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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34) 2025. 3. 1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유다
열왕기상 14:21~31
<지난 시간 요약 – 여로보암의 죽음>
여로보암은 죽을병에 걸린 아들 아비야의 운명을 알아보기 위해서 아내를 변장시켜서 아히야 선지자에게 보냅니다. 그랬다가 오히려 여로보암 가문에 임하게 될 심판의 말씀을 듣습니다.
10~11절“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이런 엄청난 심판을 받는 이유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등 뒤에 버렸기’(9)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여로보암 한 가문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먼 훗날 북이스라엘이 직면하게 될 암울한 운명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병든 아들 아비야도 죽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실제로 여로보암의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들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애석한 죽음조차 사실상 ‘복된 죽음’으로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여로보암 가문이 받아야 할 심판을 받지 않고 죽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백성들의 애통, 묘실에 묻힘).
여로보암은 아들의 죽음과 아내가 분명히 전해주었을 아히야 선지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당장에 금송아지 제의를 바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22년을 다스리는 동안 끝내 회개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나답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자신의 종교정책을 이어가게 하였고, 그 결과 아히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의 가문이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남유다의 왕이 된 르호보암>
오늘 본문은 남유다의 왕 르호보암의 이야기입니다.
21절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통치 초기에 취한 포학한 언행과 잘못된 결정으로, 10지파를 여로보암에게 빼앗기고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일부로 나라를 시작했습니다.
르호보암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1) 르호보암이 남유다의 왕으로 즉위할 때의 나이는 마흔한 살이었습니다(B.C. 930년).
2) 남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의 왕궁은 솔로몬 왕궁이었습니다.
저자는 ‘예루살렘’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기에 붙여진 표현입니다(8:16, 신12:4-14).
3) 르호보암은 열일곱 해를 다스렸습니다(재위 기간은 B.C. 930-913년).
4) 그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이며, 암몬 여자입니다. 유다 왕들의 경우에만 모친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열왕기의 특징입니다(15:2, 10, 22:42). 나아마는 솔로몬이 가까이했던 이방 여인 중 하나로 밀곰(혹은 몰록)을 숭배하던 암몬의 여인입니다(11:1-8). 그러므로 르호보암의 우상숭배 경향은 그 모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유다>
그러면 르호보암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통치자였을까요? 22절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놀랍게도, 르호보암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어가 '르호보암이' 아니라, '유다가'로 시작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 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12:1을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대하12:1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르호보암이 율법을 버리자, 백성들이 이를 본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어를 '유다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하 12:1 말씀은 르호보암이 율법을 저버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국가의 강성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이유가 된 것입니다(교만). |
그러면 유다가 지은 죄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22절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그들이 지은 죄는 조상들이 저지른 죄보다 더 심하여서, 주의 진노를 격발하였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그들도 높은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마다,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습니다.
23절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가나안 족속들은 대개 높은 산, 푸른 나무 아래(서낭당과 당산목)에 우상과 우상을 섬기는 처소를 설치하였습니다(렘 2:20, 3:6, 겔 6:13, 왕하 16:4, 17:10, 대하 28:4). 따라서 르호보암이 '산 위에와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각종 우상을 세웠다는 것은 곧 그가 가나안 족속들의 이교(異敎)에 영향받았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신 12:2).
2) 그 땅에는, 신전 남창들도 있었습니다.
24절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남색하는 자로 번역된 ‘카데쉬’는 남성 동성연애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 신전의 남창(男娼)을 포함한 ‘남녀 성전 창기’로 남녀 모두를 가리키는 집합명사입니다. 이들은 아세라 여신(아세라 목상 - 이는 남신 바알과 함께 한 장소에 나란히 세워진 여신상)을 섬기는 신전에 소속된 남창들로서 의식(儀式) 중의 매음 행위에 동원되었습니다.
가나안의 대표적인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아스다롯)를 섬기는 예배 행위 속에는 성행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그곳에 있는 남자 성전 창기와, 남자는 그곳에 있는 여자 성전 창기와 성행위를 하는 것이 곧 바알과 아세라 신을 향한 예배 행위입니다. 룸살롱의 저 은밀한 구석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거룩한 예배 의식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이 알까 봐 은밀하게 행하던 일들이 거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떳떳하게 자랑하며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오히려 서로서로 더욱 부추기고 권면하면서 더욱 죄 속에 빠지는 이 천박하고 타락한 가나안 종교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예배 속에 들어왔습니다.
솔로몬 바로 다음 왕인 르호보암 때에 벌써 이런 우상숭배가 만연하였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모두 내쫓거나 진멸하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은 가나안 원주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의 종교의식이나 생활풍속은 음란하기 이를 데 없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레18:3-25). 하나님께서 이들을 멸절시켜 버리도록 명하신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우상숭배 및 종교의식을 파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신 7:2). 그러나 여호수아 정복 후에도 일부 가나안 거민들은 여전히 잔존 세력으로 남아 있었으며(수 11:13, 15:63, 16:10), 결국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들의 음란하고 혐오스러운 우상숭배 관습을 본받을까 두려워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음란한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그 일을 ‘가증한 일’로 여기셨습니다. ‘가증스럽다’는 말의 뜻은 ‘몹시 괘씸하고 얄밉다’, ‘몹시 싫어하다.’, ‘지독하게 미워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가증한 행위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습니다.
22절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하나님의 징벌 - 애굽 왕 시삭의 공격>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결과 심판을 초래했습니다.
25~26절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26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대하 12:2에는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란 구절이 삽입되어 유다의 타락과 시삭의 침공 사건 간의 인과(因果) 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르호보암이 즉위한 지 오 년째 되는 해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주의 성전에 있는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다 털어 갔습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가져 갔습니다.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도 가져 갔습니다. 솔로몬의 영광이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왕 시삭을 유다의 죄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르호보암과 유다의 죄는 유다의 영광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번영기가 완전히 끝났음을 시사해 줍니다.
<놋 방패로 경호하는 르호보암>
남유다의 쇠락을 의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7~28절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 대장의 손에 맡기매/ 28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시위하는 자가 그 방패를 들고 갔다가 시위소로 도로 가져갔더라.”
르호보암 왕은 금 방패 대신에 놋 방패를 만들어서, 대궐 문을 지키는 경호 책임자들의 손에 그것을 맡겼습니다.
한 시대에서 다른 한 시대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즉 금 방패로 대표되는 황금기의 종식과 놋 방패로 대표되는 쇠퇴기의 시작이 넌지시 암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만큼 유다의 영광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시삭의 침공 후에도 꾸준히(반복적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찾았습니다(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제사였을 것). 그때마다 시위대 대장(경호대장)이 그 놋 방패를 들고 가서 경호하다가, 다시 시위소(경호실)로 가져 오곤 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의 죽음>
29~31절까지 마지막 문단은 르호보암 왕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줍니다.
29~31절 “르호보암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31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그의 아들 아비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 르호보암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왕실 서기관이 편찬한 남왕국의 국정 일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 사이에는 늘 전쟁이 있었습니다. 지속적인 국지적(局地的) 전투가 있었습니다.
3) 르호보암이 죽으니,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다가 장사하였습니다[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아 왕궁으로 삼았던 시온 성(삼하 5:7)]. 그의 어머니 나아마는 암몬 여자입니다. 그의 아들 아비야가 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습니다.
한편 역대기는 르호보암이 행했던 건축 사업이라든지 각처에서 남하해 온 제사장들을 받아들인 일 등 따위를 비교적 상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대하 11:5-23; 12:1-8). 그러나 열왕기는 르호보암에 대한 본질적 해석의 줄기만 남긴 채 가지치기를 하였습니다. 즉 르호보암 역시 남왕국 우상 숭배에 대해 책임이 있는 부정적인 왕으로 발췌, 서술한 것입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신앙적인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큰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다르게 르호보암에게는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21)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세우신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시입니다(여로보암이 이 성전을 소유했더라면 그렇게 쉽게 타락하지 않았을 것). 그렇습니다. 르호보암은 이 거룩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특별한 은혜를 받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룩한 예루살렘을 우상 숭배가 만연한 장소로 변질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 북쪽의 여로보암보다 더튼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가 크던 작던 우리는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받은 달란트가 크면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더 큰 책임이 돌아옴을 깨닫고 더 겸손히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하고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한 르호보암의 죄가 작지 않아 보이는데, 왜 그의 가문은 멸절을 당하지 않았을까요? 여로보암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그의 집이 남김없이 멸절당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 왕의 가문은 멸절되지 않고 계속 왕 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쇠락한 느낌을 지을 수 없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과 맺으신 약속 때문입니다.
삼하7:14~16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고 이 약속은 훗날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반복됩니다(여로보암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은 곧 다윗과 예루살렘을 위해 다윗 왕조를 존속시켜 주겠다는 은총의 약속입니다(11:36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
이것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 곧 예수님을 오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 왕조의 역사는 남유다가 존속할 때까지 죽 이어집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구원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고, 회개하면서, 날마다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 인간의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가 주는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그 모친의 이름은 나아마라 암몬 사람이더라”라면서 르호보암의 어머니의 이름과 출생지가 앞뒤로 반복하여 언급됩니다. 이는 르호보암이 우상 숭배자로 타락함에 있어서 어머니의 영향이 컸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유다 땅에 암몬의 가증한 우상 '몰록'을 성행시킨 장본인이었을 것입니다(23절, 11:7). 몰렉을 섬기는 행위 중 가장 알려진 행위가 사람을 불로 태워드리는 행위였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 르호보암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특히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금하셨던 것입니다(신 7:3).
또한, 유다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4절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느덧 가나안의 죄를 본받는 것을 볼 때 죄의 영향력이 참으로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는 존재입니다. 특히 혈연관계, 가까운 친구 관계 일수록 피차 영향을 받습니다.
주변의 악한 친구들이나 환경을 멀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2절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여기서 ‘노엽게 하다’라는 히브리 원문을 보면 ‘질투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시고 질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질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애굽에서 구원하시며 그들과 언약의 관계를 맺으셨는데, 그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신부 대하듯 하시기 때문에(계 19:8, 겔16:8-14) 때로는 그들로 기뻐하시는가 하면 질투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출 20:5; 사62:5).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헌신짝 버리듯이 하나님을 배신하니, 하나님이 질투하시고 분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징계를 가져옵니다.
25~26절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26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시삭 왕은 르호보암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도구였습니다. 또 항상 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신약에 더욱 밝히 계시되어 있는 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 혹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마 25:1 이하, 엡 5:25-33, 계 21:2).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여로보암도 지켜보시고 르흐보암도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과 행실을 보시고 기뻐하시기도 하시고 노여워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합니다(코람데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늘 하나님 면전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 언제 어디에서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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