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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환절기
며칠 사이에 알록달록하던 세상이 이젠 거의 하나의 녹색 세계로 변해 있었다. 봄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은 여름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완전한 여름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a, 시골 사람들 살아가기
b, 현판식
c, 환절기
a, 시골 사람들 살아가기
# 시골 호숫가 풍경
오후에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FTP 때문에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어제부터 뭔가 문제가 있는지, 업로드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어서, 혼자 애만 태우다가 안 되겠기에... 결국은 서울의 제자에게 전활 걸어서 물어물어 해결을 보았는데요,
그렇게 겨우 업로드를 시켜 놓고 있는데, 격이 으르렁대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밖을 보니, 산장 아저씨가 '夢想?' 안으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내가 인사를 했더니, 시무룩하게 받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그저, 정처 없이 왔어..."
그 분의 말투십니다.
뭔가 울적한 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분이야 웬만해선 잠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는 분인데, 이런 식으로 느슨한 모습을 보이는 건... 뭔가 마음이 무겁다는 얘기이기도 했으니까요.
여기서 살다보니 어느덧 이렇게 나도 그런 상황을 꿰뚫어 보게 되었던 건데요,
"들어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아니... 그냥 걸어왔어..." 하는, 그 분의 말투가 그렇답니다.
"누가 뭐랩니까?" 하면서 나는 뭔가 낌새를 차리고는, "어쨌거나, 막걸리 한 잔 드릴까요?" 했더니,
대답도 없는 겁니다.
"그러면, 시원한 쥬스를 한 잔 드릴까요?" (요즘에 손님이 잦아서 나에겐 그런 것들이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막걸리 있으면..." 하고 말을 조금 빼더군요.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덕분에 저도 한 잔 하지요, 뭐." 하고는,
나는 통나무집으로 가서 간단하게 준비를 하는데,
키큰 아저씨도 때마침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모습이 보여... 잔은 세 개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호숫가의 큰 은행나무 아래에 있는 '평상'에서 간단한 술자리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키큰 아저씨는 약을 드시는지 술은 못 하신다기에, 그냥 산장 아저씨와 나만 막걸리를 대접으로 하나씩 딸아 마셨을 뿐이었는데요,
그 분도 더는 원치 않았고, 나 역시도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날씨 자체는 여름 날 같이 더웠지만, 그래도 호숫가 평상은 너무나도 시원해서... 우리는 어쩌면 퍽 낭만적인 환경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근데요,
무슨 일인지 산장 아저씨는, 누가 물은 것도 아닌데... 본인의 결혼 초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아무 것도 없는 집에 시집을 와서, '손이 터지도록 밭일을 하며 울었다'는 말로부터......
그렇게 사람 같지 않은 생활을 몇 년 하면서 돈을 조금씩 모아 황소를 사고, 소를 열심히 키워 팔아 농사지은 돈과 합해서 논을 사고... 그렇게 재산을 조금씩 불리셨다는 지난 얘기를 하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습니다.
그 분 말마따나, 그만큼 열심히 사셨기 때문에 오늘 날 그렇게 이뤄 놓으셨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늘 일에 파묻혀 검소하면서도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나는 보기 좋은 겁니다. 비록 내가 '베짱이'과 이기는 해도,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을 좋아하고 박수라도 쳐주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나는 살짝 산장아저씨께, '개미와 베짱이' 얘기를 해 드렸습니다.
나는 베짱이고 그 분은 개미로 표현한 글을 이미 인터넷에 올렸다는 얘기요......
허기야, 그 분은 인터넷 세상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아니, 전혀 모릅니다. 그런 게 어떻게 돌아가고 또 어떤 식으로 이야기 되는 건지도......
그랬더니 그 분도 웃기는 하더라구요.
아무튼 평소와는 달리, 꽤나 오랫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두 분은 일어나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막걸리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나도 약간은 나른한 상태였습니다.
근데, 그냥 지나칠 뻔했지만,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그렸던 삶의 한 모습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었습니다.
여름날 시원한 곳에 앉아, 마을 사람들 몇몇이 모여...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 풍경.
오늘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내가 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아,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데......
5 . 12
어제도 일기 예보로는 비가 온다고 했다. 그래선지 하루 종일 구름이 끼고 바람까지 부는가 싶었는데, 정작 비는 내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도 그와 비슷한 날씨였다.
아침 나절에 기로가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어이, 장씨!"
박 만석이 기로를 불렀다.
"예, 안녕하세요?" 하니,
"좀, 와 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장집에 가 봤더니,
자기에 식당에 온 손님들이 호수로 내려가는 일이 잦은데, 거기다 주의하라는 ‘경고’를 써 붙여야할 것 같다며... 기로에게 경고판 하나를 써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기로는 그런 일 하는 게 싫었다. 어차피 붓을 드는 건 마찬가진데, 그런 하찮은(?) 생활상의 잡일까지 해야 하는 것 같아서,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깟 일이야 아무나 해도 되는 일인데, 요즘 가뜩이나 우울한 자신에게 그런 일을 부탁해 오는 박 만석이 한편으론 야속하기까지 할 정도로.
그렇지만 박 만석의 입장에서는, 화가인 기로에게는 그런 안내판 하나 써 주는 건, 정말 '누워 떡 먹기' 정도로 쉬운 일로 여기며 부탁을 해온 것이라,
그런 박 만석의 순진성에, 인야가 거절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색하지 않고,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주기까지 했다.
그러자 박 만석은,
"뭣 좀 살 게 있어서 그런디, 나랑 '강진'에 갔다 올텨?" 하는 것이었다.
기로는 잘 됐다며,
"예, 그러죠." 하면서,
'기왕에 가는 길에, 파리채 하나와, 격이 자꾸만 긁어대는 바람에 몸에 벼룩이 있는 것 같으니... 킬라 한 병을 사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일단 '夢想?'에 돌아와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받아 보니 박 만석이었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와서, 오늘은 못 갈 것 같은디?"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기로는, 오전 일이 빵꾸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심드렁한 기분으로 밭에 올라가 옥수수를 살펴 보다가(어느새 한 뼘 정도로 자라 있었다.),
'오늘 비가 올지도 모르니... 그 전에 비료를 주어야겠다.'면서, 바로 바가지에다 비료를 퍼다가 옥수수 주위에 뿌려주었다.
이 때 쯤 비료를 준 뒤 나중에 옥수수가 맺힐 때 다시 한 번 더 주면 굵은 옥수수가 열리리라고 했으니까.
그 때, 반장이 기분 좋은 얼굴로 전주에 간다며 인사를 해 왔다.
그래서 기로도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뭔가 심심했던 기로는,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했는데,
그래도 시간이 남아,
'뭘 한다지?' 하고 망설이다가, 마당 한 켠에 도라지 씨 심어 놓은 화단(한 달이 다 되는데도 싹을 낼 줄 모르고 있는)에 나가,
'근데, 나하고 도라지하고 무슨 마가 꼈나?' 하고 있었다.
작년엔 도라지를 키운다고(도라지 꽃을 보기 위해) 여름 내내 원룸 베란다에 물을 주었지만, 결국은 잡초만 키웠던 기억도 있었기에 했던 불평이었다.
그러면서는 그 주위에 대충 쌓아 놓았던 돌들을 치우고, 통나무 집 옆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둥굴둥굴한 돌을 갖다가 보기에도 부드럽게 정리를 해 놓았다.
그러고 있는데, 아침에 전주에 외출하면서 잠깐 인사를 했던 반장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다리 한 쪽이 불편하기 때문에(옛날 직장에서 사고로 다쳤다 한다.), 오늘 네 발 달린 오토바이 같은 차를 사 가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물론 그 센터에서 차를 집까지 배달해주는가 본데,
바로 그 차에 반장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반장은 트럭 기사 옆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 네 발 달린 오토바이는 트럭 뒤에 실려 있었는데,
반장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해 보였다.
그렇게 차가 반장 집쪽으로 들어가더니, 한 참 뒤에 차는 나가고... 또 얼마 뒤에는, 반장이 그 오토바이인지 차인지를 시승을 하느라 나오고 있었다.
"반장님! 보기에, 좋습니다!" 하고 기로가 흥을 돋아주니, 반장이 좋아라 멈췄다.
"연습하실라구요?" 하고 묻자,
"예." 하고 대답하는 반장의 얼굴은, 한층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는데, "딸내미도 태워주고, 어머니가 장을 봐 오시면... 마중 나가 물건도 받아 올 거요." 하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겠군요. 저기 마을 입구까지, 천천히 왔다갔다하며... 연습하면 되겠네요." 하고, 기로는 사실 차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그런 얘길 해 주었다.
반장은 희색이 만면에 가득한 채로 차를 몰고 마을 입구로 올라가 버렸다.
기로는 계속 화단을 가꾸느라 돌을 나르고, 또 치우고 있었는데... 집쪽에서 정미 엄마가 허겁지겁 걸어오면서,
"우리 정미 아빠,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마을 입구까지 연습하고 돌아오라고 했었는데, 그 위로 올라간 것 같네요." 기로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하자,
"그래요?" 하는데, 여간 불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반장과는 정 반대로 사색에 가까운 놀란 표정이었던 것이다.
"예..." 하고 기로는 잠시 허리를 펴고 있는데,
"근디, 차 소리가 나서 보믄, 아니고... 왜 안 오지?" 하더니, "내 마음이, 너무... 불안혀서 나왔어요. 왜 이렇게 불안헌지..." 하며 정미 엄마는 안절부절이었다.
그래도 기로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정미 엄마의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으니......
핸드폰이 울려서 기로가 전화를 받고 있었는데,
마을 입구 쪽에서 정미 엄마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평소에도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기로는 다른 전화를 받는 중이라... 그저 반장이 돌아왔나보다 했었다.
그런데 기로가 전화를 받으면서 보니, 언뜻 그들 부부가 걸어오던데... 반장의 얼굴이 좀 이상했다.
얼굴이 붉게 얼룩져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계속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기로는,
'저 양반이, 무슨 연극을 하나? 왜 얼굴에다 색을 칠했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분명 뭔가 이상하긴 했다.
그런데, 반장이 기로를 부르더니,
"119에 전화 좀 해줘요!" 하고 바쁘게 말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기로가 다시 반장을 보니, 그건 색깔을 칠한 게 아니라... 머리며 얼굴, 그리고 연한 하늘 색 잠바까지 온통 피범벅이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어쩐 일이지요?" 하고 기로는 깜짝 놀라, 일단,
"잠깐만요. 지금 여기... 아주 급하고 심각한 일이 생겨서 그러니... 제가 전화를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조금 있다가 다시 걸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탁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119에 신고 전화를 했다.
그런 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였던 반장의 얘기를 들어 보니,
마을 위 호수 순환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 어떤 마을인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마을 위 커브 길에서 속력을 내다가 뒤집어졌다는 것이었다.
기로는 그의 그런 모습에도, 얘기하는 건 멀쩡한 모습이 오히려 이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반장이 수건으로 피를 닦으려하자, 기로는 말리면서,
"아, 반장님! 괜스레 섣불리 상처에 물을 대는 것 보다는, 곧 119가 올 테니...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렸다가, 정식으로 소독을 하고 치료를 받으세요." 하는 사이,
뭔가 긴급했던 분위기를 느꼈음인지... 키큰 아저씨 부부와 뒷 집 여자, 그리고 산장 할머니 등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夢想?'의 앞으로 모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모두들, 한 마디씩... 반장을 나무랐다.
"차를 산 첫날부터, 뭐가 그리도 급해서... 도로까지 나가, 또 속도를 내며 달렸냐?"고.
그런데도 반장은 묵묵히 그런 핀잔들을 다 듣고만 있었다.
기로의 입장에서는 그런 광경이 이상하기도 했지만(가뜩이나 사고를 당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놓고, 모두가 한 마디 씩 꾸지람을 하니), 그런 것이 시골 생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기야, 동네 사람들이 다 어른이고, 그의 행동이 경망스러웠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여기는 시골이라, 동네 어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자식 나무라듯 하기도 하나 보다......' 하고도 있었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게, 반장은 정신은 멀쩡해서 말이랑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19 차가 도착했고, 그는 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
오늘, 이 동네에 교통사고가 있었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반장이, 네발 오토바이를 사왔는데... 그걸 시승하다가 교통사고를 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차와 부딪힌 게 아닌, 그 스스로 과속으로 벌어졌던 사고라는 것이었다.
오후 내내 하늘은 구름에 덮여있고 바람까지 부는데,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격을 데리고 정미네 쪽으로 가 보았다.
정미는 혼자일 터였다. 반장의 교통사고로 정미 할머니와 엄마는 병원에 함께 갔었으니까.
내가 부르자 TV를 보던 애가 나왔다.
"너 무섭지 않냐?"
외딴집이라 나는 그게 다소 걱정스러웠다.
"안 무서워요."
"밥은 먹었냐?"
"아직은요. 그런데 배는 불러있어요."
어린애는 초롱초롱,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을 하고 있었다.
'근데, 배가 불러 있다고?'하고 기로는 속으로 웃으면서도,
"무서우면 아저씨하고, 우리 집에 같이 가자. 어른들 돌아올 때까지 만이라도 아저씨 집에 있다가 오면 되니까." 했는데도,
"아니예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하는 것이었다.
반장네는 이 마을의 제일 끝 집으로, 모퉁이를 돌아 가야하기 때문에 외딴 집인데... 열 살 짜리 여자 애 혼자 놓아두기가 어쩐지 걸려서 했던 말인데, 정미는 생각보다는 굳굳했다.
"그럼, 날이 어두워져 무서우면... 오거라, 응?"
"예..." 하는 아이를 놔두고,
나는 격의 똥을 뉘게 하고는 돌아왔다.
아직도 구름에 덮인 하늘에 약간 바람이 불어 고즈넉한 저녁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나는 방에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쉼터'에 앉아 있었는데,
쾌적한 기온이었다. 정말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계절인 게 분명했다.
그 얼마 뒤, 병원에서 돌아오는지... 정미 엄마가 '夢想?' 앞으로 지나갔다.
"근디, 차는 어디에 있대요?" 하고 묻기에,
"아까, 그 차를 실어왔던 트럭이... 다시 싣고 가던데요?" 하자,
"나는 정미 때문에 온 거여요. 긍게, 어머니가 병원에 계셔서..." 하기에,
"반장님은 어떠세요?" 하고 묻자,
"찢어진 디를... 열 바늘을 꼬매서, 입원했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데에 큰 이상이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5 . 14
b, 현판식
아침에 격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온 뒤, 기로는 어제 해두었던 '경고판'을 전달하러 산장에 갔다.
그런데 박 만석은, 오늘 이 근방 친목계에서 부부동반으로 ‘에버랜드’로 놀러 간다며 준비하느라 바빴다.
'저 양반도 그런 델 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허긴, 평생을 이 근방에서만 살아왔던 양반이라는데... 바깥 구경도 좀 해야겠지......' 하면서,
"모처럼 나가시는데,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잉, 그려... 갔다 와서 보드라고..." 하고, 본인은 썩 가고 싶지는 않은데, 김 순임 때문에 억지로 끌려간다면서도 박 만석 역시 모처럼의 여행(?)에 다소 들떠있는 표정이기는 했다.
그래서 기로는 그 경고판만 놓고 산장집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호수가 물결 하나 없이 잔잔했다.
그 위로 하얀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가는 모습이 거울에 반사되는 것 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문득, 배가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기로는 방향을 둔덕 쪽으로 바꿔, 바로 배 있는 곳으로 가 노를 저어 나갔다.
그런데 그런 주인의 모습을 격이 보았는지, 짖고 낑낑대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야는 배를 다시 '夢想?' 쪽으로 대 놓고 올라오니, 격이 온 몸을 길길이 뛰며 난리였다.
인야가 개 줄을 끌었더니 힘이 얼마나 좋은지, 격은 기로를 질질 끌고 배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가는 것이었다.
"야, 격! 너도 배가 타고 싶었냐?" 하면서,
아침부터 개를 배에 태우고 호수로 나갔다.
반장 집 쪽으로 서서히 오르니, 정미가 얼굴을 씻는지 엎드려 있다가, 그 옆에 서 있던 정미 엄마가 알려주었는지,
"아저씨!" 하고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기로도 노 젓는 손을 멈추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천천히 호수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직도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고 있었는데,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기로는, 마루 구석에 세워져 있던 '현판' '想夢'을 보면서는,
'이번 토요일에 현판식을 해야 하는 건가?' 하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기로는 그저께 현판의 마무리 작업을 해놓았었다.
그 전까지는 '想夢' 두 글자만 새겨놓았던 상태에서, 왼쪽 구석에 먹물로 자신의 서명을 넣어 보았는데, 뭔가 싱거운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그 걸 지워버리고는, 낙관 식으로 파 내어 인주로 칠하는 작업을 택했던 것이다.
비록 나무결이 엉망이었지만, 낙관을 찍는 대신... 천천히 '기로' 라는 글자를 정성껏 판 뒤, 그 위에 붉은 인주로 색을 입혔더니... 그런대로 색감의 조화도 느껴지면서(자연스런 나무 색깔에 검은 색 글씨, 그리고 붉은 인주 색의 낙관까지), 보기가 썩 괜찮았던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어쩐지 조금은... 정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현판도 나름대로는 완성을 해 둔 상태였기에,
이제 안방 방문 위에 그 판을 거는 일만 남아 있었는데, 그건 기로 자신에게도 나름대로는 희망적이도 재미있을 일이기도 했다.
물론 기로가 처음부터 ‘현판식’까지를 생각했던 건 아니다. 그저 밍밍한 집 보다는 이름을 하나 붙여놓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 '夢想?' 이란 이름을 붙여놓았던 것인데,
어차피 이름까지 지어놓은 판에, 그 주변에서 구할 수 있었던 송판에 글자까지 새겨 '현판'을 만들게 되었으니,(그것도 즉흥적이었다.)
또, 혼자서라도 현판식 같은 것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러기로 했던 것인데, 어쩌면 그것 역시 자연스럽다거나 충동적인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전날 밤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우연히 김 선생님 한테는,
"선생님, 그저 선생님만 알고 계세요..." 하면서, "제가 이 집에 현판을 붙이려고 판 하나를 주어다 새겨놓았는데, 간단하나마... 혼자서라도, 그 걸 거는 형식을 가지려고 하거든요?" 했는데,
웬걸?
김 선생님은 반색을 하면서,
"이건, 그냥 말 일이 아닌디?" 하면서도, "이번 주 토요일 17일 날로 혀, ‘손 없는 날’잉게..." 하고 날짜까지 정해주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로는, 어차피 그 얘기가 나온 김에(김 선생님이 축하를 해주신다기에)...
'김 선생님과 둘이서 그저 조촐하게 막걸리나 한 잔 해도 좋겠는데......' 하긴 했는데,
현실적으론, 김 선생님도 차가 없고 인야 자신도 그래서... 역시 계획대로 혼자서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선생님의 전화가 왔고,
본인도 현판식에 참석을 하겠다는 것도 모자라, 누군가 군산에 있는 사람들도 데리고 오겠다고 나서는 바람에(이미 그들과는 약속까지 잡힌 상태라는 것이었다.)...
기로는 갑자기 '현판식'을 준비해야 할 입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夢想?'이란 뜻이 하도 생뚱맞아서(?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현판'이라고 할 수조차 없을 해괴한 의미인지라, 우스꽝스러울 것 같기도 해서), 그저 혼자서 막걸리나 한 잔을 하면서 걸어놓으려고 했던 일이, '손님맞이'와 '대외행사'(?)가 된 꼴이라... 기로는,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집 주인인 상범에게도 알리지 않을 수 없겠는데?' 하면서 전화를 걸었더니,
상범 역시 너무 좋아하면서도, 마침 처가에 무슨 일이 있다며,
"그 날은 못 가니까, 다음으로 연기하면 안 되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손 없는 날’이라며 다른 손님까지 오기로 날짜까지 잡힌 마당에, 날짜를 변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인야의 입장에선 여전히,
'굳이 그럴 만한 어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없는 일인데......'라는 생각에,
상범의 양해를 구해 그냥 그 날로 밀어붙이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장 집의 박 만석은 물론 키큰 아저씨 등 마을 사람들도 다 배제된 상태로(그들에겐 그런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다.) 일이 진행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로의 입장에서는 뭔가 준비를 해두긴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손님들이 온다는데, 그냥 맹숭맹숭하게 있을 순 없는 일이니까.
설사 그런 일이 없다 해도, 김 선생님 같은 손님이 오는데 아무 준비도 해놓지 않을 수는 없는 거니까.
# 서정적인 밤
저녁을 일찌감치 챙겨먹고 내 일을 하기 위해 작업 방에 멍청히 앉아있었습니다.
두어 시간동안 아무런 작업도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개가 짖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좀처럼 그치질 않기에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습니다. 아마, 마을 끝에 있는 반장 집에 낮에 왔던 손님들이 돌아간 모양일 것입니다.
그런데 언뜻, 눈으로 느끼기에도 참으로 아름다운 밤 같았습니다.
먼 산이 너무 가깝게 느껴져, 얼굴에 스치는 쾌적한 밤 공기에 끌려 나는 마당에 나가 보았습니다.
언뜻 고개를 들어보니,
아, 높은 앞산 너머 깨끗한 하늘엔... 얼마 전에 떠올랐을 커다란 달이 텅! 버티고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보름이었습니다.
고개를 든 채 마당을 한 바퀴 빙 돌아보니,
먼 하늘엔 제법 많은 별들도 은은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격이가 짖지 않았더라면,
나는 맑게 갠 하늘에 선명한 보름달이 떠있는지도 모르고 이 밤을 보낼 뻔했던 것입니다.
나는 쉼터의 한 나무토막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러면서,
"아!"
다시,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묵직한 침묵만 흐르던 검은 산아래 호수에서는, 보석 같은 한 얘기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호수에 떨어져, 수도 없이 아른대는 물결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울어젖히는 밤새들의 얘기들도 이 풍경에 한 몫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 참으로 서정적인 밤이었습니다.
문득,
'호수에 배를 타고 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달빛에 젖어 반짝이는 호수 위에 노를 저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것입니다.
아, 내가 '이 태백'은 아닐지언정... 그래보고 싶드라구요.
달빛이 술잔에 고이면, 그 술맛은 더욱 독한 걸......
'그런 싯귀라도 읊조리며 호수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하다간,
'정말, 술이라도 한 잔 마실까?' 했지만,
현실적으론, 술이 없었습니다.
......
그리고, 만약에 술을 마신다면... 정말 호수 속으로 빠져 들어가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내 기분은 야릇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무서운 생각도 들어,(배를 타고 가다 그대로 물에 빨려들어가게 될 것 같았습니다.)
얼른 방안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문고리까지 잠궈야만 했습니다.
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내 멀쩡한 정신으론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 아름다운 밤이어서...
얼른, 내 세상으로 도망쳐 들어와 머릿속을 지워버리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그런 내 세상에도,
벽에 가득...
얘기(그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 . 15
토요일이었다.
점심이 조금 넘어가자 김 선생님은 이것저것(먹거리에 이사한 사람에게 가져가는 휴지 비누 등)을 한 아름 사가지고, 정읍에서 아는 사람의 차를 타고 도착했다.
그런데 군산의 최원장 부부는 일을 끝낸 밤에나 도착할 거라고 해서,
그렇다고 ‘현판식’을 밤에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조금 일찍 도착한 김 선생님과 기로 둘이서만 간단하게 진행시키기로 했다.
물론 '현판식'이라고 해 봤자, 기로가 하얀 화선지를(극장의 ‘대한 뉴스’ 같은 데서 본 것처럼, 작품을 하얀 천으로 덮은 뒤, 열면서 하는 게 격식이었겠지만) 벗겨내는 걸로(이미 기로가 준비를 해 둔 상태)) '현판식'을 치렀던 것이다.
물론, 김 선생님은 박수를 치면서,
"멋지고만!" 하기까지 하는 등,
그런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는 있었다.
어찌 보면, 그런 행위 자체가 너무 치졸하고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둘이서는 너무나 즐거워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마무리를 지었기 때문에, 아쉬움 같은 것 역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허기야, 김 선생님 역시 몽상(夢想)적인 기질로 따지고 보면... 둘째 가라면 서운할 분이었으니까.)
그런 뒤, 점심은 기로가 정성껏 준비한 '夢想?' 주변에서 뜯어 온 푸성귀로 했고(평소에 식사 양이 많지 않은 선생님은 이 날, 점심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김 선생님을 배에 태워 호수 한 바퀴를 도니,
김 선생님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런 다음, 현판 아래 마루에서 소박한 막걸리 파티도 열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저녁 무렵이 되자 군산의 최원장 부부가 도착했는데,
"아니, 이런 데서 사세요? 너무나 근사한데요?" 하면서, 이곳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탄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는 모두 산장집으로 몰려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기로는 손도 대지 않았지만, 그들은 산장집의 대표 메뉴인 '붕어찜'을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거러고도 또 '夢想?'의 작업실로 돌아와서 2차 막걸리판을 열기까지 했다.
저녁 무렵에 틈틈이 인야가 군불을 지폈던 흙방은 따끈했고, 5월 중순의 밤 기온은 쾌적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소박하나마 모자람이 없는 좋은 밤이 되었던 것으로,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밤을 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자정이 훨씬 넘어 두 시 넘어서야 남자들은 안방에서 여자들은 작업 방에서 나누어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로가 다시 손님들을 배에 태워 호수를 한 바퀴 돈 뒤,
산장에서 제공한(전날 저녁을 먹으러 가서, 인야가 지난번 산장집 아들 이름을 지어준 분(김 선생님)이란 소개를 하게 되어... 산장 집에서의 초대로(이름 지어준 대가(?)) 아침식사를 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1박 2일의 '거창한(?) 현판식'을 한 결과가 됐던 것이다.
# 현판식
'想夢(상몽)' .
내 '夢想?'에서 현판식을 했습니다.
형식적이나마 송판을 하얀 화선지로 덮어놓았다가, 김 선생님과 함께 그 종이만 떼어내면서 판을 안방 방문 위에 거는 것으로 '현판식'을 치른 것이지요.
물론 그런 내 모습은 사진에 찍혔으니, 기록으로도 남아있는 것이구요.
'夢想?'의 안방 위 가로목에다 못을 쳐서 받침으로 했고, 그 위의 지주목에다는 검은 전선으로 묶어 고정시켜, 현판을 걸어놓으니... 제법 견고하드라구요.
허기야 일 년 동안만의 일이니,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겁니다.
그렇게 현판을 걸어 놓고 마당에서나 그 축대 아래 길에서 바라보니,
집의 느낌이 확 달라 보이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니까 그 게 없었을 땐, 그저 조금은 깔끔한 시골집이었는데, 현판을 달아놓으니... 확실히, 뭔가 품위가 느껴지더라는 겁니다. (그건 내 생각이었을 뿐일까요?)
이 집에 뭔가 생명을 부여한 것 같기도 하고, 허전했던 중요한 공간이 채워진 것 같기도 했고......
그렇게 해 놓고 보니, 흙집에 나무판 위 검은 먹 글씨도 썩 어울리는 조합이었습니다.
며칠 전 김 선생님께 전화로,
"선생님, 저 혼자서 송판을 걸어 놓는 걸로... 조용히 현판식을 할 생각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토요일인 17일 날로 하는 게 어때?" 하시는데, 순간적으로 마음에 썩 와 닿았습니다. 왜냐면 내가 좋아하는 숫자가 17 이거든요. 그래서 바로,
"아, 좋네요! 그러기로 하겠습니다." 했었거든요. 그랬더니 선뜻,
"나도 축하해 주러 갈까?" 하시기에,
"축하요? 뭐, 이런 일로... 축하까지 합니까?" 했더니,
"아녀! 좋은 일은, 사람들허고 함께 허는 거여..." 하시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뭐 그래서 나쁠 것까지는 없겠드라구요.
그래서 전혀 계획에도 없던 공식적인(?) 행사가 됐던 거거든요.
그러니, 기왕에 하는 것 폼나게, 송판에다는 대장간에서 만드는 옛날 문고리를 사다가 걸어놓으려고 했었습니다.
'문고리를 사와야겠다'는 친구 친척의 말이 있어서였는데, 언제 올지도 모르고 정말 사올 것인지도 불확실해서... 미적대다가 아무래도 '있는 그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거지요.
이미 작업은 해 놓았는데, 문고리만 기다리다가 세월 보낼 수는 없잖겠습니까?
게다가 그런 일을 같이 기뻐해주러 자청해서 온다는 사람도 생겼으니, 뭔가 시늉은 해야겠기에, 화선지로 송판을 덮어놓고,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 되겠다'며... 나름 소박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던 것이지요.
때 마침 지나가다 내가 못질을 하며 송판을 거는 모습을 보신 마을의 키큰 아저씨는,
"어? 좋구만..." 하시드라구요.
그리고, 현판식 때 하얀 화선지(천 대신으로)가 벗겨지면서 글씨가 나타나자 김 선생님도,
"멋지고만!" 하면서 박수를 치시며 환하게 웃으셨고,
조금 나중에 도착했던 군산의 '최원장(병원)' 부부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대요? 너무 재미난 일이라, 우리도 좋네요!" 하면서 축하를 해주더라구요.
그래서 기분좋게 막걸리도 한 잔을 했는데,
현판을 붙여놓고 보니, 물론, 내가 봐도 괜찮았구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을......'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지 않았겠습니까?
사실 나는, 현판 내용도 그렇고... 또 '내 집도 아닌데, 무슨 그런 일을 하느냐'는 사람들의 입방아(?)가 있을 것 같아... 처음엔 집 주인인 친구에게도 이런 얘긴 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아서, 나도 놀란 일이 되었던 겁니다.
물론 기분이야 좋았지요......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런 식으로나마 현판식을 해 보는 것도... 아주 의미가 있는 일일 거야.'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게 비록 내 자신이 지은 집이 아닌 1 년간의 한시적인 더부살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아무튼 '夢想?'은 현판(당호)이 붙은 집이 되었고,
그 안에 사는 나는 그 격에 맞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저 재미로 시작했던 일인데, 어째...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기 위해선 뭔가 알찬 삶을 살아가야겠지요......
(그런데 그것도 좀 이상하네요. 제목이 ‘夢想’이라......)
5 . 17
그렇게 기로는 '夢想?'의 ‘현판식’을 하느라 주말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낸 게 아니라,
그런 다음, 인야는 김 선생님을 따라 정읍으로 가게 되었다.
어차피 군산 손님들이 김 선생님을 정읍에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여정이었기에, 인야도 그 차에 합승했던 것이다.
물론 모처럼 인야도 선생님 댁에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 전화 통화는 된 상태로... 언제 갈 기회를 한 번 잡아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선생님 댁에 ‘구절초(하얀 들국화)’ 몇 뿌리를 캐다가 옮겨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갔던 정읍 김 선생님 댁은, 그야말로 꽃동산이었다.
교직에서 정년을 맞은 뒤, 온통 정성을 들여 가꾸는 너른 화단에서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로의 대학 선배이기도 한 김 선생님은, 딸은 미국 유학시절 현지 교포를 만나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고,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지금 혼자 살고 있다.)
지난번에 갔을 때도(아직 채 봄이 안 된 철에도) ‘복수 꽃’ 등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여러가지 꽃이 피어 있더니,
이번에는 더 많은 꽃들이 피고 있거나 피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은 가을이 갈 즈음까지 이 집에선 계속 이어질 것이었다.
선생님은 거실 본인의 자리에 제법 많은 야생화나 수목 또는 식용 식물 등의 도감을 놓고,
최근에는 늘 그 책들을 참고로 하여 화초와 식물을 수집하고 가꾸고 계시는 중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요 근래엔... 마치 식물박사가 되어 계신 듯했다.
그 수많은 식물명을 아는 것도 대단하거니와, 어떻게 요리를 해서 먹으며 또 어디에 효험이 있는지, 그리고 그 식물에 얽힌 이야기까지 척척 꿰고 있는... 식물박사나 되듯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읍을 거쳐 군산의 최원장 부부는 돌아갔고,
선생님도 개에게 밥을 주는 등, 어제 하루를 비워 놓은 집안 정리를 하는 동안... 기로는 피로가 밀려와, 아들 방에서 한 시간 여 잠을 잤다.
다른 사람들은 그 날 아침 9시 까지 잤지만, 기로는 다섯 시 경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등... 지난 밤 세 시간 정도밖에 잠을 못 자서, 뒷골이 내내 띵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 선생님은,
오랜만에 ‘화려한 외출(?)’을 한다며 따라나선 기로에게 정성 들여 배추 겉절이를 무쳐 점심을 마련해 주었다.
워낙 음식 솜씨도 뛰어난 선생님의 겉절이는, 진미였다.
그러면서는, 또 술(선생님이 직접 담근 석류술) 한두 잔을 하게 되었는데,
도중에 선생님의 다른 제자(기로의 고등학교 후배이면서 정읍에서 교직에 근무하고 있다는... 김 선생님에게는 늘 그런저런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부부가 왔다.
그렇게 그들도 자리에 합세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고 있었다.
기로가 돌아가려 하자, 그 후배가 '모셔다드리겠다'며 나서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편하게 '夢想?'에 돌아올 수 있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술자리에서도 김 선생님은,
'기로를 어떻게 보내나......'(불확실한 노선의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도, 또 얼마를 걸어야만 돌아갈 길이어서) 매우 걱정을 하셨다는데,
그 후배가 기로를 데려다 주겠다고 나서다 보니,
"그럼, 나도 같이 갔다가 돌아오까?" 하고 김 선생님도 다시 '夢想?'까지 왔다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돌아갔다.
기로는 그 후배에게 데려다 준 보답으로, 자신의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쓴 편지' 책 한 권을 사인해서 주면서,
"선생님, 이번에는 또 제가 선생님을 따라 갈까요? 그러다 보면 밤새... 정읍과 여기를 왔다갔다 하겠네요." 하면서 웃었다.
저녁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저녁은 안 먹어도 될 정도로 배가 부른 상태여서) 기로가 개에게 사료만 주었더니,
격은 조금 먹다가 입맛이 없는지... 남기는 것이었다.
개도 사료보다는 밥을 더 좋아하는가 보았다.
'그래도 오늘은 하는 수 없다......'
기로는 서둘러 정읍 김선생님 댁에서 뽑아 온 구절초를 심고, 바짝 마른 흙에 묻혀있는 코스모스에도 물을 주었는데, 그 사이... 이미 해는 져서 어두워져 있었다.
c, 환절기
다음날 아침, 공기가 쌀쌀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아무래도 '夢想?' 주변은, 호수로 인한 일교차 때문에 생긴 안개로... 아침 풍경이 멋질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거 참, 이상하네.' 하고 기로가 고개를 갸웃했던 건, '도대체 그게 무슨 조화라지? 내가 이해할 수가 없네......' 하기까지 했는데,
기로의 손님들이 와서,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아침은, 무슨 일인지... 썩 아름답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현판식' 때도,
"여기는 아침 풍경이 좋으니, 밤에 오더라도... 자고가면, 그 다음 날 환상적인 아침풍경을 즐길 수 있거든요?" 하고 군산의 최원장 부부에게 자랑을 했었는데,
바로 어제 아침이었던 그 풍경 역시 형편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로가 머쓱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도 우리에겐 너무 아름다운 풍경인데요, 뭘..." 하기는 했지만,
거기에 비하면, 오늘 아침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거참, 이상하네! 꼭, 사람들이 왔다가 떠난 다음 날의 아침 풍경이 좋으니... 무슨 조화란 말인가? 지난번 구 병태가 왔다 갔을 때도 그러더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상사화
그저께 했던 ‘현판식’을 축하해주러, 모처럼 김 선생님이 '夢想?'에 오셨었는데요,
그 때 있었던 우스운(? 내 '무지'로 인해 생긴) 일 하나를 고백하려고 합니다.
전번에, 그러니까 초봄에 날씨는 추운데도 불구하고 집 뒤안에 뭉텅이로 자라고 있던 ‘수선화’를 언덕에 옮겨 심어놓았던 일이 있잖습니까?
봄이 되면, 노란 수선화가 봄바람에 하늘하늘거릴 거라는... 꿈을 꾸면서 했던 일요......
근데요, 그게... ‘수선화’가 아니고 ‘상사화’라고 하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선생님, 저 수선화는 왜 꽃도 피지 않고 저렇게 볼품없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나는,
요즘 꼴사납게 변해가는 수선화 이파리를 가리키며, 약간 불평조로 말을 했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여?" 하고 묻던 선생님은, 그 쪽으로 가시더니,
"아니, 이건 ‘상사화’ 아녀?" 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알지도 못하는 나는,
"무슨 말씀입니까? 수선환데요." 했답니다.
그랬더니,
"아녀, 이 사람아! 이건 ‘수선화’가 아니고 ‘상사화’라는 꽃여." 하시더라구요.
"예? 여기, 반장도... 수선화라고 하던데......" 하고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허기야 반장은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수선화 이파리와 똑 같은 어린 풀을 옮기는 나에게 했던 말이라, 자세히 관찰하고 했던 말은 아닐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어쨌거나 나는,
"분명 수선화 이파리였는데요?" 하고 말했고,
"응, 그렇게 볼 수도 있어. 근디, 이건 분명 ‘상사화’여." 하시면서,
그 꽃의 내력까지를 설명해주는 거 아니었겠습니까?
"왜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었냐믄... 이 꽃은, 봄에 새싹이 난 뒤, 여름이 되면 이파리가 이렇게 누렇게 변하면서 없어져 버려. 그런 다음 가을이 될 무렵에 갑자기 꽃대만 쑥 올라온 뒤, 거기서는 꽃만 피는 거여. 그렁게, 다른 화초처럼 잎이 나거나 꽃이 피거나 하는 게 아니고, 이파리는 정상적으로 봄에 나오는디, 그게 다 시든 다음... 자취를 감추고는, 잊을 만 하면... 꽃대가 나와서 꽃을 피우는 '뿌리식물'이라고. 그래서, 이파리와 꽃이 서로 그리워하며 따로 살아가기 때문에 ‘상사병’에 걸린 것 같다고 혀서,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여진 거여." 하시는데,
나는 입을 벌릴 수밖에요.
"근디 이 꽃은 무슨 색인지는 모르겠네... 흰색도 있고, 분홍도 있고, 붉은 색도 있는디......" 하시는데, 정말 나는 김 선생님의 그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 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와,
꽃의 내력과 색깔별로도 다 알고 계시는 선생님과의 차이요......
그렇게 나는 노란 수선화 언덕을 그리다가 실망만 하던 요즘, 또 새로운 꽃 이야기도 들어두는... 시골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내 주변에 김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만도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나에게 그런 지식과 정보를 가르쳐줄 수 있겠습니까?
1 년만 살다가 갈 요량으로 살고 있는 나는, 이게 여전히 수선화인 줄 알았겠고... 글쎄요, 가을이 올 무렵 무슨 색의 꽃이 필지는 모르지만,
어느날 갑자기 꽃대가 올라와 이쁜 꽃을 피운다면?
"저건, 웬... 희한한 꽃이지?" 하고 말았을 테니까요.
내 참!
5 . 20
# TV 없이
이제 마음을 굳혔습니다.
'TV 없이 살아가자'고 말입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그래도 형식적으로나마 TV는 있어야한다.'는 미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사 온지 석 달이 채워져 가는 지금, 이제 TV는 없어도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영어 회화 프로그램이라도 보려는 마음이 TV에 미련을 갖게 했지만, 이제 시골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런 건전한(?) 생각마저 무뎌져서,
'1 년은 TV 없이 살으리라.' 는 생각이 자리를 굳게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보니까 TV 없이 사는 것도 괜찮드라구요.
앞으로는 그런 변화를 더욱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노 무현 대통령'이란 표현이 영 낯설기만 한 것입니다.
드라마틱하고 떠들썩했던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나는 서울에서 짐을 싣고 내려왔기 때문에, 그런 이상한 인연으로 바로 그 날부터 매스컴과 단절된 생활에 들어가다 보니,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인 눈을 뜨자마자 TV 뉴스와 접할 기회가 없다보니, 듣는 것도 없고 보는 것도 없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어쩌면 가장 빈번하게 접할 그 명칭의 단어가, 나에겐 생소하기만 한 것이지요.
정치에 큰 관심을 갖고 사는 내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가는 동시대의 대통령인데다, 그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면서, 이제는 뭔가 새로운 정부의 모습에 기대마저 갖고 있었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그 분의 대통령 취임식부터(이사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보았을) 신경을 쓰지 못하더니, 이 곳이 난청지역이라 가져온 TV 수상기마저 무용지물로 변했고, 안테나 설치를 포기한 지금,
최소한 여기로 온 1 년은 이렇게 살아갈 것 같으니... 그 분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모습도 볼 기회가 없는 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겐 '노 무현 대통령'이란 형상 자체가 낯설기만 한 것입니다.
지난번엔 친구가 들고 온 신문을 보다가 '盧 대통령' 이란 활자를 접하면서는, 자연스럽게도 옛날의 '노 태우' 대통령 인걸로 착각할 정도였으니까요.
나에겐 '盧 대통령' 이란 명칭은 오래 전에 이미 머리 속에 박혀버렸던 모양인데,
새로운 대통령으로 들어 앉히기엔,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나 간접적인 작용이 없어서 그랬던가 봅니다.
그렇게 생활의 모습은 사람의 이성까지도 바뀌게 하나 봅니다.
그리고, 매스컴이 얼마나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많이 끼치는지를, 그 현상 만으로도... 스스로 확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매스컴으로부터 은연중에 세뇌교육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TV 없이 살다보니... 내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서, 그 점은 너무 좋습니다.
최소한 뉴스거나 어떤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두어 시간은 TV와 함께 해야 할 텐데,
그마저 없다보니 아무래도 시간을 버는(?) 생활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잖아도 시골 생활에서 마저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 바쁘기만 한데, TV에 까지 시간을 투자한다면?
더 정신 모차릴 것 같거든요?
굳이 그런 계산적인 효과 말고라도,
늘 같이 했던 뭔가와 멀어진 듯 살다보니... 그만큼 그 곳에 여유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아니면, 무심히 풀을 뽑는다던지 호수를 바라본다던지 하는... 쉴 틈이 생겨있는지도 모르구요.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TV 없이도...
그렇게 살아지기는 하드라구요.
5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