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훈 :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려요.
김승래 : 농성촌에서 신(新) 강정앓이로 활동 중인 김승래입니다. 스물 네 살이구요, 농성촌에서는 막내예요.
정정훈 : 거의 매일 농성촌에 나와 있는데 농성촌에서 주로 무슨 일을 하나요?
김승래 : 오전에 나와서 매일 청와대로 향하는 점심 행진하고 저녁때 집회 등 각종 일정에 참여하고 있구요, ‘함께 살자 농성촌’ 시민증 발급을 책임지고 있어요.
정정훈 : 농성촌에는 어떻게 결합하게 되었나요?
김승래 : 처음에는 생명평화대행진부터 함께 했어요. 대행진을 알게 된 것은 뉴스타파를 통해서였어요. 사실 그 전부터 팟캐스트와 같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소위 ‘사회문제’를 접해왔어요. 강정이나 용산 등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대행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연스럽게 참여를 결정하게 된 것 같아요.
솔직히 11월 3일 대행진이 끝나고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대행진 끝나고 강정마을로 가게 되었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역시 자연스럽게 농성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정정훈 : 원래 운동권이었나요?
김승래 : 전혀 아니죠. 전혀 아니구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대를 갔어요. 그것도 직업군인으로요. 사회운동같은 거 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었죠. 군대도 원래는 말뚝을 박으려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군대생활하면서 평소 읽지 않던 책들도 읽고 그러면서 생각이 달라지더라구요. 처음에는 주로 자기계발서를 읽다가 점점 철학관련 책들을 읽었어요. 주로 강신주 선생 책들....<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라던가 <상처받지 않을 권리> 같은....그러다 보니 생각도 많아지면서 점점 군대는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군대 나와서도 제 또래의 다른 20대들처럼 대학을 가고, 취직을 위해 스펙을 쌓고 그러고 싶지는 않더라구요. 대학에서 하고 싶은 학문도 없었구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길에서 이탈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일로 오게 되었네요. (웃음)
정정훈 : 대행진과 농성에 참여하면서 그전과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있다면요?
김승래 : 저는 대행진 시작하기 전에도 용산이나 강정 같은 경우에는 바로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쌍용 같은 경우에는 별로 노동자들에게 공감을 못했어요. 제가 제대를 하고 나서는 중소기업, 여섯 명이 일하는 제조업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을 했었거든요. 그런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기 때문에 그런 제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요구는 대기업에서 좀 더 나은 조건이나 더 큰이익을 확보하려는 그런 투쟁으로 보였던 거죠. 그런데 실제로 같이 다니면서 이야기를 듣고, 쌍차노동자들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다 보니 제 인식이 잘못되었던 거구나 싶더라구요. 정말 주변에서 잘 알지 못하고 했던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사람의 생명이나 인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생각의 프레임으로 쌍차 문제를 바라보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전국의 여러 군데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면서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되었죠. 저는 강원도 동해시가 고향인데 강원도에서 그렇게 골프장 문제가 심각한지 몰랐었거든요.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고....참 너무 나만을 위해서 산 것이 아닌가..나만을 위해서 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대행진과 농성에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만족해요.
정정훈 : 아직 정말 젊은데 농성이 끝난 이후의 인생계획은 어떤가요?
김승래 : 전 이제 ‘정상적인 길’을 가기는 틀린 것 같구요...(웃음) 원래 대행진하기 전부터 자급자족에 대한 생각이 있었어요. 농성이 끝나면 제주도로 내려갈 거 같아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마 제주에서 자급자족적 삶을 살거나 아니면 강정마을로 가게 될 거 같아요.
정정훈 : 재미있는 인터뷰였어요. 감사합니다.
김승래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