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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16-2코스 제1부
고석정-승일교-승일공원-문고개-
문혜마을-문혜교차로-갈현고개
20250423
1.코스소개 : 두루누비
1)코스개요
- 고석정에서 남대천교로 이어지는 길이다.
- 청정 구역으로 겨울 철새를 다수 만나볼 수 있는 구간이다.
2)관광포인트
- 시즌별 다양한 매력의 꽃을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공간인 고석정꽃밭
-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승일교
- 한탄강 조망 및 여름철 래프팅을 즐길 수 있는철원승일공원
- 울창한 천연림을 즐길 수 있는 산림휴양시설 두루웰숲속문화촌
3)여행정보(주의사항)
- 고석정국민관광지 부근에는 한탄강지질공원방문자센터 및 철원군 관광안내소 등 다양한 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는 시설이 다수 있다.
- 시즌별로 고석정 부근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여행 시 참고하여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 주요 경로 : 고석정 1.2Km 승일교 2.3Km 철원소방서 9.3Km 남대천교
- 길이 12.8km, 소요시간 4시간 30분, 난도 보통
- 시점 :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태봉로 1823
대중교통) 동송시외버스터미널 이평리 정류장에서 '농어촌 2, 2-1, 5번 버스' 이용, 고석정(정문) 하차
- 종점 :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235-2
대중교통) 와수시외버스터미널에서 ‘14번(유곡리방향)버스’, '14-1번(도창리방향)버스' 이용, 동송레미콘 하차
2.휴전선을 떠도는 혼령의 노래
고석정관광지에서 평화의 길 15-1코스 탐방을 마친 뒤 2주일이 지나서 고석정관광지에 다시 왔다. 평화의 길 16코스를 탐방하지 못하는 관계로, 고석정관광지에서 출발하여 16코스 종점인 남대천교까지 우회로인 16-2코스를 탐방하기 위해서다. 16-2코스가 지나는 곳은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철원관광정보센터 옆에서 출발하여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군탄리·문혜리·지경리·토성리를 지나 갈말읍 토성리와 김화읍 청양리의 경계를 이루는 남대천교에서 마친다. 동송읍에서 한탄강을 건너 갈말읍으로 들어가 5개 동리를 지나 김화읍 청양리 화강 남쪽 언덕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평화의 길 16-2코스를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갈현고개를 경계로 하여 2부로 나누어 기록한다.
제1부(고석정~승일교~갈현고개) :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고석정관광지 철원관광정보센터 옆에서 DMZ 평화의 길 16-2코스 탐방을 힘차게 출발한다. 날은 맑고 투명하여 기분이 상쾌하다. 고석정교차로에서 지방도 제463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간다. 이번 탐방의 주요 도로는 지방도 제463호선 태봉로&동주로와 국도 제43호선 호국로이다. 평화의 길은 지방도 제463호선과 국도 제43호선이 교차하는 갈말읍 문혜리 문혜교차로까지 잠깐 우회하는 두 곳을 제외하고 지방도 제463호선을 따라가며, 문혜교차로부터는 국도 제43호선을 따라 북진한다.
궁예는 901년 송악(개성)에서 고려를 세운 뒤 904년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바꾸고, 905년 철원으로 도읍을 옮겼다. 궁예는 대동방국의 이상을 품고, 911년 국호를 마진에서 태봉(泰封)으로 고쳤다. 그러나 궁예는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개성의 토호 왕건 세력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왕건은 도읍지를 철원에서 송악(개성)으로 옮긴 뒤 철원을 송악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주(東州)라는 지명으로 불렀다. 그래서 철원 지역에서는 궁예왕, 철원의 옛 지명 동주(東州)와 철원의 옛 왕국 태봉국(泰封國)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 그를 기리는 도로명이 태봉로(泰封路)와 동주로(東州路)이다.
동송읍 장흥리 지방도 제463호선은 태봉로&동주로와 동행한다. 그 길에서 금학산(金鶴山)과 명성산(鳴聲山)이 서쪽과 남쪽에서 호응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만 슬픔이 가득 배어 있다. "궁예가 도읍지를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길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금학산을 진산으로 정할 것을 권하였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금학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금학산의 정기를 받아 300년을 통치하겠지만, 만일 고암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25년밖에 못 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궁예가 고집을 부려 고암산을 진산으로 정하였기 때문에 궁예의 왕국은 18년 만에 멸망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전설에 따르면 왕건에게 쫓기던 궁예가 명성산(鳴聲山)에서 피살되었다고 한다. 이때 궁예와 그 심복들이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울음산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한자로 옮기면서 명성산(鳴聲山)이 되었으며, 명성산에는 궁예와 관련된 다양한 지명이 남아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지난 시절 명성산에 올라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은신했다고 하는 궁예왕굴(弓裔王窟)에서 슬픔에 마음이 찰랑거렸고, 금학산에서 철원평야 재송평의 궁예왕궁 풍천원(楓川原)을 내려보며 궁예의 웅지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대한민국이 궁예의 큰 뜻을 품기를, 그 뜻은 망상과 허황이 아닌 희망과 변화의 현실 의지이기를 얼마나 소망하였던가? 가슴이 아릿해진다.
지방도 제463호선 한탄교차로에서 평화의 길은 우회로로 나가 승일교를 통해 한탄강을 건너 승일공원으로 넘어가 지방도 제463호선으로 나온다. 한탄강으로 나가는 길은 봄꽃들이 물결을 이루는 꽃길이다. 귀룽나무는 새하얀 꽃들을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고 솟아 있고, 조팝나무는 흰 불꽃을 피워올리며, 산벚꽃들은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꽃잎을 날린다. 서울 대모산은 모든 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철원 지역은 추운 북쪽 지역이어서인지 아직도 꽃들이 시절을 즐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탄강 강변으로 내려가 승일교를 살핀다. 승일교는 공산치하에서 1948년 8월 공사를 착공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중단되었고, 1952년 4월 미군 공병부대가 공사를 재개하여 1958년 12월 3일 한국군에 의해 완공되었다. 다리를 완공한 뒤 제5군단장이,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박승일 대령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昇日橋)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승일교 동쪽 갈말읍 내대리 구간이 북한에서 착공한 줄 알았는데, 서쪽 동송읍 장흥리 쪽 승일교 구간을 북한에서, 그 맞은쪽을 남한에서 공사한 것이라고 한다. 아치형 교각을 장식한 긴 아치 창문이 더 정교한 것은 북한 쪽 공사인 것 같다. 이는 "일제 강점기 구주공전 출신으로 진남포제련소 굴뚝을 설계하였고 당시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이던 김명여(金明呂) 교사가 설계하여 소련식 유럽 공법으로 시공한" 때문인 것 같다.
승일교는 그 기술의 우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과 북에서 각각 반씩 완공한 것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 신경림(申庚林, 1936~2024) 시인은 승일교에서 휴전선을 떠도는 혼령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이 다리 반쪽은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고/ 짐승들 짝지어 진종일 넘고// 강물 위에서는 네 목욕하고/ 그 아래서는 내 고기 잡고/ 물길 따라 네 뜨거운 숨결 흐르고// 조상님네 사랑 이야기/ 만주 넓은 벌 말 달리던 이야기/ 네 시작하면 내 끝내고/ 초저녁달 아래서 시작하면/ 새벽별 질 때 끝내고//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너와 내가 닦고 낸 긴 길/ 형제들 손잡고 줄지어 서고/ 철조망도 못 막아/ 지뢰밭도 또 못 막아// 휴전선 그 반은 네가 허물고/ 나머지 반은 내가 허물고/ 이 다리 반쪽을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듯" - 신경림의 '승일교 타령 - 휴전선을 떠도는 혼령의 노래 2' 전문. 혼령들은 휴전선을 허물어 내자고,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 이어져야 한다고 아픈 가슴을 베어낸다. 그들이 휴전선을 떠돌지 않고 하늘에 오르는 날이 언제일까?
승일교(昇日橋)에서 승일공원으로 내려갔다. 철원에서 기리는 태봉국(泰封國) 조형물 '태봉구문(泰封九門)'이 승일공원 서쪽 끝에 있다. 천년의 꿈 태봉국에서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로 가는 9개의 문이라는 주제문이 진정성이 있기 위해서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 관광지 상품의 코스튬으로 장식되는 조형물 너머에 '태봉구문(泰封九門)'이 싱싱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 승일공원 동쪽 끝에는 6·25 참전기념비와 베트남전 참전기념비 그리고 맹호부대장 한신(韓信) 장군 송덕비와 마그루드 장군 송덕탑 등 4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신(韓信, 1922~1996) 장군은 수도사단장으로 재임 중이던 1957년 7월 철원 지역 무의촌에 의무대 지원, 교육 및 체육시설 설치 및 보수 지원, 농번기 일손 지원 등 폭넓은 대민지원 활동을 펼쳤다. 이후 문혜리와 내대리 주민들이 한신의 공을 기리며 송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마그루드(Carter B. Magruder, 1900~1988) 장군은 1953년 한국에 파견되어 휴전협정 이후 미 8군 제9군단장으로 복무하며 철원 지역 주민들의 생활 안정 및 재건에 기여하였다."고 한다.
갈말읍 내대리와 군탄리의 경계를 이루는 지방도 제463호선을 따라 갈말읍 문혜리 문고개를 넘는다. 문고개, 즉 문현(門峴)은 과거 김화와 함경도로 가는 역마(驛馬) 교통로의 관문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다른 유래는 고개에 목책이 있어서 통행하려는 사람이 ‘문을 열라’고 하여 문고개라고 불리게 되었고, 문혜리의 옛 이름도 '문열이(문여리)'였다고 한다. 문고개에서는 문혜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문혜리 마을은 사방으로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지방도 제463호선은 동주로와 동행하여 문혜1리와 2리&3리 지역을 가르며 지나고, 지방도 제463호선과 동주로에서 잠시 빠져나온 태봉로는 문혜2리&3리 중심지를 통과한다. 평화의 길은 태봉로를 따라 문혜2리&3리 중심지 문혜마을을 통과하며 문혜마을의 풍물을 살피게 된다.
태봉로 좌우로 문혜2리 마을과 3리 마을이 나뉜다. 태봉로를 따라가면 문혜3리 마을이 중심을 이루고 산자락에는 군부대와 군인아파트가 자리한다. 이 지역의 군부대는 승리의 포병이라 하여 승포부대라 불리는 듯, 그래서 아파트나 복지관도 승포 이름을 달고 있다. 태봉로 안쪽의 갈말성당(葛末聖堂) 문혜공소(文惠公所)가 아담하게 예쁘다. 여유가 있으면, 문혜공소 마당에서 잠시 머물고 싶다. 그 옆 문혜초등학교 정문에는 문혜초교10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기념비에는 '백년의 터 천년의 꿈'이 새겨져 있다. 문혜초등학교 천년의 꿈이 무엇일까? 문혜초등학교 백 년의 터에서 천 년까지 이어지기를 길손도 간절히 소망한다. 문혜초등학교를 지나면 도깨비 방망이 조형물이 서 있다. 문혜2리와 3리 지역의 문혜마을은 도깨비를 마을 캐맄터로 내세우고 있다.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도깨비는 마을에 흥과 복을 가져온다. 이 도깨비를 흥복깨비라 이르며, 그래서 문혜마을은 흥복깨비촌이라 불린다.
태봉로와 두루미로가 교차하는 문혜초교사거리를 지나 철원소방서&철원119구조대를 통과하면 문혜3교차로에 이른다. 이곳에서 태봉로는 문고개에서 잠시 이별한 지방도 제463호선과 재결합한다. 반면에 지금까지 지방도 제463호선과 동행한 동주로는 이곳 문혜3교차로에서 태봉로와 만나면서 도로명은 끝난다. 지금부터 태봉로는 지방도 제463호선과 동행한다.
지방도 제463호선&태봉로를 따라 문혜교차로까지 이어지는 북쪽 산자락에는 승포자동화사격장과 군부대, 예비군동원훈련장 등이 자리하여 이 지역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오전 10시 30분을 지나는 시각, 부대 앞 논물에서 무수한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울어댄다. 오래간만에 개구리들의 대합창을 들으니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어진다. 개구리 소리는 평화의 대합창 같다.
지방도 제463호선&태봉로와 국도 제43호선 호국로가 교차하는 문혜교차로에서, 평화의 길은 지금까지 동행한 지방도 제463호선&태봉로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국도 제43호선 호국로를 따라 갈현고개로 올라간다. 갈말읍 문혜교차로에서 문혜리 갈현고개로 이어지는국도 제43호선은 도로를 신축한 것인지 옛 포장도로가 남아 있다. 이 도로가 옛 국도 제43호선인지 길손은 알지 못하겠다. 평화의 길은 국도 제43호선 호국로 지하통로를 두 번 통과하여 호국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건너와 옛길을 따라 갈현고개로 오른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 동쪽과 서쪽에는 군부대와 신병교육대, 농장과 목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 양지바른 옛길에는 풀꽃들이 모여서 피어나고, 주택 담장에서는 자목련과 백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드디어 국도 제43호선 호국로 공중에 갈현육교가 놓여 있는 갈현고개에 올랐다. 갈현고개 서단에는 버스정류소가 있다. 갈현고개 서낭당은 확인하지 못하고 갈현육교를 건넌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거리 : 13.9km
전체 소요시간 : 2시간 59분
의적 임꺽정 상(像)과 두루미 조형물 분수대, 야외무대가 조성되어 있다.
중앙광장에서 제트전투기 전시장과 철원관광정보센터 앞을 통과한다.
제트전투기 전시장을 지나 철원관광정보센터 오른쪽에 설치된 고석정 표지목 앞으로 이어간다.
고석정 표지목 오른쪽 고석정 이정목 기둥에 DMZ 평화의 길 16-2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붙어 있다.
고석정 이정목 기둥에 DMZ 평화의 길 16-2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붙어 있다.
고석정 이정목 기둥에 붙어 있는 DMZ 평화의 길 16-2코스 방문인증 QR코드를 확인한다.
한국 6.25 전쟁 때 MIG-15기를 격추한 'F-86F(SABRE) 전투기가 철원관광정보센터 앞 전시장에 전시되고 있다.
F-86F(SABRE / 전투기) Fighter는 미국 최초의 후퇴익 단승제트기로 한국전쟁 시 제트기로서는 최초로 MIG-15와 공중전을 벌여 MIG-15기를 격추시켰다. 당시 MIG-15기는 792대가 격추된 반면, F-86F는 78대만이 격추되어 그 우수성이 널리 입증되었다. 그후 F-86F는 공군의 제트화 계획에 따라 '55년 6월 20일부터 도입되어 '66년 4월 30일 F-5F 초음속 전투기가 도입될 때까지 우리 공군의 주력기로서 제공권 확보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제원(기장x기폭x기고) : 11.4x11,3x4,5m ◆중량(Weight) : 6,255kg ◆엔진(ENG') : J47-GE-27 제트엔진/6,9091bs Jet Engine ◆성능(Performance) ●최대속도(Max Spd) : 1,100km/h ●순항속도(Cruise Spd) : 850km/h ●항속거리(Max Operation Range) : 2,000km ●상승한도(Max Climb Alt) : 15,000m ◆무장(Armament) ●기관총(Machin Gun) : 12.7mm ●로케트(Rocket) : 2.75"x14 ●유도탄(Missile) : AMT- 9x2 ●폭탄(Bomb Load) : 900kg ◆승무원(Crew) : 1명(Persons) ◆제작사(Manufacturer) : NORTH AMERICAN (USA)
전투기로 올라가서 철원관광정보센터와 그 오른쪽 DMZ 평화의 길 16-2코스 시점 모습을 내려보았다.
고석적관광지 문주 통행을 막아 놓았고, 왼쪽 뜰에 고석정 영문자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고석정관광지 문주 앞 뜰의 영문자 'GOSUKJUNG' 조형물 받침돌에 '음식과 예술의 만남, 고석정'이 적혀 있다.
고석정관광지 문주 뒤에 철원관광정보센터, 그 왼쪽에서 평화의 길 16-2코스 탐방을 출발했다. 오른쪽 뜰에 영문자 고석정 조형물, 그 뒤에 'F-86F(SABRE)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고석정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지방도 제463호선 북쪽 보도로 넘어간다.
지방도 제463호선 북쪽 보도에서 고석정관광지 문주, 철원관광정보센터와 탐방 출발지를 뒤돌아보았다.
지방도 제387호선이 지방도 제463호선과 만나는 동송읍 장흥리 고석정교차로를 돌아본다. 도로표지판 뒤쪽에 금학산이 보인다.
동송읍 장흥리는 서쪽과 남쪽의 대교천과 동쪽의 한탄강 사이의 철원 용암대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지대는 대야잔평이라고 불린다. 철원 용암대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신생대에 형성된 현무암, 조면암이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 직탕폭포가 있다. 고석바위를 중심으로 한탄강의 양쪽 하안의 암석 구성이 서로 다른데, 기존 암층인 화강암이 위치한 곡벽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현무암층이 드러난 곡벽은 주상절리에 의하여 수직의 절벽을 형성하고 있어 하천 양안의 지형이 비대칭을 이루고 있다. 고석바위 일대는 현무암 용암대지 형성 이전의 지형과 현무암질 용암이 기반암 위로 흘러 용암대지를 형성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지형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지방도 제463호선 남쪽에 한탄강온천호텔 출입구가 있다. 입구에 HantanRiver게르마늄온천호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지방도 제463호선 중 그 일부인 도로명 태봉로와 동주로가 동행한다. 이들 도로명은 철원의 옛 지명 동주(東州)와 궁예가 901년 철원에 세운 나라 태봉(泰封)을 기리기 위해 명명했을 것이다.
동송읍 장흥리 고석정교차로에서 태봉로 북쪽 보도를 따라 한탄강온천호텔 입구를 지나왔다. 오른쪽 뒤에 금학산이 우뚝하다.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長興里)는 동송읍의 동부에 있으며, 북쪽으로 동송읍 오덕리, 동쪽으로 한탄강을 경계로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 내대리, 군탄리, 남쪽으로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서쪽으로 동송읍 이평리와 오지리와 접하고 있다. 본래 강원도 철원군 동변면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방산, 부흥동, 구수동, 새마을을 병합하여 장방산의 장(長) 자와 부흥동의 흥(興) 자를 따서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 장흥리(長興里)로 개설되었다. 1945년 8·15해방과 동시에 38선을 경계로 북한 지역에 속하였다가 6·25전쟁 이후 수복되었다. 1980년 12월 1일 철원군 동송면이 철원군 동송읍으로 승격되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가 되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태봉로와 동주로가 동행하는 지방도 제463호선 한탄교차로에서 왼쪽 우회로로 진입한다. 오른쪽 길은 고석정꽃발 코스모스십리길이다.
동송읍 장흥리 도로 건너편에 고석정꽃밭이 펼쳐져 있고, 중앙 뒤에 궁예가 나라를 잃고 통곡하였다는 명성산이 보인다.
한탄교차로에서 왼쪽 우회로로 이어간다. 건너편에 장흥4리 마을 표석이 서 있고, 오른쪽 뒤에 한탄대교 무지개 지붕이 보인다.
지방도 제463호선 한탄교차로에서 왼쪽 우회로를 따라 한탄강으로 내려간다. 한여울길 이정목이 승일교 500m 지점을 알려준다.
길가의 귀룽나무가 하얀 꽃을 무성히 피워 주렁주렁 달고 있다.
왼쪽 조팝나무 하얀 꽃들이 피어나고 오른쪽에는 산벚꽃이 시들고 있다. 중앙 뒤에 한탄대교 무지개지붕이 보인다.
한탄강 협곡 건너편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 지역에 전원주택인지 펜션 건물인지 건물들이 산능선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우회로 보도를 따라 한탄강의 한탄대교 방향으로 내려간다. 한탄대교 주황빛 무지개 지붕이 도드라진다.
우회로에서 한탄강 승일교 위쪽 강변에 조성되어 있는 한탄강 물윗길트레킹 승일교 매표소와 철원 조형물을 내려 보았다.
승일교 북쪽 한탄강 서쪽 강변에 철원군을 상징하는 군조(郡鳥) 두루미(鶴) 형상을 중심한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철원 한탄강 물윗길트레킹 승일교매표소가 설치되어 있다. 매년 10월 개장하여 다음해 3월까지 운영되며, 입장료는 1만원이다.
한탄강 물윗길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한탄강의 주상절리를 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트래킹 코스로 매년 10월 개장하여 다음해 3월까지 운영된다. 10월부터 임시개방하며 송대소~은하수교를 시작으로 11월 중 일부개방 12월 중 전체코스개방되며 직탕폭포~순담계곡까지 8.5km 개방될 예정이다. 철원군에서는 고석정과 순담계곡 등 일부구간에서 설치 운영하던 부교를 지난 2017년부터 태봉대교에서 순담계곡에 이르는 전구간에 확대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이후 매년 20만여명 이상이 한탄강 물윗길을 방문, 명실상부 철원의 대표적인 겨울철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 철원군청 문화관광
종합안내판 맨 오른쪽 아래의 게시판 '한탄강 현무암협곡 주상절리'를 읽어 본다.
한탄강 현무암협곡의 주상절리는 27만년전 신생대 제4기 평강읍 서남쪽 지점에 위치한 오리산에서 현무암질의 용암이 분출하여 철원읍 화지리 부근에서 한탄강을 만나 임진강 하류 문산 부근까지 무료 90km를 흘러가며 용암의 바다로 뒤덮었으며 이때 용암이 굳어지면서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형성되었다. 한탄강 현무암협곡의 폭은 25m~40m이고 높이는 약 30m로 제4기 지질 및 지형 발달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며 한탄강 유역에서도 가장 수려한 자연 경관을 이루고 있다. 매년 1월 중순 얼어붙은 한탄강을 따라 굽이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비경과 주상절리를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한탄강얼음트래킹 축제가 열리고 있다. - 안내판
앞쪽에 승일교, 그 뒤쪽에 한탄대교가 있다. 동송읍 쪽을 북한에서 착공, 갈말읍 쪽을 미군과 국군이 완공하여 1958년에 개통하였다. 왼쪽 건너편 한탄강변에 승일정이 보인다.
강원도 철원군 북방 북한 땅에서 발원한 한탄강(漢灘江)은 철원군 한가운데를 남북 방향으로 지나 포천·연천으로 흘러간다. 한탄강은 현무암 용암 대지가 움푹 파여 형성된 강이라 강 양쪽에 높이 20~30m 기암절벽이 발달하여 있다. 그래서 한탄강은 예로부터 주민들의 동서 교류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한탄강 협곡에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콘크리트 다리가 철원 승일교(鐵原承日橋)이다. 철원 승일교를 자세히 보면 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우 다리 모양이 다르다. 그 이유는 다리를 놓은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승일교 공사는 1948년 8월 공산 정권 아래에서 남침 교두보 확보를 위하여 시작되었으나 절반도 놓지 못한 상태에서 6·25전쟁이 발발하여 공사는 중단되었다. 중부 전선에서 치열하게 전투할 무렵이던 1952년 4월 미군 공병부대가 철원 승일교 보강 공사에 투입되어 5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하였다. 미군이 주도한 철원 승일교 공사에는 미처 피난 가지 못하고 철원 땅에 남아 있던 KSC 노무부대원들도 투입되었다. 철원 승일교는 원래 ‘한탄교’라는 이름으로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사이 이름도 잊혀졌다. 6·25전쟁이 끝난 후 남북 합작의 공사 과정을 알고 있는 철원 주민들은 그때부터 남한 이승만 대통령의 ‘승(承)’자와 북한 김일성의 ‘일(日)’자를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철원 승일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26호로 등록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철원 두루미조형물을 거쳐 나무계단을 올라 승일교 앞으로 이어간다. 나무계단 입구에 한여울길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한탄강 지오트레일Geotrail 주상절리길(한여울길) 1코스와 2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한여울 1코스, 11km 3시간 : Start승일교 1.0km 고석정 0.7km 마당바위 0.8km 송대소 1.0km 태봉대교(번지점프장) 0.6km 직탕폭포 1.1km 오덕리(금을고지) 1.8km 칠만암 4.0km (구)양지리 통제소Finish ●한여울길 2코스, 14km 4시간 : Start군탄교 5.1km 순담 3.3km 승일교 2.1km 양수장(마당바위) 1.0km 송대소 0.9km 태봉대교(번지펌프장) 0.6km 직탕폭포 1.0km 윗상사리Finish
한여울 1코스는 근대문화유적지인 승일교를 지나며 철원의 근대 역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고석정, 송대소, 직탕폭포 등 지질명소 곳곳에서 한탄강을 따라 발달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지질 유산의 절경을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는 길입니다. 한여울 2코스는 군탄교를 시작으로 논둑길, 숲길 등으로 연결되어 있어 물소리를 들으며 거닐 수 있고 현무암지대와 태봉대교를 거쳐 다양한 식물군들과 지질학적으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둘러보며 한탄강을 체험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입니다.
승일교 서단 입구에 1985년 10월 1일 건립된 승일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승일교는 총길이 120m, 높이 35m, 너비 8m라고 한다.
철원 승일교 공사는 1948년 8월 공산 정권 아래에서 남침 교두보 확보를 위하여 철원 및 김화 지역 주민들을 노력공작대라는 명목 아래 5일간 교대제로 동원하여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 구주공전 출신으로 진남포제련소 굴뚝을 설계하였고 당시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이던 김명여(金明呂) 교사가 설계하여 시공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소련식 유럽 공법이라 평하기도 한다. 다리 공사 지지대로 쓰이는 비계(飛階)용 나무는 금학산 담터계곡이나 신철원 용화동에서 조달되었고 인근 내대리 백토광산에서 일본인이 사용하던 돌 깨는 기계도 동원되었다. 공산 정권 아래에서 다리 공사 부역에 동원되었던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18세 이상 60세 미만은 1년에 18일간 부역하여야 하였고, 내대리 주민들은 30일을 일하여야 하였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승일교 서단 북쪽 교명주(橋銘柱)에 개통일인 단기 4291년 12월 3일, 즉 서기 1958년 12월 3일이 적혀 있다.
승일교 서단 남쪽 교명주에 등록문화재 제26호 승일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철원 승일교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4리와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의 경계가 된다. 문혜사거리 국도 제43호에서 옛 철원읍 중리를 지나 묘장면, 인목면, 마장면을 거쳐 이천(伊川)[북한]으로 통하는 지방도 제463호로 이어지는 중요한 다리이다. 철원 승일교는 소련식 유럽 공법의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 아치교로 교량의 조형미가 돋보인다. 길이 120m, 폭 8m, 높이 35m로 1948년 건설 중에는 한탄강 절벽에 시공하는 난공사였다. 철원 승일교는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6호로 등록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는 노후화되어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다. 철원군은 6·25전쟁 전 북한 땅이었다가 전쟁 후에 남한에 편입된 수복 지구이다. 분단과 전쟁, 수복 지구라는 역사적 특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 철원 승일교이다. 철원 승일교의 역사는 철원군의 역사와 함께하며 역사성을 가진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북한에서 건설한 동송읍 장흥리 지역의 구간을 지나 국군과 미군이 건설하여 완공한 갈말읍 내대리 구간으로 건너간다. 오른쪽 아래 한탄강변에 승일정이 보인다.
승일교를 건너며 노후한 승일교를 대체한 한탄대교를 건너다 보았다. 주황색 무지개 지붕이 아름답다.
한탄대교(漢灘大橋)는 지방도 제463호에 위치한 교량으로, 구철원 지역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과 신철원 지역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 지역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한탄대교와 나란히 놓여진 승일교를 대체하기 위하여 1999년 준공되었다. 현재 차량통행은 한탄대교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며 승일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26호로 등록되어 차량통행이 금지된다. 한탄대교의 상부는 RC중공슬래브교의 형식이며, 하부는 역T형식 교대로 설계되었다. 한탄대교는 왕복 2차선, 연장 166.8m, 폭 9.5m, 유효 폭 8.5m, 높이 24m의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경간 수는 3개이며, 최대 경간장은 156.9m이다. 한탄대교 건설에는 총 사업비 110억 원을 투입하였다. 한탄대교는 1997년 2월 3일에 착공하여, 1999년 8월 11일에 준공되었다. 강원도 철원군의 대표 겨울축제인 ‘철원한탄강얼음트레킹’이 매년 1월 한탄강 한탄대교 일원에서 개최되며, 한탄대교 아래의 꽁꽁 언 한탄강에서 다양한 겨울 놀이들을 체험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왼쪽에 승일교 매표소가 있다. 한탄강 물윗길트레킹을 위하여 겨울이면 한탄강에 부잔교가 설치되는 것 같다.
북한에서 착공한 승일교 동쪽 구간을 건너 갈말읍 내대리로 넘어 왔다.
승일교 동단 북쪽 교명주 옆 옛 초소 지붕에 한여울길 승일교 표석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승일교 설명안내판과 이정목이 있다. 오른쪽 산길은 한탄강생태탐방로 송대소(3.1km)로 이어지는데 현재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철원 승일교(鐵原 昇日橋)는 1948년 8월 북한이 착공하여 1958년 12월 3일에 남한이 완공한 다리이다. 시작과 완성의 시공법과 주체가 달라 아치의 크기 등 교각의 모양이 겉으로 구별된다. 분단과 한국 전쟁이 빚은 독특한 의의가 있다. 승일교가 완공되기 전에는 남한군이 임시로 목조 다리를 놓아 통행하였다. 지금은 승일교를 보행자 전용으로 사용하고 바로 옆에 한탄대교를 개설하여 차량이 통행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이 이 지역을 점거하던 때, 동송읍 장흥리와 철원 및 김화 지역의 주민을 '노력공작대'라는 이름으로 동원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다. 다리의 절반 정도를 시공하였을 무렵 한국 전쟁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었다. 수복 이후 남한이 다른 공법을 사용하여 나머지 구간을 공사하고 완성하면서 '승일교'라고 이름하였다. 이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전해져 온다. 하나는 당시 남한과 북한의 통치자 이름을 한 글자씩 따왔다는 것이다. 곧 이승만의 '승(承)', 김일성의 '일(日)'을 합하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박승일(朴昇日) 장군의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따와서 지었다는 이야기이다. - 안내판
승일교에서 중앙 뒤의 승일공원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아랫길은 승일공원 승일정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갈말읍 내대리 승일공원 주차장 왼쪽에 승일펜션이 자리한다. 평화의 길은 오른쪽 승일공원으로 이어간다.
승일공원으로 진입하여 오른쪽에 있는 조형물 태봉구문(泰封九門) 앞으로 가 보았다.
태봉구문(泰封九門) 아래에 조성된 승일정에서는 승일교와 한탄강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승일정에 가지 못하였다.
태봉구문(泰封九門) -천년의 꿈 태봉국에서 통일한국의 밝은 미래로 가는 9개의 문 : 하나의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단단한 바위를 뚫습니다. 천 년의 꿈 태봉국에서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로 가는 초석이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태봉구문(泰封九門)을 세웁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이 모여 9개의 문을 통과하면 머지않아 통일 한국의 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 안내판
태봉구문(泰封九門) 앞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왼쪽에 승일펜션이 있고, 주차장 끝에 참전기념비와 송덕비 등이 있다. 평화의 길은 지방도 제463호선을 따라 직진하여 문혜리로 넘어가는데, 중앙에 순담계곡으로 갈라지는 승일교차로가 보인다.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 일원 철원 승일교와 한탄대교 옆에 위치한 근린공원이다. 승일공원 면적은 8,820㎡이다. 한탄대교를 건립하면서 기존 승일교는 통행을 폐쇄하고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교량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2002년 6월 한탄대교 및 승일교 주변 일대에 승일공원을 조성하였다. 승일공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태봉구문(泰封九門)이라는 조형물이다. 천년의 꿈 태봉국에서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로 가는 9개의 문이라는 뜻이다. 승일공원에는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승일펜션이 운영되고 있다. 승일공원 한편에는 6·25전쟁, 베트남전 참전기념비 및 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다. 승일교 및 한탄강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자[승일정] 등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승일공원은 철원한여울길 1코스와 2코스 시작 구간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승일공원의 대표적인 조형물 태봉구문(泰封九門) 전체를 다시 뒤돌아보았다. 아래로 내려가면 승일정이 있다.
승일공원 동쪽 끝에 6·25 참전기념비와 베트남전 참전기념비 그리고 맹호부대장 한신(韓信) 장군 송덕비와 마그루드 장군 송덕탑 등 4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승일공원에서 나와 지방도 제463번 북쪽 보도를 따라 문고개교차로로 올라간다. 교차로 오른쪽은 군탄리 순담계곡 방향이다.
'태봉로&동주로'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쌈밥 전문음식점 '기와집'이 자리하고, 오른쪽 위에는 한레저&한탄강캠프가 있다.
문고개교차로에서 북쪽 갈말로는 갈말읍 내대리 마을로 이어진다. 한탄강래프팅을 운영하는 한레저&한탄강캠프가 앞에 있다.
갈말읍 내대리 문고개교차로를 지나 갈말읍 문혜리 문고개로 올라오면 도로 건너편 오른쪽에 88올림픽개최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문고개 건너편에 명성종합건설(주) 명성타운이 있고, 중앙 뒤 갈말읍 신철원리에 명성산(鳴聲山)이 솟아 있다.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과 이동면에 걸쳐 있는 명성산(鳴聲山) 정상의 높이는 922.6m이다.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약 1.5㎞ 지점에 있는 높이 890m의 능선이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및 이동면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다. 명성산의 별칭은 ‘울음산’이다. 전설에 따르면 왕건에게 쫓기던 궁예가 이 산에서 피살되었다고 한다. 이때 궁예와 그 심복들이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울음산으로 불리게 된 것을 한자로 옮긴 것이 지금의 명성산이다. 명성산에는 현재 궁예와 관련된 여러 전설과 다양한 지명이 남아 있다. 궁예왕굴(弓裔王窟)은 상봉에 있는 자연 동굴로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은신하던 곳, 항서받골[降書谷]은 왕건이 궁예 군사에게 항복하는 항서를 받은 곳, 가는골[敗走谷]은 궁예가 평강으로 도망가며 지나간 골짜기, 눌치(訥雉) 또는 느치는 궁예가 도망하면서 흐느껴 울었던 곳, 야전골은 왕건의 군대와 격전을 벌였다는 곳, 한잔 모텡이는 궁예가 도주하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골짜기 등 궁예의 전설이 깃든 곳이 다양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평화의 길은 왼쪽 태봉로를 따라 이어가고, 지방도 제463호선은 동주로와 동행하여 직진한다. 오른쪽은 제5769부대 진입로이다.
'태봉로&동주로'는 갈라져서 동주로는 오른쪽 지방도 제463호선과 동행하고, 태봉로는 왼쪽으로 갈라져, 평화의 길과 동행한다. 갈림길에 도깨비방망이 조형물이 서 있다. 문혜리는 흥이 많은 도깨비들을 모티브로 한 흥복깨비를 마을 캐맄터로 내세운다.
갈말읍 문혜3리 마을이 태봉로 왼쪽 산자락에 자리하고, 태봉로 오른쪽은 문혜2리 마을이 자리한다.
태봉로를 따라 갈말읍 문혜리 문혜마을을 통과한다. 도로 왼쪽은 문혜3리, 오른쪽은 문혜2리 지역, 중앙 뒤는 문혜1리 지역이다.
문혜리(文惠里)는 철원군 갈말읍의 중앙부에 있으며, 북쪽으로 갈말읍 지경리와 김화읍 청양리, 동쪽으로 철원군 서면, 남쪽으로 갈말읍 신철원리, 서쪽으로 갈말읍 군탄리, 내대리와 접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갈말면 문현리(文峴里)[문고개]의 ‘문(文)’과 지혜리(芝惠里) ‘혜(惠)’를 합쳐 명명되었다. 다른 유래로는 문고개에 강원도 김화군과 함경도 방면으로 통하는 관문이 있어서 통행하는 이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하여 문열이[문여리]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철원군 갈말면 문현리, 지혜리(芝惠里) 일부와 대동, 능곡, 논골, 새말, 토기점, 지석, 엄음성, 평촌, 삼셍이 등이 통합되어 강원도 철원군 갈말면 문혜리로 개설되었다. 1979년 5월 1일 갈말면이 갈말읍으로 승격되어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가 되었다. 문혜리는 갈말읍 동쪽의 산지 지역에 있다. 문혜리의 남쪽은 각흘산에서 뻗어 나온 산자락과 만나고 북쪽은 덕령산에서 뻗어 나온 지맥과 대득봉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문혜초등학교와 철원소방서가 있으며, 이 일대에 상업 시설들이 집중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국도 제43호와 지방도 제463호가 문혜리를 관통하면서 문혜교차로에서 만난다. 국도 제43호가 갈말읍 지경리와 김화읍 청양리를 거쳐 철원군 서면 와수리로 이어지는데, 문혜리에서 지경리로 넘어가는 길목에 갈현(葛峴)고개가 있으며 고개 정상에 상황당에서 1년에 두 번 서낭제를 올리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막창드라마는 드라마 촬영지가 아니라 막창 전문음식점이다.
태봉로는 동주로와 갈라져 문혜마을을 통과한 뒤 문혜3교차로에서 동주로와 재회한다. 왼쪽에 문혜3리 버스정류소가 있다.
평화의 길 정코스는 오른쪽 들녘으로 나가 문혜2리 지역을 돌아 문혜초등학교 앞으로 나온다. 정코스를 따르지 않고 그대로 직진한다. 왼쪽 뒤에 아파트 건물이 보이는 곳은 갈말읍 문혜1리 지역이다.
태봉로를 따라 문혜2리 마을(오른쪽)과 문혜3리 마을(왼쪽) 사이를 통과한다. 왼쪽 까치집이 있는 나무 옆에 갈말성당 문혜공소가 있으며, 맨 오른쪽 뒤 아파트 건물이 있는 곳은 문혜1리 마을이다.
태봉로 북쪽에 천주교 춘천교구 갈말성당(葛末聖堂) 소속 문혜공소(文惠公所)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갈말성당(葛末聖堂) 소속 문혜공소(文惠公所)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신자 황현성[베드로] 집에서 시작되었다. 공소 건물 건축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57년 6월 철원성당 초대 주임신부인 크로닌[베드로]이 미군의 도움으로 공소 건물을 건립하였다. 1991년 춘천교구 갈말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처음 문혜공소는 지포리공소, 용화동공소와 함께 철원성당 관할이었다. 1971년 7월 지포리공소와 함께 운천성당 관할로 편입되었다가, 1991년 지포리공소가 갈말성당으로 승격하면서 갈말성당 관할로 편입되었다. 1991년 8월 16일 조립식으로 갈말성당 문혜공소를 증축하였으며, 이전 공소 건물은 교육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갈말성당 문혜공소는 주변에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철원읍, 갈말읍, 김화읍의 네 개의 읍이 반경 20㎞ 거리에 있으며, 특히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 동막리 지역은 휴전선이 가까운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에 공소가 있어 평화를 전하는 사절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태봉로 북쪽에 문혜초등학교가 자리한다. 정문 옆에 '백년의 터 천년의 꿈'이 새겨진 문혜초교10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문혜초등학교는 1920년 4월 1일 문혜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1955년 7월 20일 재설립 인가를 받아 문혜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95년 12월 29일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면서1996년 3월 1일 문혜국민학교에서 문혜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문혜초등학교의 교가는 다음과 같다. "기름진 벌판에는 오곡이 향기롭고/ 아담한 전당에는 드높은 배움 소리/ 충성과 효도는 스승의 가르치심/ 영원히 빛내자 우리 문혜교" 교목은 향나무로 어느 곳이든 쓰임새 있는 향기를 머금은 사람을 상징하고, 교화는 장미로 열정이 있으며 사랑을 가득 품은 사람을 상징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혜리 남쪽 들녘에 문혜2리 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중앙 뒤 갈말읍 신철원리에 명성산이 솟아 있다.
태봉로 건너편 앞에 문혜3리 마을회관이 있으며, 태봉로는 문혜초교사거리로 이어간다.
문혜리 2리와 3리 지역의 마을을 흥복깨비촌 문혜마을이라 이르는 것 같다.
문현리, 지혜리(芝惠里) 일부와 대동, 능곡, 논골, 새말, 토기점, 지석, 엄음성, 평촌, 삼셍이 등을 병합할 때 문현의 문자와 지혜의 혜자를 한 자씩 따서 문혜리라 하였다. 그러나 문혜리의 옛 이름은 문열이(문여리)였다는 유래도 전해오고 있다. 그것은 이곳의 문고개에 당시 김화와 함경도로 가는 관문이 있어 이곳을 통행하는 이에게 문을 열어주었던 때문으로 풀이한다. - 안내판
태봉로와 두루미로가 교차하는 문혜초교사거리 왼쪽에 동철원농협 문혜지점이 있고, 오른쪽 바로 앞 벽화골목 입구에 도깨비방망이 조형물이 서 있다. 두루미로 왼쪽은 8736부대와 독박골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동주로 문헤2교차로로 이어진다.
벽화골목 입구의 도깨비방망이 조형물 앞에 아빠와 아들 도깨비가 방망이를 들고 서 있다. 문혜마을은 흥과 복을 주는 도깨비를 마을 캐맄터로 내세운 흥복깨비촌이다. 도깨비 방망이 받침대에는 門前成市가 적혀 있다.
태봉로를 따라 문혜2리와 문혜3리를 거쳐 문혜초교사거리를 지나왔다. 중앙 맨 뒤에 금학산이 머리를 보인다.
태봉로를 따라 동주로와 만나는 문혜3교차로로 이어간다. 왼쪽 앞에 철원소방서&철원119구조대가 있다.
왼쪽 뒤 아파트 건물이 있는 곳이 문혜1리 마을일 것이다. 중앙 뒤에 명성산이 솟아 있다.
철원소방서&철원119구조대 옆에 도로를 신축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철원소방서&철원119구조대가 위치한다.
철원소방서 뒤 농촌진흥청국립원예특작과학원 북부원예시험장 앞의 빈터에 무엇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603-1, 북부원예시험장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소속 국가연구기관으로서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북부지역 원예작물(채소, 과수, 화훼) 적응성 시험연구를 통한 북부지역에 적합한 원예작물 품종 육성, 안전생산 재배기술 개발, 이상기상 재해 경감기술 개발 등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태봉로를 따라 철원소방서 앞을 거쳐 문혜3교차로로 나와서 뒤돌아본다. 왼쪽은 동주로와 동행하는 지방도 제463호선이며, 동주로는 문혜3교차로에서 태봉로와 재회하며 끝난다. 앞에 도깨비 방망이 조형물이 있고, 중앙 뒤에 금학산이 빛난다.
지방도 제463호선 태봉로에서 건너편 갈말읍 문혜1리 마을을 살핀다. 오른쪽에 문혜교회가 보인다.
지방도 제463호선 태봉로는 문혜교차로로 이어진다. 왼쪽에 제8276부대 승포 자동화사격장 출입구가 있다.
뒤에 보이는 마을이 갈말읍 문혜1리 고인돌마을이고 비닐하우스 뒤 산자락에 은혜로교회가 가늠되고 그 뒤 산봉은 610고지인 듯하며, 그 오른쪽 자락 뒤쪽에 문혜4리 마을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방도 제463호선 태봉로를 따라 문혜리 동원훈련장 출입구를 지나 문혜교차로로 이어간다.
문혜리 동원훈련장 출입구를 지나면 문혜교차로 도로표지판이 보이며 그 뒤에 문혜교차로가 있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와 지방도 제463호선 태봉로가 교차하는 문혜교차로에서 태봉로와 헤어져 왼쪽 호국로를 따라 북진한다. 군탄공원(박정희 장군 전역공원 3.4km) 방향표지판이 신호등 기둥에 달려 있다. 위쪽 태봉로 동쪽에 문혜5리 마을이 있을 것이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를 따라 북진한다. 3사단 신병교육대와 6사단 신병교육대 방향표지판이 도로표지판 기둥에 달려 있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는 남북으로 이어지고, 지방도 제 463호선 태봉로는 동서로 이어진다. 그런데 버스정류소 지명이 문혜헌병4거리이다. 예전에 이곳에 검문소가 있었던 것 같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 서북쪽 지역에 1983년에 시작한 돼지 농장 '송원농장&광민농장'이 있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의 문혜1교 아래를 통과하여 호국로 동쪽의 한솔농장 앞으로 이어왔다.
왼쪽 위에 국도 제43호선 호국로의 문혜1교가 통과하고 있다. 왼쪽 길은 호국로의 문혜1교 아래를 통과하여 제2776부대로 이어지고 평화의 길은 옛길을 따라 올라간다. 오른쪽에 훈련장이 있다.
오른쪽에 제2776부대 황소부대 훈련장이 있고 평화의 길은 옛길을 따라 올라간다.
제2776부대 갈림목에서 국도 제43호선 호국로 아래 옛길을 따라 올라왔다.
평화의 길은 국도 제43호선 호국로의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반대편으로 건너간다. 직진하면 여양목장이 있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의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호국로 위쪽 언덕의 옛길을 따라 갈현고개로 올라간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의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옛길을 따라 올라왔다. 오른쪽에서는 일행이 양지꽃을 짝고 있다.
오른쪽 아담한 주택 울타리에 자목련과 백목련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의 문혜지하차도 상단에서 왼쪽 길로 이어간다.
국도 제43호선 호국로의 서쪽 언덕의 옛길을 따라 갈현고개를 넘는다.
갈현고개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있는 고개로 동쪽의 대득봉[628.3m]과 서쪽의 태봉[560.2m]을 연결하는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지경리로 가는 국도 제43호선상에 있으며, 지도상에는 ‘가로개’라고 표시되어 있다. 갈현고개의 높이는 352m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근처에 있는 작은 봉우리의 높이이며, 실제 갈현고개의 높이는 약 270m를 조금 넘는다. 문혜리 삼거리의 북쪽에 있는 갈현(葛峴)은 ‘갈고개’, ‘가루개’, ‘가루갯고개’ 등으로 불리고 있다. 고개 주변에 칡덩굴이 많아 ‘갈(葛)’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주변의 마을 이름도 ‘가루개마을’ 또는 ‘갈현동’으로 불리고 있다. 갈현고개는 각흘봉·태화산·악희봉·대득봉·태봉으로 이어지는 ‘대득지맥’이라는 산줄기에 속하는 고개로 대득봉과 태봉을 연결한다. 갈현고개와 대득봉 및 태봉은 모두 중생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갈현고개는 한탄강 지류들의 곡중 분수령이 되는데, 북쪽 사면은 화강[남대천]의 지류인 불당천으로 유입하며, 남쪽 사면은 문혜천으로 유입한다. 갈현고개를 지나는 국도 제43호에는 ‘갈현육교’가 설치되어 있으며, ‘갈현고개’ 버스 정류장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도 제43호선 호국로 공중 위에 갈현육교가 있다. 평화의 길은 갈현육교를 건너간다.
평화의 길은 갈현육교를 건너 호국로 동쪽 보도를 따라가지만 곧바로 통과하면 호국로의 지경삼거리를 우회하지 않아도 된다.
갈현육교 서단 앞에 갈현고개 버스정류소가 있다. 버스정류소 뒤쪽의 기와집이 갈현고개 서낭당인가?
갈현은 문혜리 동북쪽에 있는 고개로, 칡이 많아 갈현(葛峴)으로 불린다. 갈현고개의 서낭당은 1772년(영조 48) 이후에 갈현고개를 넘나드는 길손이 많았던 고갯마루에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서낭당은 갈현고개에 도로가 새로 건설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서낭당은 기와를 얹은 작은 집 모양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앞쪽에 흰색으로 새시(sash)문 네 쪽을 달았는데 위쪽 반은 반투명 유리로 되어 있다. 여기에 모시는 서낭은 할머니 서낭이라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