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사설 ------------------------------
대한민국 헌정사 기적(?)
한국 정치사의 기적이다.
고대 전사(戰士)시대 영웅의 패권도 아니고, 왕조시대 무인(武人)의 혁명도 아니다. 민주주의 시대 국민적 저항으로 통치 권력을 교체한 기적이다.
고작 검사 생활 26년이 전부다.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고 검찰총장을 하다가 정권에 기댄 법무부장관의 핍박에 못 견뎌 결국 임기 내 사표를 제출해야만 했던 일개(?) 검사 출신이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기적에 다름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의 선택으로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됐고, 이어 검찰 총수에 오른 장본인이다. 그러니까 정부 여당의 검찰 관료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당 아닌 야당의 대통령 후보자로 나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배신과 항명의 이율배반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영혼보다 공화국을 더 사랑한 로마의 부르투스 애국심일 수도 있다.
또한 70년이 넘은 한국 정치사에서 야당에는 기라성같은 정치 선배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현실정치에 뼈가 굳은 채 사기와 폭력에 능숙하여 결코 만만치않은 야당 거물들을 물리치더니 급기야 기득권 넘치는 여당 후보자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선출된 광경은 참으로 놀라움이다.
원인이야 차고 넘친다. 핵심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다가 정권에 밉보였지만 공정과 상식의 정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헌정주의에 충실할 때 민심은 그의 저항적 용기와 패기에 감응하여 함께 저항을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존 로크가 주장하는 국민 저항의 발로인 셈이다. 국민이 주권 위임의 통치 권력을 맡겼지만 무능하고 부패한 위선적 ‘내로남블’ 정권에 반기를 들며, 그를 도구로 삼아 끝내 정권을 심판한 것이다.
민심은 무섭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일단 지금의 민심은 그를 띄운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결국 그의 대권 쟁취는 천심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기적이다. 흔히 기적이라는 수사(修辭)는 경이로운 역사적 사건을 가리킨다. 좋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음이다.
10년 만에 교체된 종로 패권
정치1번지 종로의 패권이 10년 만에 교체됐다.
지난 2012년 더불어민주당에 빼앗긴 종로 패권을 국민의힘이 10년 만에 되찾은 것이다. 2002년 한나라당이 종로 패권을 쥐었다가 10년 만에 더불어민주당에 빼앗기더니 다시 10년 만에 되찾았다. 종로 패권이 마치 10년 주기로 왔다 갔다 하는 형세다.
국회의원 보궐 선거로 이뤄진 이번 종로 패권 쟁탈전은 다소 싱거웠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후보자 공천을 포기하면서 제1야당인 국민의힘 후보가 독주하는 형세였기 때문이다. 물론 제3야당 격의 정의당 후보도 있었지만 그들의 세력은 종로에서 ‘강로지말’ 형세였다.
다크호스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후보 공천을 포기하니까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전직 종로구청장이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여 경쟁마가 되긴 했다. 무려 11년 4개월 동안 민선 종로구청장을 지냈기 때문에 경력상으로는 꽤나 경쟁력이 있는 셈이었다. 그동안 민선 종로구청장으로서 그가 만들고 관리했던 조직만 해도 외형적 득표력은 상상 이상일 수가 있었다. 주민과의 친교적 위상도 무시할 수만 없는 형세였다.
하지만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처럼 그의 11년 4개월 구청장 경력은 별무 소용이었다. 무소속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선거판에서 무소속의 숙명은 2년 전 구청장 선거에서 득표한 5만여 표에 절반도 안되는 득표로 이어져 망신살을 보였다.
이번 종로 패권 교체의 주역이 또한 큰 특징이다. 국가 의전 서열 10위라는 전직 감사원장이 종로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권에서 감사원장으로 발탁됐지만 월성 원전사건 감사를 벌이다 정권에 밉보여 결국 사퇴를 하고 야당인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섰던 저명인사다. 종로 보궐선거운동 개시 며칠을 앞두고 갑자기 후보자 공천을 받으면서 출마를 했기 때문에 준비가 매우 미흡했다.
더군다나 국회의원 선거도 처녀 출전이어서 선거운동 자체가 처음부터 엉성했다. 종로구 정치 지형적 특성은 고사하고 당세와 주민 특성도 잘 모른채 벌이는 선거운동 방식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이었다. 믿을 것은 전직 판사에다 감사원장이라는 화려한 경력뿐이었다. 다시말해 바람만 기대할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현 정권에서 감사원장을 지내다가 정권의 부정적 의혹을 감사하다가 압박을 받자 이에 반발하고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했다는 용기와 배신의 이중적 평가도 양립했다.
하지만 정치1번지 주민의 선택으로 결국 종로 패권 교체의 주역이 됐다. 10년 만에 종로 탈환을 이룬 새 국회의원에게 새로운 종로 비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