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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말에 읽는 20세기 한국의 문제작가 : 시인 백석 세기 전환기에 보내오는 白石 詩의 메시지 ----回復의 精神을 중심으로---- 李 東 洵 1. 머리말 세기말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인간의 삶을 극단(極端)으로 내몰았던 통한의 세월은 드디어 서쪽 바다 밑에 있다는 깊고도 깊은 함지(咸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가? 금세기 중반에 태어나 금세기의 온갖 영욕을 통해 삶과 세계를 배우고, 나의 몸과 마음은 드디어 새로운 세기를 향해 나아간다. 컴퓨터를 켜고 지식과 정보의 대양이라는 인터넷으로 들어가 '세기말'이라는 세 글자를 입력해본다. 검색 프로그램인 한글 알타비스타(Altavista)는 즉각 2,672개의 세기말 관련 자료를 찾았다고 결과를 모니터에 알려준다. 나는 그것들에 대하여 별반 흥미를 갖지 않은 채 이것저것 건성으로 헤매어 다니다가 문득 인상적인 화면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온통 붉은 색조가 바탕에 깔린 한쪽 귀퉁이에서 섬뜩한 해골 하나가 턱뼈를 움직이며 줄곧 어떤 불길한 메시지를 열람자를 향해 보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다시 화면을 클릭해 보니 이른바 우리가 그 동안 자주 들어온 세기말적 징후와 관련되는 죽음, 종말, 멸망, 미스테리, 불가사의, 예언, UFO, 초자연, 재해 이상현상 따위의 흉물스런 단어들이 크게, 혹은 작게 서로 얼기설기 뒤섞여 정지된 꼴로 부각되어 온다. 화면의 해설에 나타난 잔글씨가 워낙 눈에 침침해서 안경을 벗고 자세히 보았더니, 거기에는 도합 아홉 가지의 세기말적 징후가 정리되어 있었다. 첫째 현대 문명의 찬란한 깃발 아래 무참히 파괴되고 있는 자연 둘째 인간 복제의 환호 저 편으로 추락해 가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 셋째 전근대적 가부장적 권위와 극도의 개인주의 속에 흔들리는 정체성 넷째 마약, 집단 광기, 탐욕의 나락과 자아분열에 빠져드는 무모한 대중 다섯째 엄청난 생산적 잉여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 직전에 이른 물질적 욕구와 소비의 과시 여섯째 자본주의적 풍요와 제3세계의 굶주림이라는 콘트라스트 일곱째 정보만 남고 진리는 사라져 버린 학문 여덟째 멈추기를 거부하고 끝없이 폭주하는 통제 불능의 첨단 과학 기술 아홉째 그 뒤편으로 드리워지는 인간성 피폐의 그림자 대체 누가 정리한 것인지, 어떤 자료에서 요약 발췌한 것인지 출전조차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이 내용은 세기말이라는 시간성 속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제반 어려움과 위기의 실상을 매우 정확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보는 이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내용을 본 뒤 나는 다른 자료들을 굳이 열람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좀더 시간을 두고 위의 내용들에 대한 사색을 거친 뒤 호흡을 가다듬고 193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 백석(白石:1912∼?)의 시집을 차분히 읽어보았다. 만약 백석이 오늘까지 생존해 있어서 위에 예시된 여러 징후를 접했다면 어떤 반응을 나타내었을까? 자신이 그토록 문학작품을 통해서 강렬하게 내뿜었던 인본주의적 유토피아의 밑그림과 아름다움의 정서가 너무도 참담하게 무너져 버린 것에 대하여 우선 깊은 탄식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 다음 시인 백석은 여전히 맑고 순정한 눈빛으로 자신의 시작품을 다시금 찬찬히 읽어보아 주기를 요청했을 것이다. 백석을 읽는 것이 여전히 금지되어 있었던 지난 1987년, {백석시전집}(이동순 편, 창작과비평사)이 출간되는 것을 계기로 이듬해 납월재북(拉越在北) 시인들에 대한 해금조치가 발표되었다. 그로부터 12년 세월이 흐른 지금 백석이라는 시인의 존재는 비단 여러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이미 분명한 문학사적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만큼 작품의 대중적 호소력과 독특한 환기의 효과 등이 백석의 시를 매우 자연스럽게 문학사에서의 복원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백석시전집}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일반 독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왜냐하면 1930년대의 한국 시에서 꽤 허전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의 풍속사라든가, 포괄적인 전통문화, 혹은 북방정서에 대한 강렬한 일깨움이 단순히 신선하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어떤 심적인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작품이 표방하고 있는 슬픔의 정신, 혹은 넉넉한 관용의 시학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떠받쳐주는 튼튼한 버팀목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백석이 자신의 문학적 아포리즘에 대하여 밝힌 글을 찾아보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하지만 만주 신경 거주 시절 <만선일보(滿鮮日報)>(1940.5.9∼10)에 발표한 짧은 시평은 그의 문학적 지향이나 기질을 짐작하게 해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이 글은 원래 박팔양의 시집 {여수시초(麗水詩抄)}에 관한 서평 형식으로 발표된 것이다. 이 글에서 백석은 '시인이란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 있는 말을 하고 있다. 진실로 높고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것이 마음을 제사들오어 이것이 아니면 안심하지 못하고 입명(立命)하지 못하고 이것이 아니면 즐겁지 않은 때에 밖으로 얼마나 큰 간난(艱難)과 고통이 오는 것입니까? 속된 세상에서 가난하고 핍박을 받어 처량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혼은 복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고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라면 어떻게 슬프고 서름차지 아니하겠습니까? 시인은 슬픈 사람입니다.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혼(魂)입니다. "외로운 것을 즐기는" 마음도, 세상 더러운 속중을 보고 "친구여!" 하고 부르는 것도, "태양을 등진 거리를 다 떨어진 병정 구두를 끌고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는" 마음도 다 슬픈 정신입니다. 이렇게 진실로 슬픈 정신에게야 속된 세상에 그득찬 근심과 수고가 그 무엇이겠습니까? 시인은 진실로 슬프고 근심스럽고, 괴로운 탓에 이 가운데서 즐거움이 그 마음을 왕래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진실] 부분 이 글에서 백석이 말하는 '슬픈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세상과 뭇 사물에 대한 크나큰 연민이 아닐까 한다. 모든 것을 다 내 마음속에 애틋하게 수용하고, 특히 모든 소외된 사물들에 대하여 따뜻한 가슴으로 끌어안으려는 불교적 자비심, 혹은 기독교적 긍휼이나 사랑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혼'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 '생명을 아끼는 마음' 등은 모름지기 모든 시인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자 품성인 것이다. 백석의 시가 유난히 작고 가냘프고 여린 것, 외롭고 못난 사물과 가여운 생명들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가지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에 있을 것이다. 잘나고 거만하고 자신을 뻐기는 존재나 화려한 사물들은 적어도 백석의 문학적 관심에서 일단 벗어나 있다. 2. 백석의 시는 세기말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는가? (1) 해체된 고향의식의 회복과 생태주의적 시정신 현대인에게 있어서 고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들에게 과연 돌아갈 고향은 있는 것인가? 우리 모두는 언제부터인가 자신도 모르게 고향을 잃어버린 정신적인 실향민이 되어 버렸다. 정처와 지향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에게 고향은 이제 아련한 옛 추억의 박물학적 지식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 돌아 가야할 근원적인 고향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로서의 대지, 즉 자연이다. 백석의 시 전집에서 고향 모티브와 관련된 작품을 찾기란 너무도 쉽고 흔하다. 거의 모두가 고향 이미지와 깊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백석의 시작품에 나타난 고향은 주로 20세기 초 중반 한국 농촌, 특히 관서 관북 지역의 전형적인 풍물과 소재들이지만, 그것은 이미 발표될 당시부터 일정한 시간의 구획이나 지정을 초월하는, 말하자면 민족의 영원한 고향으로 고정되었다. 많은 한국인들은 백석의 작품세계를 통해 자신이 몽매간에도 잊지 못하던 아름다운 고향을 발견하였고, 그 완벽하게 재생된 공간적 이미지에 공감하였다. 그리하여 백석의 시 세계에서 그려진 고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불변의 고향으로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각인 되었다. 1930년대 당시 많은 시인들이 고향을 노래한 시작품을 제출하였지만 백석의 시처럼 지속적, 집중적으로 고향 이미지를 천착해 들어간 경우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고향을 소재로 다루었다 해도 단지 소박하고 애상적인 추억의 대상물로서만 이해되었을 따름이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백석의 시작품에 그려진 고향은 바로 언젠가는 우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안될 근원적인 고향이며 자연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고향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필히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지켜내어야 하며, 가슴속에서 고향의식을 회복해야만 한다.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돌아가야 할 고향, 바로 그것을 생각하고 거기에 의지할 때 비로소 안정적 자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향의 이미지는 오늘날 우리가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담론의 하나로 떠올리는 생태주의적 인식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백석의 시에서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고향의 광경은 하나같이 싱싱하고 때묻지 않은 순정하고 고결한 민족적 정체성을 담뿍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연으로서의 체계이다. 이 거대한 자연이 해체되게 된다면 인간은 곧 음울한 죽음의 공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인은 우리들에게 일깨운다. 산턱 원두막은 뷔었나 불빛이 외롭다 헌겊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문허진 성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이 하늘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정주성(定州城)] 전문 이 작품은 백석이 시로써 데뷔한 첫 작품이다. 그런데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다. 앞의 두 연은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로 전개되다가 마지막 연에 가서는 일시에 그 우울한 색조가 걷히고 있다. 세 번째 연에서 물론 하나의 예측과 가능성으로 제시되고 있긴 하지만 '하늘빛'이란 시어를 중심으로 고달픈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애착을 잊지 말아야 함을 시인은 독자들에게 은근히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청배를 팔러올 메기수염의 늙은이'는 전형적 서민의 한 표상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그 상인의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애틋한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가? 세기말의 여러 문제들과 관련해서 읽을 때에도 이 작품은 적절한 반응을 우리들에게 일으켜준다. 이런 점은 시 [산지(山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조광(朝光)>지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 도합 6연으로 구성된 풍경화였다. 하지만 나중에 시집 {사슴}을 엮을 때에 가혹할 정도의 압축에 정련을 더하여 3연으로 개작하였고, 제목도 [삼방(三防)]으로 바뀌었다. 1연을 그대로 두고 5연과 6연에서 약간의 개작을 하여 1연 바로 뒤에 갖다 붙였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삭제했다. 백석이 자신의 창작과정에 임하는 엄정성을 고스란히 보는 듯해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이러한 배경을 담고 있는 [산지]를 꼼꼼히 읽어보면 너무도 싱싱하게 살아서 약동하듯 숨쉬는 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된다. 버러지 소리로 우는 시냇물, 대낮 산 옆에서 개울물 소리처럼 우는 승냥이, 앓는 아비를 위하여 비가 오는데도 시오리 길을 걸어서 약수터에 약물을 받으러 온 소년의 비에 젖은 모습, 작두를 탄다는 마을의 애기 무당 등등. 대체로 이런 아름다운 삽화의 적절한 배합이 보인다. 시 [나와 지렝이]는 대체로 앞의 작품들과 유사한 세계를 그리고 있으나 보잘 것 없는 미물에 불과한 지렁이를 통하여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가 끈질기게 우리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어떤 필연성, 당위성 따위를 일깨우고 있는 듯하다. 내 지렝이는 커서 구렝이가 되었습니다 천년 동안만 밤마다 흙에 물을 주면 그 흙이 지렝이가 되었습니다 장마지면 비와 같이 하늘에서 나려왔습니다 뒤에 붕어와 농다리의 미끼가 되었습니다 내 리과책에서는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지렝이의 눈이 보고 싶습니다 지렝이의 밥과 집이 부럽습니다 ----[나와 지렝이] 전문 지렁이는 토양, 늪, 호수, 지하수, 동굴 등에서 살아가는 유익한 환형동물이다. 한자어로는 흔히 지룡(地龍)이라고 한다. 지렁이란 말은 한자말 지룡에서 유래된 것이다. 끊임없이 구멍 바닥의 흙을 삼키고 상층으로 옮기고 있으므로 토지를 경작하는 셈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렁이는 매우 유익한 존재로 인식되며, 인간의 삶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지렁이의 재생력은 고대인들에게 가히 불사신의 생명력으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영웅탄생 설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이 지렁이는 소멸을 모르는 생명체이다. 오죽하면 시인이 이러한 지렁이의 끈질긴 생명력을 나타내면서 '천년 동안 밤마다 흙에 물을 주면 그 흙이 지렝이가 된다'라는 동화적 상상력으로 그려 놓았을까? 동화적 상상력으로 펼쳐낸 지렁이의 광경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애틋하고 그리운 대상물의 실재에 다름 아니다. 백석이 자신의 시작품을 통해 그려낸 지렁이 설화는 어쩌면 우리 민족이 처한 곤경, 우울, 고통을 해학과 우화적 표현을 통해 극복해가려는 시도를 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이 작품은 <조광>지에서 정규 시작품의 형태로 발표되질 않고 일반 독자들이 가장 대면하기 쉬운 짧은 이야기 토막으로 만들어 눈에 띄기 좋은 공간에 수록해 놓았던 것이다.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어 있었다 오지 항아리에는 삼촌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촌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 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 산적을 꿰었다 손자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 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짚신이 둑둑이 걸리어도 있었다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들은 척하였다 ----[고방] 전문 이 시의 밑그림이 되고 있는 페이소스는 천진성과 장난스러움이다. 그것이 추억의 공간을 바탕으로 해서 세대간 연속성으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늙어서 이롱증(耳聾症)이 심한 할아버지, 술을 밥보다 좋아하는 삼촌, 그리고 장난꾸러기 손자 등의 이야기는 강한 설화성을 띤 구도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독자의 기억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추억의 토막을 재생시켜주는 장치로 되살아난다. 이러한 모든 시적 장치의 형성 배경은 농경시대 주민들의 정감이 물씬 풍기는 정서이다. 농경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시적 공간의 정착은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한결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이끈다. 줄곧 아동의 시각을 따라 이동하는 카메라의 앵글처럼 장면은 시시각각 이동하며, 다양한 공간의 배경은 서로 긴밀한 관련을 지닌 친족적(親族的) 성격을 지닌다. 마치 흘러간 시절의 무성영화를 보는 듯 즐거움과 눈물겨움이 동시적 포괄로 엮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낡은 질동이에 오래도록 보관되어 있는 송구떡을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에 비유한 대목은 슬픈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처럼 낡은 이야기와 작품 소재가 숨가쁜 세기말에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백석 시작품을 통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에 시인이 강력하게 외쳤던 주체적 고향의식의 환기에 다시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위기의 시대에 시인이 주창했던 고향의식의 환기는 인간의 근원적 주소가 현저히 상실되어 가는 세기말에도 여전히 일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국에서 겪는 고독감 속에서 쓴 [杜甫나 李白같이], 조상 대대로 전달 계승되어오는 민족적 가치성에 대하여 쓴 [목구(木具)], 전통적 민간 음식의 하나인 국수를 먹으면서도 기나긴 시간성을 느끼는 [국수], 여름밤 더위를 피하려 바깥에 나와 바람을 쐬는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박각시 오는 저녁] 등의 작품군에서도 이러한 고향의식의 환기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계열 중에서 시 [고향]을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시 기억하고자 한다. 나는 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如來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드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띄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고향] 전문 이 시에서 고향은 하나의 혈연적 가치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서 관서와 관북지역은 서로 조화롭지 못한 관계였다고 한다. 시인은 관서 출신으로 현재 관북 지역에 가서 거주하고 있다. 여러 가지 지역적 고정관념들이 불편한 시간을 강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이른바 '아무개씨'라는 세간의 존경받는 인물을 내세워서 관북지역의 의원 노인과 심정적 공감과 따뜻한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의원도 젊은 시적 화자에게 먼저 출신 지역을 물어본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가장 기초적이고 전통적인 심적 통교 수단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맨 먼저 서로 확인하는 것이 고향과 성씨인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적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관련 인물을 화제로 삼고, 그 관련 인물과의 어떤 구체적 유관성을 가지게 되면 즉시 혈연적 동지로 상호간의 마음의 장벽을 허물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백석이 아버지처럼 섬기던 '아무개씨'는 아마도 고당(古堂) 조만식(趙萬植) 선생으로 짐작되지만, 그 매개인물을 통하여 의원 노인이 맥을 잡는 손길은 더없이 부드럽고 따스하다. 시인은 그 부드럽고 따스한 손길 속에서 고향의 실체를 감지하고 있다. 이 시에서 고향은 마음속의 고독감을 극복하는 중요수단이요, 나아가서는 개별적 인간을 공동체적 인간으로 결속시키는 조화로움의 표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혼란한 세기말의 정점에서 근원적 자연으로서의 고향에 돌아가야만 하고, 또 인간은 그 고향에 의존해서 살아야만 한다는 시인의 메시지를 시작품을 통해서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이 이처럼 강력하게 외쳤던 고향정신의 회복을 상정해 볼 때, 지금 우리에겐 돌아갈 고향이 있는 것인가? (2) 잃어버린 인간성의 회복과 생명공동체의 부활 우리는 흔히 20세기의 끄트머리를 극단적 위기가 밀집되어 폭발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시간으로 예측하고, 이를 일러 세기말이란 관념의 복합적 용어로 나타낸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우려해 마지않는 세기말은 사실상 아무 데도 없다. 달력이란 제도를 인간이 고안해 내었지만,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숫자의 마술에 매우 철저한 포로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최근 터키와 대만 등지에서 잇따라 발생했던 지진을 일컬어서 세기말의 필연적 사태라고 해석하는 사람은 일부 극단적 종파의 말세론자들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가슴속에서 세기말과 관련한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뉴 밀레니엄'이니, 혹은 그것의 서양적 개념의 일탈을 꿈꾸는 '새 즈믄 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광경을 보면서 그것이 모두 한 세기를 급격히 마감한다는 불안한 심적 부담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2000년 1월1일을 앞두고 사람들은 공공연히 시간에 대한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광경들은 아마도 21세기 초반이 되면 그 무엇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기초가 되어도 현실의 정황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을 산술의 개념에 적용하여 우리 스스로를 부자유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려는 이른바 전위파들의 모험적 플랜이 과감한 실천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한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형성해 가려는 그들의 창조적 열정에 대하여 찬사를 보낸다. 아무튼 우리가 그 동안 태어났고, 악전고투의 삶이 펼쳐졌던 20세기는 끊임없이 이어진 전쟁과 대량살상, 인권의 유린과 착취, 집단적 굶주림 등으로 말미암아 인간에 의한 인간가치의 부정과 말살이 가장 커다란 문제가 되었던 시기였다. 세기말이라는 시간성은 앞에서의 해체된 고향의식과 마찬가지로 인간성 상실을 가장 심각한 삶의 위기로 떠오르게 하였다. 이른바 새로운 세기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게 될 것이 인간성 회복의 문제일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백석은 우리가 점차 잃어가고 있는 인간성 문제와 그것의 회복에 대하여 위기의 시대를 배경으로 자신의 시적 언술을 펼쳐 보였다. 사람들은 당시 이러한 시를 통해 나타내 보인 백석의 사상에 대하여 그다지 커다란 반향을 보였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뒤에 우리는 시인이 과거 그토록 열망했던 꿈이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깨닫고 새삼스럽게 놀라고 있는 것이다. 시인 백석이 자신의 시를 통하여 나타내고자 했던 강렬한 주제의식은 바로 풋풋하고 건강한 삶의 원형질 회복과 관련된 문제였으며, 이것은 결국 인간성 회복과 생명공동체 부활의 정신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흔히 일컬어지는 시 [여우난골族]을 비롯해서 다수의 시작품에 이러한 주제의식이 엿보인다.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필을 짠다는 별 하나 건너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新里고무 고무의 딸 李女 작은 李女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 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마을 가까이 사는 土山고무 고무의 딸 承女 아들 承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고무 고무의 딸 洪女 아들 洪동이 작은 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 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 그들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ꦣ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 지비게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노름 말타고 장가가는 노름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 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울어서 조름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 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가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 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 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여우난골족] 전문 이 시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우선 이 시의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풍성한 인간미에 감동을 받고, 그것이 곧 자신의 경험세계에 내포된 삶의 미학이라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움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시는 명절날 모든 친척들이 일제히 종가(宗家)에 함께 모여 조부모를 중심으로 어른은 어른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광경이 잘 그려져 있다. 전통적 농경사회의 전형적인 대가족 풍경이라 하겠다. 도입부와 전반부에서 친척들의 프로필을 묘사하는 대목을 읽으며 우리는 시인이 자신의 문학을 통하여 담아내고 싶어하는 지향이 어디에 있는가를 암암리에 느껴보게 된다. 즉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서민들이다. 천연두를 앓아서 얼굴이 얽은 곰보가 된 사촌, 베 짜기에 대단히 능숙한 솜씨를 갖고 있는 신리 고모, 열 여섯의 어린 나이에 마흔 넘은 홀아비의 재취로 들어간 토산 고모, 일찍 과부가 된 서러움을 가슴에 안고 있어 말끝마다 눈물을 흘릴 때가 많은 큰골 고모, 또 그들의 아이들에 대한 서술은 우리의 가슴을 찐하게 한다. 이들은 굴곡 많았던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들의 고모, 숙모, 형수 등 친족 내부에서의 여성들의 표상이다. 세 번째 연은 앞 연에서 서술한 여러 인물 유형들의 행동 양식과 그 범위로 나타난다. 이 연의 시작이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로 구성되고 있다. 이것은 주격 조사를 대담하게 행의 서두에 배치함으로써 이 대목이 앞의 연에서의 내용을 그대로 수식하며 뒤의 연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는 장치로 해석된다. 명절 전야의 즐거운 풍경은 특히 각종 아동유희에 관한 서술과 집안 여성들의 담소 장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인가? 이 대목은 이상적인 가족공동체가 보여주는 최고의 경지가 아닌가 한다. 지난 날 우리는 실제로 이런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점진적으로 와해와 붕괴의 과정을 밟아서 마침내는 이기적이고 편협하게 위축된 삶의 양식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설화에도 흔히 대립과 반목의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시누이 동서의 사이도 백석의 시에서는 화목과 조화의 표상으로 승화되어 있다. 문창에 텅납새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 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새로운 세기의 인간관계는 지금까지 우리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획기적인 양식이 아니라 지난날 우리가 향유했던, 하지만 지금은 상실해버린 아름다움의 성격을 지닌 것이 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우리가 꿈꾸는 관계 양식은 결코 지난날의 것을 고스란히 되살리자는 단순한 복고 지향이 아니라, 전통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적 아름다움의 계승에 관한 것이다. '욱적하니 흥성거리는'이라는 대목에서 물씬 풍겨나는 사람의 체취에도 주목해야 한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 자리에 모여 있지만 그들은 결코 갈등하거나 질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맛있는 무이징게국'의 냄새가 부엌에서 샛문 틈, 장지문 틈으로 스며들게 하는 일에 동시에 참여하고 노력한다. 이러한 모든 시적 장치와 표상들은 모두가 상실된 인간성 회복을 향한 갈망에 다름 아니다. 시 [여우난골족]에 나타난 인간성 회복의 사상과 유사한 시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는 [고야(古夜)]를 들 수 있다. 이 작품도 [여우난골족]과 마찬가지로 명절 전야의 즐거운 떡 반죽과 각종 떡 이야기가 정취를 돋운다. [고야]의 시 세계는 [여우난골족]에 비해 단독적이고 고립적인 면모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인간성 회복의 염원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소박하고 단출하긴 하지만 가장이 타관으로 돈벌러 가서 오지 않는 적적한 가정에도 혼사를 앞둔 막내 고모가 와서 어머니와 밤늦도록 바느질에 열중하고, 송편 만들기는 마을의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담당하므로 이른바 정중동(靜中動)의 정서구조가 보인다. 닭이 두 홰나 울었는데 안방 큰방은 홰즛하니 당등을 하고 인간들은 모두 웅성웅성 깨여 있어서들 오가리며 석박디를 썰고 생강에 파에 청각에 마눌을 다지고 시래기를 삶는 훈훈한 방안에는 양념 내음새가 싱싱도 하다 밖에는 어데서 물새가 우는데 토방에선 햇콩두부가 고요히 숨이 들어갔다 ----[추야 일경(秋夜一景)] 전문 이 재미있는 시는 과거 1930년대 관서지역의 주민들이 김장을 담그기 위해 미리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전야(前夜)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 [여우난골족]과 [고야]에서 보았던 공동체 의식이 한결 정돈된 형태로 가다듬어져 있다. 이 시에는 특히 청각적 이미지가 시적 흥취를 유발시키는 즐거운 장치로 배치되어 있다. 새벽을 알리는 닭소리, 미명 속에서 들려오는 일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오가리 석박디 써는 소리, 생강 파 청각 마늘을 다지는 소리, 밖에서 들려오는 밤 물새 소리, 햇콩두부에 고요히 숨이 들어가는 소리 등등. 이처럼 잔잔하고 아늑한 삶의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가슴은 한층 훈훈한 정감으로 데워져 온다. 이것은 고달픈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생의 의욕과 따뜻한 정감을 발생시켜주는 시적 장치에 다름 아니다.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메밀가루 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木枕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본다 ----[산숙(山宿)] 전문 [추야일경] [고야] [여우난골족] 등의 작품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인간성 옹호와 회복을 지향하는 휴머니티가 비록 소품이지만, 이 시에서도 고스란히 잠재되어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시적 화자가 산골 여인숙에 하룻밤을 묵으며 새카맣게 때가 낀 목침을 바라보다 생각에 잠기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할 요소는 3행이다. 시적 화자는 낡은 국수 분틀과 함께 <나란히> 누워있다는 자각을 느낀다. 보잘 것 없는 무기물과의 동질적 인식. 이것은 깨우침이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수 분틀은 그 도구가 제작된 이후로 무수한 분량의 국수를 뽑아내었을 것이다. 그 국수 분틀에서 뽑아낸 국수로써 또한 많은 사람들이 허기를 면했을 것이다. 이제 국수 분틀은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방 한 구석에 놓여 있다. 시인은 국수 분틀에 얽힌 시간성과 존재성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낡은 국수 분틀에서 발단된 하나의 각성은 여인숙 빈 방 구석에 굴러다니는 때묻은 목침까지도 특별한 사물로 인식하도록 이끈다. 나아가서는 그 목침을 베어보며, 산골 여인숙까지 흘러 들어와 목침에 고단한 머리를 눕혔을 많은 서민들의 삶의 고뇌까지도 자상하게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깊은 산골의 여인숙에 들어와 하룻밤을 묵고 간 사람들의 생업은 무엇이며, 그들의 얼굴 표정은 어떠했을까? 이 시작품이 제작된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중반이다. 식민지 파시즘의 발호(跋扈)가 극에 달해 있던 시절이었다. 민족 전체의 가슴에는 어두운 먹구름이 끼어 있었고, 자고 나도 아침은 여전히 캄캄한 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산판 하던 사람, 벌목부, 황아 장수, 생선장수, 소금장수, 땜장이, 금광에 미쳐서 전국의 산야를 헤매고 다니는 사람,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해 다니는 사람, 막연히 살길을 찾아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니는 사람, 남사당 패거리, 무당 등등. 그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얼굴에 지치고 피곤한 심정으로 하루살이와도 같은 삶의 위기의식에서 허우적거리는 떠돌이 서민대중의 군상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로부터 어언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세상은 엄청나게 변하고 물질에도 풍부해졌으나, 느닷없이 들이닥친 경제적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시 [산숙]의 등장인물들처럼 부유적(浮遊的)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 간고한 세기말의 시간성을 배경으로 백석의 시 [산숙]이 새삼 우리의 가슴에 젖어드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 밖에도 인간성 상실과 회복을 염원하는 시적 지향을 가진 작품으로 수절 과부의 죽음을 다룬 [흰 밤], 아버지와 함께 야생 동물을 사냥하러 나갔던 즐거운 경험을 다룬 [오리 망아지 토끼], 막막한 들판에서 막 전동차를 내린 두 여인을 통하여 생산적 상징성을 암시한 [광원(曠原)], 방안에 든 어린 거미새끼에서도 생명 있는 것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수라(修羅)], 성문 밖의 쓸쓸한 새벽 풍경을 그린 [성외(城外)], 민간의료법과 지역 샤머니즘을 다룬 [오금덩이라는 곳], 고아 소녀의 처참한 광경을 그린 [팔원(八院)], 다정한 벗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다룬 [허준(許俊)], 산골 소년에 대한 연민과 장래의 가능성을 서술한 [촌에서 온 아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서 우리는 시 [팔원(八院)]의 중심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리 묘향산 백오십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內地人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 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八院] 전문 <서행시초(西行詩抄)>란 부제가 달린 연작시의 세 번째 작품이다.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이러한 광경을 포착한 시인의 시선을 먼저 발견해야만 한다. 하고많은 시적 사물과 대상 앞에서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오히려 거기에서 깊은 연민을 느끼고 있다. 이 시의 중심인물은 물론 묘향산행 승합 자동차에 오른 나이 어린 계집아이다. 시의 흐름으로 보아 어린 소녀는 부모를 잃은 고아인 듯하다. 현재 소녀가 처한 현실은 최악의 조건이다. 소녀의 비극적 현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손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②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③ 몇 해고 일본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기를 하면서,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④ 하지만 소녀가 몸을 붙이고 일을 하던 주재소장의 집도 떠나게 되었다 ⑤ 소녀는 운다. 흐느끼며 운다 ⑥ 그 광경을 지켜보는 차안의 어느 승객도 눈물이 젖는다 ①과 ③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②는 부모의 죽음과 이어져 있고, 유일한 친척인 삼촌이 묘향산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조카딸의 고생을 별반 돌보지 않고 있다. 삼촌도 극도의 빈농으로 짐작된다. ④가 가장 참담하고 절박한 심정의 발단이 된다. 고생스러움 속에서 우선 연명이라도 할 수 있었으나, 이제 그 주재소장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동차 유리창까지 하얗게 얼어붙는 혹한의 계절에 자기 집에서 일하던 소녀를 배웅하는 일본인 주재소 소장은 그다지 심성이 악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⑤는 ⑥과 대응된다. 가장 절박한 심정이 되어있을 소녀의 광경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차안의 승객은 바로 시인 자신이 아니었을까? 백석의 시에 광범하게 분포되어 있는 휴머니즘과 존재에 대한 연민의 시학이 시 [팔원]에서 가장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바뀌는 세기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인인애(隣人愛)와 연민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백석의 시작품이 표방하고 있는 특유의 사상적 공간은 다음 세기까지 이어져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생명공동체를 부활시키는 작용을 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3) 삶의 생기와 낙천성의 회복, 그리고 건강한 주체의 건설 우리가 백석의 빼어난 시작품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찬탄해 마지않는 까닭은 그토록 참담하던 위기와 붕괴의 시대에서 시인은 한 순간도 넉넉한 웃음과 정신적 여유를 잃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시인이 만약 위기의 현실 속에서 슬픔과 눈물로써만 자아를 드러내었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을 대다수의 평범한 수준들과 그 어떤 차별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석은 고통의 시대에 시인이 해야할 일은 핍박을 받은 사람의 마음을 신선한 삶의 생기와 즐거움이라는 감성, 따뜻한 정서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여긴 듯하다. 그리하여 백석의 시작품 전편에는 밝고 쾌활하며 건강한 시어와 정감 어린 표현들로 넘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백석 시의 표현구조는 결코 경박성으로 떨어지지 않고, 근원적 세계를 갈망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이런 계열의 시작품으로 [모닥불] [개] [연잣간]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귀농(歸農)] 등을 손꼽을 수 있다.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다 즐겁다 풍구재도 얼럭소도 쇠드랑볕도 모다 즐겁다 도적괭이 새끼락이 나고 살진 쪽제비 트는 기지개 길고 홰냥닭은 알을 낳고 소리 치고 강아지는 겨를 먹고 오줌 싸고 개들은 게모이고 쌈지거리 하고 놓여난 도야지 둥구재벼 오고 송아지 잘도 놀고 까치 보해 짖고 신영길 말이 울고 가고 장돌림 나귀도 울고 가고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도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 ----[연잣간] 전문 이 시작품의 아름다움은 시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이 <즐거움>과 <편안함>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잣간 주변에 배열된 사물들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존재 의의를 지니면서 연잣간을 훌륭하게 꾸미고 떠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달빛, 거지, 도적개, 풍구재, 얼럭소, 쇠드랑볕 등은 모두 연잣간을 배경으로 그들의 존재성이 부각된다.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나는 도둑고양이, 기지개 켜는 족제비, 산란 후에 소리치는 암탉, 겨를 핥아먹고 그 자리에 오줌을 누는 강아지 등은 연잣간 내부에 배치된 생명들이다. 연잣간 앞에는 서로 싸우는 동네 개들, 달아난 돼지가 잡혀오는 광경이 있고, 혼자 노는 송아지와 줄곧 짖어대는 까치소리가 들리며, 연잣간 앞을 울고 가는 새신랑이 탄 말, 장돌뱅이의 당나귀도 보인다. 다음으로는 다시 연잣간의 내부로 카메라의 앵글을 옮겨가 본다. 대들보 위에는 베틀이 놓여 있고, 햇볕을 가리는 차일과 목화의 씨를 빼내는 토리개가 있다. 쟁기와 비슷한 훌칭이도 있고, 보습이라는 농기구와 쇠스랑도 보인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현재 즐겁고 편안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즐거움과 편안함이라니? 이 대목을 역사의식의 부재나 착각, 혹은 망언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연잣간의 연자방아가 제대로 돌아갈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못했던 수탈과 착취의 절대 빈곤 속에서 당시 농민들의 심정은 오직 비통함뿐이었다는 사실은 시인은 누구보다도 훤하게 알고 있었다. 이러한 농민들의 가난하고 메마른 삶에 백석은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으로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시작품에 그려진 낙천적 세계는 하나의 갈망이다. 모든 사물과 생명들이 원활하게 가동되고, 순탄한 시간 속에서 건강성을 얻어 가는 세계를 시인은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시 [연잣간]은 불교적 원융(圓融)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요, 조화를 지향하는 시정신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접시 귀에 소기름이나 소뿔등잔에 아즈까리 기름을 켜는 마을에서는 겨울 밤 개 짖는 소리가 반가 웁다 이 무서운 밤을 아래웃방성 마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있어 개는 짖는다 낮배 어니메 치코에 꿩이라도 걸려서 산 너머 국수집에 국수를 받으러 가는 사람이 있어도 개는 짖 는다 김치가재미선 동치미가 유별히 맛있게 익는 밤 아배가 밤참 국수를 받으러 가면 나는 큰마니의 돋보기를 쓰고 앉어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개] 전문 이 시작품에서의 주된 기조는 사물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시각이다. '무서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개 짖는 소리가 있어 반갑고 무섭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용이다. 접시 귀에 켜는 소기름 불이나 쇠뿔 등잔에 피마자 기름을 담아서 켜는 등불도 하염없는 정감이 느껴진다. '아래웃방성'의 풍습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마을에 긴요한 소식을 알리려고 대표자가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외치는 행위를 말한다. 요즘은 이것이 마을마다 설치된 확성기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필자는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새벽에 아래웃방성 다니는 사람의 외침소리를 잠결에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문 창호로 스며 들려오던 그 아련한 정감은 지금도 잊을 길이 없다. 거기에다 삽살개 짖는 소리까지 어우러진다면 그 자체가 한국의 전형적인 소리가 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틀을 놓아서 꿩을 잡고, 그 고기를 다져서 꿩고기 국수를 밤참으로 먹는 일은 얼마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즐거운 일인가? 가자미를 넣어서 잘 발효시킨 식혜와 살얼음이 살짝 끼어 있는 동치미는 꿩국수와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소박하고 멋진 식품이다. 아버지가 밤참 국수를 받으러 간 동안 장난기 많은 어린 아들은 할머니의 돋보기를 끼고 앉아서 노인의 흉내를 내며 놀고 있다. 이런 시간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의 전편을 가득 채우고 흘러 넘치는 것은 삶의 낙천성과 생기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사회의 지배층이 아니라 가난하고 평범한 농민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구조적으로 식민지라는 가혹한 수탈체제 아래서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고통의 직접 표현에 의탁하지 않고 오히려 낙천적 세계관으로 승화시켜서 고통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고 있다. 물론 고통의 실체는 즉시 탕감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 생활고에 임하는 자세가 초조와 탄식 일변도가 아니라 생기와 여유로써 서서히 시간을 두고 이겨가려는 삶의 태세를 느끼게 한다. 이런 점은 다음 인용시 두 편에서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①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도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부분 ②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 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않은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전문 백석의 시에 나타난 특유의 낙천적 세계관은 위의 인용 시에서 보듯 세상 모든 사람과의 친교(親交)도 서슴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여유, 작고 사소한 일에도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수분(守分)의 자세 등과 관련된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때에 따라 마냥 기분이 유쾌하고 좋을 때도 있지만 그것이 한결같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인간의 감정이기에 혹독한 변화 속에서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적 정황이란 항시 고통과 빈곤의 연속이 아닐까? 그러한 환경 속에서 현실에 대한 불평과 불만에 휩싸이지 아니하고, 자신을 억제며 통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마음의 경지인가? 현실에 대한 맹목적 만족의 강요는 자칫 몰역사성으로 흐르게 할 위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의 세계에서는 맹목적 만족의 강요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늘 불만족 속에 찌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물질의 빈곤 속에서 삶의 해학과 여유를 잃지 않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런 점에서 친교와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이 시의 세계는 다분히 유교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시인의 감정이 보여주는 미학은 고달픔과 서러움으로 가득 찬 현실의 시간에서 이러한 친교와 수분의 감각을 하나의 깨달음처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감각성은 다음 시에서 훨씬 확대된 세계로 증폭되어 나타난다. 날은 챙챙 좋기도 좋은데 눈도 녹으며 술렁거리고 버들도 잎트며 수선거리고 저 한쪽 마을에는 마돗에 닭 개 즘생도 들떠들고 또 아이어른 행길에 뜨락에 사람도 웅성웅성 흥성거려 나는 가슴이 이 무슨 흥에 벅차오며 이 봄에는 이 밭에 감자 강냉이 수박에 오이며 당콩에 마늘과 파고 심그리라 생각한다 수박이 열면 수박을 먹으며 팔며 감자가 앉으면 감자를 먹으며 팔며 까막까치나 두더쥐 돗벌기가 와서 먹으면 먹는 대로 두어두고 도적이 와서 조금 걷어가도 걷어가는 대로 두어두고 아, 노왕, 나는 이렇게 생각하노라 나는 노왕을 보고 웃어 말한다 이리하여 노왕은 밭을 주어 마음이 한가하고 나는 밭을 얻어 마음이 편안하고 디퍽디퍽 눈을 밟으며 터벅터벅 흙도 덮으며 사물사물 햇볕은 목덜미에 간지로워서 노왕은 팔짱을 끼고 이랑을 걸어 나는 뒷짐을 지고 고랑을 걸어 ----[歸農] 부분 이 시를 통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작품의 중심인물이 보여주는 행동이 전업농(專業農)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농사에 대한 어떤 계획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수익성을 전제로 한 계획과 실천이 전혀 아니다. 그러기에 각종 병충해와 도난에 대한 염려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전업농의 관점으로 이 작품을 접하면 바보스럽기 짝이 없는 낭만적 치기(稚氣)에 불과한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농사는 시인의 세계관과 물질관을 드러내는 하나의 보조적 장치에 불과하다. 벌레와 동물과 도적과 일년 농사를 주도한 주체자가 함께 골고루 나누어 먹는 물질의 균형 있는 배분에 대하여 시인의 표현 의도는 오히려 더욱 쏠려 있는 것이다. 시인은 혹시 땅의 소유 문제에 대하여 지주를 인정하지 않고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더욱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보다도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하여 생기 있는 삶의 회복과 낙천성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지주와 소작인과의 수직적 종속관계도 이 시의 세계에서는 무의미할 뿐이다. 땅의 임자인 중국인 노왕은 채마밭 가꾸는 일도 늙어서 힘이 들고, 하루종일 백령조(百鈴鳥) 소리나 들으려고 땅을 내어주고, 땅을 부치게 된 시적 화자도 '귀치 않은 측량과 문서 다루는 일에 싫증이 날 뿐만 아니라 마음놓고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생각으로 그 동안의 아전노릇을 그만두고 밭을 얻었다고 토로한다. 일단 절박한 생존과는 무관하다. 시적 화자는 정신의 휴식과 대지와의 친화력 증대를 위해서 이른바 '땅'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시 [귀농]을 읽어야만 비로소 작품의 중심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가파른 세기말의 언저리에서 백석의 시는 이처럼 삶의 생기와 즐거움, 혹은 따뜻함을 느끼려 하는 낙천적 자세의 회복과 그 필요성을 독자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4) 생명력의 회복과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의 살아남기 백석 시의 다양한 얼굴을 대하며 우리는 반세기도 훨씬 이전에 천재적인 한 젊은 시인에 의해 쓰여진 문학적 보고서가 세기말을 지나서 다음 세기의 전반에 이르도록 어떤 포즈의 권유와 방법의 제시를 훌륭하게 해 주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만큼 백석의 시작품은 물질 위주로만 추구되어온 20세기 문명의 비속성에 대하여 은근한 비판과 충고를 게을리 하지 않는 충실한 정신적 보고서의 성격을 지닌다. 백석의 작품 전체에 나타난 시적 지향은 대개 훼손되고 망실된 것에 대한 회복에의 갈망이다. 그의 시는 고향을 잃어버린 시대에 고향의식의 회복을 외쳤으며, 파괴와 불안의 시대에서 풋풋한 인간성 회복을 설파하였다. 나아가서는 메마른 인간의 삶에 신선한 생기와 낙천성이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원하였으며, 그와 더불어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마치 대를 이어가듯 줄기차게 계승하고 회복해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우선 다음 시편을 보자. 짝새가 발뿌리에서 날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어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늪의 피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가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하답(夏畓)] 전문 시골 아이들의 여름 일과가 재미있게 정리되어 있다. 시조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3행 형식에 각 행의 마무리가 '∼다'로 끝이 나는 각운 형식을 염두에 두고 쓴 듯하다. 각종 유희를 즐기는 산골 아이들의 간식이 주로 개구리의 뒷다리, 참게, 뱀, 날 것으로 삼키는 버들치 등속이며,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은 모두 물가의 물총새로 환생해 있다. 3행의 문맥상의 의도는 아이들이 돌다리에서 개울물로 뛰어드는 광경을 나타낸 듯하다. 하지만 또 다른 문맥의 반응은 물총새와 산골 아이들의 윤회적(輪廻的) 출생 구도이다. 물가에는 끊임없이 물총새가 날아다니고,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물놀이를 하는 산골 아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처럼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밝게 뛰노는 사회란 바로 우리가 갈구하는 낙원이자 복된 땅이 아니던가? 대를 이어갈 귀한 생명의 출생에 대하여 특별한 시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시작품이 바로 [적경(寂境)]이다. 신 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침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 멀은 산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뭸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적경(寂境)] 전문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출산과 거기에 따르는 부수적 정황이다. 첫아들을 출산한 감격을 위하여 아침에는 서설(瑞雪)도 내리고, 까치는 마치 축복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듯 요란하게 짖어댄다. 산골의 외딴 집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처지인 시아버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이 모든 장면들은 출산의 기쁨을 위하여 마련된 시적 장치들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첫아들의 출생에 대한 의미를 매우 크게 부각시켰다. 그것은 자자손손 가문의 대를 이어갈 씨앗이 생겼다는 안정감의 표현이기도 했고, 나아가서는 번성과 영화의 초석이 마련되었다는 벅찬 감격의 표현이기도 했다. 산골의 보잘 것 없는 외딴 집일지언정 집안의 대를 이어갈 아들이 태어남으로써 주변의 모든 것이 축복의 인사를 전하고 있는 광경이다. 남아 선호(男兒選好)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가히 전통적인 삶의 인식으로 정착되어 왔으며 근대의 물결이 조금씩 밀려들기 시작하던 20세기 초반에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추세와 가치관이 백석의 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시 [가즈랑집]에서는 곰이 아이를 돌보는 민간설화를 시적 삽화로 다루는 장면도 나온다. 시적 화자가 어린 시절 살구나무 밑에서 살구벼락을 맞고 울 때 가즈랑집 할머니가 다가와 '밑구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라고 서술하는 대목이 있다. 가즈랑집 할머니의 이 말은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그 배경에는 남아 선호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시 [넘언집 범같은 노큰마니]에도 이와 유사한 시적 서술이 발견된다. 우리 엄매가 나를 가지는 때 이 노큰마니는 어늬 밤 크다란 범이 한 마리 우리 선산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것을 우리 엄매가 서울서 시집을 온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 노큰마니의 당조카 의 맏손자로 난 것을 대견하니 알뜰하니 기꺼이 여기는 것이었다 ----[넘언집 범같은 노큰마니] 부분 시 [오리 망아지 토끼]에서 유난히 흐뭇하게 부각되어 보이는 자상한 부정(父情), 시 [절깐의 소 이야기]에 서술된 신비한 소의 능력도 범상치 않은 대목으로 여겨진다. 소는 제 병을 낫게 할 약을 열 걸음 안에서 찾아내는 신령한 능력에 관한 구전설화를 중심소재로 채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시 [구장로(球場路)]에서 엿볼 수 있는 생존에 대한 강인한 애착도 위의 관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다. 三里 밖 강쟁변엔 자갯돌에서 비멀이한 옷을 부숭부숭 말려 입고 오는 길인데 산모퉁고지 하나 도는 동안에 옷은 또 함뿍 젖었다 (중략) 이젠 배도 출출이 고팠는데 무엇보다도 몬저 '주류판매업'이라고 써붙인 집으로 들어가자 그 뜨수한 구들에서 따끈한 삼십오도 소주나 한잔 마시고 그리고 그 시래기국에 소피를 넣고 두부를 두고 끓인 구수한 술국을 뜨끈히 몇사발이고 왕사발로 몇사발이고 먹자 ----[球場路] 부분 이 인용시의 후반부를 유심히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생에 대한 의욕과 애착을 남달리 강조하는 시인의 의도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작품 중 악조건 속에서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강하게 이어가는 내용을 다룬 것으로는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들 수 있겠다. 시적 화자는 낙백한 삶의 벼랑 끝에서 죽음의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주체가 자기 외부의 어떤 더 크고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차츰 어지러운 마음이 정돈되고 생의 애착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늬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부분 시 [구장로]에서 '따뜻한 술국을 몇 사발이고 왕사발로 먹자'라는 대목과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싸락눈이 치는 추운 저녁에 화로를 바싹 끌어다가 껴안는 행동은 상호 동질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인용시의 결말부에서 먼 산 뒷옆 바위 섶에서 눈을 맞고 있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의 정신세계를 떠올리는 대목은 이 시를 하나의 우뚝한 절창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백석의 시가 어두운 매몰 속에서 발굴되어 뒤늦게나마 독자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은 바로 우리가 줄기차게 이어 가야할 생명력의 회복에 대하여 끊임없는 시적 암시를 보내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둡고 우울한 세기말은 무한 경쟁의 가파른 절벽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백석의 시는 굴곡 많은 역사적 시간 속에서 우리가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5) 대화엄(大華嚴) 세계의 시적 구상과 진정한 조화정신의 회복 이십세기 전체를 살아오면서 우리 민족이 겪어온 가장 고통스런 삶의 시련은 민족의 분열과 그로 말미암은 일체감의 상실이 아닌가 한다. 이른바 분단모순이라는 현상 속에서 일정한 기간을 억눌려 살아오면서 과거 우리 민족이 지녔던 전통적인 생활공동체 문화들이 속속들이 붕괴 해체되었다. 원래 하나였던 모든 실체들이 조각조각 나뉘어져 분단과 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분단 55년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와 원래 제집이었던 것처럼 보금자리를 틀고 앉은 각종 분단의 독소들을 하루빨리 털어 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작업을 이십세기의 내부에서 실천하기란 이미 때가 늦은 듯하다. 우리는 이 우울하고도 비극적인 문제들을 어차피 새로운 세기의 초반까지 끌고 가야 한다. 회피는 결코 능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엄청난 부작용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백석이 남기고 있는 시작품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식민지 시절부터 분단의 위기는 존재하고 있었으며, 제국주의 파시즘이 뒤에서 그것을 조장하였다. 그러한 분단의 싹은 제국주의자들이 물러가고 새로운 제국주의가 도래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백석의 시작품 중에서 모든 나뉘어진 사물의 실체가 하나로 따뜻한 조화를 이루어 대화엄의 미학적 장관을 연출하는 작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 [모닥불]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이미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장한 바 있거니와 시 [모닥불]이야말로 백석 시의 사상적 총화(總和)를 이루고 있는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한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 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 사가 있다 ----[모닥불] 전문 이 시의 첫 연에 나오는 사물들은 생물 무생물의 구분을 따로 나눌 것 없이 우리들의 유년체험과 친숙하게 맞닿아 있는 모닥불의 재료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요긴하고 쓸모있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거의 쓸모 없게 되어 삶의 뒷전으로 물러나 있거나 아예 버려진 하찮은 사물들끼리 모여서 이처럼 따뜻한 모닥불의 광휘와 온기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온갖 재료들이 모닥불을 피워내는 일이란 바로 대화엄 세계의 조화정신이 아니던가? 둘째 연은 모닥불의 온기를 나누어 가지는 분배자(分配者)들이다. 그 어떤 구별이 없다. 주체와 객체의 대응이 있고, 양반과 상민의 대응이 있으며, 노소의 대응관계에다 인간과 동물의 대응까지 있다. 심지어는 동물들 간에도 어미와 새끼의 대응관계가 보인다. 범상한 듯 보이지만 이 작품은 그 범상한 세계를 단숨에 뛰어넘은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거기엔 깊은 사상성이 무르녹아 있는 것이다. 1, 2연에 등장하는 각 낱말 끝에 특수조사 '∼도'가 낱낱이 붙어 있는 것은 모닥불이라는 공간이 애틋한 소외존재들의 평등한 만남의 장소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더불어 이 시적 장치를 통하여 시작품의 특수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뭇 사람들과 유난히 작고 가냘프고 여린 것, 외롭고 못난 사물들과 소외된 가여운 생명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생명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셋째 연이야말로 이 시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으로써 모닥불의 내력과 역사를 일깨워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시인이 의도하는 주제의식은 사실상 제3연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 결말도 1, 2연의 통과 과정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백석의 문학은 시작품이 중심 대종을 이루지만 사실상 그의 문단 데뷔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등단 작품인 [그 母와 아들]도 불쌍한 과수댁에 관한 주변설화였다. 그 이후에 발표된 산문도 지체장애자의 불구적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백석 문학의 기본적 지향은 가난하고 못생긴 사물, 소외 존재를 따뜻하게 감싸안고자 하는 대승적 자비정신(慈悲精神)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 [탕약]에서 더듬어 볼 수 있는 조화의 정신은 다음과 같다.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에 몸을 보한다는 六味湯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닳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湯藥] 전문 약탕관 안에서 한창 끓고 있는 육미탕의 재료는 삼, 숙변, 목단, 백복령, 산약, 택사 등 여섯 가지이다. 일찍이 우리 시에서 한약의 처방 그 자체가 하나의 시작품으로 된 희귀한 사례는 백석의 [탕약]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서로 다른 각각의 이질적인 재료들이 같은 약탕관 안에서 배합되어 끓는 광경을 묘사해 놓은 대목은 아름다운 조화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기쁨과 감격에 겨운 감정의 표출이라 하겠다. 다 달인 까만 약의 빛깔에서 '아득한 만년 세월'을 느끼며, 약그릇을 두 손바닥으로 받쳐들고 이 약 처방을 만들어낸 옛사람을 생각하다보면 어느 틈에 몸과 마음의 질병조차 완쾌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물을 신뢰하고 수용하는 긍정적 사고가 생명력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시인은 사소한 약 처방 하나에서도 시적 영감을 느끼고 그 과정에 내포되어 있는 조화와 화엄 철학을 발견해 내고 있다. 백석의 또 다른 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에 등장하는 여러 귀신들의 열거도 [탕약]의 작품성과 유사한 경우로 보인다. 방안에 버티고 있는 성주님, 토방을 관장하는 지운(地運) 귀신, 굴뚝을 지키는 굴대장군, 뒤울에는 철륜(鐵輪) 귀신, 대문의 수문장, 연잣간의 연자당 귀신, 길바닥의 달걀귀신 등등, 마을은 온통 귀신 투성이라고 시적 화자는 마치 질겁이라도 한 듯한 어투로 시적 서술을 쏟아 놓는다. 그런데 성주님을 일컫는 앞 대목의 어투를 보면 '자∼'로 시작되는 부분이 보인다. 이것은 떠돌이 약장수들이 약을 팔고 선전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재미있는 어투이다. 듣는 이의 흥미와 기대를 잔뜩 유발시키는 화법이다. 그러므로 각종 귀신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시적 화자는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사실은 이 열거행위를 내심 즐기고 있다. 첫 행에서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란 대목과 마지막 행에서 '마을은 온데 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공연한 엄살이나 과장된 어투로 들린다. 이 부분을 다시 말하면 시적 화자는 어차피 운명적으로 이 마을에 태어났으므로 그냥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순명적(順命的) 태도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표현 형태들은 백석의 전체 시작품에서 흔히 나타나는 하나의 방법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러한 표현 형태를 통해서 자신이 의도한 대화엄 사상의 시적 구상과 그 구체성을 펼쳐내려 하였다. 그것의 대부분은 조화정신의 회복을 염원하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데, 세기적 전환기의 대격동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삶에서 응용하고 실천해 가야할 중요한 덕목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3. 맺는말 지금까지 이 글은 시인 백석의 작품세계에 나타난 회복의 정신과 가치 지향 및 그 성격에 대하여 자세한 분석을 시도해 보려 하였다. 이 과정을 통하여 백석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고 있는 일백 여편의 작품들이 비록 20세 전반기에 발표된 작품이긴 하지만, 그것은 세월의 공백을 훌쩍 뛰어넘어 세기말의 시간성에서도 여전히 맑고 싱싱한 시정신을 발산하며, 우리의 삶을 교정시키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석의 시작품은 주로 고향의식의 회복, 인간성의 회복, 낙천성의 회복, 생명력의 회복, 조화의 회복 등 다섯 가지 중요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보내오고 있다. 백석의 시가 분단 오십년 이상을 매몰되어 있다가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문학적 신선미를 강화시켜주는 경과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매몰 문학인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우리가 예시했던 세기말의 아홉 가지 징후 가운데 대략 절반 정도의 위기에 대해서는 시인이 이미 예견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첫째 물질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말미암아 무참히 파괴되어 가는 자연에 대한 경고이다. 백석 시의 세계는 거의 전체가 자연친화적인 소재와 주제의식, 시정신의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어떤 경우에서건 모태(母胎)로서의 자연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다는 극명한 이치를 일깨워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둘째로 백석의 작품세계에는 작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경외심이 풍부하게 깔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부류의 작품을 통하여 백석은 세기말 인간복제의 환호 저 편으로 추락해 가는 생명의 존엄성이 얼마나 인간의 삶에서 근원적인 위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무의미, 고립과 단절, 가치의 몰락, 공백과 부재, 죽음의 유혹, 의욕의 상실 등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세기말의 온갖 부정적 요소들도 따지고 보면 이십세기 초반에서부터 시작된 불안사조의 산물이었다. 이제 낡은 세기는 우리 곁을 떠나가고, 새로운 세기가 여명 속에서 힘찬 고동을 울려댄다. 우리는 이러한 시점에서 열린 마음, 배우는 자세로 겸허하게 새로운 세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온갖 갈등과 상극은 낡은 세기의 유산이요, 새로운 세기에는 아무쪼록 사랑과 상생(相生)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실현을 위하여 백석의 시는 또 다시 우리에게 다정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의미 있는 그 무엇인가를 들려주려 한다. ({실천문학}, 1999년 겨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