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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목사님께 편지中 -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
전 하나님을 믿지 않은사람입니다. 항상 집사람이 절 구박하고 구원하려 하지만 잘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부터 믿으려 노력 할겁니다. 아니 저희 집사람이 살기만 기도 할 수 도 있습니다. 저희집사람은 김포성전의 지역활동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이렇게 힘든 역경을 겪고 있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죄책감만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04년 9월경 교통사고로 인해 저희집사람, 애들 2명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알게된 병이이렇게 힘들게 할줄 몰랐습니다. 검진결과 교통사고에 대한 후유증은 없으나, 몰랐던병을알게 되어 병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김포의 병원에서 퇴원이후 대학병원으로 옮겨 수술을하고 또다른 수술을위해 병원을 옮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1차 김포 병원에서 알게된병은심장판막증, 빈혈, 난소종양,물혹 등 억장이 무너질듯한 상황에서 어찌해야할지 몰랐으나 대학병원에서 다행히 난소종양과 물혹은 수술이 잘되서 회복상태입니다. 그러나, 대학병원 에서 각종조직검사를 통해 알게된 위암이란 병은 제게 또다른 힘든 난관으로 이끄는 듯 합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괜찮다고 말하는 집사람을 바라볼때, 집사람앞에서 눈물을 떨구어 차며 울수가 없는 심정이 너무나 아프답니다. 현재 한양대병원에서 아직 난소종양 수술 부위를 치료하고 있으나 내일모래 9월 23일 일산 국립암센터로 다시 입원하여 위암 수술 및 항암치료를 할예정입니다. 지켜보는 저와 가족들의 아픔은 더할 나이 없으며, 당사자인 집사람이 빨리 완쾌 되도록 기도를 드리려 합니다. 하나님 저희집사람을 살려 주세요 이제나이 33살 밖에 않되었고 우리 큰달(6살)과 아들(2살)에게는 너무나 큰 아픔이 될 수도 있답니다. 제발 이제부터 하나님의 자식으로 기도드리렵니다. 우리 불쌍한 애엄마의 힘을 실어 주시고, 우리가족의 행복의 힘을 주시옵소서. 오늘도 화장실에서 입술을 깨물며 목성을 감추고 울고 있습니다. 부디 아내의 생명을 지켜주시도록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2004년 11월 모 방송사에 보낸 편지 中 - 암투병은 시작되고>
안녕하세요
저는 김포에 살고있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어느날 닥쳐온 불화로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지난 9월경 집사람의 교통사고가 시작으로 투병생활이 안타깝고 눈시울만 적시고 있답니다. 여느때와 같이 회사일을 하고 있을때 전화 한통화를 받았습니다. 집사람의 교통사고로 인해 급히 달려 가 상황을 보니 외상은 없어 보였으나 아내와 아이들이 많이 놀란 모습이었답니다. 그날저녁 두통과 오열로 인해 동네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게되었고 각종 검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이틀무렵 검사결과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고 정작 그즈음 부터 투병생활이 시작된거죠.
심장판막증과 난소기형종양 및 물혹이 발견되었다고 하더군요
평소 심장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의심이 가서 서울에 한양대학병원에 입원을 통해 재검사 후 난소종양은 수술을했으나 추가로 나온 검사결과 역시 또 다시 저를 힘들게 만들었답니다. 빈혈로 인해 수혈을 받은상태이며 위내시경 결과 위암이란 병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넘고 산이라 던데 정말그런가 봅니다. 수척해진 집사람의 얼굴을 보니 차마 위암이란 애기를하지 못하고 못마신 술만 퍼마시며, 그동안 보이질 못한 눈물을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답니다.
아내에게 그런병이 찾아 올지는 몰랐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개의 병을 알고 있으니 어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날저녁 녹초가된 모습으로 집사람에게 조심스럽게 애기를 해야했고, 이후 일산암센터에 재입원을 통해 위암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수술당일 악몽을 꾸며, 무섭다고 저를 부둥켜 안고 우는 모습이 미쳐버릴것 같았습니다. 수술 4시간경과 후 수술실에서 보호자를 찾는 연락이와 가보니 다행히 수술은 잘되었다고 하며 떼어낸 위를 조직검사를 해보고 다시 만나자고 하더군요
병실로 옮겨지는 동안 집사람은 마취에 덜깬상태에서 제가 슬퍼할까봐 웃으며 "난 괜찮어"라며 오히려 저를 위로 해주더군요 차마 집사람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저또한 웃음으로 보답해주었죠
그날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며 간호를 해주고, 지켜보니 다음날 남들과 다르게 병과 싸워 이기려 운동을 하자고 하더군요 말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몇번이나 괜찮다는 애기를 하는데 너무나 고마웠답니다. 몇일후 수술날 떼어낸 위의 조직검사 결과가 3기로 임파선에 전위가 되어 있어 앞으로 항암치료 및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다 더 군요 현재도 병실에 홀로 누워 병과 싸우고 있는중입니다.
8월이후 병원생활도 벌써 한달 반이 흘러 가고 있고요 집사람은 체중이 많이 감소되었으며 수축해진 상태입니다. 제가 곁에 있을땐 항상 웃음으로 저를 위안해주며 홀로 있을때 목성을 감추며 슬피울고 있는것을 전 압니다. 이제부터 다시시작하는 6개월간의 항암치료가 두렵고 힘들겠지만 지금까지 웃는모습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같이 두손 꼭잡고 웃으며 이겨낼것입니다.
내게 있어 당신은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사람입니다.
우리꼭 이겨냅시다. 사랑합니다
<2004년 12월 늦은 밤 中 - 엄마가 무서워>
아내의 여러수술이후 암투병으로 생활한지도 몇개월이 흐르고 또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여느때와 같이 집사람은 고통을 호소하고 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항암치료중 발생되는 부작용의 하나라고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다만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하루는 방사선 모의치료(체내 방사선 부위 도면 세팅)에 앞서 목욕하고, 머리도 감는중 부작용에 따른 머리카락이 한웅큼씩 빠지는걸 보고 눈물을 흘리곤 했다. 아내는 계속 빠지는 머리카락을 볼때마다 더욱괴롭다며 동네 미용실에서 삭발을 하기로 했고, 이후 어색해진 머리를 보며 요몇일간 눈물로 지새우곤 했다. 아내는 날보며 말하길 "이상하지않아, 나 챙피해, 자기한테 보여주기싫어 등 " 구지어 내게 그런 반응을 보일필요는 없는데 자신에 대해 점점 나약해지듯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집사람의 병치료를 통해 애 둘 조차 뿔뿔이 해야져 생활하는것도 그중 하나인 듯 했다.
하루는 우리큰애와 하루밤을 같이 지내기로 했다. 큰애는 평소 엄마를 본지 오래된듯 어리광을 많이 부렸고 노래와 율동을 하며 재롱도 보였줬다. 아내는 큰애의 모습을 보며 잠시 예전처럼 평범한 가정의 모습처럼 활기를 다시찾아 암투병중 인것을 잊곤 했었다. 그렇게 짧은 하루가 지나고 ,우리 막내를 제외한 세식구가 거실에 누워 잠을 청하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새벽무렵 갑자기 큰애의 울음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야만 했다. 울고있는 딸이 어디아픈가 싶어 불을 켜고보니 딸이 말하길 " 아빠 엄마가 왜그래, 머리가 없어 무서워. 귀신같아" 딸이 말하는 " 머리가 없다는 것"은 머리카락이 없어 그런얘기를 한것이었다.
애엄마가 삭발이후 나와 애들한테 추한모습을 보이기 싫어 가발을 쓰고 생활했지만 밤새 열나서 머리에 땀이 차다보니 잠결에 벗어버린 모습을 새벽녁에 딸이 보고 울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아내는 딸을 부둥켜안고 같이 흐느끼며 울고있었다. 옆에서 보는 나또한 눈물을 참을수가 없어 애꿋은 딸의 엉덩이를 때리며 혼을 낼수 밖에 없었다. 때리는나도, 지켜보는 아내도 그저 울음으로 그순간을 모면해야만 했다.딸의 입장에서 평소 백설공주 하며 엄마가 이세상에서 제일 이쁘다고 했었는데 잠결에 까까머리된 엄마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무서웠나보다. 또한 "이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가야" 하던 아빠가 매를 들며 딸을 때리니 엄마,아빠가 무섭고 싫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내딸아! 미안하다 아빠의 사랑과 노력으로 하루 빨리 건강하고 평범한 가정의 모습으로 되찾아 가는길을 위해 기도할께. 사랑하고 미안하다
<2005년 11월 KBS 장밋빛인생 작가에게 보낸 편지 中 - 지난간 나의 모습이 떠올라...>
저또한 한가정의 남편이자 두아이의 아빠입니다. 항상 업무과중에 따른 퇴근이 늦고 갖은것 없이 시작한 신혼살림속에 애엄마 또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회사가 멀다는 핑계로 아침에 일찍나오면, 애엄마는 두아이를 유치원, 놀이방에 보내고 출근하며 맞벌이를 했던 그시절 누구나 이런생활은 하고 있을듯 합니다. 하지만, 고생끝에 낙이 아닌 청천벽력과 같은 일들이 생기면서 생활이 더욱어려워 지고, 심지어 아픈몸을 가눌지 못한 생활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애엄마의 속이 아프고 몸이 아프다는 고통을 호소해도 무시하고, 그흔한 병원에 가자는 얘기도 못한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경미한 교통사로를 통해 알게된 애엄마의 암소식을 접하게되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진행된 위암3기로 전이가 된상태이며, 심장판막증, 난소종양 등이있다고 말입니다. 그소식을 접했을 무렵 하늘이 무너지듯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처음 당시 애엄마에게는 차마 말을 못한 상태로, 몇일을 지내기도 했습니다.나중 애엄마는 암소식을 알고 무척이나 많이 울기도하고, 저에게 분풀이를 하며 인생을 다살은 사람처럼 "넌 내가 아프다는데 쳐다보기나 했어? 주말에 애들을 보기나 했어. 내가 암걸렸다닌까 좋아? 빨리 죽기 바라지? " 등 폭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흘러 마음을 가다듬고 수술당일 수술실로 향하는 애엄마는 씩씩한 모습으로 내게 웃음을 띄우는 여유까지 보내며 오히려 저를 위로 하기도 했었습니다. ...
세월이 흘러 벌써 수술한지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여동안 수술도 여러차례했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6개월 도 하며 현재 지속적인 관리로 연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집사람은 불과 34살밖에 안됐는데 투병생활을 하고 있으며, 결혼생활하며 무심했던 내모습이 너무나 찔리고 가슴이 저며와 몸둘바를 모른 상황입니다.
오늘도 장밋빛인생 드라마를 보며 목청을 감추며 울었습니다. 집사람앞에서 맘놓고 울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지난1년동안의 모습이 한편의 드라마속에서 재연된듯 집사람의 마음은 더욱 저미어 올겁니다. 미안합니다. 모든게 미안할뿐입니다.
너무 제 애기 한것 같군요
여하튼 장밋빛인생을 보며 반성과 또 반성을 하고 있으며, 지난 과거의 모습이 다시 재연되지 않도록 노력을 하고싶습니다. 우리 가정 오래오래 지속되며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모두들 기도해주세요 울 아내가 건강하기를.....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이 되시길 저 또한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추신 : 맹순이(주인공) 꼭 살려줬으면 합니다. 아내의 몸 상태가 드라마속의 주인공과 비슷한 삶이래서 드라마를 통한 희망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부디 작가 선생님과 관계자분들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5월 나의일기 中 - 아내와 같은 암환자인데.. 천국으로 갔다>
아내의 친척벌이 되신 분은 약 2여년전 위암수술이후 항암, 방사선치료 등을 마치고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시고 계셨다. 모든생활에 필요한 식자재는 유기농을 선호하고 일부 야채등은 주말농장을 통해 먹거리를 만들고 계셨다. 그분은 암투병중으로 정기적인 검사를 위해 병원을 방문, 검사를 하며, 쉽게 피로를 호소하곤 했다. 병원측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던지라, 귀가후 휴식을 취하라고 했었다. 그리고 몇일뒤 또다시 찾아온 피로속에 병원입원을 통한 각종검사가 시행됐으나, 별다른 병명을 찾지 못했었다. 그로부터 1주일뒤 급속도로 악화된 암세포 분열로 인한 갑상선암이 발견되었고 심지어 사망에 까지 이르렀다. 원인은 이렇다고 한다. 위암이후 약 2여년뒤 쉽게 찾아온 병은 갑상선에 의한 암으로 판명이 나왔으며, 일부 구강내 출혈로 통해 사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쉽게 이해를 하지 못했다. 보다더 정확한 내용을 알고자 의료진에게 문의한 결과 " 일반사람에게 있는 약 4,000만개의 암세포는 체내 면역력 강화로 인해 상시싸움이 지속되고 있으나, 암환자는 보통 10억만개의 암세포가 있어 쉽게 피로하고, 설사, 이상 증세등이 발생하면 분열이 빨라 응급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사망에 까지 이른다고 한다" 나는 비로소 또하나의 새로운사실을 알고 "암치료와 관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임"을 재삼 알게 되었다.
이소식일 듣고 집사람은 너무나 놀라 한참은 어리둥절 해야만 했다.
고인과 같은 위암 환자 병기로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데 나쁜소식이 전해지니 본인 또한 불안감을 감출수 없던것이다. 그날 아내는 괜시리 투정이 심하고, 우울한모습이 가시질 안았으며, 애꿏은 애들만 혼내는 것이었다. 나또한 그랬었다. 종전 그분의 건강관리를 높이 칭찬하고, 배우며 생활해왔었는데, 고인이 되셨다니 지금도 믿겨지지가 않다.
불안한 기운이 되새겨 지는것이 왜일까?
아니다 난 누구보다 우리아내는 분명이 이겨낼수있다.
암을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식을 적어본다
50%의 비율 ( 마음- 살수 있다는 마음가짐, 신앙생활)
30%의 비율 (주변환경 - 물, 공기 등)
20%의 비율 (화학요법 - 약물 등)
아내는 절실한 기독교신자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나또한 뒤늦게 시작한 신앙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살수 있다는 믿음과 하나님의 치유로 나날이 좋아지고 또 좋아질 것이다. 아내는 아마도 그럴수 있는 충분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그증거로 새생명을 주셨으니 말이다. 어제보다 오늘을 위해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삶의 양질을 높이고자 열심히 노력하며 암이란 놈을 이기도록 해야겠다.
<2006년 6월 암과새로운세상 글中 - 암투병중 새로운 생명이... >
암 수술이후로도 항암치료 6개월, 방사선 치료 25회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했으며, 툭하면 입원을 통해 치료를 해야만 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변변한 간병인을 쓸 형편이 없어, 제가 병간호를 하며, 직장일을 해야만 했고, 아내는 그럴때 마다 힘든 몸을 뒷전으로 한채, 오히려 제가 더 힘들어할까봐 저를 위로하곤 했습니다. 제가 조그마한 간이침대에서 움추려 자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하루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 내가 열심히 살아서 우리 건강하고, 행복하고, 오래오래 살자 알았지?"..
오히려 제가 힘이 되야만 했으나, 아내는 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곤 했답니다.
그렇게 병원 생활도 언 1여년이란 생활이 훌쩍 흘러, 지금은 집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이것저것 검사하고, 민간요법으로 관리도 하며, 강원도 오지의 신선한 공기 맡으러 가는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2005년 12월경, 아내가 상당히 힘들어하며, 통증을 호소해 응급실로 향해야만 했고, 검사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바로 "임신"이란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아내마는 제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임신을 한사실을 알고 매우놀랐으며, 저또한 당황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각병원 주치의들을 만나보고, 인터넷 검색, 사례 등 관련 정보들를 수집하고 파악한 결과, 고위험 출산에 따른 문제점들을 지적하더군요.
당시 국립암센터 주치의가 말하기를 우선 애엄마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판단된다. 항암 및 방사선 치료에 따른 임신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상태였으나, 임신을 한 것은 그 만큼 환자의 몸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태아 및 산모의 위험을 배제할 수 없으니 산모를 위해 잘 판단하기 바란다.라고 말입니다.
당시 그말을 듣고, 낙태수술을 권유 했으나,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주신 새생명을 차마 져버릴수 없다는 깊은 고민 속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민속의 세월은 흘러, 주님이 주신 축복을 받아드리기로 했으며, 현재 집사람은 임신 8개월째 접어들었습니다. 지금은 남들과 달리 많은 병들과 싸우는 고통이 있지만, 순산의 믿음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아직 암이 완치 되지는 않았지만, 살수 있다는 믿음으로 연명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내에게는 또다른 "과"(산부인과)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애엄마는 더욱 활기차고, 행복해 하는 날이 많아 졌습니다. 왜냐면요? 뱃속에 새생명이 극히 정상적이고, 튼튼히 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ㅋㅋ (저도 괜시리 좋습니다 - 한편으로 눈물이 나지만...) 아내는 앞으로 일들이 힘든 수난시대로 올지언정,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힘든일은 없을것이다 라고 믿고있으며, 투철한 신앙생활과 살수 있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이란 절망속에 희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수있다는 희망과 노력이 있으며, 충분히 암을 이겨낼수 있습니다. 저희는 오히려 암이라는 놈으로 부터, 더욱 가정의 행복이 왔는지도 모릅니다. 애엄마가 아파도 아픈가보다, 힘들어도 괜찮겠지 등 서로 무관심했던 지난날이었지만 이젠 아닙니다. 암을 앓고 있는 당사자의 고통에 비하면, 지금 놓여진 처지를 비관해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환자나 그 가족들의 마음의 바램은 단하나, 건강을 위해 항상 기도할겁니다. 나보다 더 힘들고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들을 생각하시어, 그들의 희망성 메세지와 가족분을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더 힘내고 또 힘을내어 암에서 해방하는 그날을 기약하시기 바랍니다. "암 -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병입니다."
<2006년 7월 나의일기 中 - 셋째아이를 준비하며..>
올초 애엄마의 임신소식을 듣고,애엄마의 건강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암치료에 따른 고통들에 많이 지쳐있을 당신이지만, 자신의 헌신으로 새로운생명을 위해 또다시 노력을 해야만 했다. 당시, 나로서는 많은 고민속에 애출산 여부를 결정지어야만 했다.위암, 심장질환 등 여러 병마와의 싸움속에 임신은 생각지도 못했던 지라, 고민의 시간은 많이 흘러왔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벌써 8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다. 너무나 무책임한 나의 결정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애엄마는 배속에서 움직이는 우리 셋째의 모습을 볼때면 잠시 잊곤한다.
이놈이 너무나 잘놀고, 첫째 둘째 때보다 더욱 사랑이 가는 듯 한다.애엄마 역시 태동을 느낄때 마다 통증을 느끼곤 하지만, 배가 울룩불룩 해질때 마다 신기한 듯 기쁨의 미소를 띄우곤 한다. 난 애엄마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괜시리 지난 시간 동안 내가 당신께 소중한 사람으로 존재했나?
라는 반성을 하곤 한다.
"내겐 당신이 존재함에 있어, 내가 있는것이요. 당신이 점점 모습을 감춰가면 나는 내모든 삶을 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우리 셋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배넷저고리, 천기저귀, 우유병, 속옷, 유아용품 등 산모 몸조리차 산모도우미 계획, 간병계획 등 연대세브란스 산부인과 예약, 각병원 소견서 준비, 암상태, 내분비, 혈액종양 내과, 심장 등 진료과의일정에 맞춰 수술 날짜도 잡고 등 등 그럴일은 없겠지만 유사시 대처하기 위함이다.
음 애엄마 입원중 간병을 내가 할것이고, 퇴원 이후 산모도우미 10일간 도움을 받고, 내가 휴가를 내서 10일 정도 도와주고, 이후, 산후조리원도 알아볼 계획이다. 누구보다 애엄마의 몸상태를 고려하여 철저하게 준비해야한다. 어려운 역경속에 태어날 우리의 이쁜 딸, 너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누구보다 더욱 사랑스럽고, 건강하고, 예쁜 딸로 우리가정의 행복을 주리라 생각든다.
사랑한다 내딸아, 고맙고 사랑한다 자기야
<2006년 8월 임신과출산 관련 사이트 에 올린 글 中 - 하나님 기도드립니다>
아내는 퇴원이후, 암과 싸우기 위해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신앙생활, 운동, 식이요법, 민간요법,요양 등등 나름데로 암에 대해 극복하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 또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투병중 애엄마가 제일 힘든 부분은 우울증이 생기는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애엄마의 암소식을 듣고 일부 사람들은 암이 마치 전염병인양 연락을 뚝 끊는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락도 없던 사람이 이것이 암엔 좋다 저것이 암엔좋다 하며 비싼약을 팔려는 사람이 들끓키 시작했습니다. 참 사람들이 무섭긴 무섭습니다..........
이후, 저와 애엄마는 암관련 정보들을 수집하고, 알아보고, 물어보고 등등 을 통해 민간요법을 시작했고, 지속적으로 애엄마가 복용하고, 노력하여 점점 몸상태가 좋아지는것을 느꼇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작년 12월경 우연히 찾은 산부인과 진료를 통해 임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몸이 온전치 않은상태인데..... 어떻하지?..... 큰일났네..........
아니! 애엄마가 몸이 많이 좋아진거 아닌가? 병원에서 임신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했는지....
저로서는 여러가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를 갖으려고 노력한것도 아니고, 애엄마의 몸상태도 썩 좋지 않은 상태인데...
장시간 동안 고민 고민 끝에 새로운 생명을 차마 져버릴 수 없겠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벌써 그렇게 흘러온 세월이 막달이 되었고 이번달 25일경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종전수술로 통해 자연분만은 어려운 상태이고, 애엄마와 우리아기를 위해 제왕절개를 해야합니다.
애엄마는 연대세브란스병원에서 출산을 하게 됩니다. 혹시나 애엄마의 병력의 문제가 발생시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현재도, 위암환자로서, 내분비과 갑상선질환과 심장판막질환을 갖고 있지만,애엄마의 강인한 삶의 노력과 주님이 계심에 걱정은 없습니다. 저는 애엄마 에게 너무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암이란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랐을텐데, 놀란내색을 하지 않았음을...
항암치료중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힘들까봐 꿋꿋히 이겨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서...
암센터내에서 치료중 주변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에게는 환한 미소를 보여줘서...
우리아들, 우리딸을 위해서 살려는 의지를 키워가고 있어서.....
수술대에 5번이나 올라가면서 두려움이 커졌을텐데 애써 태연한척 함을......
임신당시 주변사람들이 너 미쳤냐? 죽을려고.. 등 만류해도 낳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음을...
애둘만 키워도 되는데....
때론 당신께 내가 무책임하고, 미련하고, 바보같아도 나만 사랑함을....
모든것이 고맙고, 사랑하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애엄마의 출산이 다가와서 괜시리 불안감을 글로 나마 위안을 삼았습니다.
저희 애엄마의 수술이 무사히 되리라 생각되고, 산모도 건강하고 우리 셋째아기도 이쁘게 태어나리라고 믿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06년 8월 21일 연대세브란스병원에서 쓴글 中 1 - 수술중 >
여러가지 병력을 갖고 있으며, 암이란 놈과 싸움속에 임신과 출산에 다다른것 그자체가 대단한일이라 생각이 든다. 애엄마의 몸상태를 지켜보는 나는 한동안 대책없는 놈이란 손가락질과 핏박이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애엄마의 강인한 모습을 볼때 오히려 기쁨으로 반전이 되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임신 38주가 되던날, 수술날자를 잡아야만 했다. 8월21일 다른산모들에 비해 추가적으로 여러가지 검사를 해야만 했다. 수술은 익일 오후경으로 예정되었고, 애엄마와 나는 초조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새벽녁, 느닷없이 애엄마가 진통을 하기 시작했다. 약 2주여일을 앞당겨 수술을 하는것인데 진통을 느끼고 있다는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시간이 새벽 4시경 무렵부터 3분에 한번씩 진통이 되고 있었다. 난 즉시 간호사에게 호출을 해야만 했으며, 잠시후 이것저것 또 검사를 시작했다.초조한 시간은 그렇게 흘러 응급수술이 결정되었으며, 9시40분경 수술실로 향하는 애엄마의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진통이 지속되고 있어 애엄마의 안색은 많이 좋지는 않아 보였다. 난 애엄마의 두손을 꼭잡으며 격려를 해주었다.
나는 보호자 대기실앞에 서서 초조한 마음으로 수술현황 전광판을 보아야만 했다.
벌써 다섯번째 수술인데 수술할때마다 초조한 마음은 감출수 가 없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횟수가 늘어가면 늘어갈 수 록 그 초조함은 더욱더 커지는 듯 했다. 10시경 수술중이란 표시가 내시야에 들어왔다. 애엄마와 같은 맘으로 대기실앞에서 기도하고, 때론 눈물을 훔치며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10시 30분경 아기가 수술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달려가 산모와 아기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산모는 수술중이며 아가는 숨이 조금 약하고, 울지않은상태라 중환자실에서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몸과 마음은 힘들고 지쳐 있지만 주님이 함께 하심에 위로가 된다.
<2006년 8월 연대세브란스병원에서 쓴글 中 2 - 하나님은 저희를 사랑합니다>
애엄마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왔다.
나는 평소와 달리 편안한 애엄마의 모습을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마 나또한 애엄마 수술중 연대내 교회에 들어가 주님께 두손모아 간절히 기도하며,예배를 드려서 편안한것이 아닌가 싶다.
애엄마는 회복이 안된채 병실로 옮겨지며 나에게 하는 첫마디가
" 새롬이는 어때?"
라는 말에 잠시 머뭇거리며, 나는 대답을 했다.
" 너무 이쁘고, 건강하데..."
" 아무이상 없대? 눈코입 다있지? ....
장시간 수술로 힘들었을 당신이지만 아기걱정에 힘내어 나에게 물어보왔지만,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는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괜히 슬퍼하고, 눈물을 흘릴까봐. ...
하루 2번 면회가되는 신생아 중환자실 "새롬"이가 아무이상 없겠지? 이것저것 검사한다는데... 여러가지 궁금한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그렇게 초조함속에 드디어 면회시간이 왔다. 면회는 신생아의 건강을 위해 2명만 허용됐다.수술실앞에서 막태어난 새롬이의 모습을 얼핏보자마자, 집중치료실로 들어간 상태여서 나는 "새롬"이의 모습이 더욱더 그립고 보고싶었다.면회가 시작되었다.
두리번 거리며 여기저기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는 아가의 모습들과 뚜뚜하는 심박동소리 등 괜시리 섬뜩한 기운이 돌며 눈물이 아른거렸다. 한쪽 귀퉁이에 누워 한쪽팔에는 링겔주사, 심박동측정, 산소호흡부착 등 이것저것 부착되있는 새롬이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절로 흘러 나왔다. 이 어린것이 얼마나 아플까? 애엄마가 알면 얼마나 슬플까?
나는 목멘 목소리로 담당 간호사께 새롬이의 몸상태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왔다
기본검사와 심장, 갑상선검사, 복부 등 여러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짧은 면회가 끝났다. 새롬이의 걱정도 잠시 잊은채 나는 병실로 돌아와 애엄마의 몸상태를 걱정해야만 했다. 수술중 복부유착이 심해 방광이 찢어지는 일이 생겨 응급수술을 해야만 했고, 이후 혈액검사 결과 빈혈이 심해 철분공급을 해야만 했었다. 병원에서는 다른 산모와 달리 여러가지 병으로 인한 후유증 발생이 염려하여 입원일수를 늘여야만 한다고 했으며, 방광수술로 인해 소변줄을 꼽고 있어야만 했다. 나는 애엄마가 또다른 문제는 없겠지? 주님이 치료해주시겠지? 하며 마음속으로나마 주님께 기도를 하며 남몰래 눈물로 지세워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갈 수록 놀랍게도 애엄마의 회복이 날로 달라 지고 있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던 사람이 힘든몸을 이끌고 한걸음 한걸음 운동을 시작했으며, 심지어 이튼날 부터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가곤 했었다. 아직 수술로 인한 출혈과, 통증이 동반되었지만 교회가는 시간만은 행복한 미소가 나에게 감동을 주곤 했다. 하지만, 예배가 끝나고 병실로 가는길은 복부통증으로 인해 험난한 고통의 시간 이었을 것이다. 3일째 되던날 애엄마는 새롬이를 보고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향해야만 했다.
나는 사실을 말해야 했다.
"새롬이 엄마! 사실은 새롬이가......."
애엄마의 의외의 대답이 나를 더 놀라게 했다
" 괜찮아 새롬이는 하나님이 주신 크나큰 선물이잖아.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으로 아무 이상없을 거야 그러니 괜한 걱정하지 말고 기도나 열심히 해"
애엄마가 걱정될까봐 노심초사 불안해했던 나보다 더 덤덤한 말로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니....
또 몇일이 지났다. 애엄마의 몸상태는 주치의가 놀랄 정도로 다른산모에 비해 상당히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내가 봐도 놀랄정도였다. 역시 우리새롬이 검사결과 숨도 고르고, 맥박도 좋고, 혈액검사좋고.. 등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이상없이 건강하다고 했다. 또한 분유도 다른 아이에 비해 너무 잘먹고 잘소화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너무 감사했다. 정말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나님 진정 당신은 저희를 사랑하시는 군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2006년 11월 아버지학교에서 中 - 당신께 드리는 편지>
내게 소중한 사랑인 당신께 편지를 써본지 너무나 오래 된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적어보지만, 자기하고 같이한 8년의 세월을 이작은 편지지에 다 채울 수 있을지 몰라.내겐 지나온 나날들을 되새겨 보며 자기가 아프고 힘들 때 나는 항상 회사일로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나 홀로의 시간이 너무나 많았었고, 애정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반면, 자기는 애들 유치원에 등, 하교 시키고, 출,퇴근하면서 늦은 시간 귀가하는 남편을 위해 따스한 밥상을 준비하는 등 했는데, 당신이 고생한 보람도 없이, 자기가 많이 아프고 있는것에 대해 죄책감이 더욱더 커지고만 있어.
나는 자기가 04년에 수술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무서웠고, 괴로웠었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아른거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자주 눈물을 흘렸으면서, 정작 자기를 위한 소중한 눈물을 흘린 기역이 몇번이나 있었나 하고 돌이켜보기도 해
지난 1여년 동안 병원생활과 암투병속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내자신이 당신께 해 줄수 있는 것이 너무나 미약했고, 안타까움 속에 마음만 저미어 왔던 것 같아.
때론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해
“자기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 차츰 모습을 감추고 있다면 공포스러울 거고, 그러다 보면 살겠다는 희망이 저버릴지 모른다는...”나는 자기 없으면 너무나 약한 남자로 살아갈지도 몰라.
하지만, 더 이상 후회하는 삶은 이제 끝으로 하고 싶어.
뒤늦게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을거야.
내사람이 아프면 내가 편이 쉴 수 있는안식처가 되고, 기뻐하면 더욱 기뻐해 주는 인생의 동역자로 살아갈거야 자기가 요즘 많이 수축해졌지만, 내게 당신은 아직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또한, 철부지 같은 나이에 엄마, 아빠의 애정이 부족했던, 우리 큰딸 지수와 둘 째 민준이 모두 모두 사랑해 물론 우리의 천사 막내 새롬이도 사랑하고...
이젠 환한 웃음속에 닭살 같은, 깨소금 물신 풍겨나는 부부로 다시 시작하는거야
요즘은 가끔 남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때가 있어. 왜냐고?
나는 당신을 너무 너무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말이야....
또한 자기가 점점 건강해지고 있으니,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인 것 같아 너무너무 좋아.
우리들의 영원한 사랑의 출발점을 다시 찾은 것 같아 그렇지? 우리 사랑스런 아이들과 영원한 사랑의 출발점에서 두손 꼭잡고 같이 출발하자 영원토록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2007년 7월 암과새로운세상 中 - 귀농생활 "저희 건강하게 살고있습니다">
직장을 정리하고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이곳 강원도 횡성에 자리 잡은지 벌써 4개월이 되었군요 아직 어수선한 상태이지만, 우리 다섯가족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곳으로 와서 정상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처음 난리가 아니었죠 암환자가 임신? 많이 의아해 했었고, 낙태를 권유했었으니까요....주절주절 제가 좀 말이 좀 많죠 참... 이곳분위기를 잠깐 적어볼까 합니다. 우선 횡성에서 꼬불꼬불 들어가서 비포장을 밟아 꼬불꼬불... 한참 한참을 들어와 보니 의외에 큰교회가 있더군요 이곳에서 사역하시는 두분의 목사님이 계시고, 공동으로 생활하시는 분들이 약 30여분이 생활을 하시고 계시더라고요 처음 낯설음과 믿음이 없는 상태여서 거리감을 느끼기도 잠시.....시간이 흘러 다른 교회와의 사뭇다른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그때 당시가 아마 2005년 즈음으로 기역이 듭니다. 당시 아내의 몸은 너무나 많이 좋지않아, 많이 쇠약한 상태로 요양이 필요하여, 교회 전도사님 소개로 온 교회, 기도원이었습니다. 그곳을 자주 왕래하며, 저또한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 하는 일들이 생겨 났습니다. 그곳에 가시는 분들은 각양각색 전국각지, 해외에서도 오시는 분들이계시더라고요. 오시는분들을보니 목사님, 전도사님, 암환자들 ......... 그중한사람이 제 아내였고요 그곳에 목사님을 통해 지속적으로 안수기도도 받고, 공기좋은데서 요양도 하며, 믿음으로 암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받고 아내의 몸이 좋아지니, 한달에 한번, 2주에 한번, 1주에 한번 등 자주자주 와서 안수기도를 받으며 몸이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아내의 몸은 회복을 하며 하나님이 그 증거로 잉태를 하게 하셨습니다. 연대세브란스 병원과 국립암센터, 명지병원 등 여러병원을 다니며 한달에 수시로 병원생활을 하던 사람이 임신을 했으니 병원에서 놀랄 수 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연대에서는 낙태권유까지 있었으나 하나님이 주신 치료의 증거로 우리의 큰선물을 저희는 믿음으로 출산까지 이르렀던 겁니다. 현재 아이는 다음달이 돌이고요, 아내 또한 전혀 약을 먹지도 않고, 병원에갈일도 없이 하나님께서 온전히 치료하시어 조그만 봉사를 하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또한, 전혀 믿음이 없던 불교신자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생활의 모든면들이 바뀌어 갔습니다. 날로 성령체험으로 좋은일들만 생기며, 아내 또한, 정상인으로 살아가니 우리의 소중한 행복을 진정 다시 되찾았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은 이얘기가 이상하게 들리시는것이 정상입니다. 저또한 처음 더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암환자의 가족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 까지 왔었지만, 그것이 진정 우리의 희망의 줄이 될줄 몰랐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돌리며, 또 두분의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점차 증가하는 암환자들과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그 누가 달래 줄수 있겠습니까? 암투병의 고통은 암환자 당사자 만이 알고, 그 가족의 고통은 그 가족만이 알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저 모습들을 볼때 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누가 딱아 줄 수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암이 발병하면 수술과 항암 치료등의 고통속에 멍들어 가고 있으며, 재발하면 또다시 항암이다 방사선치료다 우리가 그들의 임상실험 대상자가 되가고 있는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또한, 그렇게라도 100%살린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누구도 당신의 죽음과 생명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암환자의 가족으로 기나긴 병원보조침대에서 새우잠을 지세우며, 어린아이들을 여기저기 맡겨가며 아내를 간병했던 모습을 되새겨 볼때 가슴이 복받쳐 올라오곤 합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아십니까? 암투병중이신 분들이나 가족분들 가까운 교회에 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는 구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당신을 회복시킬 열쇠가 분명히 있습니다. 병상에 누워계시는 분들은 성경책을 펼쳐보십시요 하나님의 말씀속에 당신의 희망이 있습니다. 천지창조를 만드신 구주의 능력은 능히 못하실일이 없다 하셨습니다. 환자분들의 진심으로 간구하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겁니다.
하나님! 부족하고 무지한 백성이지만, 암이란 병을 통해 육신의 고통을 갖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그 고통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옵고, 그 가족들이 간구하는 모든것을 들어 주시옵소서, 또한 저의 부족한 기도이며 눈물이지만 그마음은 진정으로 그들의 삶의 행복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몸을 깨끗케 씻어주시옵고, 소중한 행복을 되찾아 기적의 주인공을 만들어 주시옵소서 진정으로 원하옵고 원하오며 이모든것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개인적인 얘기를 너무많이 쓴것같군요... 모든 환자분과 가족분들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세요 분명히 당신의 치료는 됩니다. 참고로 이곳에 올라와 계시는 췌장암,위암, 간암 환자분들이 계시는데 요근래 간암 환자가 병원치료 없이 완치되었습니다. 모두들 진심으로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겠습니다.
<2008년 1월 강원도 횡성에서 - 주님의 사랑 너무감사하여>
저는 암의 고통은 모릅니다.
그 고통은 그환자만이 알수 있고 그 가족의 고통은 그가족만이 알수 있습니다. 핸대의학이 많이 발전하여 여러가지 요법등을 통해 암은 쉽게 정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또한 환자의 가족으로서 지난 세월들을 돌이켜 보면 너무나 빠른 시간이 흘러 왔고 내가 정작 상황에 따라 제대로 대처를 해 왔나 돌이켜 봅니다. 예전 비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고 살때, 그 능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당시 여기저기 암에좋다는 각종 요법과 약물등을 귀담아 듣게 되던 얇아진 귀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된는지도 모릅니다. 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여기 저기 귀를 쫑끗 세울수 밖에 없었음에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된것을 이제야 알게되었습니다. 벌써 아내의 암발병된지
약 3년 5개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제게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암투병중 임신과 출산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위험한 일이었고, 출산끝에 어려움들을 다 겪고 이겨나가 이제는 아내와 아이가 너무나 건강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는 그자체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모든것이 하나님의 능력임이 분명하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누가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분명 저희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는 그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족 모두 받은 은혜 너무나 감사하여 부족하지만 교회에 봉사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욱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건강이 더욱 회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종전 암센터에서 검진결과 건강하다고 나왔고요.
암투병중인 환우분들과 가족분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희망을 갖고 암과의 싸움에 승리하시어, 저희처럼 암으로 고생하시는 모든분들께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암(癌) 이길수 있습니다" -끝-
첫댓글 아아 제발 암이 없는세상에서 살고싶어요.. 암 너무너무 싫어요. 정말 어떻게 안되는건가요 줄기세포도ㅡ그렇고 난치병이 왜이리 많을까요.. 우주여행도 가능한시대에 살면서 암은 왜이리 힘이드는가요 많이 좋은약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암은 너무너무 어렵네요 옆에서 지켜보기가 너무힘이듭니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걸 보면 하염없이 눈물만 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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