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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홍 제2시조집, 『조각보와 가을꽃』, 土房, 1995.
裵渭泓 1995년 11월 25일 발행
□ 1919년 12월 24일 경북 안동 예안(禮安)에서 태어남. 3남 5녀 중 장녀.
대구에서 성장,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1936년)
시조집 『江가에서』(‘88년)가 있음
自序에서
살아온 역정을 미망의 세월이란다면 나에게 시조는 구원의 손길이었다고 짐작한다.
또한 시조는 나의 궁극일 수도 있음에 사랑과 눈물의 의미를 새기며 그런대로 애석한 날들을 헹구며 살 수 있기를 빌 뿐이다.
끝으로 내 무딘 눈을 뜨게 해주신 白水 鄭岏永 선생님, 해설을 써주신 鄭信在 선생님,...
(1995년 9월 추분절)
漢江一隅에서 배위홍
상념
가뭇이 먼 기억들이
별처럼
돋아나는 밤
강물은 세월을 질러
달빛 안고 흐르는데
등불로 익는 상념 끝
호젓이
피는 물망초
情恨
청산은
綠水를 풀어
굽이굽이 情이온데
세월은
백발을 감아
마디마디 한일레라
아서라
피고 지는 꽃잎
저리마다 눈물일레.
결혼 기념일
春分 날 맺은 인연
알뜰하게 챙기더니
무상을 앞 세우고
그날 다시 돌아왔네
마주 들 축배도 없이
그냥 밤은 깊어라.
풍경화
산은 묵언으로
섭리를 풀어내고
강물은 漁翁을 불러
월척 꿈 버리란다
白雲도 白鷗도 훨훨
영겁으로 날려 놓고……
<작품해설/ 정신재>
시인의 작품에는 인위적인 면이 보이지 않는다. 운율도 각 장마다 주어부와 서술부의 기본 구조를 한 구로 만든 다음에 서술부만으로 만든 구를 균형있게 배치하여 작품이 매우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호흡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자연 질서에 인간 정서를 흉화시켜 보려는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이 자연의 질서에서 無慾의 꿈을 키우고 자유분방한 상상의 자유를 얻는다. 그리고 시인은 이 자연의 질서 가운데 자리잡고서 민족의 정서로 면면히 흐르는 조화의 미덕을 놓치지 않는다.
시인은 다섯 살 때부터 조부로부터 「동몽선습」 등의 한학을 배웠다. 시인의 작품에 나오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어휘들은 다 이때부터 길러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시인의 부친은 일찍 개화하신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작품에는 시조의 율격을 고수하면서도 자유로운 상상이 생동한다.
조각보
옥죄인 한 생애를
강물로나 풀어 놓고
미움도 곱게 감쳐
조각보를 깁노라면
우련히 배어나는 그리움
바늘 끝에 아려라
삼가던 한숨일사
원도 여윈 앙가슴에
곱게 피운 인고의 꽃
代를 이은 지어미 象
어느 날 환상의 무지개
깃을 치는 丹頂鶴
군불 지핀 아랫목에
서리친 고독 잠재우고
빗금간 기다림은
세월 속에 한을 묻어
情인가 홀연히 열리는
아! 청정한 하늘이여.
<작품해설/ 정신재>
시인은 미움과 그리움, 고생과 쾌락, 한과 환상을 다 창조의 질서에 융화시켜 버린다.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을 신의 창조 질서에 맡겨버림으로써 시인은 참 자유로움을 얻는다. 그것은 ‘上善若水’처럼 욕심을 버리고 우주의 창조 질서에 동화함으로써 얻은 비결이기도 하다.
과학 문명의 발달은 자연에 대한 과도한 개발로 환경을 황폐화시켰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믿으며 기대를 가졌던 인간은 파괴된 자연에 대한 실망감과 아울러 자연을 왜소하게 바라보는 시각까지 생겼다.
도시에서의 별 이야기는 먼 옛날 동화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처럼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 자연과의 조화 상실로 왜곡된 인간성을 많이 다루게 된 문학은 자연히 해체 기법을 요구하게 된다. 인위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규범의 틀을 깨지 않고는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질서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데서 지식인들로 하여금 해체의 욕망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해체만이 존재의 근원을 캐는 유일한 방법일 수는 없다. 물건이야 부속품을 해체해서 다시 갈이끼울 수 있지만, 사람의 심성은 한 번 인지되면 일부러 지우려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기억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두나 큰 사건을 경험했다든지 오랫동안 어떤 것에 관심을 가졌다든지 하면 그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기억 구조 때문에 인간은 되도록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구조를 자연의 질서에 조응시킴으로써 해결 방책을 얻는다. 우주의 질서 가운데는 폭풍우도 있고, 순풍도 있다. 그러면서 實在는 언제나 일정한 호흡과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실재가 표현된 자연에 인간의 심성을 풀어놓음으로써 승화된 마음을 얻는다.
시인에게 자연은 현상학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며, 자연의 흐름 위에서 한을 풀어내는 놀이까지 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유희는 우주 질서의 실마리를 풀어냄으로써 얻는 깨달음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부뚜막
눈물로 닦은 千年
恨도 고이 결이 나고
안으로만 끌어 안아
곤때 묻은 사연들은
아궁이 불씨로 묻어
목숨처럼 다독입니다
기쁨도 또 슬픔도
제자리에 삭아내려
섬기는 인연이야
정화수 떠올리고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소원 빌던 이 祭壇.
가락지
門 없는 약속의 門
완벽한 둥근테를
한 몸으로 살자고
죽자살자 씌운 굴레
닳아진
삶의 흠집 속
다시 뵈는 얼굴 하나.
安東民俗
車戰놀이
함성보다 더 우렁찬
산울림이 돌아온다
남정네 홍심은 豊年祭
놋다리 밟기
휘영청 달도 밝다
아낙네 놀이 마당
열두 달 사린 한을
풀어내는 魯國公主
잦아진 신명에 달 기울고
놋다리는 무너진다.
쥐불놀이
바람 끝 매운 이월
구름밭 어지러운데
논두렁 밭두렁에
쥐불 놓는 조무래기
석양빛
잠겨 간 들녘
바람개비 돌듯하네.
어머니의 江
서말지기 무쇠솥에
칼로 벤 듯 쌀이 익고
모장작 군불솥에
시래기국 맛나던 때
사람이 산다는 이치를
뼈로 새긴 시집살이
며느리 조바심은
약탕관에 애가 닳고
영일없이 人 둘리며
범절에도 결이 날 때
덴 가슴 삭힐 틈도 없이
팽이 돌던 그 세월
4代가 한 지붕 아래
날마다가 잔치날을
도도하던 어머니의 江
그 물길 돌려 놓고
목마른 생애를 실어
고달픈 뱃길 간다.
<작품해설/ 정신재>에서
시인은 실제로 동생, 아들, 손자를 포함하여 열 명이 넘는 권위 있는 교수, 박사를 두고 있다. 그래서 무슨 교육 비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고래를 가로저으면서 “그저 교육만 시켰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시인에게서 어머니다운 모성애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
시인의 부친은 대구에서 도의원을 지낸 유명 인사(배영덕 선생)로서 매우 개방적인 분이셨다. 장녀였던 시인은 자연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혼 후 시댁의 분위기는 여름도 반팔 원피스를 못 입을 만큼 완고한 편이었다. 이런 환경은 시인에게 봉건 사회와 근대 사회의 성격(완고함과 자유로움)을 공휴하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정형성과 시적 자유를 공유해야 하는 현대 시조의 창작에 매우 도움을 준 것 같다.
「어머니의 江」은 세 수로 된 연시조 형태를 띠고 있다. 첫째 수는 ‘사람이 산다는 이치를/ 뼈로 새긴 시집살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大家의 며느리로서 어려운 시집살이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며 멋을 느끼는 도량을, 둘째 수는 예의 범절에 맞춰 바쁘게 살아온 삶을 말하면서, 셋째 수에서는 삶의 물길을 돌리는 ‘어머니의 江’을 그려냈다.
三章이 기승전결의 구조를 이루듯, 이 작품에서는 세 수가 각기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셋째 수가 轉과 結의 역할을 한다. ‘도도하던 어머니의 江/ 그 물길 돌려 놓고’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시적 자아가 대대로 내려오던 상황을 바꿔놓고 나름대로 열심히 삶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ㅎ은 忍苦의 정신이 상황에 순응할 뿐만 아니라 家風에도 새로운 길을 여는 역할까지 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시인은 忍苦의 비밀을 임과 交換하는 현상학적 만남에서 터득한 것 같다. 그것은 슬픔을 삭히고 영원으로 승화하는 현상학적 자유로움으로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하나의 전형화된 모습이 있다. 곧 忍從的이면서도 기품을 읺지 않는 강인한 면이 있다. 성리학의 발달로 유가사상이 조선조의 전통 사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지조 있는 열녀상이 조선 여성의 보편적인 이미지가 되어 갔다.
왕권 강화와 함께 남성 우위의 관습이 팽배한 가운데서도 여성은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대를 이으면서 어머니象을 굳혀갔다. 굳이 남성 우위의 풍토에 대한 직접적인 항거와 몸짓을 취하지 않아도 깊이 있는 생활 철학이 배어나와 자식들을 감화시켰다.
그들은 자식을 훌륭하게 만드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성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남성을 감화시켜 나갔다. 요즘 한국 사회의 각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상승되어감도 따지고 보면 선배 여성들의 은근한 가운데서 배어나오는 미덕의 덕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 연애라는 서구의 바람이 개방과 함께 들어오면서 약간의 갈등을 겪기는 했지만, 한국의 여성들은 핵가족화의 물결을 지향하면서도 가족들의 인간미를 지속시켜 나갔다. 前代의 家風을 이으면서 새로운 가족 문화를 창출해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은 며느리이면서 시어머니였고, 딸이면서 어머니였다.
한국 사회가 거친 개방의 물결 앞에서도 동방예의지국으로서의 제사의식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저버리지 않는 것도 여성들의 음식 장만 풍습에 깃든 온화환 맵시 때문이다. 배위홍 시인은 이러한 한국 여성의 미덕을 체득함으로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한국적인 가락으로 읊어낸 시인이다.
로자리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슴 치는 회심이여
사랑 은총 믿음 소망
굴리는 로자리오
거룩한
召命 받들어
기구하는 내 딸아이.
□ 로자리오 : 묵주 또는 로사리오는 라틴어로 장미 화관을 뜻하는 ‘로사리우스’에서 유래한 말로, 가장 보편적이로 전통적인 천주교의 성물이다.
홀로 떠가는 배
인생이
강물이라면
나는 홀로 떠가는 배
한 구비
돌적마다
세월 그도 감기는데
한 생애
헤진 돛폭은
눈 감고도 물길 가네.
旅路(호주)
가슴에 선바람 일어
마실 가듯 건넌 태평양
호주로 뉴질랜드로
누벼 밟은 구만리 길
지상은 천혜의 낙원
은총의 땅은 여기런가.
‘旅窓(미국)’ 중에서
그랜드캐년
신이 빚은 환상의 영역
드러난 신비를 보라
감히 저 우람한 침묵을
뉘라 흔들어 깨우리
말 잊은 어기찬 목숨
赤馬는 갈기 세운다
억만년 거스른 原初
가물었네 콜로라도강
묵직한 기도처럼
강노을은 물이 들고
불현 듯 소리개 한 마리
孤를 치는 저 적멸.
뉴질랜드
-흰구름 흐르는 나라
하늘 가던 하얀 구름
땅위로 몰린 양떼
마우리族 예지의 심줄
들끓는 와카레와래와
초원엔 詩가 실리고
블루 마운틴엔 靈氣가
별처럼 아득한 이야기
歡喜天이 예 아닌가
구만리 밖 풀밭에
웃자란 그대 생각
이역도 스스럼 없어라
손사래 고운 재펜체리
□ 와카레와래와 : 마리리族 民俗村 이름. 硫黃泉이 들끓으며 原住民이 살고 있음.
□ 재펜체리 : 뉴질랜드 특유의 식물. 높이 2.3m, 나뭇잎은 타원형으로 고운 체리핑크빛.
와이모토 洞窟
간밤엔 하얀 반달로
은하를 거슬렀네
저것은 별이 아니야
한무리 블루 다이아몬드
칠흑속 어느 名匠의
신명 다한 絶品이지
窟은 분명 굴이었네
경이의 비경이었네
현란한 생명체에 취해
황성은 목에 걸리고
숨 죽여 돌아 나온 풀밭엔
노란 별도 돋았었네
자식들을 보며
나의 대들보, 첫째
청운의 뜻을 펼쳐
둥지 밖을 나는 靑鶴
포록포록 미쁜 날음질
배내짓이 엊그젠데
사계절 물드는 山野
굽어보는 知命이여.
나의 순환 양, 셋째
제 몫으로 주어진 삶
다스리는 어엿한 모습
풍진 세파 헤치는 길
탈 없어라 손 모으면
애틋한 마음 한 자락
새삼스레 젖는 감회
내 꿈 이룬, 넷째(信念)
대장부 품은 한 뜻
千秋에 꽃 피운다
너의 才德 갈고 닦아
우뚝 세운 미리내 聖堂
일월도 새빛을 쏟아
온 누리가 눈부시다.
내 願 푼, 다섯째(仁術)
오늘은 몇 사람이나
아픔 덜고 웃었을까
召命 받든 지성으로
다스리는 그 仁術에
신음턴 하늘도 개고
나는 보람에 취한다.
어미의 보람, 둘째
팔십리 도표 앞에
새 하늘은 열리는가
소망 하나 묻은 가슴
꿈나무는 자랐네라
그 그늘 넉넉한 자락
보람다히 영글었네.
오뚜기 인생
壽城 벌 池山洞에
자그많게 빚은 전당
지성의 손들이 모여
쌓아 올린 보탑일래
당차게 오뚜기처럼
살아 온 길 아득 인다.
인고의 세월
인고를 숯불 밟듯
밟아 온 세월 속에
만갈래 시름들을
쓸어 넘긴 이마 위
둥두렷 참을 忍字가
낙관으로 빛나네.
知天命
知天命 범주에 들어
장부 일념 높인 입지
사유 깊은 가슴 뜰에
信義의 등불 밝혀
스스로 낮추는 인품
비울수록 넘치리라.
父祖의 땅
八公山 鶴頭峰
정기 받아 세운 뼈대
고향 하늘 부조의 땅
뿌리 내린 목숨이여
풀어 논 물 구름 바람처럼
걸림없이 살거라
(1994년 正月 둘째아이의 新築開業에 즈음하여)
사흘만 못 보아도
거리감에 슬픈 母情
三從之義 외로움도
보람하여 사는 날에
목숨은 푸른거라고
타이르는 세월의 江.
타지마할(印度)
천상의 白玉樓를
옮겨다 놓았을까
당당히 사백년을
죽어서도 누리는 영화
그 무덤
거대한 祕寶
點景마다 탄성이네
애절한 사연 엮은
사랑의 승화라 하랴
稀世의 아름다움
숭고한 혼령의 궁전
달 뜨면
경이의 환상
신비의 타지마할
뒤곁에 흐르는 강
야무나는 말이 없고
‘샤쟈 한’의 한이 잠긴
물거울에 비친 위용
長流는 꿈어린 연정
그 眞智의 寂光이여.
□ 타지마할 : 마할(宮殿)로 불리기 때문에 王妃의 궁전으로 생각하나, 이것은 ‘샤자한 皇帝’의 사랑하던 왕비 ‘뭄타즈 마할’의 무덤이다. 무려 22년(서기 1631年~1653年)이 걸려 왕성됐다 함.
□ ‘샤자 한’ : 무갈 帝國의 皇帝. 晩年에 아들에 依해 幽閉되었다가 生을 마감함. 死後에는 타지마할 內에 王妃 무덤 옆에 安葬됐다.
어머니 시조집 출간에 즈음하여
1979년 12월 14일, 이 날은 우리 어머니의 회갑일이었으나 그때, 어수선한 세상탓에 壽宴을 베풀어 드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1971년 할아버지 ‧ 할머니의 回婚禮도 마련해 드렸고, 1975년에는 아버지 회갑도 마음껏 차려 드렸었는데……
그러나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의 회갑연은 차려 드리지 못해 늘 아쉬움과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어머니의 고희를 맞아서는 우리 육남매가 마음을 모아 어머니께서 평소에 써놓으신 시조들을 모아 『江가에서』라는 시조집을 엮어드리고 그 출판기념회를 겸하여 고희연을 베풀어 드렸습니다.
그때는 九旬을 넘기신 외할머니께서도 참석을 하셔서, 참으로 복된 자리라 그동안의 아쉬움을 한 자락이나마 덜었습니다.
올해 희수를 맞이하시는 어머니, 아버지께서 먼저 가시고 혼자 남으신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하여 그동안에도 꾸준히 써놓으신 시조들을 한데 묶어 두 번째 시조집을 마련해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평소 두 분 금슬이 워낙 유별(?)하셔서 늘 함께 하시다가 홀라 되신 어머니를 위해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좋아하시는 여행이나 시켜드리는 게 도리가 생각해서 나라 안팎으로 가시고 싶은 대로 다녀오시게 했더니 가는 곳 마다에서 詩想을 담아오셔서 책을 엮고도 남았습니다.
일찍이 개화된 집안의 8남패중 맏딸로 태어나셔서 거침없는 소녀시절을 보내신 어머니께서는 평소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두 분께서 친구끼리 자식을 나누어 가지기로 하자는 약속에 가고 싶었던 대학에도 못 가시고 종가인 우리집안에 외며느리로 시집을 오셨습니다.
층층시하 큰 살림에 시집살이, 마음고생도 많으셨으나 1남 5녀 딸부잣집에 5남 1녀 아들부잣집으로 만든 당당한 宗婦가 되셨으니, 온 집안의 칭송과 함께 질시도 받으셨던가 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6남매 모두 짝지어 사람구실 하도록 잘 키워 놓으셨고 슬하에 손자 ‧ 손녀 열일곱에 증손까지 보셨습니다.
며느리, 사위, 손부며느리에 손녀사위까지 서른이 넘는 대가족을 거느리신 복많은 할머니, 증조할머니가 되셨습니다.
두 번째 시조집 『조각보와 가을꽃』을 펴내면서 팔순 때도 한 권, 米壽에도 한 권, 九旬, 白壽에도…… 한 권씩 시조집을 만들어 드릴 테니 더욱 정진하시어 좋은 시조 많이 쓰시고, 젊은 마음 오래오래 간직하시고, 康寧하시기만을 빌면서 책 말미에 명 자 적어 축하를 드립니다.
1995년 晩秋에
맏아들 梁喜在 識
<작품해설>
현상학적 유희 나누기
-裵渭泓論
鄭信在/문학평론가
시인의 집짓기
실존 철학에서는 인간이 지구상의 한 지점 위에 놓여져 그 활동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을 실존이라 부른다. 신존은 곧잘 집에 비유된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성, 가치관 등으로 자신의 집짓기를 계속한다. 그래서 의미가 깃든 집은 상황에 놓인 실존이 된다.
시인의 집짓기는 일반적으로 새집짓기에 해당한다. 새는 집을 짓기 위해 잔가지들을 물어다가 나무 위에 얹어 둥지를 엮을 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수천 번을 부딪쳐서 보금자리를 편안하도록 만든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현실에서 승화된 정서로 어후ㅢ들을 아름답게 엮어낸다.
그 시는 현실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도 우주의 질서를 가슴으로 품게 한다. 밤하늘의 별들과 한낮의 꽃들이 다 시의 터전 위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연다. 그래서 시는 현실의 직접적 투영도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도 아닌 ‘나무 위의 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裵渭泓 시인이 시조 형식을 통해 삶을 엮어내는 작업을 해왔다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시인은 비록 느즈막하게 시작 활동을 시작했지만, 거기에는 삶의 진수에서 우러나온 멋이 깃들여 있기에 더욱 알찬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작품에는 인간성의 원형, 민족성의 원형, 자연에 내포된 원형 등이 이미지의 현상학으로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고, 삶과 죽음을 하나의 현상학에 포함시키며, 고대와 현대를 잇고, 여행을 통한 서정 영역을 확대하는 등, 인간으로서 걸어가야 할 보편적의 원형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시인은 한국적인 여성상을 제기하고 임의 이미지와 자유로운 交歡을 할 수 있는 현상학의 영역을 개척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