸어가시며 행하시는 사역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아닙니다.귀신들렸던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가 예수님을 따라가 동행하는 것보다 거라사 지방에 남아서 주님께서 그에게 이적을 행하여 베풀어 나타내주셨던 자비를 사람들에게 전하여서 예수님을 널리 알리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이것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복음 전도 운동에 참여하고 동역하는 것과 같은 비중있는 일이다.왜냐하면 복음 전도 운동은 어느 한 지역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온 세상,그러니까 거라사 지방에서 예수님이 떠나고 난 뒤에도 계속적으로 전파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그 일을 위하여 귀신들렸던 사람은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들렸던 사람은 예수님께로 부터 자신이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듣고 깨달아 그 때부터 데가볼리 온 지역을 돌아다니며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위대한 일을 널리 전하였습니다.귀신들렸던 사람에게로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참으로 신기해하며 놀라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