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꼬는 청학동 고양이 같아요! 유교 고양이..”
막 집사가 된 후배 부부의 막내딸이 땅꼬와 놀다가 감탄한다. 입양한 길냥이 새끼 지지가 할퀴고 물어 손등이 무사할 날이 없는 후배부부의 가족이니 절제된 행동에 붙임성 있는 땅꼬의 태도가 부러울 법도 하다.
“지지도 함께 사는 고양이가 있으면 금방 고칠텐데.. 땅꼬도 첨엔 그랬는데 장군이 입양하고는 저절로 나아졌어.”
무심한 척, 선배 집사의 팁을 전하면서도 뿌듯하고 자랑스런 맘은 감출 수 없다. 유교 고양이 땅꼬가 있기까지... 서로를 길들여간 긴 시간이 있었다. 후배 가족들도 그렇게 집사가 되고 서로를 길들여갈 것이다. 익숙한 관계의 편안함과 안도감이라는 축복과 더불어..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에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이 없을 수 없다. 그 누구가 고양이일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의사 표현이 분명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남을 조정할 줄 아는 영리한 고양이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훈육은 대충 넘길 일이 아니었다.
함께 살던 초기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서로에게 익숙해질 무렵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끝 없이 쫓아다니며 울어대거나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잠을 자야 하는데 침대를 뛰어 다니며 잠을 방해한다. 시도 때도 없이 외출하자고 울며 조르다 뜻 대로 안되면 도어 스토퍼를 흔들어 대거나 도어락 손잡이에 뛰어올라 날카로운 금속음으로 신경을 긁어댄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높은 곳에 올라 물건을 떨어뜨려 깨뜨린다.
땅꼬는 의지가 강하고 뒤 끝 있고 고집 센 고양이었다. 반드시 불만족을 토로했고 나를 성가시게 하는 말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를 조정하려고 들 때. 이 때는 조치가 필요하다.
땅꼬와 소통하는 내 방식은 감정 연기와 모방의 몸짓과 함께하는 의성어와 의태어다.
“땅꼬야. 언니가 자장자장 하는데 야옹야옹 하면 안돼! 안돼!. 그러면 언니가 어휴~~~ 해.
언니가 자장자장하면 땅꼬도 자장자장 해야 해.”
처음부터 먹힐 리가 없다.
반복될 때는 어디선가 들은 대로 격리, 감금에 들어간다. 생각하는 의자로 최상의 장소는 거실 베란다. 거실에 앉아 내 일에 몰두하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땅꼬가 하는 양을 보고 있자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유리문 너머 베란다는 땅꼬의 무대, 나는 관객이다.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둔 격리가 뭐 그리 대단히 절망적인 일대사인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우당탕퉁탕 물건들 위를 오르고, 무너뜨리고 미끄러지고 유리 벽을 잡고 오가며 벌이는 화려한 액션과 소리, 세상 절망적인 표정... 지치지 않는 탈주와 애원의 몸짓. 너에겐 냥생사 진지한 비극이지만 내겐 배꼽 잡는 소극이다. 내 옆자리로 돌아오고픈 작은 고양이의 애절한 간청을 보고 있자면 ... 이게 뭐 그럴 일이야. 싶으면서 순진해!!!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격리, 감금을 풀면서 풀 죽은 땅꼬의 사지를 두 팔로 결박하고 무릎에 앉혀 눈을 마주 보게 한다. 다시 한번 엄격한 표정과 말투로 쐐기를 박는다.
“땅꼬야, 안돼! 언니가 자자자장 하는데 땅꼬가 야옹~ 야옹~ 하면 언니가 아야아야, 휴~~~ 힘들어. 안돼. 언니가 자장자장 하면 땅꼬도 자장자장 해야 해. 알겠어. 안돼, 안돼.”
서운하고 상처받은 눈빛으로 고개를 돌리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돌려세워 눈을 마주하고 몇 차례 반복한다. “알았지? 그러면 안돼!!!”
훈육이 끝나면 서러운 눈빛의 땅꼬 냥통수를 쓰다듬고 꼭 안아준다.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다가 츄르를 주면... 상황 끝!!! 다시 생글생글...무사 귀환한 내 옆 자리, 허벅지에 엉덩이를 기대고 그루밍을 하며 안도감에 빠져들다 문득 눈을 들어 내 표정을 살핀다. 이제 화 풀린 거야? 날 미워하는 거 아니지? 날 버리지 않을 거지? 용서와 애정을 확인하고 싶은 간절한 너의 눈빛. ‘그럼... 당연하지. 불안하게 해서 미안... 하지만 오늘 재미있었어. 긴장감 있고 좋다. ㅎㅎ’ 냥통수를 쓰다듬는다.
물론 급작스런 해피엔딩은 없다. 땅꼬의 강짜로 수난을 겪는 침대 머리맡 화분은 철사로 고정시키고, 현관문 도어 스토퍼는 강력테이프로 고정되어 제 역할을 잃었고, 도어락 손잡이는 유사시 고정시키는 철사로 엮은 결게가 설치되었다.
반복되는 훈육과 예방, 수용과 타협을 거듭하며 몇 년이 흐른 지금, 이런 풍경은 사라졌다. 아주 간혹 장군이를 괴롭혀 30분 정도 작은 방에 격리될 때도 있었지만, 예전 같은 간청은 없다. 느긋하게 엎드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노련한 땅꼬. 대신 장군이의 간청이 또 볼만하다. 땅꼬가 격리될 때마다 장군이가 문밖에서 난리다. 문에 붙어 앉아 안에 갖힌 땅꼬의 기척을 살피며 내게 야옹야옹 간청한다. 땅꼬한테 혼났으면서도 땅꼬의 격리가 안스러운 장군이. 땅꼬를 향한 장군이의 일편단심 애정은 눈물겨운 구석이 있다.
땅꼬는 매너 좋은, 완벽한 룸메이트가 되었고 우리 사이엔 질서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질서의 한편엔 땅꼬에게 길들여진 내가 있을 것이다. 땅꼬의 눈빛과 몸짓을 보면 알아서 수발을 드는 노련한 8년차 집사.
장군이 훈육은 땅꼬 담당이고, 모방학습의 천재인 고양이답게 땅꼬의 완벽한 모범 덕에 장군이는 원만하게 자리 잡았다. 물론 땅꼬와 달리 순종적인 장군이 성격 덕이기도 하다. 하지만 딱 한가지, 평화로운 동거를 위해서 절실히 해결해야 했던 장군이의 문제는 한밤중에 크게 우는 버릇이었다. 밤중에 우는 고양이는 불행한 고양이라고들 한다. 한밤중 우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놀이시간을 늘려보려고도 했지만, 소심한 장군이는 열심히 놀지 않는다. 그래서 잠들기 전 좋아하는 빗질도 열심히 해 주었다. 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내 수면의 질도 문제지만 방음이 부실한 아파트, 이웃들의 항의도 걱정되었다.
땅꼬 때와 달리 노련해진 집사의 팁을 활용한다. 하루를 꼬박 장군이 훈육에 쓰기로 작정하고 날을 잡았다. 장군이가 잠에 들려는 순간마다 “엥~~~~엥~~~~엥~~~~” 장군이 소리를 흉내내면서 큰 소리로 울어댄다. 그럴 때 마다 장군이는 하지마~~` 짜증을 냈다. 하루 밤낮을 이렇게 지내면서 틈만 나면 장군이를 무릎에 앉히고 타이른다. “ 장군아, 엄마가 자장자장 할 때, 장군이가 엥~~~엥~~~엥~~~ 하면 엄마가 어휴~~~~ 힘들어. 안돼! 안돼! ” 그 뒤 며칠 동안 한밤중에 울지 않았다. 요즘은 잠자리에 들기 전 잠시만 울고 한밤중에 우는 습관은 사라졌다.
고양이 룸메 길들이는 최고의 팁은 똑같이 돌려주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 이 방법을 통하면 고양이들은 어린아이보다 더 빨리 배운다.
이런 저런 해프닝을 겪으며 동거 8년 차, 룸메 3인방의 하루하루는 나름의 루틴과 역할 배분 속에서 평온하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