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의 함양은 산, 계곡, 숲, 정자, 누각, 고택 등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는 볼거리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인 상림과 개평리의 한옥마을, 물 맑은 계곡가에 띄엄띄엄 들어선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이 있는 이름 그대로 꽃처럼 아름다운 화림동계곡, 가족쉼터로 좋은 용추계곡 등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계절은 또 바뀌어 가을이다. 지리산 자락의 함양은 여름과 가을 무렵에 찾으면 좋다. 산, 계곡, 숲, 정자, 누각, 고택 등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는 볼거리들이 수두룩하거니와 일상의 시름도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다. 모처럼 함양땅을 밟았다면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림(上林, 천연기념물 제154호)으로 가보자. 함양읍내 한쪽으로 ‘위천(渭川)’이라는 맑은 냇물이 흐르는데, 상림은 그 냇가를 따라 길게 펼쳐져 있다. 면적이 자그마치 21ha에 달하는 이 숲은 수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게 그 시초이다.
상림에는 현재 120여 종에 달하는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이 나무들은 전형적인 온대 낙엽활엽수림으로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상림은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숲 안에는 1923년 최치원 선생의 후손들이 세운 신도비(神道碑)와 사운정(思雲亭), 함화루(咸化樓), 초선정, 화수정 같은 정자와 물레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누각, 벤치, 운동기구, 맨발건강지압로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놓아 누구나 편한 시간에 이용할 수 있다. 숲 뒤쪽 인공 연못에는 수련 등 여러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고, 숲 중간 도로변에는 최치원, 김종직, 유호인, 정여창, 박지원 등 함양과 인연이 깊은 역사 속 인물을 볼 수 있는 역사인물공원도 꾸며 놓았다.
상림에서 나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곡면 쪽으로 15분쯤 달리면 기와집이 즐비한 개평리에 이른다. 예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함양은 유독 권세가들의 반가(班家·양반가옥)가 많다. 안동 하회마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예스러운 한옥이 마을길을 따라 다분다분 앉아 있다. 소박해서 더 정겹다고 할까? 한옥마을로도 잘 알려진 이곳에서 특히 눈에 띄는 기와집 한 채. 바로 조선조 선조 때의 문헌공 정여창(1450~1504) 선생의 고택이다.
정여창은 성리학의 대가로서 현재의 집은 사후에 그가 우의정으로 복권된 후 세운 저택으로 솟을대문, 안사랑채, 중간문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 그 규모가 가히 놀랍다. 이 마을에는 이밖에도 구한말 바둑 최고수였던 노사초의 생가(노씨 대종가 고택), 노참판댁 고가, 하동정씨 고가 등 전통 한옥들이 그 멋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다.
개평마을에서 나와 24번 국도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면 쉬기 좋은 화림동(花林洞, 일명 안의계곡)계곡이 나온다. 이름대로 꽃처럼 아름다운 이 계곡은 예전에 영남 지역 유생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던 길목이었다. 물 맑은 계곡가에 띄엄띄엄 들어선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 따위의 정자는 또 다른 멋으로 다가온다.
그 첫머리에 있는 동호정의 통나무를 쪼개 만든 계단이 이채롭다. 삐그덕 삐그덕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발걸음이 왠지 위태롭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단아하고 자연스럽다. 이 정자 앞으로는 차일암이라는 널찍한 바위가 있는데, 옛 양반들이 차일을 쳐놓고 풍류를 즐겼던 바위라 한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곡물은 깊고 맑다. 바위에 앉아 한가하게 산들바람을 마시노라면 흐르던 땀도 금세 식고 맑은 정신이 온몸으로 흐른다.
동호정에서 좀더 올라가면 강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군자정과 거연정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군자정은 충주 부사 전시숙이 세운 정자이고 거연정은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다. 거연정은 무지개 다리인 화림교(철교)를 건너 암석 위에 세워져 있는데 주변의 노송과 울창한 숲, 그 밑으로 흐르는 아찔한 소는 이 정자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화림동 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꼽혔던 농월정은 안타깝게도 재작년 불타 없어졌다. 그러나 정자 앞에 펼쳐진 계곡은 언제 봐도 멋있다. 마을 사람들은 정자가 원래대로 복원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정자는 어느 고장에 가나 있지만 함양과 이웃한 거창은 특히 정자가 많다. 8개의 이름난 못에 8개의 정자를 세우니 이른바 8정8담(八亭八潭)이다. 정자마다 담긴 사연도 예사롭지 않다.
정자를 보기 위해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여행객들도 많다. 화림동 정자 기행은 거연정에서 끝을 맺는다. 거연정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남계천(또는 남강천)을 따라 육십령을 넘으면 전북 장수땅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육십령은 한때 도적떼가 출몰할 정도로 길이 험해 장정 60명이 모여야 넘어갈 수 있었던 고개였다. 그러나 터널이 뚫리면서 그 옛날의 자취는 간 곳 없다.
화림동계곡이 시작되는 안의면 소재지에서 역시 아름다운 계곡이 있는 기백산으로 간다. 그 길머리에서 만난 거대한 물레방아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뭔가 사연이 있을 듯싶어 카메라를 둘러메고 가까이 가본다. 『열하일기』를 남긴 연암 박지원이 함양에 부임하면서 청나라에서 본 물레방아를 본떠 제작해 설치한 것이란다.
태고의 멋이 그대로 살아 있는 기백산은 함양군과 거창군의 경계를 이루며 일명 지우산이라고도 불린다. 이 산을 타고 내리는 10여km의 용추계곡(일명 심진동)은 가족 쉼터로 좋다. 계곡 입구에 들어선 심원정은 화림동의 농월정(지금은 불타 없어짐), 원학동의 수승대와 함께 삼가승경(三佳勝景)으로 불리며 용추계곡의 멋을 한층 살려준다.
거제부사를 지낸 돈암 정지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초계 정씨 후손들이 1558년 세운 정자라 한다. 심원정을 보고 계곡을 거슬러오르면 상사바위, 매바위, 용추사, 용추폭포, 용추자연휴양림 등 절경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특히 인근 지리산과 덕유산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용추폭포는 용틀임을 하면서 떨어지는 힘찬 폭포의 모습이 볼 만하다.
그 앞에 한참 서 있으면 세찬 폭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온몸이 움찔거린다. 용추폭포는 김하늘이 출연한 공포영화 『령』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회학과 2학년 민지원(김하늘)이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친구들이 잇따라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도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 용추폭포는 영화 속에서 물에 빠진 민지원(김하늘)이 물가로 걸어나오는 장면과 그 모습을 바라본 친구 미경(신이)이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을 촬영했다.
소름 오싹 끼치는 으스스한 분위기는 영화가 막을 내린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을 정도다. 용추폭포에서 약 30분을 걸어올라가면 상사평마을이 나오고 그 위쪽에는 별을 바라보며 하룻밤 보내기 좋은 용추자연휴양림(055-960-0427)이 있다. 다양한 평형의 산막과 야영장, 삼림욕장,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에게 권할 만하다.
등산코스 : 심원정-삼형제바위-매산소, 매바위-꺽지소-요강소-용추폭포-용추사-도수골(6km, 3시간 소요). 한편, 함양은 지리산을 가장 가까이 두고 있어 더 가보고 싶은 고장이다. “함양 작은 고을에/험한 산 깊기도 하다./바다는 멀고/벼랑은 만길이나 되네.” 고려 말의 이색은 함양땅을 이렇게 노래했다.
여기서 험한 산은 지리산을 두고 한 말이다. 하봉에서 반야봉까지 27km에 달하는 지리산 11개 봉우리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건 함양 사람들에게 행운이고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지리산 천왕봉이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란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리산의 11개 영봉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함양읍에서 마천 방향, 구불구불한 산간도로(오도재)를 따라 지리산조망공원에 올라보길 권한다. 맑은 날이면 지리산의 아득한 산줄기들이 두 눈에 또렷이 잡힌다.
조망공원 바로 위 지득정(智得亭)에 올라서면 정면으로 백두대간의 웅장함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선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싶다면 오도재에서 가까운 백무동 코스가 가장 좋은데 왕복 소요시간은 8~10시간 정도다. 천왕봉이 무리라면 장터목을 목적지로 정해도 된다. 5.8km에 3시간 30분 걸린다. 백무동 위쪽의 한신계곡은 세석고원으로 오르는 길목. 지리산 북부권에서 가장 큰 계곡으로 깊은 소와 얼음처럼 차가운 물, 등허리를 파고드는 산바람은 더위를 단숨에 날려보낸다.
또한 백무동 입구 벽소령 광대골과 비내리골 쪽에 있는 지리산자연휴양림도 더위를 피하기 좋은 곳이다. 휴양림을 관통하는 계곡물은 거울처럼 맑고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원시의 숲은 청정하기 그지없다. 휴양림을 이용하려면 사전 예약 필수.
여행메모
찾아가는 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88올림픽 고속도로 함양 나들목-백천 사거리-표지판을 따라 우회전(4km)-함양 읍내-상림. 경부고속도로 김천 나들목-거창-함양,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남원-88고속도로-함양.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행 고속버스 하루 6회 운행. 대구, 마산, 창원에서 시외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무주나들목-장계 방면 19번 국도-적상삼거리-사산삼거리-장계면 소재지-26번 국도-육십령 터널-서상, 서하-거연정-동호정.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서상 나들목-안의 방면 국도 26호-안의면 소재지-용추계곡. 함양에서 군내버스 이용, 용추사 하차/12회 운행/35분 소요, 안의에서 택시 이용. 안의에서 화림동 계곡행 버스가 1시간에 두 대꼴로 출발한다. 20분 소요.
잠잘 곳 함양읍 상림 주변에 상림장(963-1170), 별궁장(963-7980), 산해장(963-1500), 백암장(963-9241) 등의 숙박시설이 있고, 용추계곡 입구에 금원산장(962-4772), 기백산장(962-4682), 용추가든(963-8055) 등과 지리산자연휴양림 주변에 벽소령모텔(962-5640), 정자나무집(962-5513), 노루목산장(964-2035) 등이 있다.
맛 집 상림에서 가까운 위성집(963-2377)은 지리산에서 나는 도토리만으로 쑨 묵과 동동주 맛이 일품이고, 함양읍내 조센집(963-9860)은 어탕국수로 유명하다. 또 대성식당(963-2089)은 소문난 한정식집이고, 돌담식당(963-3198)은 염소불고기 전문점이다. 용추계곡이 있는 안의면은 유명한 갈비탕촌. 안의원조갈비찜(962-0666) 등 갈비탕집 10여 곳이 맥을 이어오고 있다. 갈비탕 6,000원.
문 의 함양군청 문화관광과(960-5555, www.hygn. go.kr), 함양시외버스정류장(963-3281), 기백산 매표소(963-4404), 용추자연휴양림(963-9611), 지리산자연휴양림(963-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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