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합시다!”와 “성불합시다!”
(이글은 득로 거사님의 ‘천원의 가치’에 댓글로 올린 글입니다. 댓글 난이 좁아 여기로 옮깁니다.)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오강남 명예교수님이 쓰신 『또 다른 예수』에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에 <회개>는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순히 ‘옛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한다’는 뜻의 회개가 아니고 ‘의식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메타노이아’의 뜻을 해석하며, 이 단어는)
공관복음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을 때 그 ‘회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본 해설자가 그동안 여기저기 책이나 논문에서 계속해서 강조한 것처럼 ‘메타노이아’는 어원적으로 ‘의식noia의 변화meta'를 의미한다. 그러나 단순히 옛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한다는 식의 회개라는 뜻 그 이상이다. 우리의 이분법적 의식을 변화시켜 초이분법적transdualistic 의식을 갖게 된다고 하는 뜻이다. 말하자면 공관복음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는 예수님의 ‘천국 복음’이란 결국 ‘우리의 이분법적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로인해 하느님의 주권이 내 가까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 풀이해도 무리가 없다.‘ 의식의 변화’ 혹은 변혁을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갖게 되기를 바라던 최대의 소원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 주위에 있는 불교나 유교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불교에서 ‘붓다’, ‘부처’, ‘불佛’이란 ‘깨침을 얻은 이the Awakened, the Enlightened’라는 뜻이고, ‘불교’라는 말 자체가 ‘깨침을 위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성불하라”는 말은 “깨침을 얻어라.”는 뜻이다. (오강남 지음, 『또 다른 예수』p159~160)
‘의식의 변화’ 혹은 변혁을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원한 것이었고, 이것은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깨달음”과 같은 뜻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즉, ‘회개합시다!’는 ‘성불합시다!’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일이 잘 안될 때 남을 탓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깥이, 남이 바뀌기를 바라지 말고 자기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더욱 간단할지도 혹은 쉬울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는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는 아니 변하여 보인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은 내가 보는 대로 마음 먹은대로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 의심 없이 그것을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 책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다음Daum에 나와 있는 ‘책 소개’를 그대로 옮깁니다.
『또 다른 예수』는 예수의 어록으로 이루어진 『도마복음』의 텍스트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풀이하여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1945년 이집트 북부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된 문서 중 일부분이 『도마복음』이다. 4세기 초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조, 하나의 성서’로 통일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개별적으로 떠돌아다니던 그리스도교 문헌들 중 27권을 선별해 기독교의 경전으로 정경화하고, 자신의 신학적 판단 기준에 따라 ‘이단적’이라고 여겨지는 책들을 모두 파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도마복음』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하여 지금까지 외경으로 인식되었다.
『도마복음』은 총 114절의 예수의 말씀인 어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0퍼센트 이상이 공관복음에 나오는 구절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성서고고학자들에게 『도마복음』의 발견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예수가 전한 ‘비밀의 말씀’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도마복음』은 공관복음에서 주로 언급되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은 없지만,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신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공관복음이 예수의 구원과 믿음에 대해 강조하였다면, 『도마복음』은 깨달음을 강조하면서도 공관복음과 전혀 상호배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공관복음과 동일한 평행구의 예수의 말씀을 통해 내 안의 하느님 나라와 내 안의 참나를 깨닫고 우리의 종교의식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믿고, 또 어떤 삶으로써 깨달음을 드러내야 할지를 선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공관복음에 나타난 것과는 또 다른 예수를 통해 종교의 본질을 다시금 진솔하게 사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첫댓글 잠은 언제 주무시는지.....
예수님이 태어 나시기전(5~600백년)에, 이미 불교가 번성할 시점인데,
알고보니 새로운 종교랄것도 없다는걸 알았기에,
비밀스럽게 전해지는것을, " 예수님의 고백서" 라고 이해 해도 되겠는지요? 득로 합장
예수가 살던 시대는 역사학자들이 ‘메시아의 시대’라고 할 만큼 많은 메시아들이 있었고
그에 따라 종교도 여럿 존재하여 내려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 소개에도 나오듯 4세기 초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하나의 종교로 통일할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개별적으로 떠돌아다니던 그리스도교 문헌들 중
선별해 기독교의 경전으로 정경화하고, 나머지 책들을 모두 파기 처분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일 때 기존의 다른 조상신을 모시던 세력들을 취합하기 위해
이차돈을 희생시키면서 흰 피가 나왔다고 하면서 정치적인 쇼를 벌여 불교를 국교로 하였던
상황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때이후로는 신라 금관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당시 필요에 따라 경전이 선택되고 나머지는 파기되었는데,
당시 파기되기 전 감추어 두었을 것으로 사려 되는 책이 1945년 이집트 북부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여러 문서 중 일부분이 『도마복음』이었던 것입니다.
『도마복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성경과는 달리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이 없고,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신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있어
초기 기독교의 원래 모습 또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 사후에 기록된 성서가 각 학파에서 자기들의 유리한 입장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다양하게 기록된 복음 중에서 당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선별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구원, 천국 등과 같이 목표가 쉬운 요한복음이 대중들에게 더 인기가 있었을 것이고,
개인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마복음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상이어서 인기가 없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통불교로 뒤섞여 있어 잘 구별이 안되지만
일본의 경우 지금도 선종계열 보다는 정토종계열에 신자가 더 많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지금보니 책꽂이에 있네요...
다시 함 읽어봐야겠어요. ^^
꽃님 께서도 또 함,잘 읽어 보시고 댓글 하나 부탁 드림니다^^
득로 합장
예! 법사님! 제가 알아서 이해 하겠읍니다,
고맙습니다, 득로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