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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수집(屑穗集)
계 용 묵
닭
겨울 밤에 국수 추렴이란 참 그럴듯했다. 게다가 양념이 닭고기요, 국물이 동치미일 때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이 겨울에도 마을 앞 주막에서 국수를 누르게 되자부터 욱이네 사랑에서 일을 하던 젊은 축들도 이 국수에다 구미를 또 붙이게 되었다. 자정이 가까워 배가 출출하게 되면 국수에 구미가 버쩍 동해서 도시 일이 손에 당기지 않았다. 참다참다 못해서
“제기랄 또 한 그릇씩 먹구 보지.”
누가 걸핏 말만 꺼내도 이런 제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이 모두들
“그래라, 제길 먹구 보자.”
하고 일하던 손을 일제히 떼었다. 그리고는 우르르 주막으로 밀려나가곤 했다.
그러나 가마니 닢이나 치고, 새끼 발이나 꼬는 것을 가지고 밤마다 국수 추렴이란 따지고 보면 곤란한 일이었다. 외상이라고는 하지만 섣달 그믐까지는 세상 없어도 깡그리 갚아야 하는 것, 힘에 넘치는 부담인 것이다. 웃을 노릇이 아니었다. 그냥 계속하잘 수가 없어서 다시 건명태개와 오징어 마리로 환원을 하자는 축도 있었으나, 국수에 맛을 붙인 그들의 구미엔 그까짓 오징어 마리나 명태개로서는 인젠 구미의 대상으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국수를, 하고 국수 먹을 방도만 강구해 오던 그들은 결국 이러한 안을 얻었다.
닭과 동치미는 누구의 집에도 있는 것, 국수는 사리로만 사다가 손수 말아 먹는 방법. 그것은 값으로 따져 보아도 오징어나 명태 마리의 비용에 비해 별로 대차도 없었던 것이다. 진작 이런 생각에 옹색하였음을 못내 한탄하면서 그날 밤부터 그들은 그 안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국수는 사리로만 주막에서 사다가 욱이네 집 에서 말아 먹자, 밤마다 한 사람씩 돌림차례로 국수 여덟 사리에 김치 한 통, 닭 한 마리씩을 가져오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거리인 것이 욱이었다. 욱이는 집 주인이니 욱이 몫은 빼어야 옳으냐 빼지 않아야 옳으냐 하는 데 있을 뿐이었다. 욱이 어머니는 밤마다 국수를 마는 시중을 들어야 할 것이니까 공몫이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욱이의 경우는 그와는 달랐다.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사랑방의 일꾼이요, 또 같은 친구들의 노름꾼이다, 도의로 해도 빠져서는 안 될 것인데 욱이 어머니는 여기에 반대였다. 욱이는 일터인 사랑방을 제공한 주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사랑방을 제공한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욱이 어머니가 사랑방을 자기네들에게 일터로 제공하게 된 것은 무슨 자기네들을 위하여서라기보다는 제 아들인 욱이를 위해서었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욱이는 일을 싫어했다. 손바닥에서 번갯불이 일도록 일을 해도 시원치 않을 가정 형펀인데 이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괜히 남의 일터에 가 앉아서 담배만 피우며 시시덕거리다가 밤이면 자정을 훨씬 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이런 욱이의 손에다 일을 붙잡혀 주기 위하여 마을돌이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편의 하나로 사랑방을 수리해 놓고 욱이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마을의 여덟 사람을 번동 청탁이나 하다시피해서 모아 왔던 것이다. 생각하면 자기네들이 저희네 사랑으로 와서 욱이와 같이 일하는 것을 도리어 감사해야 할는지 모른다. 또 사랑방에 밤마다 불을 넣는다고는 해도 그것은 자기네들의 일감에서 나오는 짚검부러기로도 충분함을 안다. 아니, 어떤 때에는 사랑방에는 넣고도 남아서 소죽을 끓이는 안방의 시량에까지 도움이 됨을 안다. 자기네들이 사랑방으로 밤마다 모인다고 해도 욱이네에게는 결코 손해 되는 일이 없다. 욱이 자신도 그것은 잘 안다. 그러나 모든 권한이 어머니의 손에 달린 욱이다. 욱이의 마음대로는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욱이의 사정을 그들도 또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욱이 어머니의 소행이 불쾌한 게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욱이 어머니의 소행이 불쾌함을 참기만 한다면 그까짓 욱이 한 사람으로 해서 약간 부담이 더 돌아가게 된다는 것으로 실행을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들은 결국 그 어머니의 소행이 미운 대로 욱이의 몫은 빼기로 하고 즉좌에서 여덟 사람이 턱을 낼 돌림 순시의 제비를 뽑았다.
재성이가 첫 차례였다. 박수로 환영을 하었다.
밤마다 국수턱은 순차로 돌아갔다. 여드레가 지나니 전원이 한 차례씩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또 재성이 차례가 돌아왔다.
그러나 재성이는 자정이 가까워 와도 여느 때와 달리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잠자코 새끼만 꼬고 있었다. 사실 재성으로서 오늘밤의 턱은 사정이 딱했다. 외상으로 가져오것다, 국수 열 사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금년에는 동치미도 넉넉히 담았다. 문제는 닭에 있었던 것이다. 예년만 하더라도 그렇지는 않았는데 금년에는 병아리 적에 족제비가 축을 많이 낸 데다 계역을 겪고 나서 여섯 마리밖에 통 닭이 없었다. 그런 걸 전차에 한 마리 잡아오고 이제 남은 것이 수탉 한 마리에 암탉이 꼭 네 마리, 오는 봄에도 네 배는 안겨야 그 한 해의 가용 닭이나 될 형편이다. 그래서 재성이 말이라면 무어나 거역하는 일이 없던 어머니까지두 요 전날 밤 닭을 잡아 주면서 더는 축내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던 것은 재성이는 똑똑히 들었던 것이다. 닭을 한 마리 어디 근처에서 사 볼까도 했으나, 외상으로 닭을 사기는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처리 방법에 재성이는 밑이 무거웠던 것이다.
필경은 주위의 독촉을 받고야 일어섰다.
국수는 사리로 미리 낯에 부탁을 해 뒀던 것이다. 시간도 지체 없이 곧 날라왔다. 그리고 동치미 한 통을 날라오고는 시간이 좀 뜸해서야 암탉 한 마리를 안고 들어섰다.
바깥 날은 꽤 추운 모양이다. 재성이 코끝에는 콧물이 다 맺혀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닭고기를 찢어서, 썬 동치미와 뒤버무려 가지고 짓이긴 마늘과 빨간 고춧가루를 끼얹은 윗덮기에, 기름이 동동 뜨는 닭 국물에다 동치미 국물을 쥐탄 싱싱한 국이 양은 대접의 가장자리가 늠실거리게 담겨서 저마다의 앞에 한 그릇씩 놓였다.
바깥 외양간에서 새김질을 하던 암소의 하품 소리가 꺼지게 들리는가 하면, 울파주 엮음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헤여 나느라고 또 쉿대잎이 떨리며 새삼 소리를 낸다. 방안에서는 국수사리를 국물과 함께 입안이 붕긋하게 베어물고 당기며 마시는 소리. 정취도 정취려니와 맛도 맛이었다. 사실 산촌의 농민들은 이러한 밤 이러한 정취 속에 국수와 같이 살이 지는지 모른다.
욱이 어머니는 국수 그릇에보다 뼈다귀 바가지로 먼저 손이 갔다. 살코기가 붙은 뼈다귀를 그저 버리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이것저것 뼈다귀를 골라서는 이빨로 깎고 혀로 핥고. 양쪽 쭉지까지 다 깎고 핥고 난 욱이 어머니는 닭의 다리를 또 더듬어 들었다. 그리고 입가로 가져가다가 문득 눈이 둥그레진다. 그 닭의 다리에는 가운데 장발가락이 한 가락 반이나 나가 짤리어서 뭉틀한 것이 자기네 씨암탉의 발가락과 흡사히도 같았던 때문이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들여다보던 욱이 어머니는 관솔가치에 성 냥을 켜 대더니 부르르 바깥으로 나갔다.
“재성이 쌔끼 도죽놈으 쌔끼 !”
이윽고 들어온 욱이 어머니는 들어서기가 바쁘게 재성이를 향하여 욕을 들입다 퍼부었다. 그것은 병아리 적에 쥐한테 물려서 발가락이 잘라졌던 자기네 씨암탉에 틀림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 보아야 그 닭은 홰에 없었다.
“머라구요?”
“머라니, 이 도죽놈으 쌔끼 너 우리 닭 잡아 들여온 게 아니냐.”
“아니, 아즈마니, 그럼 경위가 됐단 말이오? 욱이두 닭이나 한 마리 내야 경위가 옳지오.”
“머야 이 도죽놈의 쌔끼, 악지가리질이.”
“아니, 아즈마니,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우, 도죽놈이라니오! 아즈마니 손으루 닭의 멱을 따서 아즈만네 솥에다 삶아서 아, 아즈마니 손으로 손수 날라다 주시군 날 도죽놈이래요?”
딴은 그렇다. 욱이 어머니는 창졸간 더 할 말을 몰랐다. 한참이나 머뭇거리더니
“아니, 욱이 쌔끼 넌 귀때기가 썩어졌네? 족제비가 좀 와서 어르다니기만 해두 닭이 홰에서 붓는 법인데 그걸 잡아낼 땐 끽소리라두 질렀을 텐데 ―.”
“아즈마니 건 모르는 소리웨다. 손바닥을 쩍 벌려가지구 허리춤으로 쑤서 넣어 뜻뜻한 배때기에다 한참 대고 있다가 그 뜻뜻한 손을 닭의 면두에다 가져다 대면 얼었던 면두가 개완해서 그저 꾸둑꾸둑 하고 도리어 목을 쓰윽 내뺀답니다. 그럴 적에 모가지를 덤석 잠아당기어서 가슴에다 끌어 안으면 끽소릴 한마디 어디 질러 보기나 하나요, 아즈마니두 원 내 참.”
천정배필(天定配疋)
사월 스무닷새던가, 구월 초닷새던가, 좌우간 오(五)자가 하나 달린 날짜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이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도시 아리숭해서 알 수가 없다. 오정 때는 기류계를 걷어간다고 꼭 그 안으로 써 놓으라는 반장의 지시였건만, 아내의 생일 날짜가 썩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의 생일 날짜는 언제나 이런 계출을 하게 될 적마다 말썽이었다. 왜 그리 자꾸만 잊히는지 들으면 듣는 그시뿐, 그 뒤로는 그저 까먹고 까먹고. 하여간 조상의 젯날과 가족들의 생일 날짜를 까먹는 데는 아마 내가 일등일 것이다. 가다가 아내가 부엌에서 송편을 빚거나 빈대떡이라도 부치는 기미가 보이면
“오늘이 또 무슨 날이오?”
해서
“당신은 나 아니면 조상의 제사도 못 지내요.”
하는 핀잔을 받게 되는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웬일인지 맏이놈의 생일날만은 언제나 필요한 때면 거침없이 쑥 떠오르곤 했다. 그건 섣달 그믐날이라 아마 잊혀지려야 잊혀질 수 없는 특수한 날인 관계인지 모른다.
아무랬건 내 나쁜 기억도 기억이려니와, 원 무슨 가족의 성명 삼자와 생년월일을 적어 넣어야 하는 계출이 그리 많은지 아내는 곁에 없고 생일 날짜는 생각 안 나고 해서 독촉을 받게 될 적엔 화가 동하는 때도 있었다. 이번엔 6·25를 겪고 나서 동적부가 없어진 모양으로 응당 다시 기류계를 정비해야 되게는 되어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의 생일은 떠오르는 날짜가 이전에 쓰던 그 날짜 같지가 않았다. 그러니 식량을 바꿔 온다고 옷가지를 가지고 시골로 간 아내라 쉬이 돌아올 건 아니고 그대로 앉아서 붓방아만 찧다가 에라, 그까짓 생일을 제대로 똑똑히 적어 넣어선 무슨 필요가 있을 거냐, 편할 대로 내 생일과 같이 적어 넣자, 그러면 언제나 이러한 경우엔 아내가 곁에 없어도 될 게 아니냐, 생각을 하고 나니 바로 무슨 무거운 짐이나 졌다가 벗어 놓은 것처럼 몸이 가벼워진다. 김성천(金性天)이라고 쓴 자기의 이름 곁에 가지런히 이혜자(李惠子)라고 이름을 써 놓고 비워 놓았던 생년월일란에다 5월 15일이라고 적어 넣은 자기의 생년월일과 나란히 꼭같게 5월 15일이라고 써 넣었다.
계출을 해 놓고 보니 그건 참 그럴듯한 안이었다.
그 후 피난살이를 하며 돌아다니자니 기류계도 기류계려니와, 피난민증을 받는 데도, 또 자리를 뜨게 되면 뜰 때마다 퇴거계니 전출계니 또 무슨 배급이라 무어라 하여간 가족의 성명과 생년월일을 적어 바쳐야 하는 계출이 어떻게도 많았던 것인지, 그러면서도 나는 전과 같이 아내의 생년월일 때문에 조금도 머리를 쓰는 일 없이 이런 일을 대할 때마다 척척 그저 기록해 넣을 수가 있었으니.
그러나 아내는 그게 여간한 불평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기의 생년월일을 잊곤 한다면 수첩에라도 기록해 두었다가 뒤져 보면 될 게 아니냐고 따지었으나, 그때는 미처 그런 생각도 못 했거니와 또 했댔자 모르는 생년월일을 어딘들 기입 할 수 없었겠지만, 애당초 나는 수첩이란 가지지 않기로 한 사람이다. 수첩에 이것저것 기입해 두었던 비밀이 사람의 눈을 거치게 될 때 분하던 생각을 하면 수첩 생각만 하여도 끔찍했다. 일단 무슨 혐의만 받게 되어 경찰서에 들어서는 날이면 수첩은 공개되고야 마니까.
또 아내는 하필이면 왜 제 생일과 같이 자기의 생일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제 생일을 자기의 생일과 같이 집어넣는담 하고 볼 부은 소리도 하였으나 그까짓 건 마찬가지다. 만일 내가 내 생일을 모르고 아내의 생일만 알고 있더라면 그야 어련히 아내의 생일과 같이 내 생일을 집어넣었으리라고. 대체 문서상 생일이 정 확하다는 게 무슨 필요성이 있단 말인가. 내가 아무 날 났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으면 그만이지, 또 모르면 어때? 편리하게 사는 게 제일이지.
피난지에서 서울로 다시 수복이 되어 환도를 하니 무슨 수속이 또 많았다. 우선 해야 할 것이, 가호적을 해가지고 피난민증과 서울시민증을 바꿔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별치도 않은 이런 수속이 그리 용이하지도 않았다. 양식대로 다 옳게 쓴다고 했는데 무에 틀렀는지 동회를 거치기까지 한 게 구청에서는 퇴짜였다. 퇴짜를 맞고 나니 퇴짜를 맞는 그 자체부터가 불쾌도 하었지만, 그 퇴짜를 맞기까지 구청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맥살 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이튿날은 서류를 다시 정비해 가지고 사람이나 좀 없을 때 가져다 낸다고 일찌감치 갖다 냈더니 서류를 한참 뒤적이며 들여다보던 계원은
“가만 있자, 이거 여보세요, 생일이 또 틀리지 않았습니까?”
하고 접수구로 고개를 기웃했다.
“본적지도 가는 게 서분한데 생일마저 갈라고 그러슈?”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내외분의 생년월일이 꼭같아서 혹시 틀린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말입니다.”
“그건 염려 놓으슈. 딴 건 몰라두 우리 가족의 생일은 내가 더 잘 알 것 이니까요.”
“으으 그러시겠지요. 참 천정배필이십니다. 동갑에 생일까지 같으니 !”
“좌우간 생일만 틀리지 않았다면 딴 건 인제 틀린 건 없지요? 그럼 됐지 뭘요.”
떡
이웃에 사는 무슨 중령인가 한 이의 아들 여섯 살짜리가 요 며칠째는 매일같이 우리 집에 와서 다섯 살 난 내 손자놈 하고 얼려 논다.
오늘 아침도 내가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중령의 아들이 손자놈을 찾으며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내 곁에서 책 뒤적이는 것을 보고 앉았던 손자놈은 중령의 아들이 들어와 앉기가 바쁘게
“이마, 이 책 봐. 우리 할아버진 책이 이렇게 많다!”
하고 책장을 가리키며 자랑을 한다:
“그까짓 책만 많으면 제일이냐. 우리 아버지가 높은 사람이야.”
하고 그는 목세를 쓴다.
“이마 책이 많아두 높은 사람이야. 우리 할아버진 책을 볼 땐 저렇게 안경을 낀다!”
“기까짓 안경. 우리 아버진 안경 없는 줄 아니?”
“우리 할아버진 안경 둘이야. 밖에 나갈 땐 또 다른 안경을 껴.”
“우리 아버진 또 부대루 갈 땐 권총을 차구 지프차를 타구 가아.”
“지프차가 뭐 좋은 줄 아니. 합승이 좋지. 우리 할아버진 학교루 나갈 땐 늘 가방을 들구 합승을 타구 가아.”
“합승? 합승은 누구나 타는 거야. 우리 아버진 중령 이니까 지프차를 타는 거구.”
순간 손자놈은 말문이 막힌다. 할아버지가 높은 사람인 줄을 알기는 아는데 남 다 타는 합승만 타는 할아버지라, 합승만 타는 그 이유의 해명에 궁한 모양이었다. 눈이 새침해서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나의 턱밑에다 제 턱을 바짝 드려다 대며
“책 많은 사람두 높은 사람이지, 응 할아버지 !”
하고 나에게 응원을 청한다.
“이마, 중령이 높은 사람이라니깐. 우리 엄마가 그랬다, 우리 아버진 중령 이 돼서 높은 사람이라구. 그렇지요, 중령 이 높은 사람이지요?”
하고 중령의 아들도 또 나에게 자기의 엄마 말이 참말이라는 것을 입증하여 달라는 듯이 내 앞으로 무릎을 바싹 한 걸음 다가앉는다.
자기네 어버이의 지위를 높이 가짐으로 그것을 자기네들의 자랑으로 삼으려고 서로 지지 않으려는 그들의 입론이 어쩌면 귀엽기도 해서 나는 아무 대꾸도 없이 속으로 웃고만 앉았노라니, 발칫목에서 제 꾸어진 양말 뒤축을 꿰매고 않았던 식모아이가 불쑥 그들의 입론에 뛰어든다.
“넌 중령 위에 대령이 있는 줄 모르니? 밤낮 중령 중령 하고. 우리 성하(손자놈의 이름) 아버진 대령이라는 걸 알아야 해.”
하니까, 중령의 아들은 금시 얼굴이 시무룩해지며 아무 말도 없이 눈을 푹 내려깐다.
“성하 아버지가 이제 미국서 돌아오면 너의 아버지는 성하 아버질 보기만 해도 기착을 딱하고 경례를 꼬박 붙여야 하는 판이야. 뭘 알기나 하고 그러니. 그러면 너의 엄마두 한풀 꺾이는 날이구.”
하고 재차 냅다 쏘아 놓으니, 눈을 여전히 내려깔고 듣고만 앉았던 중령의 아들은 그만 푸시시 일어나 문을 밀고 나간다.
“그 자식 약올랐나 보다!”
하고 손자놈은 승리의 쾌감이나 느끼는 듯이 만면에 화기가 이럭 거리고 있었다.
“약올랐음 어때, 난 걔 어머니가 밉상스러워서 그랬다. 저의 남편이 중령이라구 근처 여자들을 사람으루 보는 줄 아니 그게. 걔두 제 에미에게 듣구서 저의 아버지만 높은 사람이라구 뽐을 내며 돌아가지. 아이, 난 걔 어머닐 보면 구역질이 나아. 배퉁은 왜 그리 내밀구 흔들거리겠니, 이질이질 하면서. 그건 누구나 만나도 인사법두 없다! 아마 이사온 지가 반년은 넘었을 거라, 그래두 근처 집 문턱에 발 한번 들여놔 본 적 없을걸.”
하고 식 모아이는 괜히 저 혼자 흥분해서 두덜거리고 있었다.
그런 지 이틀이 지나선가였다. 중령 부인이 우리 집 엘 찾아왔다. 쟁반에다 떡을 한 쟁반 듬뿍 담아서 꽃보자기를 씌워가지고 인사차로 왔노라고 했다.
이웃에서 떡이나 그런 별다른 음식을 마련하면 이웃간에 서로 들고 다니는 것이 인사였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는 받아 본 적도 없고 또 주어 본 적도 없었다. 금방 삶아내서 담아 가지고 온 것 같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떠오르면 송편과 시루떡 이 참으로 먹음직하였다.
떡 쟁반을 받아 든 집사람은, 그 여자가 누구인 줄은 아지마는 언제 만나서 이야기는 고사하고 인사 한번 주고받아 본 적이 없었던 처지라, 송구스러워서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를 몰라 꽃보자기만 한 반쯤 열어제친 그대로 부인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진즉 찾아뵌다는 게 이렇게 늦어서요. 어디 여느 댁과 달라서 맨손으로야 인사를 올 수가 있어야지요.”
“아이 무슨 천만에 이웃간에서. 떡을 이렇게 원 많이두…… 누구 애들의 생 일이우?”
“아녜요. 그저 즘 했지요. 그런데 대령님의 안부는 종종 들으세요?”
‘대령?’
집사람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를 몰라 대답을 못하고 의아한 눈만을 둥그렇게 뜨고 부인을 바라보았다.
“저 미국 가 계시는 대령님 말씀이에요.”
‘미국 가 계시는 대령님?’
더더구나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대령 이라니! 미국 가 계시다니요! 누구 말이에요?”
집사람은 의아한 눈이 한층 더 둥그레서 부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성하 아버지 되시는 이 말씀이에요. 그 대령님이 미국 가 계시지 않아요?”
“내 아들이오? 내 아들이 대령! 미국은 웬 미국이오? 내 아들이야 육군 중사루 있다가 재작년에 제대가 되어서 지금은 학교 교사루 나가구 있는데요.”
“녜! 아니 그럼 무슨 말을 걔가…….”
“글쎄 모를 일이군요. 우리 애야 대령이 다 뭐에요. 졸병으루 있었는데 ― 미국은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요즘 벼르고는 있나 봅디다.”
단식(斷食)
오늘 아침은 어쩐지 박군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은 것 같기에 어디 몸이 편치 않으냐구 물었더니, 그저
“아닙니다.”
하고 말을 피하려고 한다.
원래 책임관념이 센 박군이라, 일을 쉬기가 미안해서 불편한 몸을 억지로 참고 지탱을 해 가며 사무상을 지키고 앉았는 것은 아닌가 하여 정말 몸이 불편하면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편히 좀 쉬라고 하였더니
“네, 뭐 괜찮을 거에요.”
하고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긍정은 하면서도 그대로 앉아서 뙤고 있던 주판알만 그냥 뙤고 있었다.
“괜치 않을 거라니 감긴가?”
“아녜요. 저 저 단식을 좀 합니다.”
‘단식!’
나는 놀랐다. 4·19 이후 데모와 단식이 각 기관에서 한참 성히 유행을 하고 있는 차제라, 혹시 우리 회사에도 무슨 그런 무엇이 싹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짐짓 염려스럽기도 해서
“단식! 단식은 왜?”
하고 박군의 태도부터 살피었더니,
“녜, 뭐 제 집안 사정입니다.”
하고 원기라고는 한 푼어치도 없는 것 같은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1·4후퇴 때 정주서 아버지 어머니 누이동생, 그리고 저까지 네 식구가 월남을 하다가 해주에 와서 한참 월남민이 밀리어 쏟아지는 바람에 그만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아버지를 분비통에 잃어버리고 찾다찾다 못해서 하는 수 없이 그냥 세 식구만이 월남을 한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가 생존해 계신지, 계시다면 부디 몸 평안히 계시다가 기회가 있는 대로 넘어오시도록 하라고, 이래 7, 8년을 하루같이 기도를 드려 오던 것인데, 요즘 와서는 남북통일론이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보시고는, 어서 남북통일이 되게 하여 달라고, 그리하여 하루바삐 남편을 만나게 하여 달라고 이번에는 아버지의 생신날을 기하여 2, 3일 전부터 단식 기도를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나서, 그렇지 않아도 건강하지 못한 늙은 몸으로 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사흘씩이나 단식을 하고 나니 맥이 한 푼어치도 없이 즐거 돌아가실 것만 같아 단식을 중지하시라고 아무리 권해도 들으시지를 않아, 그러면 어머니가 단식을 중지하기까지 자기도 단식을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어머니의 단식 중지를 위한 단식을 자기도 어제 아침부터 시작했노라는 것이다.
말이 쉽지 장시일의 단식이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남편을 위한 아내로서의 단식이나, 어머니를 위한 자식으로서의 단식이나 이것이 모두 그 성의만은 무던하다 아니 할 수 없으나, 나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른다. 무어라고 대꾸할 수도 없어서,
“그래, 그렇다면 어서 돌아가 쉬게. 굶어서 어떻게 일을 보나. 어서 돌아가게.”
하고 퇴근을 권하였더니
“아닙니다. 사흘씩 이나 굶으신 어머니도 매일같이 장에 나가서 장사를 하시면서 단식을 하고 계십니다. 저라고 일을 쉬면서 단식을 하겠습니까. 배가 아파서 그러지 그까짓 견디면 꽤 견디겠지요. 다섯 끼를 굶었더니 아마 회가 동하나 보지요. 회충산이나 이제 한 봉 사다 먹겠습니다.”
하고 박군은 또 예기 없는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식을 하면서 배가 아프니 회충산을 먹는다!’
순간 나는 그의 단식의 의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식으로 위해서 오는 복통을 약으로 치료하면서 단식을 하여야 하는 단식 ! 어머니를 위한 그의 단식이 무던하게 생각되던 조금 전에 그를 대하던 나의 감정은 나도 모르게 얄미움으로 돌변해 음을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무어 회충산을 먹어 ! 그게 무슨 단식인가?”
하고 제결에 한마디 내 쏘았더니
“회충산쯤이야 괜치않지 않아요? 유명한 정치인들은 뭐 엥걸 주사를 맞으면서 꿀단지를 옆에다 놓구 단식들을 하였다는데요.”
소설 못 쓰는 소설가
내일 모레가 정말 최종 마감이라고, 그날까지는 꼭 써 주어야겠다는 A지의 간곡한 부탁도 부탁이려니와, 너무도 여러 차례나 기일을 어긴 것이 내 자신 미안도 해서, 오늘은 무어든 한 삼십 장 끼적여서 색책을 하리라, 아침부터 책상을 대하고 마주 앉았으나, 언제나 마찬가지로 붓끝에는 흥이 실리지 않는다. 그야 목을 내대고 칼과 대결을 하자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세상 되어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가슴속에서 피가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그러나 기껏 그 주변이나 어이돌면서 눈치붓이나 들어야 하는 이 붓이니. 이 붓끝에 무슨 흥이 실릴 것인가. 일본의 식민지 백성 노릇을 할 때는 말하지 마자, 이 정권 시대는 어떠했으며, 이정권이 무너진 오늘은 어떤가 내 복부에 이상이 있어 어떤 한의에게 진찰을 받아 보았더니, 울화를 참으면 피가 복부로 모여서 그런 증상을 나타낸다는 진단이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겠다고 버둥대다가는 차마 쓰지를 못하고 쓸 수도 없는 이야기를 가슴속에다 간직만 하게 되는 그 울화가 병의 원인이라면, 그리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금시라도 쓰게 된다면 복부에 서렸던 이 피가 온통 펜 끝으로 풀려 나오면서 복약도 아무것도 필요 없이 병은 거뜬하게 나을 것만 같기도 하건만―.
답답하다 창변으로 다가앉아 미닫이를 밀어 본다.
오월의 한낮 볕이 유난히 장그럽다.
‘아니! 이런!’
내 눈이 뜨락 주위로 돌아가던 순간, 나는 내 눈이 놀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엄숙해지는 것 같음을 느꼈다. 거기 버려져 있는 풍경은 내가 아침 한나절 붓방아를 찧으며 생각하고 앉았던 내 머리 속 풍경과는 너무나도 대차적인 세상이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블록담 위에 모로 근더져서 꼭대기를 지치며 뒷다리를 들어 새끼들에게 젖을 내맡기고 졸고, 건넌방 마루 위에서는 주인집 할머니가 흐트러진 하얀 머리를 식모처녀의 무릎 위에다 되는대로 내어 맡기고 이를 잡히며 존다. 그리고 마당에 널어 놓은 메주 멍석 귀에서는 쥐 한 마리가 뒷다리에 힘을 주고 제지바듬이 서서 주위를 도록도록 살피다가는 고개를 까닥거린다.
나는 얼빠진 사람같이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람이 울타리를 넘어 나비와 같이 넘어오며 장독대 곁에 핀 샛노란 개나리꽃 가지를 흔든다. 고앙이도 할머니도 쥐도 슬며시 눈을 뜬다. 봄의 향흔이 대기 속에 흗어저 그들의 코로 흠러드는 모양이다. 고양이는 피부가 늘어나는 데까지 마음껏 입을 벌려 하품을 한 번 하고 수염 끝에 스치는 향훈마저 핥아 드리는 것처럼 혀를 내밀어 휘이 좌우 수염을 핥아 드리고, 할머니는 사지가 늘어나는 듯하게 기지개를 켜며 네 활개를 주욱 펴고 벗듯이 나가 근더지고, 쥐는 뒷다리마저 꿇고 멍석 위에 코를 박는다.
고양이를 지척에 두고 조는 쥐, 쥐를 지척에 두고 조는 고양이 ― 잡념이라고는 깡그리 잊은 평화의 경지다.
이러한 경지도 있기는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뜰 안 한복판에 몸을 내던지고 저 분위기 속에 휩쓸려 모든 것을 깡그리 잊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진다. 그리고 차라리 이 경지를 그대로 떠다가 A지에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쓰지도 못할 이야기를 쓰겠다고 버둥버둥 애를 써 보느니 보다는.
참으로 쓸 수 없는 이야기를 써 보겠다고 버둥대며 애를 쓰다가는 속 깊이 간직만 하여 두고 붓대를 놓게 되는 그 울화의 집적이 병의 원인일까?
합승을 잡아 타고 또 거리로 나온다. 원고지와 마주 앉았다가는 항상 뛰쳐나오는 버릇 그대로다.
속이 클클할 때 뜨거운 커피 한 잔은 참 좋다. 담배를 한 대 피워문다. 옆 의자에 누가 와 앉는다. A지의 편집인이다.
“그러지 않아도 선생님이 나오셨나 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니나, 이 말이 원고 독촉임은 말할 것도 없다.
“글쎄 지금도 원고를 써 볼까 하다가 답답해서 또 나왔지요.”
“내일 모레까지가 정말 최종 마감입니다. 선생님 아직 점심 전이시지요?”
사실은 나도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다.
“오늘은 날이 제법 덥습니다. 냉면 생각이 나는데요.”
밤 아홉시부터 복통이 일어난다. 이윽고 구토와 설사. 새로 두 시가 넘기까지 십여 차나 변소를 드나들었더니 통 맥이 뽑히고 속이 부영거려서 그 이튿날까지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음날도 오정이 가깝도록 누웠다가 겨우 미음 한술을 마시고 머리를 들고 앉았노라니 A지의 편집인이 또 찾아온다. ‘내일 모레’ 라던 원고 최종 마감일이 바로 오늘이라, 원고 때문일 것은 물을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여느 때에 원고를 못 썼다고 대답하던 때와는 달리 마음이 괴롭지 않게 대답할 수가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원고를 못 썼을 것은 뻔한 일이었을는지 모르나 복통 때문에 못 썼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놈 그날 냉면이 탈인가 봐. 그만 제육을 빼랄걸 또 잊어버리고.”
낚시질
난생 처음으로 당고 쓰봉에다 등산모까지 받쳐 쓰고 낚시 도구를 메고 나서니, 어쩐지 그저 어색한 것만 같아 마음이 활짝 펴이지를 않고 몸매에만 자꾸 눈이 간다. 더욱이 손때라고는 묻어 보지도 않은. 아직 칠이 채 글지도 않은 것 같이 반들거리는 새 다랭이가 처음으로 낚시질을 나서는 신출내기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아 거기에도 신경이 쓰여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괜히 그저 낚시 다랭이를 이 손 저 손 바꿔 쥐게 만든다.
하긴 내가 낚싯대를 메고 나서게 되리라고는 내 자신조차도 참으로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조군은 아마 자기의 권유에 내가 자기와 같이 낚시질을 나서는 줄로 알는지 모르나, 무슨 낚시질은 고상한 취미라거니. 건강에 어떻다거니 하고 권유를 하었으나, 나에겐 하등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는 나대로 한번 하여 보고 싶은 충동을 새삼스럽게 받았을 따름이다 어쩐지 요새 나는 사람이 싫어지며 무슨 우리에나 갇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함을 더한층 심절히 느끼게 되어 나를 온통 잊고 한번 살아 보고 싶은 생각이 나를 이 길로 이끌게 된 것 같다.
그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조군의 낚시질 강의에 낚시질에 관한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된 것이, 이 길로 나서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혹 모른다. 그리하여 조군이 애초에 낚시에 손을 아니 대었더라면 나 역시 그와 같이 낚싯대를 지금 메고 나서게 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가 나선 길로 같이 나서는 것을 반가워하거니와, 낚시질꾼처럼 반가워함을 나는 일찍이 본 일이 없다. 어제 다방에서 만나, 나도 내일부터 낚시질을 나서련다고 그 뜻을 전했더니, 아, 그 반가워하는 품이란……. 조군과 더불어 사귀어 오기 무릇 20여 년에, 그것도 거의 매일같이 마주 앉아 놀면서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슬퍼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같이 즐거워하고 진심 이 라고 알게 마음을 털어놓고 지내왔지만 내가 낚시질을 나선다는 그 말을 듣고 반가워 하는 그 표정은 실로 일찍 이 그가 반가위하는 표정 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그런 반가운 표정 이었다. 이렇게 반가운 일이 어디 있을까 하는 그런 심정이 그 표현 속에 흔연히 서리어 있음을 나는 확실히 보았다.
나도 반가웠다. 고기 잡는 것을 본위로 삼고 나서는 낚시질꾼이야 어디 있으랴만, 그까짓 고기는 못 잡더라도 보기 싫은 것, 듣기 싫은 것 다 피하여 좋은 벗으로 더불어 수변에 나란히 앉아 자연인 그대로가 되어서 그날그날을 보내게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건 우리의 생활 주변에선 일찍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행보로는 불과 십 분 미만에 낚시터인 장자못을 접어들게 된다. 조군은 선배답게 여기는 깊다느니, 저기는 얕다느니 하고, 또 수초가 많은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느니 하고 설명을 하며 앞장을 서서 걸어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낚시질꾼은 더 많이 앉은 것 같았다. 우리도 꽤 일찍이 나오느라고 서둘렀건만 벌써 나와 앉은 사람이 좌우의 뭇 주위에 얼마씩의 상거를 두지 않고 점재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그냥 걸어 내려가던 조군은 활직같이 구부정하게 패어 들어간 우무러진 곳에 이르자, 이미 그곳을 마음속에서 점치고 나왔던 것처럼 다짜고짜 거기에다 도구를 내려놓았다. 나도 따라서 그 곁에 앉았다.
“자,”
하고 조군은 낚싯대 케이스의 단추를 떼며 나를 바라본다.
“자, 우리 멀지시 앉세 낚시질은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는 재미없네. 더욱이 가까운 처지에서는.”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러면 자연히 이야기도 주고받고 하게 될 것이니까 낚시질에는 정신 통일이 잘 안 될 것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반면에 우리로서 느낄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 느낌 속에서 나는 날을 보내고 싶었다.
“무얼, 우리 여기 그저 가지런히 앉아서 같이 하게.”
하고 나도 케이스 단추를 같이 떼었다.
케이스 단추를 나도 따라서 떼는 것을 본 조군은 좀 당황해하는 기색이더니,
“자넨 저기 저 아래로 내려가 앉게. 한참 내려가면 수초도 별로 없고 좋은 곳이 많이 있을 걸세.”
하고 좋다든 싫다든 이짝의 의견은 들어 볼 여유도 주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만 그저 훌쩍 일어서 도구를 걷어들고 총총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올라갔다.
평소에 낚시질을 그렇게도 권하던 조군이, 아니, 어제 낚시질을 나도 하기로 마음을 결정 하였노라는 소리를 듣고는 그렇게도 반가워하던 조군이, 오늘 낚시질 터로 나를 급기야 데려다 놓고는 평소에 볼 수 없던 싹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 칼바람이 얼굴에서 일어난다.
조군의 이러한 거동을 보는 그 순간, 나는 마치 장자못 가에 데려다버림을 받은 존재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서 낚시를 던졌다.
주름살 한 올이 안 잡히는 잔잔한 수면 위에 곤두선 두 개의 찌가 조용히 내 시야에서 가물거렸다.
해 뜨기 전에 나가야 큰 놈을 잡는다고 항상 붕어의 생리를 설명하던 서군은 지금에야 나온다.
“잘 물리나?”
“아직 맛도 못 봤네.”
“그래! 위에서들은 벌써 여러 마리씩 잡았던데. 조군은 일곱 치 가웃이나 될 놈을 한 마리 낚아 놓구.”
하면서 급한 듯이 걸음을 멈추려고도 아니하고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자기의 찌에는 여지껏 이상이 없다. 나는 낚시를 들어 보았다. 미끼도 물린 그대로 있다. 다시 낚시를 던지고 깻묵을 또 한 번 더 뿌렸다.
보면, 건넌짝에서들도 가끔 한 마리씩 들어내는 눈치요, 옆 어디선지는 모르나 머지 않은 자리에서는 어지간히 큰 놈을 낚는지 낚싯대를 꺾 이었다고 수선거리고들 있는데, 참 이상도 했다. 자기의 낚시찌는 오정이 가깝도록 까딱도 않으니. 초수면은 고기를 낚지 못하고 놓쳐버릴 우려는 있을는지 모르나, 초수의 낚시라고 통 고기가 아니 올 이치는 없을 게 아닌가. 깻묵이 약한가, 나는 깻묵을 또 한 줌 찌 가에 널찍이 쥐어뿌리고 다시 낚시를 들어 미끼를 검사해 보았다. 피라미 새끼 한 마리 와선 건드려 보지도 않은 흔적이다.
“오늘 참 낚시질 풍세 좋습니다. 바람두 한 점 없구.”
돌아다보니 이 변두리 사람인 듯한 풍채의 초로(初老)다.
“많이 잡으셨나요?”
“많인커녕 고기라곤 구경도 못 했소.”
“아, 그러세요! 저 아래서들은 꽤 많이들 잡던데요. 어떤 젊은 친구가 낚시 세 틀을 가지고 하기에 한 대 달래서 잠깐 동안에 내가 큰 놈을 한 마리 잡아 주고 올라오지요.”
하고 그 초로는 내 옆에 쪼그리고 앉더니, 내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한 짝 낚싯대를 집어 든다. 그리고 줄을 당기어 미끼를 검사해 보려고 더듬어 잡던 그는
“아니, 선생님 낚시질이 처음이로군요. 그러니까 고길 못 잡으셨지. 이 못물이 두 길도 넘는데, 요 지혜를 주어 가지고야 피라미 새낀들 집적거리겠어요!”
수심이 두 길도 님는다는 물속에다 두 뼘 가웃의 지혜! 만일 이 시골 사람이 아니었더면 진종일을 그 두 뼘 가웃의 지혜를 그냥 달아 놓고 앉아서 고기가 물릴까 하고 기다리고 앉았을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 그것두 신통히두 지혜가 같습니다그려, 아니, 수심이 두 길두 넘는 데다! 아침 한나절을 괘니 눈씨름만 허시구.”
“흐! 그게 다 세태 인심의 반영 인가 봅니다.”
동태(凍太)
아니 아니 하면서 몇 잔 더 더 들었다고는 하나, 약주 되반을 셋이서 나누고 이렇게 다리가 휘청 거려 보기는 처음이다. 지푸라기로 지느러미 짬을 뀌어 슨가락에다 감아 쥔 두 마리의 동태가 휘청거리는 걸음 따라 손 끝에서 곤두춤을 춘다.
달마다 월급날이면 한 잔씩 하는 것이 통례였고 아무리 군색해도 가족을 위하여 소고기 한 근씩은 사들고 들어갈 줄을 알던 것이, 오늘의 월급봉투는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월급으로는 그달 그달을 살아갈 수가 없는 살림에, 이 봄에는 아이놈이 국민학교엘 들어간다, 입학금이니 교과서니, 이것저것 치다꺼리가 눈에 차지도 않는 것이, 사만 환의 봉급에서 삼만여 환이나 가불을 월초에 하였던 데다가 사원의 가족사망 위문금이니, 결혼 축하금이니 하는 것들을 제하고 나온 봉투는 얄팍하게 앞뒤가 착 달라붙은 것이 손맛에서부터 마음이 선뜻하였다. 세어 볼 것도 없이 이천팔백오십 환밖에 들어 있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걸 가지고 다섯 식구가 한 달을 살아야 한다!’
받아 든 봉투를 그는 넣으려고도 아니하고 그냥 들고 앉아서 눈을 내려 깔았다.
언제라고 예산을 세우고 살림을 하여 본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만 환도 못 되는 이 봉투로 한 달을 살아가야 한다는 데는, 애초부터 절약이니 무어니 하고 생각해 볼 성질도 못 되었다. 예산 없는 생활이라, 따져 보면 못 살 것 같다가도 그래도 어떻게 꾸리어져 나가게 되는지 기적적으로 한 달을 넘어가고 또 한 달을 넘어가고 해서 그 한 해를 넘기어 오곤 했으나, 이제부터는 이런 기적조차도 딱 스톱이 되고 말 것 같았다.
오는 달 열흘만 되면 그 뒤에는 또 어찌 되든 가불을 할 셈치더라도 남은 이달을 채우고 그 열흘까지 보름 동안은 살아가야 할 것이 막연하였다.
그러나 묘책이 있을 리 없다. 결론은 역시 기적을 바라고 되는대로 살아갈 도리밖에 없다. 발 잔등에 떨어진 불부터 또 꺼 가며 보자, 내일 아침 양식이 없으니 천구백 환 정도는 우선 떼어 쌀 닷 되는 들여놓아야 이달은 살겠고, 또 전차비가 있어야 출근을 할 테니,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걸어간다 치더라도 보름 동안에 열다섯 장 칠백오십 환은 가져야 한다. 이천팔백오십 환에서 이천육백오십 환을 제하고 나니 남는다는 게 또 돈 이백 환, 약주 한 잔도 친구들과 나눌 여유가 없다. 이런 때면 제법 술꾼이나처럼 비위가 동하는 약주, 내가 언제 이렇게 술 맛을 알았던가 스스로 쓴 침을 삼키며 앉았다가 퇴근 시간이 되어 동료들과 함께 밀려 나왔던 것이, 봉투들은 제대로 다들 골라서도 그래도 월급날 섭섭하지 않느냐고 농탐이 되어, 셋이 어울려 술집으로 들어가 남의 술로나마 울적한 마음을 다소 풀기는 하였으나, 월급날이면 잊어 본 일이 없던 가족을 위한 소고기 한 근 생각이 간절도 하였다. 그래도 자기는 어쩌다가 오늘 저녁 처럼 이렇게 밀려다니게 되면 빈대떡이나 곰탕 그릇이 생기게 되는 때가 있지만 집에 파묻혀 있는 가족들은 날이면 날마다 그날을 그날처럼 까야 하는 게 김치조각 뿐이다. 동태국이라도 한 끼 끓여 먹여야 하겠다, 술집에서 나오자 종점 시장으로 들어가 동태 두 마리를 사서 들었던 것이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여전히 휘청거리는 다리에 진정을 얻지 못하고 중얼중얼 미아리고개를 비틀거리며 추어 오른다.
별안간 휙 하고 모진 바람이 옆에서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무엇이 몸을 스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이 허전하다 내려다보니 손에는 동태가 없었다.
“어렵쇼.”
술에 젖은 게슴츠레한 눈에 힘을 주어 뜨고 고개를 제껴 앞을 내다보았다. 한 대의 지프차가 저만치나 앞에서 질풍같이 내닫고 있었다.
“어렵쇼, 동탤!”
연월(煙月)
술기운이 몸에 얼근히 젖어 들면 어린 자식이 한층 더 귀여워진다. 인제 애빈 줄을 제법 알아보고, 방안에 들어와 앉기만 하먄 벌레벌레 기어와 무릎을 파고들며 벙긋거린다. 그럴 때면 정 말 통으로 깨물어보아도 만족할 것 같지 않았다. 뺨을 들입다 빨다가는 말랑거리는 엉덩이를 파악팍 두들겨서 울리기까지 한 일도 있다. 그래도 마음은 개운하지 않다. 지금도 기어드는 자식의 빰을 빨다가, 엉덩이를 두들기다가, 뒤쳐 업었다. 사랑하는 자식과 더불어 정릉 부근으로 산책이나 하자는 것이었다.
아직 술은 취하는 도중에 있나 보다. 들어올 때보다도 좀더 다리가 휘청거려진다. 진정 할 수 없는 다리가 애비에게는 괴로운 일일는지 모르나 업힌 자식 에게는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엎어질 듯 엎어질 듯, 더구나 돌부리를 차고는 끄떡 하고 앞으로 쏠리어 허튼 걸음을 되는대로 비뚝실 땐, 그것이 왜 그리 좋은지 꺄드득 까드득 아주 여무지게 웃어 댄다.
아버지는 까드득거리는 자식의 웃음소리가 더할 수 없이 귀엽다. 위태로운 걸음은 좀더 위태로위 진다. 까드득거리는 소리에 좀더 흥이 실리는 모양이다.
위태로운 걸음이 돌부리를 찼다. 뒤뚝 하고 몸이 모로 쏠린다. 잔등 엣것이 공중 쏟아져 땅 위에 떨어진다. 왼쪽 눈초리가 지츠러졌나 보다. 거기서 피가 흐른다. 아버지는 하하 웃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흐르는 피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자기의 양복 엉덩 이짝에 쓰윽슥 비비고 “어비 어비” 달래며 다시 뒤쳐 업 는다. 걸음은 여전히 위태롭다. 몇 결음 안 가서 뒤뚝 하더니 아이는 또 공중 빠져 떨어진다. 이번에는 상처가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다치긴 어디 단단히 다친 모양이다.
울음소리가 숨이 넘어가는 듯 자지러진다.
아버지는 “어비” 소리를 또 연방 지르며 뒤쳐 업는다 뒤뚝, 뒤뚝, 이리로 쏠렸다 저리로 쏠렸다 골목길 좌우 변두리를 뒤쓴다. 자식은 울음을 뚝 그친다 또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 몸을 일며 뒤뚝거려도 아버지의 등은 맛이 있나 보다. 울던 아이 같지도 않게 꺄드득 웃음이 또 터진다. 웃음소리에 아버지의 마음은 그냥 즐겁다. “어허 이 자식이 이 자식이!” 아버지의 다리에는 좀더 흥이 실린다. 내어디디는 걸음이 넓직넓직 활발하다. 그럴수록 등어리의 자식은 웃음이 여무지다. 더할 수 없이 즐거운 표현이리라. “이 자식아 이 자식아” 아주 흥에 실려 비뚝시다가 그만 뒤뚝 모로 또 쓰러진다. 아버지는 그대로 그 자
리에 쓰러졌고, 자식은 그 옆 개울에 거꾸로 떨어져 들어갔다. 개울 옆의 돌담에 맞부딪쳤게 말이지 그렇지 않았더면 얼마나 더 멀찍이 나둥그러졌을는지 모른다. 진칭·물에 처박힌 아이의 주위로 벌건 핏물이 줄기 따라 펴진다. 어디 상처가 난 모양이다. 가겟집 부인이 뛰어 나와 아이를 건지려는 아버지를 밀어내고 손수 들어내어 가슴에 안는다. 취한 아버지를 신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받아 들려고 하나 부인은 자식을 건네지 않는다. 아이는 감탕투성이 그대로 부인의 가슴에 안겨서 구냥 다리를 버둥거리며 운다. 피는 왼쪽다리 복숭아뼈 짬 부근에서 났다. 아이를 받아들려고 자꾸만 내미는 아버지의 손을 부인은 한사코 물리친다. 아이도 아버지의 품으로 건너가겠다고 악을 쓰나 부인은 응하지 않는다.
“안 되겠어요. 댁이 어디세요? 제가 댁까지 안아다 드릴게요.”
“천만에! 이리 주세요.”
“아녜요. 선생님은 취하셨어요. 아이를 못 업습니다.”
“못 업으나마나 당신이 남의 자식 을 무슨 상관이오, 이리 줘요?”
아버지는 아이를 안은 부인의 팔을 붙든다.
“글쎄 선생님은 아이를 또 메칩니다. 어서 제게 맡기고 같이 댁으로 가세요.”
“아. 이 여자가 납의 자식을 빼앗으려나 보다! 날 취한 줄만 아나부지.”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부인은 사정이 딱했다. 어이를 주어서는 기필코 또 메칠 것 같으나, 그런 사정을 보아주기에는 그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게 무지하다.
“그럼 아이를 선생님이 업으세요. 제가 부축해서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하고 부인은 아이를 그 아버지의 등에다 업혀 주었다.
지금까지 발버둥질을 하며 악을 쓰던 아이는 애비의 잔등으로 건너가자마자 금시 울음이 뚝 그친다.
“이거 보세요. 이 자식이 제 애비를 이렇게 아지 않아요? 자식이 참!”
하고 “이 자식이, 이 자식이” 하면서 가던 길로 또 뒤뚝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부인은 아버지의 옆에 서서 같이 결어가며 아버지가 뒤뚝 하고 걸음이 위태로울 때마다 아이가 쏟아지는 것 같아서 두 팔을 불쑥 내밀곤 한다. 그러면 아이는 저를 어르는 줄만 알고 좋아서 끼드득거린다. 이 소리엔 아버지도 만족하다. 몸을 들추며 걸음이 활발해진다. 걸음이 활발해질수록 위 태로움은 수반이 된다.
“아유머니, 또!”
아버지가 쓰러지는 것을 부인은 보았다. 아이는 저만치나 빠져나가 길 한복판에 정면으로 엎드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워 그 아버지의 옆에 바틈이 붙어서 따라갔건만 날래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아버지는 앞에 질린 실개울을 건너뛰려다 건너 뚝 언덕에 구두코를 걸렸던 것이다. 땅에다 박은 아이의 이마 언저리에서는 시뻘건 피가 번져 나왔다. 부인은 달려가 아이를 들었다. 피는 이마에서 났다. 무지하게 피가 쏟아지는 것으로 보아 상처가 심한 모양이었다 부인은 저고리 소매 구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아이의 상처에 눌러대고 황급히 인근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부인의 원하는 응급치료를 의사는 응하지 않았다 아이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이는 아이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부인은 아이를 병원 침대에 눔힌 채 하는 수 없이 병원을 나와 그 아버지를 찾아, 사고 현장으로 발길을 되돌렀다.
아이의 아버지도 이마에 상처를 받은 모양으로 피를 흘리면서 비뚝비뚝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부인은 아이의 상처가 심하니 어서 병원,으로 가서 응급치료를 시켜야 한다고 아이의 아버지를 재촉하였다. 그러나 술에 마비된 그의 걸음은 그저 한양대로 한가롭게 비뚝실 뿐이었다.
이윽고 병원으로 이르렀을 때에는 아이의 목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뇌진탕을 일으컸다는 것이다.
“이 자식이 죽었어! 정말 죽었니? 이 자식아!”
아버지는 침대 위에 그린 듯이 누운 아이의 팔목을 잡아 흔들었다. 아이는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 아까같이 까드득거리며 웃음으로 대해 주지 않았다.
“이 자식 정 말 죽었구나!”
아버지는 자식 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죽었다! 그러나 아비의 등에 업혔다 죽었으니 한은 없을 거라.”
하면서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러나 자식도 아버지의 말과 같이 아버지의 등에 업혔다 죽었으니 한이 없을 것인지, 원체 두살잡이라 말은 못 하고 행동으로밖에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였지만, 행동으로조차도 인젠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눈을 굳게 감은 자식이었다.
맨발
하루는 다방 동백에 앉아 있노라니까, 왕군이 불쑥 들어오더니 아무 인사도 없이 나의 맞은짝 반 의자에 와서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마치 소가 하품을 하듯이 허어엄 하고 이상한 한숨을 길게 내쉰다.
하도 태도가 이상해서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없이 한참이나 바라만 보고 있다가
“왕군, 왜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그대로 씨익씩 하고 한숨만 쉬고 앉았더니
“선생님 댁 주소가 어디지요?”
하면서 고개를 반쯤 들고 힐끗 곁눈으로 한 번 나를 흘겨본다. 하는 태도가 필시 나에게 무슨 불쾌한 감정이 있는 모양 같았다.
그래 그건 왜 새삼스럽게 묻느냐고 하니까
“찾아뵐 일이 있습니다.”
딱 잘라서 하는 대답이 심히 불순한 것 같은 어세였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나 나에게 불쾌한 감정을 품은 그를 어쩐지 나는 딴 자리에서 만나기는 싫었다.
“나를 만나자면 아마 내 집에서보다는 이 다방에서 만나는 것이 더 쉬울 겁니다. 밤에 잘 때밖엔 집에 붙어 있지 않는 것을 군도 미상불 알 건데. 위선 콧구멍만한 방이 누추해서 친구들한테 뵈기두 싫구, 또 불이라곤 내가 든 뒤로 한 번도 넣어 본 적이 없이 차기가 이만저만한 냉돌이 아니니, 이런 방에다 누굴 오라고 하겠소. 실은 내 자신도 방에는 들어앉았을 수가 없어서 밤낮이 다방 신세만 지고 있는 형펀인데.”
하고 가정 방문을 은근히 거절하였다.
이것은 그의 심상치 않은 불순한 태도에 대한 방비이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또 사실이기도 했다. 피난 첫 해의 나의 숙소는 실은 그랬고, 또 생활도 사실 그랬다. 그러한 숙소요, 그러한 생활인 줄은 이 친구도 미상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친구에게 농담 아닌 나의 이러한 대답이 물론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자아 주었으리란 것은 미리 나도 짐작하고 한 대답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대답을 하면서도 앞으로의 나의 태도를 취하기 위하여 그의 태도를 예리하게 살피었다. 그러나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것 같은 그의 표정에서는 용이하게 그 무슨 별다른 표정을 지찰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흥분이 되면 먼저 그 눈의 충혈에서 그것을 추찰할 수가 있을 것이나, 이 친구는 본시가 흰자위에 붉은 줄이 서리어 있는 것이어서 그것으로는 추찰이 가지 않았다. 그래 언사에서나 그의 태도를 찾아보려고 거듭 그에게 방문 거절의 뜻을 강조해 보였다. 그랬더니
“아닙니다. 꼭 선생님을 댁으로 찾아 가서 조용히 만나뵈어야 할 일입니다. 여하간 선생님이 댁에 계시는 시간을 그럼 제가 알아 가지고 찾아뵙기로 하겠습니다.”
하고 그도 방문에 대한 초지를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또 인사도 없이 불쑥 다방을 떴다.
그와 나와는 이 다방에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처지、요, 또 만나서는 얼마든지 조용한 이야기도 해 왔다. 지금이라고 이 다방에서 조용한 이야기를 못 할 이치도 없는 것이다. 구태여 버적버적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심사, 그 심사가 어데 있는 것인지, 하도 어수선한 세상이라 나는 궁금 정도를 넘어서 은근히 불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 그를 보내 놓고 혼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와 나 사이에 무슨 이렇달 감정이어서, 또 꼭 둘이서만 마주앉아서 담판을 지어야 할 그런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도 피난민이요, 나도 피난민, 사고무친한 이 남해의 절해고도에 떨어진 피난민끼리의 의분이 란 참으로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들 친척이나 매일반으로 두터웠다. 그런데다가 그와 나는 글을 좋아하는 처지에서 누구보다도 좀더 각별히 지나는 사이였다. 다만 좋아하는 그 글의 분야가 다를 뿐으로 그는 시, 나는 소설, 그래서 글을 쓰는 형식이 다를 따름이었다. 그리고 문단적 인 지위에 있어서, 선후배의 관계가 있었을 뿐, 그리하여 나에게는 문단적인 지반이 있었고, 그에게는 지반이 없었다. 흔히 이런 관계에서 오해를 가지는 수가 있듯이, 혹 이 선후배 관계의 지위에 무슨 오해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될 때, 그가 나에게 시를 가끔 제시하고 비평을 요청하여 왔을 때, 그는 싫어하든 좋아하든 나는 내가 본 대로 솔직히 비평을 가해 오곤 한 것이 비위에 틀려서 참다참다 폭발이 되는 감정은 아닐까도 생각을 해 보며 그날의 해를 그 다방에서 예전이나 다름없이 보내고 저녁 식사를 위하여 또 마지못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용하게도 그는 내가 집에 있을 만한 시간을 잘 파악했다. 저녁 식상을 필 물려 놓자마자 숨을 헐떡이며 찾아왔다. 열다섯은 역력히 되었으리라, 양쪽 팔고비 부근이 여지없이 해어져서 너불거리는 거무스름한 뀌어진 쉐타에, 역시 무릎마디가 들창이 난, 무슨 빛깔인지도 알 수 없이 변색이 된 흙빛에 가깝다고 해야 할 쓰봉을 그래도 옷이라고 꿴 허름한 웬 아이 하나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서더니 아까 낮에 다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앞으로 바틈이 마주 앉아선 또 소처럼 긴 한숨을 씨익 내쉬면서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한참이나 그대로 묵묵히 앉았더니,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어덴지 이번에는 아까 다방에서와는 딴판으로 진정이 담긴 듯한 어조로 눈시울부터 적신다.
대체, 이 친구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정말 알 수가 없어서 그저 그의 태도만 나는 또 살피고 있노라니
“선생님, 저는 요 몇 시간 전까지라도 선생님을 여지없이 원망했습니다.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없는 것 같애서 선생님과 저 사이에 맺은 우의에 있어서 일대 담판이라도 짓고 망신이라도 좀 톡톡히 주어서 제 참을 수 없는 분을 풀어 보려고 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잘못인 것을 바루 조금 전에야 알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제가 이런 불순한 생각을 품게 되었던 무지를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제가 아까 낮에 다방에서 선생님을 댁으로 찾아뵙겠다고 부득부득 고집을 부릴 때, 저의 무지한 태도에 선생님은 응당히 불쾌하셨을 것입니다. 아니, 그런 기미를 저는 역력히 추찰하면서도 고집을 피웠던 것입니다. 선생님,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그는 들었던 고개를 다시 또 푹 숙이며 긴 한숨을 뺀다.
처음엔 무엇을 잘못했고, 또 지금 와서는 무엇을 사과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아는 수가 없어, 나는 그저 그대로 멀거니 앉아서 그를 바라만 보며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밖에 없었다.
“실은 제가 바루 요전 크리스마스 날 제가 근무하는 고아원에 이번 크리스마스를 기하여 구제품으로 똑똑한 옷가지가 여러 점 배급이 되었기에 선생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걸 몇 점 ―양말, 쉐타, 쓰봉, 그리구 넥타이 두 개에다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우리나라 인절미를 조금 사서 거기다 동봉을 하여 댁으로 보내 드렸던 것인데, 구제품이라 선물로는 예의가 아니었을는지 모룹니다만, 선생님도 군색한 피난살이라 형편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래도 제 딴에는 선생님 생각이 나서 정말 선생님을 좀 도와 드리고 싶은 생각에서 보내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 저로서는 선생님에게 제 정성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삼차 만나서도 이렇다 인사말 한마디 없으신 선생님을 대할 때, 저는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자식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구제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다니!’ 하고 선생님이 고집하시는 자존심만으로 저의 정성은 여지없이 묵살해 버리려는 처사만 같아서 실로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분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연 저의 오해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고 옆에다 앉힌 아이를 힐끗 돌아다보며
“이 망할 자식이 선생님 댁으로 전해 드리라는 그 옷가지를 전해 드리지 않고 가지고 가다가 도중에서 다 팔아먹지 않았겠습니까. 인절미는 제 입에다 처넣구요¨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딴 친구에게도 그런 옷가지를 이 자식에게 같이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만 그 친구 역시 만나서도 이렇다 인사말 한마디 없기에 그적에아 이상해서, 그 친구와 저와는 너나들이를 하고 지나는 처지이므로, 왜 인사도 없느냐고 따졌더니, 무슨 농담을 정색으로 하느냐고 도리어 눈이 둥그레서 반문을 해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적에야 저는 그 옷가지가 선생님에게 보낸 것이나, 이 친구에게 보낸 것이나 그것이 모두 심부름을 시켰던 이 자식이 전해 드리지 않고 장난질을 했던 것임을 알았겠지요. 그래서 조사를 해 보았더니 글쎄 이 망할 자식이 그 옷가지를 온통 동문통 시장 양복장수한테 가져다 팔아 처먹었던 것입니다. 그래 너무도 약이 올라서 이 자식을 잠아 죽일까 하다가 위선 선생님에게 사과나 시켜놓고 보려고 붙들고 왔습지요. 제가 변명을 하느니보다 이 자식의 입으로 직접 선생님에게 사과를 시키려고요.”
이 말에 비로소 그 알 수 없던 수수께끼가 풀리었다. 그러면 그렇지, 왕군이 나에게 무슨 원한을 품을 그러한 일은 숫제 없을 것이다. 듣고 보니 왕군은 나를 건방지다고 원망도 했을 법하고, 또 지금 와서는 미안함을 느낄 법도 한 일이다. 그 고아에게 대하여 약이 오를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 같다. 한참이나 그냥 정면으로 그 아이의 낯짝을 흘기고 있던 그는
“이 자식아, 죽을 죄로 잘못했습니다 하고 이 선생님에게 사과드려라.”
하고 그 아이의 팔목을 끌어서 내 앞으로 한 물팍걸음 가까이 앉힌다.
그러나 그 아이는 끄는 대로 끌리어서 내 앞으로 나앉을 뿐, 처음 방으로 들어와서 앉았던 그런 자세 그대로 그저 맞은편 벽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식아! 잘못했다고 선생님에게 사과를 드리라는데, 입이 붙었니? 이 자식!”
하고 주먹을 그의 앞으로 한 번 불쑥 내민다.
그래도 그 아이는 움직이지도 안하고 그대로 앉아서 그 무엇을 참는 듯이 얼굴에서 퍼런 물이 젖어들며 광대뼈 언저리를 푸들푸들 떨었다.
“야, 이 자식아! 선생님 앞에서 네 입으로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드리는 것을 보아야 내 면목이 설 게 아니냐? 이 병신 같은 자식아! 입이 붙었어?”
하더니 왕군도 참을 수 없는 듯이 그 아이의 뺨을 손바닥으로 소리가 요란하게 한 대 후려친다.
“왜 때리세요? 선생님!”
그 아이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무엇이! 왜 때려? 모르겐 이 쌔끼!”
“아니 그럼 고아원으루 나온 구제품을 고아들에겐 안 노놔 주구…… 전 양말 한 켤레도 못 얻어 신었어요. 보세요 전 맨발이에요.”
하고 그 아이는 무릎 아래다 깔고 앉았던 맨발을 들썩 하고 드러내 보인다.
“이 쌔끼가! 이 버르장머리가!”
하고 다시 왕군의 손은 그 아이의 뺨으로 한층 더 힘차게 건너가 부딪쳤다.
“때리긴 왜 자꾸 때레요. 사실이 안 그래요 그럼?”
——이 이야기는 언젠가 수필 형식으로 썼던 것을 창작화하여 본 것이다.
〔발표지〕 * 《현대문학》 통권 74, 75, 77, 78, 79호(1961. 2. ∼7.)
〔수록단행본〕 『신 한국문학전집』 제6권 (어문각,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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