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멋"과 풍류
대나무는 일찍부터 군자라는 인격체의 표상으로 여겨져 왔다.
대나무의 본성이 유교적 윤리 도덕의 완성체인
군자와 그 관념적 가치가 일치하였기 때문인데,
대나무가 다년생으로 사계절 내내 푸르고 눈이 와도 부러지지 않고,
우뚝하고 곧게 서고, 마디가 있고, 줄기의 속이 비어 있는
식물적 특성을 지닌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이처럼 군자의 덕성과 지조로 칭송 받아온 대나무는
다양한 길상적인 의미를 지니며, 우리 선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왔다.
약용이나 식용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죽제품으로 만들어져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널리 사용 되었다.
댓잎은 해열, 거담, 청량 등의 효능이 있으며,
댓잎 죽은 고혈압과 노화방지에 좋다고 한다.
또 댓잎은 방부 작용을 하므로
떡을 댓잎에 싸서 찌면 며칠씩 두어도 부패하지 않으며,
팥을 삶을 때 조릿대 잎을 넣고 삶으면 빨리 삶아지고
더디 변한다고 한다.
또 동치미에 댓잎을 띄워 놓으면 겨울이 다 가도록
군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나무의 별명이 "此君"-차군-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 친구"라는 뜻이다.
"晉書-진서-", "列傳-열전-"에 따르면
중국 최고의 명필 王羲之-왕희지-의 아들 王徽之-왕휘지-는
대나무를 매우 사랑 하였으며 평생을 고고하고
달관된 자세로 삶을 영위 했다고 한다.
왕휘지가 한번은 친구의 집을 임시로 빌려 살게 되었는데,
하인을 시켜 그 집의 정원에 대나무를 심게 했다.
이것을 본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왕휘지는 대나무를 가르키며 "이 친구-此君-가 없으면
어찌 하루라도 살 수 있으리요?" 라 했다고 한 것에서 유래 하였다.
이후 문인들은 대나무를 "此君" 이라고 부르는 것을 고상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중국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에서도 그러 했다.
고려 말기의 문인 李穡-이색-은 "此君樓記-차군루기-"라는 글을 지었고,
또 조선 후기의 문장가 金邁淳-김매순-은 "此君軒記-차군헌기-"라는
글을 남기고 있는 것도 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위진 시대에 세속을 등지고 청담에 열중했던 "竹林七賢-죽림칠현
(완적, 산도, 혜강, 향수, 유령, 완함, 왕유)-의 고상한 모임이나
이들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던 고려의 竹高七賢-죽고칠현
(海東七賢이라고도 하며, 이인로, 오세제, 임춘, 조통, 황보항,
항순, 이담지를 말한다)-도 대나무의 멋과 풍류를 즐긴 사람들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솔숲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함께
대숲을 스쳐가는 바람 소리를 지극히 사랑 하였는데,
바로 멋과 풍류를 즐기는 소쇄한 그 소리가
속세의 모든 번뇌를 떨쳐 버릴 수 있는 명약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는데 요긴한 것이 바로 대나무로 만든
竹제품들이다.
임금이 원로 신하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하사한 것에서
유래한 端午扇-단오선-을 비롯한 부채나 대자리,
대나무 베개, 토시 등을 들 수 있다.
대나무의 시원한 특성을 이용한 竹夫人-죽부인-도
대표적인 피서용품인데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唐에서는 竹夾膝-죽협슬-이라고 했고,
宋에 들어와 竹夫人이라 불렀다고 한다.
어느덧 장마가 시작 되었고,
三伏 더위가 다가온다.
대숲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한가로이 합죽선으로 더위를 식히다
죽부인을 끌어안고 낮잠 한 숨을 자며,
꿈속에서나마 선인들의 풍류를 느끼고 싶다.
안영길-철학박사, 글
월간 문화재 7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