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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백두산과 한웅천황과 신선도의 성립
1. {삼국유사}의 태백산에 대한 이설(異說)
{삼국유사}의 고조선기를 보면 한웅천황이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큰 뜻을 품고, 풍백·우사·운사의 신관과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곡·명·병·형·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주관해서 신시(神市)를 베풀었다 하고, 한웅천황의 아들인 단군왕검은 홍익인간의 뜻을 받들어 조선국을 세웠다고 하였다.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에는 좀더 자세히 기록되고 있는데, 한웅천황이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밑에서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천도(天道)를 크게 깨치시고 종교를 베풀었다(桓雄開天以三神設敎)는 사실까지 밝혀주고 있다. 이를 생각하면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우리민족의 성산(聖山)으로서 지금의 백두산이다. 또한 그것이 현재의 통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태백산에 대하여 최근 어떤 학자는 중앙 아시아(중국 신강성)의 천산(天山)이라 주장하고, 또 어떤 학자는 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의 삼위산(三危山)이라 주장한다. 이에 따라 부득이 이들 주장의 오류에 대해 비판한다.
1) 중국 신강성의 천산설과 그 비판
어떤 학자는 "천산(天山)에서 동으로 뻗어내린 준령을 따라가면 삼위태백(三危太白)과 흑수(黑水)가 있고, 이어서 곤륜산맥(崑崙山脈)이 뻗어내렸다"고 주장하면서 {삼국유사}의 태백산(太白山)을 중국 신강성(新疆省)의 천산(天山)이라 주장한다. 심지어는 태백산·천산·곤륜산·설산·백두산이 모두 동일한 산이라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삼국유사}의 태백산과 우리민족이 신성시하는 백두산은 같은 산인데 중앙 아시아의 천산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이다. 세계지도를 펴고 보면 중앙 아시아(중국 신강성)에 천산산맥과 천산(天山)이 있고, 삼위산도 있다. 또한 중국대륙 서쪽에 곤륜산맥도 있다. 특히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 천산을 설산 또는 백산(태백산)이라 하고, 설산을 히마리아산(喜馬拉雅山)이라, 또한 곤륜산(崑崙山)을 히마리야산(喜馬拉耶山)이라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태백산이라고도 한다.
곧 어느 측면에서 보면 태백산·천산·설산·곤륜산·백두산은 동일한 산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만약 {삼국유사}의 태백산을 중앙 아시아의 천산이라 가정할 경우, 백두산이라는 호칭도 중앙 아시아의 천산을 지칭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러면 그러한 주장이 과연 옳은 주장인가 하는 문제이다. 문제의 발단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태백산이라는 사실은 학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으나, 동시에 천산이며 설산이고 곤륜산인데, 그러한 사실이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고,
둘째, 중국 대륙 서쪽에 곤륜산맥이 있음으로써 곤륜산도 중국에 무조건 있다고 믿는 지리지식의 부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학설의 모순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근거로 제시한 문장을 보면 "천산(天山)에서 동으로 뻗어내린 준령을 따라가면 삼위태백(三危太白)이 있다"고 하여 천산과 삼위태백은 다른 산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산으로 파악한 모순을 범하고 있다.
둘째, 天山에서 동으로 준령을 따라가면 三危太白이 있다고 했는데, 지도에 삼위산과 태백산은 있으나 삼위태백은 없다. 또한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도 삼위산과 태백산은 있으나 삼위태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태백이 있다고 한 근거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점이다.
더욱이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을 보면,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을 보면, 환국의 말에 천산에서 한웅천황 일행이 동으로 이동할 때, 한웅천황은 태백산으로 내려갔고, 반고(盤固)는 삼위산으로 내려갔다고 하여 태백산과 삼위산은 서로 다른 산이다. 그런데 삼위태백을 하나의 산으로 파악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 만약 삼위태백이 하나의 산이라면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태백산이란 이름은 이 지구상의 특정 산에만 붙여진 고유명사가 아니라, 여러 지역, 여러 개의 산에 붙여진 보통명사이다. 곧 태백산은 우리나라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으며, 중국에도 있다. 그래서 중앙 아시아의 천산과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일명 태백산일 수 있다. 이 경우 {삼국유사}의 태백산이 오로지 중앙 아시아의 천산을 지칭하고,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2) 중국 감숙성의 삼위산설과 그 비판
또 어떤 학자는 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의 삼위산(三危山)을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주장한다. 아울러 백두산이라는 호칭도 중국의 삼위산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비판하면,
첫째, {중국고금지명대사전} 태백산조를 보면, 중국 섬서성(陝西省) 미현(慟縣)에 대태백(大太白)·이태백(二太白)·삼태백(三太白)이 있고, 거기에 삼지(三池)가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태백산을 삼위태백(三危太白)이라 단정함은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곧 삼지삼태백(三池三太白)이 삼위태백(三危太白)이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또한 섬서성 미현의 삼지삼태백(三池三太白)이 삼위산(三危山)이라면 어째서 감숙성 돈황의 삼위산을 섬서성 미현의 삼지 삼태백에 가져다 붙이느냐 하는 문제이다.
둘째, 삼위태백은 하나의 산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두 개의 산을 지칭한 표현이다. 그런데 삼위태백을 하나의 산으로 착각하고 있다. 만약 삼위태백이 하나의 산이라면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태백산이란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다. 따라서 중국 감숙성 돈황의 삼위산과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모두 태백산일 수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오로지 중국의 삼위산을 지칭하고,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주장하는 점이 모순이라 할 수 있다.
2. 태백산의 보편성과 특수성
1) 태백산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다.
우선 태백산이 어떤 산인가의 문제부터 밝힌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보면, 중국 길림성(吉林省)의 장백산(長白山) 곧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태백산이라 지칭하고 있다. 그밖에 하남성(河南省) 절천현(浙川縣) 동남 80리에도 태백산이 있고, 절강성(浙江省) 승현(?縣) 서쪽 70리에도 태백산이 있으며, 섬서성(陝西省) 미현(慟縣) 남쪽 양현(洋縣) 경계에도 태백산이 있고, 감숙성(甘肅省) 경양현(慶陽縣) 북쪽 150리에도 태백산이 있다. 이와 같이 태백산이란 이름은 중국지역에만도 특정 산에만 붙여지고 있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산에 붙여지고 있는 보통명사이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태백산이란 이름은 백두산 외에 여러 개가 있다. 예컨대,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과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경계 곧 황지에 태백산이 있고, 경남 진해 장복산 동쪽에도 있고, 경남 창령 성산면 정령리와 대합면 합리 경계에도 있으며, 경남 합천 대양면 백암리와 초계면 신촌리 경계에도 있고, 경북 영일 지행 읍내 동악산 아래에도 있으며, 충남 당진 당진읍 시곡리와 원당리에 걸쳐 있는 산도 태백산이라 한다(한글학회,{한국 땅이름 큰사전}, 태백산).
이처럼 태백산이란 이름은 어느 한 나라 특정 지역의 특정 산에만 붙여진 고유명사가 아니라 여러 나라 여러 곳의 여러 산에 붙여진 보통명사이다. 따라서 중국 신강성의 천산과 감숙성의 삼위산을 태백산이라 지칭한다는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 산을 무조건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2) {삼국유사} 태백산의 성립요건(특수성)
그러면 {삼국유사}의 태백산(한웅천황이 홍익인간 재세이화한 태백산)은 어느 산인가? 중국 신강성의 천산인가? 아니면 중국 감숙성의 삼위산인가? 아니면 우리나라의 백두산인가? 여기에서 태백산에 대한 판단기준이 요청된다. 곧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어떤 성립요건(특수성)을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한웅천황이 태백산에서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천도를 깨치시고, 거기에 바탕을 둔 신선도를 베풀었고, 홍익인간 재세이화했다. 거기에서 단군왕검은 조선국을 세웠다. 이를 생각하면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태백산은 수도처이며, 天一·地一·人一의 三神사상을 반영하는 천산(天山)이고, 우리민족이 우러러 받드는 성산(聖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천산을 설산 내지 백산(태백산)이라 하고, 설산을 히마리야산, 히마리야산을 곤륜산이라 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태백산의 성립요건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천산이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설산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곤륜산이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성산이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수도처이다.
어느 산이든 이상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 산을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면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이하에서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삼국유사}의 태백산임을 논증한다.
3. {삼국유사}의 태백산과 우리나라 백두산의 동일성
1)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천산인데,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천산이다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천산이다. 천산은 세계의 중심 내지 지구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세계지리학회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촬영한 결과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하였다(세계일보, 1992. 2. 22. 2면. 說往說來). 그리고 백두산 정상의 천지와 송화·압록·두만의 삼강일지(三江一池)는 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볼 때, 天一(乾方)·地一(坤方)·人一(仁方) 三神一體의 천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이에 대해 후술함).
그밖에도 백두산이 3층으로 되고 있으며, 백두산을 삼신산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백두산은 천산(天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종교의 {삼일철학 역해종경사부합편(三一哲學 譯解倧經四部合編)}을 보면 "천궁(天宮)은 오직 천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도 있으니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남북종(南北宗)이 신국(神國)이요, 산상의 신강처(神降處)가 천궁(天宮)이니 태백산은 천산(天山)이며 지금의 백두산이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곧 태백산이며 천산이라 하였다.
2)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설산 내지 곤륜산인데,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설산 내지 곤륜산이다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설산 내지 곤륜산이다. 그런데 {석가방지(釋迦方志)}와 {석가씨보(釋迦氏譜)} 및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그밖에 여러 백과사전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설산 내지 곤륜산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2편과 제3편을 보아주기 바란다.
3)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성산인데,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성산이다.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성산(聖山)이다. 성산이므로 거기의 초목과 금수는 모두 희다고 {괄지지}에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등반하여 보면 백두산 북쪽의 나무들은 거의 백양목이며 소나무 중에 백송(白松)도 있다. 가을이 되어 산상에서 북쪽의 산밑을 내려다 보면 하얗게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그곳을 흐르는 강물 이름을 이도백하(二道白河)·두도백하(頭道白河) 등 백하(白河)라 부른다. 또한 백두산 밑에는 흰사슴·흰돼지·흰매들이 지금에도 서식하고 있다.
또한 태백산은 성산이므로 거기에 호랑이·표범·곰·이리가 있으나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들도 산에 올으면 더럽힐가 하여 오줌을 눕지 않는다고 {위서} 물길전에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태백산이 이웃 민족들에게 지극한 성산(聖山)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몽고족과 만주족 그리고 우리민족은 각각 국가의 건국시원을 백두산에 둠으로써 백두산을 지극한 성산으로 모신다. 이상과 같이 태백산이 성산인데 백두산도 성산이다.
4)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수도처인데,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수도처이다.
태백산에서 한웅천황이 천도를 깨치시고 신선도를 베풀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수도처로서 거기에는 수도에 필요한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백두산은 수도에 필요한 자연적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상설되고 있다.
5)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천산·설산·곤륜산이다.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천산·설산·곤륜산이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곧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며,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곧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태백산 조)에도 "산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역사적 사실과 비교하면 단군신화에 나타난 태백산은 오늘날의 백두산(白頭山)을 지칭한 것이다"고 하여 {삼국유사}의 태백산이 백두산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중국 신강성의 천산과 감숙성의 삼위산이 일명 태백산이고 수도처이며, 거기에 비록 천산·설산·곤륜산이라는 명칭이 붙고, 또한 거기에 하늘에 제사하는 제천단과 한웅천황을 모신 천황당 그리고 산의 정상에 천지(天池)가 있다 하더라도, 천산·설산·곤륜산 그리고 수도처로서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은 한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곧 {삼국유사}의 태백산이 중국 신강성의 천산이라는 주장과 감숙성의 삼위산이라는 주장은 부정된다.
4. 한웅천황의 백두산 고행과 신선도의 성립
1) 한웅천황의 백두산 고행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한웅천황이 홍익인간 재세이화한 태백산임을 논증했다. 그러나 한웅천황이 백두산에 왔었다는데 대해 우리민족이 광명을 숭상하기 때문에 태양에 가까운 곳인 백두산 정상에 내려왔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백두산은 험준하고 연중 눈이 내릴 때가 많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하여 한웅천황이 백두산에 왔었다는 사실을 신화라 하면서 아예 부정하여 버리는 견해가 있다.
전자의 견해이든 후자의 견해이든, 한웅천황 일행의 행동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꿈속에서 일으키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 행동을 제외하면 어떠한 행동이든 인간의 행동에는 유의적 목적이 있다. 그 목적과 행동이 일치되었을 때, 인간은 어떠한 난관이나 괴로움도 극복할 수 있다.
예컨대, 불교의 출가수도승들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큰 뜻을 품고, 견성(見性)과 해탈(解脫)을 위해서 피나는 고행을 한다. 그들은 기름진 평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수도하는 것이 아니라, 험준한 고산암벽 밑 눈보라와 싸워가면서 좌선을 한다. 그들은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수도하는 것이 아니라, 벽곡(抗穀)을 하고 생식(生食)을 한다. 인간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초목이나 금수와 대화한다. 그들에게는 여름도 없고 겨울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다.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행복도 없고 괴로움도 없다. 가진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다. 한늘이 그들의 집이고 자연이 그들의 재산이다. 암벽의 동굴이 그들의 침실이고, 숲과 나무가 그들의 옷이다. 불교의 출가수도승들은 이와 같이 뼈를 깎고 살을 에는 지난한 고행을 하고, 이를 극복하여 드디어는 대자연과 일체가 되는 대각을 목적으로 한다.
한웅천황 일행이 백두거악에 온 것도 실은 그와 같은 수도고행을 위해서 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큰 뜻을 품고 물 좋고 산 좋은 백두거악에 온 것을 보면 그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웅천황 일행의 백두거악에서의 생활은 폭풍우에 견디고 눈보라와 싸워 이를 극복하는 피나는 고행과 수도생활의 노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신단수 밑에서 천도를 대각하여 천부경과 삼일신고 등 신선도를 설하였으니 그 기념행사가 오늘날 음력 10월 3일의 개천절 행사인 것이다. 이는 마치 석가세존이 설산고행을 하고 보리수 밑에서 대각하여 처음으로 녹야원(鹿野園)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해탈을 설함으로써 불교를 일으켰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2) 백두산의 수도생활 조건
그러나 이상의 소론을 누가 믿겠는가? 이를 증명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연적 수도생활 조건이 백두산에 갖추어 있어야 한다. 수도생활에 필요한 자연조건이 갖춰 있지 않으면 장기간의 수도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적 수도생활 조건이란 예컨대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를 풍부히 잘 받을 수 있는 자연조건과 건강을 유지하고 지혜를 명석하게 할 수 있는 자연생 식품의 자생 그리고 겨울에도 목욕재계할 수 있는 온천의 분출, 또한 혹한과 혹서, 폭설과 폭우를 피할 수 있는 자연동굴 등이 있어야 한다.
첫째, 백두산 정상에는 수지영부(水之靈府)이며 무열뇌지(無熱惱池)인 천지(天池)가 있다.
천지는 바다와 같은 산상호수인데 그 북쪽 달문(達門)을 통하여 하루에도 수천만톤의 물이 넘쳐 흐르는 수지영부(水之靈府)로서 물이 파랗게 맑고 차며 백두산 정상에 앉아 천지를 내려다 보면 모든 고통과 번민, 오뇌와 신음이 사그러지는 듯 하니, 천지를 무열뇌지(無熱惱池)라고도 한다.
이러한 산상호수에 달이 비칠 때, 목욕재계하고 산의 정상에 앉아 천지를 눈앞에 보고 그리며 선정에 든다면 모든 번뇌 망상이 사라지고 절로 지혜가 솟아날듯 하니 천지는 수도처로서 그 이상의 적지가 없다고 본다.
둘째, 백두산은 신약 또는 불사약이라 불리는 산삼의 고장이다.
{부도지}를 보면 백두산 천지 영주에서 삼근영초(三根靈草)인 산삼이 난다 하였고, 1961년 8월에 백두산 남쪽 산록에서 오래 묵은 산삼을 캤는데, 그 길이는 79.5cm였고, 그 무게는 아홉량 두돈으로 그것은 100여년 이래 최대의 산삼이었다고 한다. 또 백두산에는 산삼씨만 따먹고 사는 인삼조(人蔘鳥)가 있다.
이러한 기록이나 보고들은 명실공히 백두산이 산삼의 고장임을 말한다. 그밖에도 백두산에는 녹용(鹿茸)과 초피(貂皮)와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符印)이 생산되었다. 이와 같이 백두산은 자연생 식품 겸 약품의 원산지이므로 수도처로서 최적지가 된다.
셋째, 백두산에는 겨울에도 목욕재계할 수 있는 백두산 온천과 위장병과 신장병 등 만성병에 효험이 있는 천연 약수천이 있다.
넷째, 백두산의 한 가닥인 묘향산에 단군굴이 있고, 백두산의 관면봉(冠冕峰) 아래에 신선이 수련한다는 얼음굴이 여러 개 있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이 수도처로서의 자연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백두산이 수도처로서의 최적지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둘째, 한웅천황 일행은 수도인으로서 백두산에서 고행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셋째, 백두산이 신선도의 발상지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백두산의 특수성과 삼신일체의 연관성
그렇다면 백두산의 특수성과 신선도는 어떠한 연관성을 지녀야 한다. 이는 마치 산삼과 신선도가 불가분적 연관성을 지니는 것과 같은 격이다.
첫째, 백두산의 삼강일지(三江一池)는 삼신일체(三神一體)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왜냐하면 백두산 정상에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 약 20만 톤의 물에 바다와 같은 천지가 있고, 거기에서 송화·압록·두만의 3강이 발원하여 흐르는데, 송화강은 천일의 방향인 건방(乾方)으로, 압록강은 지일의 방향인 곤방(坤方)으로, 두만강은 인일의 방향인 인방(仁方)으로 흐르고, 또한 이들 3강은 모두 오른 쪽으로 돌아흘러 지구의 회전방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둘째, 신선도는 삼신사상(三神思想)을 발생원리로 하는데, 백두산이 삼신산(三神山)이다.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을 삼신산이라 하고, 이들 산이 모두 백두산에 있으므로 백두산이 곧 삼신산이다. 또 {태백일사}에 옛날의 삼신산은 곧 태백산이며 지금의 백두산이라 하였다. 안호상 박사 역시 여러가지 전거를 들면서 삼신산을 백두산이라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4편에서 상설된다.
셋째, 신선도는 3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백두산이 3층으로 되었다고 하였다. 실제 백두산을 답사하여 보거나 사진을 보아도 3층이다. 또 천지의 좌우에는 금선(金線)·옥장(玉漿)·은류(隱流) 등 세 개의 샘이 있다. 천지의 동북쪽에 인만(麟巒)·봉만(鳳巒)·벽라(碧螺) 등 세 개의 산이 있다. 이와 같이 백두산은 3수와 연관이 깊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의 지리적 특수성이 삼신일체를 그대로 반영하고, 삼신일체 사상에서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이 발원되었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연역할 수 있다.
1) 백두산은 그 원명이 삼신산 내지 천산(天山)이다.
2) 백두산은 삼신일체 사상의 발원지이다.
3) 백두산은 도·불·유 사상의 발원지이다.
4) 백두산은 한웅천황의 고행성도지이다.
5) 백두산은 산의 조종이며 세계의 중심이다.
그래서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한웅천황의 조강(肇降)이 이미 이 산(백두산)에서 있었으며, 또한 이 산은 신주흥왕(神州興王)의 영지(靈地)인 즉 소도제천(蘇塗祭天)의 고속(古俗)은 반드시 이 산에서 시작되었으며, 자고로 한족(桓族)의 숭경(崇敬) 또한 이 산에서 시작되었으니 심상한 것이 아닌 것이다"라고 하였다.
최근(6월 26일) 홍콩의 성도일보(星島日報) 역시 중국관영 신화통신(新華通信)을 인용하여 백두산에서 40기(基)의 고대제단(古代祭壇) 유적과 함께 각종 유물을 발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에 대하여 고고학계에서는 새로운 고대문화의 유적이라고 하였다. 이것 역시 백두산이 신선도의 발상지임을 증명하고 소도제천의 고속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생각하여 볼 때, 신선도가 비록 중앙 아시아의 천산에서 백두산으로 이동되었다 하더라도, 원래의 발상지는 백두산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한 삼신사상이 우리민족의 민족성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할 때, 인류역사상 신선사상을 최초로 체계화시킨 민족이 또한 우리민족이며, 우리민족은 상고시대 세계문화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고, 동아문화의 창조자라는 안호상 박사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