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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신차 판매량은 1년에 대략 140만대 전후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독일의 경우는 약 300만대 정도죠. 판매량만 많은 게 아니라 독일은 구매 패턴도 상대적으로 다양해 여러 모델이 팔려나가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차가 선전을 하는 건 아니죠. 오늘은 2013년 한해동안 90대 이하의 판매량을 보인 모델들을 한 번 모아봤습니다. 독일의 자동차 잡지 아우토뉴스에서 소개한 내용인데 흥미로워서 여러분들과 공유를 하려고 합니다.
물론 90대 이하 팔렸다고 해서 다 실패라고 할 순 없겠죠. 롤스로이스 팬텀 같은 고가의 차량이 한 달에 100대씩 팔릴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팔린 양으로 꼭 장사를 잘했다 못했다 할 순 없는데요. 어쨌든 많이 팔린 모델들 못지않게 적게 팔린 이런 데이타가 그 나라의 자동차 소비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어떤 차들이 얼마나 적게 팔렸나 그 결과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알파 로메오 8C
2010년에 단종이 된 모델인데 2013년에 13대나 판매가 됐네요. 앞으로 이런 단종된 모델들이 여전히 판매 되고 있다는 걸 계속해서 확인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런 멋진 모델은 단종되었다고 해도 구할 수만 있다면 돈을 지불하는 게 아깝지 않을 거 같군요. 8기통 엔진을 장착한 8C의 자리는 이제 4기통의 좀 더 작은 4C가 대신하고 있는데 높은 가격이 다소 부담스러운 모델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스타일만큼은 뭐, 두말하면 입 아프겠죠?
◆ 푸조 iOn
미쓰비시 i-MiEV라는 전기차와 같은 푸조의 전기차인데 48대판매가 됐고 미쓰비시는 89대를 팔아 조금 더 판매가 이뤄졌습니다. 한번 충전하면 약 150km 정도의 거리를 갈 수 있다고 하죠.
◆ 혼다 인사이트
공식 판매용 카탈로그엔 이름이 없는 인사이트가 87대나(?) 판매가 됐네요. 개인 구매 보다는 다른 용도로 판매가 이뤄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인들에게 이 차 아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처음 본다고 할 거예요.
◆ 애스턴 마틴 DB9
570마력에 판매가는 약 18만 유로, 약 2억 6천만 원 정도 하는 고급 모델이죠. 독일인들이 로망으로 삼는 영국 차이지만 하지만 판매는 총 6대가 전부였습니다. 아마 더 저렴한 밴티지에 고객이 몰린 게 아닌가 합니다.
◆ 혼다 CR-Z 하이브리드
CR-Z는 독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동차죠. 공간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지만, 핸들링이 좋은, 운전의 맛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모델은 69대 판매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네요.
◆ 페라리 599 GTO
유후, 페라리 599 GTO입니다. 딱 한 대 신차 등록됐네요.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차는 이름처럼 599대 한정판 모델이거든요. 구입한 직후부터 이 차의 가치는 신차 가격을 넘어설 테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귀한 대접을 받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쉐보레 볼트
자매 브랜드 오펠이 볼트의 이란성 쌍둥이 암페라를 팔고 있어서 그런지 이 미국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은 25대 판매한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쉐보레 철수한고 하니 왠지 기념으로 한 대 장만할 사람이 올해는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네요.
◆ 벤틀리 뮬산
벤틀리는 상당히 많이 팔리는 브랜드이지만 그 안에서도 4억이 훌쩍 넘는 이 뮬산은 부담이 되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생산량이 주문을 따르지 못하는지도. 20대 팔렸다는데, 저는 "스무 대나 팔렸어?" 라고 되묻고 싶어집니다. 개인적으로 호기심 가는 모델 중 하나입니다.
◆ 토요타 코롤라
참 희한한 게, 2010년에 유럽에서 철수한 게 코롤라예요. 그런데 36대나 신차 등록이 됐단 말이죠. 아마 2010년에 수입되었던 재고가 팔린 게 아닌가 싶은데, 누가? 왜? 이 차를, 몇 년이나 지난 모델을 구입을 했을까 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올해부터 신형 코롤라가 다시 정식으로 판매하게 되거든요. 36대의 코롤라의 행방을 쫓아 보고 싶어집니다.
◆ 모건 에어로 8
영국의 자그마한 자동차 메이커입니다. 주문 생산 전문업체죠. 클래식한 디자인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3휠 모델로 한국 분들에게도 잘 알려졌는데 보시는 에어로 8 모델은 작년에 독일에서 딱 한 대가 팔린 것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2006년 디자인인데 엔진은 BMW 걸 쓰는 걸로 알려져습니다. 저는 전면부만 좀 더 다듬어지면 더 팔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력적이죠?
◆ 쌍용 로디우스
그래도 신형 코란도가 판매량에서 (엑티언과 합쳐 약 500대 판매됨) 쌍용의 체면을 세워줬습니다. 저는 쌍용이 판매망만 제대로 갖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모델을 유럽에서 판매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그래도 로디우스는 좀 회의적으로 보게 됩니다. 작년에 58대가 독일에서 판매됐네요.
◆ 페라리 575 마라넬로
앞서 코롤라 판매된 거 보고 제가 희한하다고 했는데요. 이 차는 더 희한합니다. 어지간한 페라리 팬, 혹은 오너가 아닌 이상엔 알기 어려운 575 마라넬로라는 페라리 모델이죠. 2003년엔 포브스 선정 올해의 차에 뽑히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판매됐기 때문에 아는 분들이 계실 테지만 2006년까지 생산되고 단종된 모델이 어떻게 8년이 지난 뒤에 팔렸냐는 겁니다. 그것도 중고도 아닌 신차로 말이죠.
페라리 창고에 모셔져 있던 것이 특별한 인연을 만나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닌가, 뭐 이런 정도로밖에 추측할 수 없겠군요. 딱 한 대가 작년 독일에서 판매됐습니다. 12기통의 엔진음이 8년이나 묵혔는데, 이게 장맛으로 다가올지, 올드함으로 다가올지, 오너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죠.
◆ 캐딜락 ATS
독일에서, 아니 유럽에서 힘을 못 쓰는 게 미국 차들이긴 하지만 캐딜락은 좀 예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봤는데 쉽지가 않네요. BMW 3시리즈 잡겠다고 했는데, 일단 인지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6월 말 한국 방문 때 이 차를 시승해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 타보고 싶습니다. 3시리즈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직접 경험을 해보고 싶거든요. 아주 궁금해요. 젊어지기 위해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올드한 이미지를 떨치지 못한 거 같은데,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미국 브랜드 캐딜락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독일에선 작년에 19대가 팔렸습니다.
◆ 롤스로이스 레이스
롤스로이스의 엔트리급 모델인 고스트보다 차 길이가 짧은 이 럭셔리 쿠페가 판매되기 시작한 시점이 2013년 10월입니다. 쉽게 말해 석 달 동안 14대가 팔렸다는 건데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냅다 지른 고객이 14명이나 된다는 얘기겠죠. 632마력에 2.4톤이나 하는 무게의 차가 제로백 4.6초니까 토크와 마력의 어마어마함이 느껴지시죠? 스포티한 휠이 낯설어 보이는 걸 보니 롤스로이스는 롤스로이스인가 봅니다.
◆ 인피니티 G37
30대가 팔렸네요. 쿠페, 세단, 카브리오 모두 포함된 판매량입니다. 미국에서 잘나가는 인피니티지만 유럽에선 힘을 못 써도 정말 못 씁니다. 미국시장에 모든 것을 겨냥해 개발되었다는 게 아무래도 취향이 조금은 다른 유럽에선 어필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 마이바흐
작년을 끝으로 마이바흐라는 제조사는 사라졌습니다. 물론 모든 유산은 다임러가 소유하고 있고, 마이바흐라는 이름을 결코 이대로 끝내지는 않을 겁니다. 어쨌든 지독한 부의 상징인 마이바흐가 작년에 고향 독일에서 5대를 팔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의 삼각별을 있게 한 천재 엔지니어 마이바흐의 이름을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 봅니다.
◆ 라다 프리오라
"넌 누구냐?"라고 할 분들이 많을 텐데요. 러시아 찹니다. 러시아에선 베스트 셀러예요. 하지만 러시아에서만 그렇습니다. 독일에선 26대가 팔린 게 고작이죠. 내구성은, 장담 못 하지만 저렴한 가격이 일품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안 타고 싶네요!
◆ 로터스 에보라
로터스가 판매에서 좀 어려움을 겪고 있죠? 최근엔 이런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서일까요? 기가 막히게 멋진 바이크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엑시지나 엘리제에 비하면 스타일에서 변화가 필요해 보이긴 합니다. 안타깝게도 9대 판매된 게 전부였습니다.
◆ 볼보 V50
V70의 동생이랄 수 있는 왜건 모델인데 SUV 쪽에 좀 더 집중하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2012년에 단종이 됐습니다. 단종은 비록 됐지만 2013년에 19대가 팔렸는데요. 아마 이 역시 선 계약된 것이 팔려나간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 볼보스럽죠?
◆ 롤스로이스 팬텀
진정한 황제. 팬텀이 작년에 독일에서 22대나 팔렸습니다. 6억이 넘는 이 초호화 차량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네요. 애정인지 동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그거겠죠? 설마 웨딩카로 쓰려고 사는 건 아닐 테고. BMW가 롤스로이스의 역사를 잘 이어가고 있는 것 같네요.
◆ 르노 플루언스
이 차는 르노삼성의 SM3의 기본 모델이라 한국에선 관심이 더 있을 거 같은데, 판매는 신통치 않습니다, 적어도 독일에서는요. 총 60대가 팔렸네요. 전기차도 있는데 그건 더 실적이 안 좋아 단종됐다는 얘기도 있고, 르노는 안 팔리는 차와 팔리는 차의 편차가 너무 큰 편입니다. 이미지도 좀 더 개선되어야겠고, 그래도 판매량만 놓고 보면 잘 굴러가는 거 같은데, 영업이익 등을 보면 과연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 르노 라티튜드
플루언스보다 더 안 팔린 차가 여기 또 있네요. SM5의 유럽 수출형 모델인 라티튜드인데 34대 팔린 게 전부였습니다. 르노 역시 중형차급 이상에선 경쟁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고급 모델을 만들 여력도 없어 보이고요. 소형차에 좀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이네요.
◆ 비즈만 GT
독일의 대표적인 소형 제작 메이커 비즈만. 안타깝게도 작년에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뭔가 변화를 꾀하고 싶어도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니 판매는 비참한 수준에 머무르고, 그렇게 결국 파산이라는 슬픈 최후를 맡게 되었네요. 그래도 14대나 팔린 거 보니, 누군가 다시 이 브랜드를 되살려 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됩니다. BMW 10기통 엔진이 들어간 모델로 507마력이나 되는 힘을 냅니다.
여기에 언급은 안됐지만 100대 미만의 판매량을 보인 차들을 더 보면, 로터스 엘리제(33대), 비즈만 로드스터(49대), 역시 단종된 람보르기니 가야르도(54대), 닛산 니트로 (56대), 렉서스 LS (55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69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78대), 페라리 캘리포니아(79대), 모건 4/4 (83대), 마세라티 기블리(83대), 란치아 플라비아(85대), 닛산 GT-R(90대), 못난이 토요타 어반크루저(93대), 현대 베라크루즈(95대), 인피니티 M (99대) 등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만든 자동차가, 더욱이 많은 양을 팔아야 사는 양산형 모델들의 경우엔 이런 카테고리에 이름이 오른다는 게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소비는 냉정한 겁니다. 의리와 눈물로 차를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이런 결과에 낙담할 게 아니라 어금니 콱 깨물고 환골탈태해서 좋은 결과를 내는 자동차로 되살아나길 바랍니다. 약간의 위로의 말로 오늘 포스팅은 마무리하겠습니다.
첫댓글 정보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