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6일 - 랑비앙산을 오르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먹은 마지막 날이다.
아무리 다 돌아볼 수 없다해도 그래도 달랏 일주일이다.
날씨 때문에 미루었던 랑비앙 산....비가 와도 오르려 한다.
오전 10시 배고프다.
오늘 산을 오르려면 고도만 600m지만, 돌아돌아 오르려면 2km는 염두에 두어야하지 않을까.
밥먹고 가자. 김치먹고 가자.
전날 술은 먹지 않았지만, 새로이 찾은 <궁>한국식당에서 9만동짜리 선지해장국을 발견했다.
얼큰한 해장국에 밥말아먹고 드뎌 택시타고 랑비앙으로...
랑비앙 주차장.
꼭대기까지 짚차 18만동. 개인적으로 3만동내면 다른 여행객들과 합승가능.
비가 온다. 중턱부터는 구름에 쌓여있다.
꼭대기가도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짚차타고 올라가는 대부분의 여행객들.
그래 시간없지.
짧은 시간에 많은 곳 돌아보려면 비싸지 않은 짚차 타고 올라가는 것도 좋지.
나?
시간 많아. 주체 못할 정도로...
오르내리는 시간 정확히 재보려고 20분동안 주차장에서 커피마시며 게긴다.
드디어 12시.
자~ 가자.
오르는 동안 사진찍어보려고 왼쪽 주머니에 콤펙트디카 하나, 오른쪽 주머니에 비상용 핸드폰디카.
목에 메인 DSRL하나.
솔직히 올라가는 3시간 동안 단 한번도 카메라를 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47살 내 나이.
그 좋아하는 담배 피지도 못하고(헥헥 대느라), 꼭대기까지 쉬지않고 3시간을 걸었다.
18만동짜리 찦차타고 올라가는 것들. 얼마나 부럽던지...
얼마나 남은지도 모르고, 또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터벅터벅 내려오는 베트남청년 두 사람.
-얼마나 남았어?
-다 왔어.
흥..내가 그 말을 믿을 줄 알고? 한두번 속아봐야지.
니들 조금이라는 말, 우리는 니우니우 nhieu nhieu (많이 많이)야.
물어보고 한시간 후, 나는 안개에 쌓여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에구~ 시간은 많았지만, 힘이 없다는 것을 미쳐 깨닫지 못한 늙은 나. 후회막심.
후들거리는 두 다리 움직여 200여평 정상을 돌아다닌다.
랑 총각과 비앙 처녀의 슬픈 사랑이야기.
안개에 렌즈가 젖어 맑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마치 비오는 날, 제주도에서 윗세오름에 올랐던 같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힘써 올라간 한라산에서 구름 말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기억.
허탈 웃음 허허지으며 걷다가 드디어 지익~하면서 미끄러진다.
고령(?)에 어울리지 않게 재빨리 두손으로 받치는 동시에, 오른 손바닥에 물컹 잡히는 그 무엇.
에이 띠, 말똥이다.
비에 젖어 충분한 냄새를 피우는 베트남 랑비앙산 정상의 말똥.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덜 쪽팔리다.
진흙 만진것처럼 손에 황토흙을 잔뜩 발라 나무에 비빈다.
그래도 냄새는 어쩌지 못한다.
내려가자. 내려가다가 아무거나 찍자.
여기까지 와서 영상을 못남길 수는 없다.
그동안 달랏을 그리면서, 랑비앙산에서 찍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달랏도시 전체에 대한 환상은 버리기로 했다.
오늘만 날인가. 남들이 올려놓은 깨끗한 랑비앙보고 참자.
1월의 재회를 기다리며,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던 비오는 날의 랑비앙산을 찍어보기로 했다.
<누구나 랑비앙산에 가면 이걸 찍는다. 그래서 나도....>
<자..이제 올라가자....보다시피 산전체가 구름에 쌓여서 아래쪽 밖에 안보인다>
<고도가 높기 높나보다. 보이는 건 정말 빙산의 일각이다>
<온통 황토 흙이다>
<산 중간에 만들어진 작은 길이 보이는가. 요상하다>
<산등성이마다 예쁜 하얀마을이 들어서있다. 알고보니 무덤들이다>
<구름에 쌓인 정상은 이렇든 길도 보이지 않는다>
<문이 잠겨있어서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방갈로라 치고는 넘 작고, 화장실 치고는 넘 크다...뭘까?>
<저쪽 울타리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지만 어떤 배경을 생각하며 찍고 있을까?>
<위의 놈이 싸놓은 똥인갑다....나를 미끄러뜨린 주범이다>
<락족의 랑과 킬족의 비앙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조각상이다. 우리의 견우와 직녀 정도 되겠다>
<정상에 있는 찻집이다. 가격은 싼편에 속한다. 커피한잔에 6000동>
<요건 분명히 이동식화장실이다. 철판으로 되어있어 들어가면 감옥독방같을게다>
<연인끼리라면 비오고 구름낀 모습이라도 좋다. >
<랑비앙산을 180000동 받고 오르내리는 찝차>
<나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렇게들 많이 올라왔다>
<산 정상이라면 항상 저런 통신탑이 설치되어 있다. 흐린 날 보니 운치있다>
<이곳 정상까지 야유회를 온 사람들이 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베트남친구들 야유회는 정말이지 순박하다. 지금 허리허리에 손을 잡고 상대편 꼬리 잡기 시합을 하는 중이다>
<자 이제 내려가자. 시야가 밝아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운무에 쌓인 길도 때론 운치가 있다>
<랑비앙산에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대표적인 꽃 세가지>
<달랏의 소나무는 가지가 약하다. 바람이 불면 이렇게 통째로 떨어진다>
<이렇게 떨어진 침엽들은 길가에 쌓여진다. 걸을 때 이걸 밟으며 걸으면 무지 푹신푹신하여 발이 편하다>
<산불조심>
<나무땔감을 베어 오토바이에 잔뜩 싣고간다. 여긴 경운기가 없다>
<뿌리와 나무가 겹쳐져 구분이 힘들다>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 나무 뿌리지...>
<중턱쯤 내려오자 저 멀리 달랏시내가 보이지만, 흐리다>
<이미 죽어버린 나무가지 끝에서 새로운 잎이 자라는 거 보니 신기하다.>
<누가 이랬을까? 참 버릇들도 고약하지...이거 차시경 거울 맞아?>
<개울 건너 소수민족이 사는 집이 있다. 건너가다가 떨어질까봐 무서워서 사진만 찍었다>
<길가에 내지른 말똥, 비에 젖어 그 모습이 리얼하다>
<무슨 열매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애호박에 줄그어 수박인 척 하나?>
<개미집 01>
<개미집 02>
<달랏의 말은 용감하다. 풀뜯다가 떨어져 죽는다는 겁도 없나보다>
<사진에선 평범하지만, 실은 폭폭빠지는 진흙탕길이다. 베스트 도라이버~!>
나를 태우고 왔던 잘생긴 마일린 택시기사,
여전히 미소 띠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얄미운 놈...
-안 디 더우? (어디 갈래?)
-메 쿠아 (피곤하다).
그래도 아직 밝은 오후.
금 계곡으로 한번 가보자.
금 계곡은 작년에 개발되어 아직 달랏주민들도 생소한 곳이라고 한다.
산 아래 호수도 적당한 크기로 하나 있고, 아주 예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달랏은 공원으로 개발되어, 꽃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 이외에는 별 볼 것이 없나보다.
도이 므엉 머도 그렇고....
그냥 예쁘게 단장한 화원 말고는 아무런 흥미도 없다.
내일 아침 일찍 무이네로 가기로 했다.
일주일을 비와 함께 보내니 슬슬 더운 공기와 바다가 그리워진다.
한까페로 가서 아침 7시 버스를 예약한다.
6시반부터 기다리라지만 나는 안다 적어도 7시반까지는 안올거라는거.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궁> 한국식당에 가서 12만동짜리 제육복음을 시켜 하노이보드카와 저녁을 먹는다.
이번 겨울 다시 보자는 인사와 함께 주인에게 50만동을 맡겼다.
남반 가족들이 오면 이 돈만큼만 식사를 대접하라고...
사람좋아 보이는 여주인이 알아서 해주리라 생각한다.
거추장스럽게 길어 버린 머리가 싫다.
그래서 이발소로 향한다.
스포츠머리 이발사에게 <조금만, 아주 조금만 - 뇨, 럿 뇨>라고 열심히 주문했지만,
여전히 이 놈들은 내 머리를 군바리 머리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서 머리 깎은 내가 잘못이지, 니들 잘못이겠냐.
귀지를 파주는 것은 아주 능숙했다.
시원하게 잘 팠다.
이미 손톱깎기로 잘라버려 더 이상 깎을 곳도 없는 손톱을 못생긴 여자애가 정성껏 또 깎는 척 한다.
내버려 두었다.
또 한 기집애가 다가와서 어깨를 주물주물하는 모양을 하며 마사지를 권한다.
그래 해라. 오늘이 달랏 마지막인데 마사지라도 시원하게 받고 가자.
마사지는 여기서 안된단다.
2층 전용룸으로 가야 한단다.
알통박힌 종아리로 올라가기 싫었지만, 또 그냥 올라가기로 했다.
문을 열자 2인용 더블 침대가 보인다. 요 기집애는 크림통 하나만 달랑달랑 들고온다.
아차.
이 마사지가 그 마사지가 아니구나.
이 마사지는 거시기 마사지였다.
콤 득 콤 득 (안돼 안돼) 안디베냐(나집에 갈래)
이발, 귀지파준 거, 손톱 다듬어준거 합해서 10만동 주고 얼른 빠져나왔다.
비는 멈춰있었고...이제는 정말 들어가서 잘거다.
3분이면 갈 호텔까지 운전기사는 뺑글뺑글 돌아서 10분에 걸쳐 도착해준다.
에라이 썩을 넘....
첫댓글 날씨가 도와주질 못했구나,안타깝네...들어감김에 마시지 받고 나오지 이사람아 ㅎㅎ
돈보다는 HIV가 무섭다네 이사람아...
잘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에라이 썩을 넘.... ] 마지막글 압권입니다 ㅎ..ㅎㅎ
제 트래이드마크입니다. 뭐 한두번 당하나요...ㅎㅎ
아주 재미있고 실감나게 읽었습니다.^^ 저도 한번 가봐야겠네요.제일 좋은건 좀 시원하다는... 호치민은 넘 더워요...ㅠ.ㅠ 좋은 경험담 감사합니다.
좀 시원한게 아니라 많이 시원합니다. 새벽에는 이불 끌어다가 덮었다는...
사소한 장면에도 세세하게 사진에 옮겨 놓은 순순한 마음씨에 찬사를 보냅니다^~^
순순한 마음씨가 아니라...나 이런 것도 보고 쓴다는 자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