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임자인 철인69호의 뒤를 이어 한국으로 배치받게
되어 본격적인 임무수행에 들어가게 된다..
이 곳은 참 희한 곳이다..
거의 모두가 같은 생각..같은 행동을 한다..
애국심..뭐 이딴 것들만 끼어들게 되면 거품을 물고
모든 것들은 유행에 따라 강요된다..
만약 다르다고 생각되어지면 사정없이 공격을 받는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폭탄들을 쉽게 사회속에 침투하여
암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들은 보구, 엘루 등의 폭탄
자체소식지를 통해 <삼단변신 화장술>, <유행의상 코디술>
등을 연마하여 한반도내에 강고한 기반과 폭넓은 지뢰
지대를 양산하고 있었다.
폭탄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은폐코자 <페라가모(閉裸加毛)>
라는 神秘의 의복을 착용하는 고급변장술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폭탄조직의
정조직원임을 상징하는 문신인 기미, 주근깨, 잡티등이
안면부에 자리잡구 있다는 점이었다.
폭탄들은 이러한 문신을 감추기 위해 18단계의 정교한
피부보정 메이크업을 시술하고, 직사광선을 피해 주로 저녁
시간부터 활동을 하는 특징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폭탄처리의 큰 장애는 이들 폭탄이 자주출몰하는 지역이 신촌, 강남역등 인구밀도가 비교적 높은 곳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을오지에 격리한 후 뇌관을 점화하여 강제폭발시키는 방법을사용키로 했다.
따라서 나도 <띠띠방방 야타족(夜陀族)>으로 변신할 수
밖에 없었다. 폭탄의 등급이 높을수록 베엠베나 포르세 등
고급 교통수단을 선호하기 때문에 야타족으로의 변신은
불가피하였다. 수질이 우수한 나이트에 배회하며 호시탐탐
오폐수 방류를 시도하는 이들이 주타겟이었다.
이들을 유인하여, 양수리나 양평 등 대중교통의 접근이 불가능한지점에서 <내려놓고 토까기(土假技)>라는 환경친화적 폭탄해체기술을 사용하였다.
폭주하는 폭탄제거청탁과 많은 작업량으로 고된 시간이었지만,한반도 수질환경개선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업무처리에 대해 본부에 아래와 같은 중간보고를보내었다.
- 폭탄 처리 실적 중간 보고서 -
S여대 음대 날라리 某양
- 분류: 건방과다증 인명살상용 대인지뢰
- 특이사항: 알콜 과다복용으로 인한 지방간 초기 증세, 똥꼬치마에 짙은 분장, 나이트 웨이터랑 호형호제, 취미는 쇼핑
- 조치: 본인의 필살기인‘갈구기(技)’를 이용, 혈도를 봉한 뒤 연락을 씹어 무공을 폐함
뉴욕 맨하탄 수입 오렌지 某양과 시녀
- 분류: 배금주의성 공대공 미사일
- 특이사항: 외제차 소유, 그녀를 뜯어먹고 사는 시녀 다수 보유
- 조치: 시녀 한명에 뇌관 장착후 기폭장치 점화, 장렬히 산화
들어가지 않아도 수준은 알 듯했다..
야밤에 할일없이 방구석에 앉아 컴퓨터나 쳐다보는 킹카는 없을테니..
결국 내가 방을 만들기로 했다.. 평범한 걸로..
「가진 건 돈밖에..」
한 여인이 들어왔다.. '아름공주'라 했다.. 쯔쯔..
내 할일이 생긴 것같다.. 자신을 스튜어디스(*) 시험 준비중
이라고 소개했다.자신을 귀찮게 하는 무리들이 많아 밖에
나가기가 두렵다 했다..
* 편집자註) 비행기 승무원의 경우 외모는 그다지 떨어지는 사람도 없지만.. 출중한 킹카도 없다.. 예전엔 생활이 어려운 시절이라 비행기 승무원이라 하면 사람들은 조금의 환상을 가졌었지만 비행기를 왠만하면 탈 수 있는 현재에는 그런 환상도 많이 깨어졌다 실제로 그들은 힘든 육체노동자이다..
직접 만나 그녀를 보니 과연 밖을 나갈 수 없을만 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내 두배는 될 듯한 머리.. 솥뚜껑만한 손..
80년대 세계 여자농구계를 평정한 중국대표팀 '진월방'이
환생한 듯했다. 과연 그녀가 비행기를 타면 뜰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에 스쳤다.
그녀의 외모만 보아서는 대단한 핵폭탄임이 분명하였다..
한국은 국가적으로는 NPT(*)조약국으로 비핵보유국으로
알고 있었으나 개개인마다..동네방네..핵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편집자註)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핵보유국이 비핵보유국에 대해 핵무기를 제공하거나 비핵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목적으로 68년 워싱턴 런던 모스크바에서 조인된 조약. 한국은 75년 가입하였으며 한국은 잠재 핵보유국으로 분류됨.
그녀의 위용에 긴장감이 밀려와 콧구멍이 발씸거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내 앞에 버티고 선 대갈마녀에게
신속히 '폭탄판별법 제1호(*)'를 실시하였다..
* 편집자註) 폭탄판별법 제1호 - 자격지심(自激之心)을 이용한 판별법
판별할 상대에게 넌저시 말을 건넨다. '너 폭탄이지..?'
킹카의 반응.. 파안대소 후 '하하..재밌어..나 폭탄맞어..'
주변인의 반응.. 파안대소 후 '핫핫..대단한 조크여..'
평범인의 반응..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오옹...나 폭탄아냐..'
주변인의 반응.. 일순 긴장하지만 이내 미소를 띄우며
'야..평범아..농담도 못하니..?'
주변인의 반응.. 사색이 되며..할말을 잊는다..
정도에 따라서는 귀가를 서두르는 경우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폭탄은 맹렬한 폭음을 내며 폭발했다..
이 커다란 핵폭발은 커다란 검은 뭉게구름과 후폭풍으로
반경 1km이내의 모든 인명의 시신경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생각보다 쎈데..'
언제나 내 길이 멀고도 험함을 안다..
하지만 내 임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한시도 쉴 수 없다..
오늘도 얼굴을 스치는 서울의 밤공기는 신선하고..
언제나처럼 매스미디어에서 들리는 목청 큰 '파시스트'의
외침이 도시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극비실험] 헌티드실험, 그 결과를 알려주마
1999.9.15.수요일
엽기연애부 불루쎈수
유사이래 최초로 헌팅에 대한 학문적 고찰과 이론적 집대성을 이룬 본지가 새롭게 기획한 밀레니엄 프로젝트인 <헌티드실험>이 드뎌 끝났슴다. 엽기연애부 기자덜 모두 똥꼬를 맞대고 심하게 부비문서 심혈을 기울인 총화단결의 결정체 <헌티드실험>을 마침내 해내고야 만 것임다. 여서 박수 함 치고.
지난 기사에 재료덜의 소개가 나간 이후 본 기자에 몇몇 재료덜의 연락처를 갈켜 달라던 은밀한 멜이 수십통에 달했슴다. 본 헌티드실험의 취지를 망각하고, 은밀한 뒷거래를 벌일라구 했던 뇬넘들.. 너거뜰은 명랑헌팅문화 창달을 막는 민족애정계의 공적이야 ! 진취적 자세와 호연지기는 삼국통일할 때만 필요한 거 아님다.
자.. 지난 두 번에 걸친 헌티드공지, 실험재료 공개에 이어 이번 호엔 지난 토욜 홍대앞에서 펼쳐진 헌티드의 임상 실험결과가 올라감다. 다들 마빡 모니터에 밀착시키시라.
지난호에 <헌티드재료공개>기사가 나간 후 몇몇 재료는 갑자기 쏟아지는 주위의 반응에 당황스러워 한 듯 했다. 이전까지 사회적 홀대와 무관심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뚜벅뚜벅 걷던 그들에겐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본 기자에게도 몇몇 재료들의 연락처를 갈켜 달라는 넘들의 멜이 수십통씩 쌓여 가면서 재료들이 겪고 있을 극심한 정체성 혼란이 심히 염려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극도의 아노미현상을 겪던 몇몇 재료는 수면장애와 피부트러블을 본 기자에게 호소하면서, 실험포기를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미 재료공개와 실험공고까지 다 끝난 마당에 이러한 반항은 처절한 응징만이 있을 뿐..
본 기자는 재료덜에게 그런 증상이 엄습할 때마다 젓가락을 두 손에 모아, 방에 있는 콘센트에 지긋이 꼽아넣구 명상에 잠기는 충격요법을 권하였다. 가끔 증상이 심해질 땐 두 손을 찬 물에 담근 후 이를 시행하면 더욱 큰 효과가 있음을 친절히 갈켜줬다.
실험 D-DAY 하루 전 ..
예정대루 실험재료들의 상견례가 있는 날이었다. 이전 재료 면접시 재료들간 불의의 눈맞음을 우려하여, 철저한 분리 면접을 실시했기 땜에 재료덜끼리 첨 만나는 날이었다. 더구나 헌티드 실패시 재료들끼리 즉석 짝짓기를 하겠노라고 공표하였기에 이 날 치열한 눈치작전과 내숭이 난무하리라 예상했다.
바뜨.. 이들은 과연 험난한 관문을 통과한 최정예 헌티드재료다웠다. 재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잠시의 탐색전을 끝내자 지들끼리 < 니 몇 번이니? 난 몇 번이게..>, <니 진짜루 사진보다 훨 이뿌당> 하하호호 하문서 해피한 지꺼리를 마구마구 연출하고 이써따. 이들의 놀라운 단결력에 낼 헌티드가 실패하면 이들 조직이 집단린치를 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길 정도였다
엽기적인 뇬넘들..
더구나 재료들의 심적부담을 덜고 재료간의 친목도모를 위하야 초저녁부텀 술판을 벌이자, 이들의 화기애애함은 긍극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간신히 밤 10시경 흥분된 재료들을 겨우 달래 도원결의의 술판을 마치구, 낼 실험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다시 만나기루 하였다.
내일을 위하야~! 핫둘 하이링~!
실험 D-Day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똥꼬는 발그레한 날씨이었다. 심혈을 기울인 헌티드실험이 우천관계로 망칠까바 걱정했으나, 민족 헌팅이 나아갈 바를 단군님께서도 내려보고 계신 듯 화창한 날시였다. 실험 시작 30분전.. 하나,둘 모여든 재료들과 함께 떨리는 맘으로 홍대앞 놀이터루 향했다.
모두덜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실험결과에 그들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재료덜의 긴장을 덜어주기 위해 쭈쭈바를 돌렸지만 본 기자도 흥분된 똥꼬털들이 미세하게 떨려옴을 감출 수 없었다.
홍대 놀이터에 헌티드실험을 알리는 안내문을 덕지덕지 붙이고 잠시 후 재료들이 공개될 벤치에 앉았을 때, 웬 아줌마가 다가왔다.
헉~ 이 아줌마는 홍대놀이터의 청결을 책임지는 청소아줌마였던 것이다.
홍대 놀이터야 공공시설이니 따로 장소 섭외는 필요없으리라는 본 기자의 짧은 소견이 무참치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미리 놀이터 관리자에게 박카쑤라두 돌릴껄하는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글타..이 세상에 쥔장없는 땅떼기는 암대두 엄따. 홍대앞 놀이터마저도 지역이기주의와 님비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간과한 본 기자의 실수가 뼈에 아려따.. 바뜨, 딴지엽기연애부의 명랑애정행각이 이 정도의 백태클에 자빠질 순 없는 일.
결국 아줌마의 근면과 요새 절믄거뜰의 싹수엄씀을 개탄하며 약간의 분위기를 띠운 후, 박카쑤 한 병으로 간신히 장소섭외를 마칠 수 있었다.. 헌팅의 저변확대를 위해선 절믄거뜰 각자의 어그래씨브한 마인드 함양과 엽기내공의 축적 못지않게 헌팅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함을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었다.
(근데, 정작 헌티드가 시작되자 이 아줌마는 떡볶이집 의자까지 들고와선 자리잡구 < 아..내가 이십년만 절머써도 직접 하는긴데.. >하문서 젤 욜씸히 구경했었다. )
실험
여자재료 헌티드 실험
아줌마를 간신히 달래구 나니 실험개시시간인 3시가 다 되었다...
3시정각, 기념촬영 한 방 찍구 이미 짜여진대루 요자재료덜을 각 벤치에 투입했다. 요자재료의 실물이 공개되자, 헌팅단/ 참관단들이 사진빨과 실물을 비교,분석하며 분임조 토의하는 소리가 나지막히 들려왔다.
3시가 넘어 섰음에도 예상보다 적게 모인 헌팅단의 숫자에 내심 당황했지만, 본 기자가 요기서 흔들린다면 이는 헌티드실험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것은 뻔한 일. 마침 놀이터 앞에서 모소주의 시음회를 하던 도우미덜에게 21세기 명랑사회건설과 에로토피아구현을 위한 본 실험의 취지를 장황히 설명한 후, 헌티드실험의 실황중계토록 꼬드겼다.
첨엔 얼떨떨해 하던 이들도 헌티드실험의 취지에 감동한 나머지, 욜씸히 중계방송을 하더니만 결국 헌팅에 성공한 커플에게 소주 한 박스를 경품으로 제공하는 뜻밖의 협찬까지 해줬다..
기특한 거뜰.
근데, 썰렁한 초반을 그런대루 수습해 놓자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많은 잉간들이 놀이터 방방곡곡에서 재료들을 둘러싸고 있었으나, 정작 실험시작 20분이 넘도록 헌팅을 시도하는 잉간이 암도 엄는 것이다.
그저 놀이터 난간에 매달려 욜씸히 재료들을 감상하고 있을 뿐.
아.. 그토록 본지가 엽기공력증진과 어그레시브한 마인드함양을 부르짖었는데,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발생할 줄이야. 아직 내적수양이 충분치 못한 헌팅단은 헌팅재료들을 원로댄쑤가수 나미의 <빙글빙글>처럼 그저 바라만 보구 이찌.. 그저 속만 태우고 이찌.. 였다.
졸지에 수많은 남정네의 시선을 360도 서라운드로 받아대는 재료들. 무쟈게 쑥스러울 꺼 같았다. 언제 지들이 일케 많은 늑대들의 시선을 받아봤게써.
실험시작 25분.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두 명의 엽기헌팅전사들이 나란히 재료들로부터 사이좋게 뺀치를 먹은 후엔 홍대앞 놀이터에 그저 정막만이 감돌 뿐이었다. 아~ 안타까바라. 그들 중 한 명은 지난 헌티드재료 소개기사를 칼라로 프린트해서 현장에서 실물과 즉석비교하는 치밀함마저 보였건만, 현실은 그에게 냉험하기만 했다.
실험이 시작된 지 40여분쯤 됐을까.
어디선가 한 넘이 홀연히 놀이터 안으로 걸어들어가더니 1번재료 앞에 딱 섰다. 본 기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라 멀리서 걍 바라만 보구 있었다.
근데 이게 왠 일. 몇 마디 쑥덕이더니 감자양이 핸드백을 챙기구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감자양이 안분지족을 깨달은 것일까. 우짜됐든 이 둘은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재료와 헌팅단의 축하 세레모니와 박수 그리고 환호 속에 놀이터를 떠나갔다.
첫 성공사례에 고무된 듯 헌팅단에선 술렁임이 일었다. 그러나, 역시 암도 나서는 넘은 없었다. 아~ 똘망똘망 관망하는 저 헌팅단넘들은 진정 무엇을 원한단 말이뇨. 그들은 재료덜을 박물관에서 고려청자 감상하듯 그저 바라만 볼 뿐. 어찌 이들은 경국지색을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한단 말인가.
결국 실험마감 10분전, 재료덜이 가진 마지막 거부카드를 회수하여 무장해제시키는 편법까정 동원할 수 바께 엄써다.
그리고, 로스타임까지 적용한 끝에, 5번 MISS 엑쑤의 헌팅을 끝으로 여자재료덜의 헌티드를 마쳐야 했다. 결국 헌티드에 실패한 3명의 요자재료는 쑥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홍대 놀이터를 쓸쓸히 빠져나갔다.
총 전적 8명 뎀벼서 2명 성공, 6명 뺀치. 안타까운 전적이었다.
남자재료 헌티드
헌티드에 실패한 요자재료의 비참한 말로를 목도한 남자재료들의 표정에는 독기어린 비장감이 서려 있었다. 앞선 요자헌티드실험에서 두 장의 거부권이 과감한 댓쉬에 큰 걸림돌이라는 자체평가팀의 현장분석에 따라 남자재료들에겐 달랑 한 장의 거부권만 쥐어졌다.
그러나, 이미 헌팅단의 반수가 빠져 나간 상황. 헌팅단의 다수가 넘이었고 뇬들은 별로 없는 상황.. 아.. 과연 한 넘이라두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실험 시작 20분경과.
숨죽인 긴장감만이 홍대 놀이터를 감싸고, 가끔씩 비둘기의 고공 배변쇼에 놀란 요자헌팅단의 비명만이 간간히 울릴 뿐이었다.
이 때, 정적을 깨구 놀이터를 가로질러 모령의 여인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망설임없이 2번재료를 낚아챘다.
순식간에 출현한 헌팅녀에 당황한 김영석군은 지대루 반항조차 못한 채 벤치에서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불과 수 초만에 이루어진 신기의 헌팅비술을 만인앞에 과감히 펼친 이 뇬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녀는 모 쐬주 시음회에서 협찬받은 <헌티드 최고커플> 부상인 쐬주 한박스까지 챙긴 후 2번과 함께 인파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다. 잠시 후, 4번재료도 헌티드 성공. 홍대 놀이터를 떠나가는 그의 어깨가 성공의 흥분으로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헌티드 마감시간이 다가오자 또 다시 남자재료들의 거부권을 몽땅 회수하고 말았다. 이미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파악한 재료덜은 순순히 따랐다. 결국 헌티드마감 3분전, 3인조 떼거리헌팅단의 픽업에 의해 재료넘들은 몽땅 떨이루 헌팅됐다.
우짜됐든 남자재료덜은 전원성공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헌티드를 마감하였다. 덕분에 남는 재료끼리 즉석짝짓기를 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헌티드에 실패한 세명의 요자재료덜은 승부의 비정함을 뼈저리게 느꼈으리라.
결국 실험내내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했던 재료덜은 그날 밤 광란의 뒷풀이를 치뤘다. 홍대앞 테크노빠. 이들은 이미 헌티드재료가 아니었다. 에쵸티와 에쑤이에쑤의 엽기버전. 그들은 그렇게 불러야만 했다. 현재 이들은 헌티드실험 1기라는 조직을 설립하여 끈끈한 유대를 과시하고 있다.
[국제] 대만에서 클롱 뜨고 에좃티 조땐 사연
1999.9.15.수요일
딴지 대만 특파원
귀하는 대만이 어떤 나라인지 아시는가.
중국어에 관심이 좀 있는 아해들을 제외하면 아마 다들 잘 모르실 게다. 한땐 아시아 반공전선의 혈맹으로서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적도 있으나 지금은 외교관계도 없고 각종 교류 역시 뜸한 그런 밍밍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의 인지도 역시 그러한 외교관계 실태를 벗어 나지 않는다. 암것도 모르거나 이름 정도 아는 수준... 신문 좀 보는 넘이라면 요즘 중국과 양국론인가 뭔가로 분위기가 좀 심상찮은 동네라는 것까지는 알 것이고.
그럼 대만이 아는 한국은 얼마만큼인가.
거의 비슷하다 할 수있다. 즉, 조또 모린다. 좀 열받는 것은 우리는 옛날에 신문들이 한창 떠들어 댔던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랭이니, 아시아 신흥공업국이니 해서 홍콩, 대만 그리고 싱카폴이 우리와 거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산업화가 진척되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던 것에 비해 이 대만넘들은 한국을 저개발국가에서 좀 벗어날만 하다가 동아시아 금융위기로 다시 석기시대로 돌아간 그런 나라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대만언론들의 악의적인 보도방식과 - 우리가 과거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던 사연을 떠올려보시길 - 졸부근성을 가지고 있는 대만대중들의 편협한 사고방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문제는 오늘 다룰 얘기가 아니므로 여기서 줄이기로 한다.
앞의 얘기들은 다 독자제위께 어떠한 '분위기'를 전해 주기 위해서이다. 한국 가수들이 대만에서 활동한다는 데 그 구매자들인 대만 일반대중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 것인지, 대충이나마 감을 전해 주기 위해서이다.
한국을 예로 들어 보자. 한국에서 뜬 필리핀 3인조 댄스 그룹? 태국에서 날아 온 태국 최고의 틴에이저 그룹? 이런 소리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가? 가짜 근대화의 논리에 오염된 한국 아해들은 노래도 근사한 미국과 일본의 노래만 듣는다, 아닌가?
본기자 감히 단언한다. 우리를 'something cool' 로 봐 주는 사람들은 대만에는 거의 없다. 그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현상만을 두고 말한다면 한국은 대만에게, 미국이나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일으키는 그 어떤 cool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뭐 꼭 잘 보이려고 할 필요도 별로 없지만, 대만이 한국을 보는 시각은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젠 기본 '분위기'가 전달됐으리라 보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외국에서 한국어 앨범이 반 년만에 30만장 넘게 팔린 일은 아마 단군 이래 처음일 것이다. 조용필도 서태지도 못 해냈던 일이다.
전말은 이렇다.
작년 월드컵을 전후로 우연히 대만 Mtv에 클론의 월드컵 응원가가 소개되었고 예상 외로 좋은 반응에 고무되어 내친 김에 소개된 빙빙빙 뮤직 비디오가 말그대로 떠버렸다.
당시 대만에 있던 기자는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한국어로 된 빙빙빙 노래를 들으며, 이거 낯선 것에 호기심이 많은 대만인들의 특성 탓이려니 하며 곧 지나갈 현상 정도로 치부했었다.
본기자가 틀렸다.
각종 챠트를 휩쓸고 뒤늦게 앨범이 발매되고 암튼 클론 열풍은 식을 줄 몰랐다.
얼마 뒤 클론 본인들이 대만을 방문하고 공연에서 클론이 보여 준 뛰어난 춤 솜씨와, 특히 구준엽의 섹쉬한 몸매는 그 열풍에 불을 질렀다. 뭐 대충 이렇다. 클론의 3집은 대만에서도 동시에 발매되어 그들의 2집만큼은 아니지만 어쨓든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 IFPI Taiwan International Top 10 -
Year: 1998 Week: 36 (1998/09/14 - 1998/09/20)
This Week Last Week Wks. on chart Peak Position
Title Artist
1 2 4 2 Bing Bing Bing Clon
2 1 16 1 Where we beiong Boyzone
3 3 4 3 Shine LunaSea
4 6 6 1 海之Yeah All Stars
5 6 2 5 Maxi Kingdom 5 Various
6 4 3 4 Armageddon O.S.T.
7 7 2 7 Love Diary Various
8 Re 21 1 Auqa Auqa
9 9 1 9 Back to titanic O.S.T
10 NEW 1 10 Now,that's what I call love Various
- 대만 국제차트에 등장한지 4주만에 정상을 차지한 클론...
일이 이쯤 되니까 한국의 기획사들은 이거 뭔가 껀수가 터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영어로 노래 부르고 밖에 나가서 녹음하고 외국 가수랑 같이 녹음도 하고 암튼 한국의 내노라하는 가수들이 기를 쓰고 해도 잘 안된 해외진출인데 잘 알지도 못하고 생각도 안하던 대만이란 나라에서 한국어로 된 앨범이 그렇게 많이 팔리다니.
이래서 디바가 두번째로 대만을 오게 된다. 이번엔 사전 준비도 꽤 했었고 클론이란 처음의 대성공 직후라 대만언론도 적잖은 관심을 보여 주는 등 사전 분위기가 상당히 유리한 편이었다. 결과만 말하면 디바도 성공이었다.
대만 아해들의 돌연한 한국 노래열풍은 대만사회에서도 상당히 기이한 현상이었다. 분분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본기자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식 댄스음악의 독특한 멜로디와 리듬감이 대만 아해들의 귀에 상당히 어필했다는 것, 그리고 대만, 홍콩의 어느 가수도 따라 할 수 없는 신출귀몰한 춤솜씨. 아마 한국의 기획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의 에좃티가 대망의 대만정복에 나서게 된다.
결과는... ?
다섯 마리의 춤추는 펭귄이었다.
노래가 전혀 안 뜬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연장에서의 관객들의 그 차가운 반응, 아마 에쵸티 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럼 왜 실패했을까.
TV로 공연을 보던 본기자의 친구 왈, 쟈들은 춤을 저리도 춰대면서 어떻게 노래까지 저렇게 잘하는감? 아... 본기자는 그 때 깨닫고 말았던 것이었다. 립싱크는 너무나 한국적인 문화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끼린 그냥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거지만 이 잘 모리는 대만아해들에겐 그저 거부감을 일으킬 뿐이라고.. 립싱크하며 춰대는 저 현란하고 격렬하고 희한한 한국 10대 댄스그룹의 춤솜씨도 기냥 아크로바틱 체조로 보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에좃티의 뒤를 따른 젝수키수의 처참한 실패 역시 기자에겐 예상된 귀결이었다. 한국에서 제일 잘 생기고 노래도 제일 잘 부른다... 어쩐다나 하는 말또 안되는 광고를 내세우며 왔다가 비슷하게 망신만 당하고 간 우리의 두 그룹...
현재 한국의 가요시장을 양분한다는, 그러나 밖에 나가서 도저히 진짜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우리의 두 그룹. 한국엔 10대 댄스그룹 밖에 없다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 주고 간 우리의 두 그룹...
그리고 이름을 알리는덴 어느 정도는 성공했지만 이번에 반짝한 홍보활동이 끝나도 그들의 앨범이 과연 계속 팔릴지 의문스럽다는 점에서 에쑤이에쑤와 핑콜 역시 애써 만들어진 한국노래 붐을 진정으로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리게 할 만한 인재가 아니었다는 점에선 동일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이제 립싱크는 대만의 언론에서도 잘 모리는 대만시청자들을 위해, 저건 노래에 맞춰 입만 벌리는거라고 친절히 설명해주는 그런 단계에까지 왔고 이런 기회가 일방적인 문화수입국이었던 우리가 수출국으로 전환하는 어떤 계기가 되기를 바랬던 기자는, 클론의 30만장 앨범 판매의 신화가 말 그대로 신화가 되어 버릴 것 같아 착찹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가수들이 왜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 외국넘들 돈 뺏어 올려고? 그냥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외국에서 일방적으로 문화상품을 수입하고 일방적으로 우리끼리 좋아하는데서 벗어나 정상적으로 동등하게 교류하고 수입하고 수출하고 상호반응하는.. 뭐 이런 문화적 발전을 바라는 것이다.
우리도 대만에 가고, 일본에 가고, 필리핀에 가고 또 더 나아가 서구시장에 가서 우리 걸 보여 주고 그 동네애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그런 반응과 대응 속에 진짜 문화의 힘이 길러지지 않겠는가.
한국의 대중음악은 정말 10대 댄스그룹밖에 보여 줄 것이 없는가.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공감할 만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인가. 본기자 아니라고 믿는다. 근데 자꾸 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리고, 아크로바틱한 춤만 줘대는 10대 떼거리 아쉐이들만 대만까지 와서 모처럼의 기회를 망쳐 놓는 것 같아 정말이지 안타까울 뿐이다.
대만 전국의 음반가게에 버젓한 한국코너가 생길 날은 우리가 잘만 하면 온다. 돈도 돈이지만 문화가 이미 21세기의 전략이자 무기라는 것쯤은 말 안 해도 딴지독자들이시라면 다들 잘 아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대만, 대만엔 누가 와야 하는가. 누군 안 오는게 도와 주는 것인가...
본기자 입으론 말 몬하겠다. 특정팬들한테 맞아 죽을까바서리...
담엔 화교 얘길 좀 해 볼까 한다.
그럼 담 기사까정 안냥. 짜이찌엔. 꾸바닥
이름 : 김민희
(데뷔 초기 다른 민희 때문에 하주라고 잠깐 이름 바꿨었다.
그래서 지금도 기자 언니들 사이에서 하주 민희로 불리기도 한다)
생년월일 : 1982년 3월 19일생
학교 : 신광여고 2학년
키 : 169cm
몸무게·혈액형 : 44kg, A형
가족 관계 : 아빠, 엄마, 5살 위 언니, 3살 많은 오빠
팬레터 주소 : 서울 동작구 상도1동 480-6
현재 활동 : 신원‘Si’카탈로그, 롤롤, 스포트리플레이 전속,
코리아나 화장품 전속, 드라마 ‘학교Ⅱ’와 잡지 패션 화보 모델.
기억에 남는 촬영 : 한겨울 슬립 차림으로 찍었던 패션 화보,
사진작가 권영호씨랑 찍었던 미래 세계에서 나타난 사이버 가수 이미지.
시간 나면 : 컴퓨터 오락하기, 거울 보며 표정 연습하기, 다이어리에 일기를 쓴다.
좋아하는 도시락 반찬 : 에그 프라이, 김치
해보고 싶은 역할 : 말 못하는 사람.표정 연기를 진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캐스팅 : 학교 앞에서 픽업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