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걷는다. 말기의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투석치료는 유일한 연명(延命)의 방법이다. 나는 지난 2014년 6월 24일부터 혈액투석치료를 시작했다. 투석 이후 쓰기 시작한 병상메모『I ♥ Kidney』에는 오늘까지 241차 투석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내 병은 타고난 체질과 그동안 나쁜 식습관으로 당뇨병과 고혈압을 불러왔다. 투석은 콩팥의 기능이 망가진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이 이식수술의 기회를 놓치고 투석기에 매달려 혈액 속의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하고 전해질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치료법이다. 혈액투석에 앞서 한쪽 팔에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동정맥루(動靜脈瘻) 수술로 투석에 필요한 혈관을 확보하는 일이 먼저다. 동정맥루를 통해서 분당 250~300ml 정도의 혈액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다.
인공투석기는 1942년 2차 대전 중 독일의 Willem Kolff에 의해 착안된 뒤 개선을 거듭하여 1967년부터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투석치료는 혈액을 체외로 뽑아서 투석막으로 걸러 정화된 혈액을 다시 체내로 넣어주는 치료법이다. 투석치료를 위해서는 접근 통로가 필요하다. 그 통로를 동정맥루라 부른다. 혈관이 투석하기에 가늘어서 여의치 못하면 인공혈관을 넣는 수술을 하게 된다. 투석 때마다 노폐물과 건체중(Dry Weight)을 넘어서는 만큼의 수분을 제거하고 전해질의 균형을 유지시킨다. 투석용 바늘은 통상 15게이지(1.829mm)로 굵다. 주사바늘이 굵은 이유는 혈액 속의 적혈구와 같은 혈액세포들이 터지거나 변형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투석기는 인간 신장 역할을 대신하고 혈관은 몸과 투석기(dialyzer)를 연결하는 생명선이다.
적절한 혈액투석이 이루어지면 환자가 자각하던 여러 가지 요독증상(오심, 부종, 가려움, 구토, 전신 쇠약감, 검은 피부 등)이 완화된다. 혈액투석치료는 주 3회 12시간 동안 계속된다. 배정된 침대에 누워서 이틀에 4시간씩 투석치료를 받는다. 그러니까 일주일의 7일 중 사흘은 병원을 오가고 나흘은 집에서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하게 된다. 일주일을 화, 목, 토요일은 병원의 닫힌 공간 투석실에서, 일, 월, 수, 금요일은 내 서재가 있는 열린 공간에서 지낸다. 하루 걸러 또 하루를 맞는 삶을 통해 두 공간에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공간을 지배하는 별난 일상이다. 혈액투석을 받는 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7시 전까지 투석실에 가야하고 4시간 동안 투석치료를 받는다. 투석이 끝나면 지혈하는데 30여 분이 걸린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두 시간 몸을 추스려야 한다.
가능하면 가족 중 한 사람이 간병을 전담할 수 있으면 좋다. 하루의 일상은 6시간 이상 숙면하고 해질녘에 한 시간 정도 걷고 스트레칭과 맨손체조를 병행한다. 오후에 피곤하면 30분 내지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잔다. 식사는 잡곡과 건과류를 피하고 나트륨 함량이 높은 짠 젓갈류와 장류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칼륨(포타슘) 함량이 높은 과일, 야채를 적당량 먹고 야채는 2시간 이상 물에 당근 뒤에 먹는다. 인 성분이 많은 유제품과 곰탕, 잡곡, 현미, 산채, 콜라 등은 제한하고 콜레스트롤과 포화지방산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양질의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 투석환자의 식사는 이를 충분히 고려하여 집에서 차려주는 밥상이 최상이다. 부득이 외식을 해야 할 때는 간이 진한 반찬과 조리를 피해 메뉴를 골라야 한다.
2016년 4월말 현재 우리나라에서 혈액투석치료를 받는 환자수는 6만9천837명에 달한다. 투석치료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신장이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투석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지면 더불어 삶도 안정되어 간다. 투석치료에 길들여지면서 서서히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두 편의 에세이를 쓰고 하루 100여 페이지의 책을 읽으며 매주 서점에도 들른다. 서점에서는 여유를 가지고 신간을 살펴본다. 관심 있는 책은 서문과 목차를 읽고 메모하며 양이 많을 때는 휴대폰으로 촬영을 해둔다. 그리고 지역주민을 위한 인문학 강좌에 재능을 기부하며 음악회와 영화감상의 기회를 갖는다. 무엇보다 주일미사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여름에도 에세이집도 내고 옛 다이버들과는 격월로 통영에서 만나 옛 정을 나눈다. 창 너머 황령산과 광안리 앞바다를 바라보며 바흐와 쇼팽의 선율을 즐긴다. 그리고 퍼스에 사는 손녀, 리아와는 화상채팅으로 그리움을 나눈다.
2015년 12월 이른바 ‘웰다잉법’ 또는 ‘존엄사법’이라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 제정되었다. 우리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근거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법안에서는 연명치료 중단 대상 환자를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임종기 환자'로 규정하고 있다. 웰다잉법은 후 내년, 2018년부터 발효된다. 웰다잉법에서 규정한 연명치료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거부 등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자연스럽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기로 연결하는 혈관 두 곳에 15게이지의 굵은 바늘을 사용한다. 처음 투석용 바늘이 혈관을 찌를 때는 아팠다. 부모의 손에 끌려 병원에 들어설 때 흰 벽과 크레졸 냄새, 흰색 가운을 입고 청진기와 주사기를 든 의료진에 놀란 아이에게 “하나도 안 아프다.”은 거짓말이 되고 그만 겁에 질려 울음보를 터뜨린다. 그러나 투석환자는 그 모든 걸 다 참고 이겨내어야 한다. 처음에는 부분마취를 했으나 이젠 잘 참는다. 많이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것이다. 동정맥루 수술을 한 오른팔의 혈관은 니들링과 지혈의 반복으로 고통뿐인 시련의 상처만 남았다. 그러나 나는 흔히 혈액투석을 줄여서 ‘혈투’라는 살벌한 말을 쓰지 않고 ‘즐투’, ‘행투’라고 한다. 나는 스스로 ‘즐거운 투석’, ‘행복한 투석’으로 자기체면을 건다. 혈액투석치료는 나에게 있어서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이지만 그 길에서 바치는 기도가 생명의 응답으로 메아리친다. 삶의 의지로 불타는 2016년의 찬란한 여름이여!
첫댓글 말로만 듣던 '투석. '투석---' 의학 발달의 열매라 하지만, 결코 예사로운 의료행위가 아니군요. 바오님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러한 고통을 의연히 참으시고 냉정하게 새로운 일상을 잡으시는 의지에 경의를 표하고 십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생생한 경험에 의한 투석의 경위, 또 이에 대한 지식까지 얻게 됐습니다. 병명은 다르겠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숙명적인 질환에 대한 생각,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삶으로 승화시키는 최선생님의 의지, 등등 잘 읽었습니다.
늘 좋은 작품을 쓰십니다만, 어느 작품보다도 훌륭한 글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정이사님의 응원에 감사를 드리며 열심히 투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