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림은 겁없이 시작했는데 글은 늘 내 것이 아니라고 밀어냈죠.
그러다 올 1월 동네 문화원 수필반에 들어갔는데, 쌤이 잘 쓴다고 칭찬 ㅎㅎㅎ
얼떨결에 4월 수필전문잡지에서 신예작가 초회추천 받는다고 경험삼아 내보라 하셨구요.
그런데...덜컥 초회추천 받았어요.
여기는 초회추천 받고 다음에 완료추천 되면 등단작가 되는거래요.
초회추천 응모작 많았다는데 세명 작품만 추천. 어찌어찌하다보니 제일 많이 추천 받은 일등이라고 ㅎㅎ자랑 맞네요
사진도 그림도 개인전시회나 공모전에 내는것 안했어요.
그냥 취미니까 즐기자 했거든요.
글이 덜컥 이리 되니 사실 잘 모르겠어요.
혼자 일기장에 끄적대던글이 어쨋든 그래도 누군가들에게 읽을 만한 글이었구나 하는 인정을 받은건 좋긴해요.
수필이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는 있는데 참 보수적이더라구요.
그래서 사실 고민도 되요.
전 그냥 제가 쓰고 싶은걸 자유롭게 쓰고 싶은데...
더 고민해야 할듯 싶기도 해요.
일단 그래도 자랑자랑 할겸 ㅎㅎㅎ
올려봅니다.
무엇보다 무심재 후기쓰며 끄적거린것도 많은 도움되었기에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부끄러운 글일지도 모르지만 ...저 진짜 각잡고 써본글은 처음인지라...
제목/또 오월입니다.
“닫지 마라!” 시어머님은 창문을 닫으려는 내게 소리쳤다. “바람이 차서요.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나는 치매에 걸려 오 년째 침대에 누워 계신 어머니가 걱정됐다. “장미꽃을 보려고 그러는 거야.” 시누가 말했다.
창문 너머 담벼락은 온통 장미로 가득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 늘어진 장미넝쿨을 어머니가 잘 볼 수 있도록 철사로 묶어주었다. 그중 몇 송이 꺾어 화병에 꽂아 침대 옆 탁자에 놓았다. 어머님은 “이쁘다” 하며 웃었다. 장미는 연일 내린 비에 모조리 떨어졌다. 어머님 뵈러 갈 때마다 나는 꽃을 샀다. 치매는 하루하루 더 심해졌고, 어머님은 꽃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간식을 들고 있는 다른 손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때다 싶어, 시누와 나는 마당에 널브러진 빈 화분과 깨진 장독들을 내다 버렸다.
친정엄마도 꽃을 좋아했다. 호스피스병동에 있으면서도 집에 있는 화분을 걱정했다. 정작 본인은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면서 화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부르며 내게 물을 꼭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겨울이 끝나면 해방촌 우리 집은 분주했다. 땅속에 묻어둔 김장 장독들을 들어내느라 마당은 파낸 흙으로 난장판이었다. 용도를 다한 장독은 있는 대로 깨끗이 씻어 벌레나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뒷마당 장독대 위에 거꾸로 엎어 놓았다. 그때부터 엄마와 할머니는 흙을 갈아엎었다. 장독을 묻었던 자리는 이제 꽃밭이 될 차례였다. 아침마다 마당가에서 운동하던 아버지는 꽃밭이 자꾸 넓어지는 게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때만은 시어머니인 할머니와 며느리인 울 엄마가 어김없이 의기투합했다. 꽃밭을 제외한 마당을 시멘트로 덮기 전까지 그렇게 꽃밭은 해마다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엄마는 흙이 고르게 정돈되면 작년 가을 창고에 보관해둔 꽃씨봉지들을 나에게 꺼내오도록 시켰다. 매년 신문지를 잘라 밥풀로 붙여 작은 봉지를 만들고 겉면 한쪽에 꽃 이름을 적어 놓곤 했다. 그걸 만드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또 하나 꽃밭 둘레에 벽돌로 경계석을 만드는 것도 내 차지였다. 직육면체 벽돌을 30도쯤 기울이고 서로 기대어 세운 후 그 안에 꽃씨를 심었다. 너무 깊게 심으면 싹이 아예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얕게 심으면 씨가 바람에 날아가거나 새들이 먹을 수 있어서 늘 신중했다.
지금도 기억난다. 맨 앞줄에 채송화와 금잔화를 심고 그다음 줄엔 백일홍과 봉선화 국화 붓꽃 장미, 그 뒤로 칸나와 달리아, 맨 뒤엔 해바라기를 심었지. 평소 굳게 닫혀 있던 우리 집 대문은 꽃이 필 때 열어두어 동네 사람들이 꽃구경하러 들어오곤 했다. 마을에서 우리 집은 ‘마당 이쁜 집’이었고 나는 그 이름이 마냥 좋았다.
해방촌을 떠나던 날은 장마철이어서 꽃씨를 미처 챙기지 못했다. 이사한 곳은 일반주택이었지만 마당이 아주 작았다. 땅값이 비싼 동네여서 최대한 집을 크게 지었다 고 들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짐을 정리하기 무섭게 계단 위 난간에다 화분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웃에서 버린 화분까지 모두 주워와, 겨울이면 거실이 발 디딜 틈 없이 비좁았다. 내 방 창문 옆에 전 주인이 심어 놓은 넝쿨장미가 제법 자라서 오월이 되면 집 전체가 장밋빛으로 빛났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 집을 ‘장미 나무집’이라고 불렀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화분 놓을 공간은 줄어들었고 베란다에 잠시 머물다 가는 햇살은 꽃들이 피기에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아파트 화단에 버려진 화분이 보이면 여전히 집으로 가져왔다. 가족이 모였을 때 엄마는 꽃들을 자랑하고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다. 우리는 베란다가 작다고, 아이가 다칠 수 있다고 핑계 댈 뿐 그것에 관심이 없었다.
친정엄마는 한 달 가까이 소화가 안 된다면서 자꾸 토했다. 큰 병원으로 갔을 땐 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길어 봤자 6개월 살 거라고 했다. 며칠 후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다. 호스피스병동은 환자가 진통제와 각종 약들에 적응되기 시작하면 퇴원시켰다. 집으로 의사와 간호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왔고, 보호자는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의사와 면담하고 투약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했다. 입원한 지 보름 만에 병원과 가까운 여동생 집에 엄마를 모셨다. 동생네 집에 온 이후 엄마는 기운을 차렸다. 아버지와 둘만 있다 동생네 집에서 손주들 재롱을 보고는 좋았던지 ‘나 진작 아플 걸 그랬나’ 하고 농담까지 했다. 병이 다 나은 것 같다고도 하셨다. 진통제와 수면제 투여량을 늘려갔으니 당연히 통증도 없고 잠도 잘 주무신 거였는데….
동생네 집은 한강이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그때도 꽃들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그날 엄마는 유난히 기분이 좋으셨다. 휠체어에 앉아 한강 변에 핀 꽃들을 내다보며 “내년에도 저 꽃들을 볼 수 있겠지.”하셨다. “당연하지. 내년엔 걸어서 산책도 하실걸.” 내가 거들자, “그래 내년에 저기 함께 산책하자.” 하며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그날 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병원에 가봐야겠다며 성급히 끊었다. 주치의 선생님께 전화했더니 당장 입원시키라고 했다. 그렇게 호스피스병동으로 다시 입원하고 그다음 날 아침 엄마는 돌아가셨다. 병명을 안 지 두 달도 안 된 즈음이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며칠 만에 집으로 온 나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리 잠만 잤다. 꿈결인 듯 일어나 무심코 거실 커튼을 걷었을 때, 집 앞은 울긋불긋 온통 꽃 천지였다. 앞산도 초록 잎으로 가득했다. 너무나 밝고 활기찬 싱그러운 오월이었다.
엄마 돌아가신 후 오월만 되면 나는 자주 멈칫거린다. 버릇 하나가 생겼는데, 시들고 말라버린 화분조차 버리지 못하고 자꾸 물을 준다.
시어머님은 아예 꽃을 보지 않는다. 관심이 전혀 없다. 장미를 보라고 창문을 열면 닫으라고 소리친다. 그래도 어머님 만나러 갈 때, 나는 여전히 꽃을 고른다. ‘어머님 꽃을 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라는 입속말을 하면서. 어머님과 같이 꽃 나들이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생생한 꽃을 자주 보여드리고 싶다. 아니 이렇게라도 친정엄마와 꽃구경 못한 아쉬움을 덜어내고 싶은 건지도.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
여행후기 읽을때 마다
감동 받았어요
또 후기 기다리기도 했고요
어느 여행길에서 다리뻗고
잠깐 나눈 이야기도 기억한답니다 ㅎㅎ
읽는 내내 눈물이 콧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오월초 얼마전 소천하신 엄마가 생각나서요 ..간암말기 호스피스 화분과 꽃을 걱정하셨던거 모두 울엄마 얘기같아서요
잠시 슬픔잊으려 애썼던 저를 위로해주셨어요 이 아침 초우님 글 읽으며..잊으려했던 슬픔..애쓰지 않고 그냥 맘편히 슬퍼하고 엄마를 추억해봅니다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앗 축하를 드려야하는데 ㅎ
축하축하드립니다 멋진글!!!
아! 반갑네요♡
오랫만에읽는글이예요
대이작도여행길에서만나
이런저런얘기도나누고그이후엔
만나지못햇는데 이렇게좋은글을들고나타나셧네요 글읽으면서자꾸옛날생각이나서맘이아련해졋어요 좋은글또부탁해요
멋진 소식이네요. 초우님 정감있는 글과 그림들 늘 잘보고 있었지요. 시인이시고 작가님이시네 하면서요. 드뎌 '등단'이시군요. 축하드립니다.
초우님 수필 추천 축하드립니다!!!
그림, 사진 늘 좋고 여기 올리시는
여행후기글도 아주 잘 쓰시는분,
수필 1등 추천 당연하시지요
저희 친정엄마도
어제 100세 생신이셔서
어머니 추모의 글이
더욱더 마음에 와닿네요
정진하셔서 수필집도 내시길 바랄게요
초우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오래전에 떠나신 엄마 생각이 나네요ᆢ
엄마랑 함께하지 못한것이 너무 많아서ᆢ
더 마음이 아프네요ᆢ
ㅠㆍㅠ
추천받으신것 축하드려요!!~~
곧, 등단하시리라 느껴집니다!!~~
좋은글..감사합니다~~
*^^*
초우님 등단을 축하 드립니다.
가문의 영광이고요.
작가의 3대 길이 있습니다.
1)등단 한다.
2)작품집을 출간 한다.
3)출간한 작품집을 통해서 작가상을 수상한다.
초우님 앞날에 문운을 기원합니다.
초우님
일 낼 줄 알았어요 ㅎ.ㅎ.
더 큰 사건으로
독자와 언론을
후끈 달구어 주세요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