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소리에도 황금비율은 존재한다. 고래로부터 건축, 조각, 회화 등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어 왔고,
현재에도 수많은 곳에 적용되고 있는 1:1.618의 황금비율.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마리아 칼라스나 조수미의 목소리를 황금비율이라 일컫는 것이 아니다.
황금비율의 목소리란 음성학적 특성을 떠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 목소리를 뜻한다.
나는 주위에서 진정한 황금비율의 목소리를 지닌 주인공들을 종종 목격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들이 지닌 한결같은 특징에 깜짝 놀라게 된다.
황금비율의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삶의 자세였다.
매 순간을 끊임없이 노력하는 ‘구도자’적인 삶의 자세,
그들은 단순한 발음 연습이 아닌, 삶 자체에 있어 프로 선수 못지않은 끊임없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인생은 끊임없는 훈련의 연속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쇼와 퍼포먼스 리더십
그리스인들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건축물 중의 하나인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할 때의 일화이다.
파르테논 신전이 거대한 외양을 갖춰갈 무렵, 공사비를 절감한다는 명목하에
신전의 지붕 공사를 대충 마무리 지으려 했다.
지금이야 하늘을 나는 게 일도 아니지만, 그때는 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무하던 시대이니만큼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지붕은 대충 넘어 가자는 게 일견 타당해 보일 법도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고고한 외침에 부실 시공 계획은 전면 취소되었다.
“신(神)이 보고 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는 외양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 또한 중요하다는 것,
더군다나 그 이면을 신이 바라보고 있다는 한마디 외침에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지붕 구석구석까지 정성이 가득한 장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이라는 무대를 파르테논 신전에 비유한다면 어떨까?
혹시 나는 지금 이 순간,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 겉모습만을 중시한 것은 아닌가?
우리는 한결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카멜레온이나 박쥐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은 진정한 ‘공연’이 아니다.
말 그대로 나쁜 의미의 ‘쇼’일 뿐이다.
쇼가 단지 무대 위에서의 행동만을 의미한다면, 공연이란 관객과 같이 호흡하며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쇼는 관객을 웃기고, 울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공연은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다르다.
관객과 함께 웃고, 울기 위해 노력한다.
진정한 공연이란 삶의 컬러와 무대의 컬러가 일치하는 반면, 쇼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삶의 컬러와 무대의 컬러가 같은지 확인해야만 한다.
이제 쇼는 멈춰야 한다.
억지로 꾸미는 쇼는 보는 사람도 피곤하고, 자신도 피곤할 뿐이다.
꾸며봤자 그때뿐이라는 것, 신이 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공연을 할 때만이 파르테논 신전처럼 세월이 흘러도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
자연스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왜 우리는 좋은 목소리를 얻고자 하는가
나와 함께 목소리 레슨을 하는 분 중에 건강 관련 업체에 종사하고 계신 분이 있다.
그분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열심히 근무를 하시는 분인데,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이라는 화두에 매달리게 된 원인이 독특하다.
바로 본인이 몇 해 전까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병마에 시달렸던 것이다.
결국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피땀 어린 노력으로 가까스로 건강을 되찾은 뒤,
그분의 삶은 백팔십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얻은 삶에서 그분이 느낀 것은 당연하게 자신뿐만이 아닌,
타인의 건강이었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이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간절히 금연을 위한 기도를 드릴 정도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우리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또한 변화시키고자 하는, 나만이 행복해지는 것보다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자 하는 욕망의 존재다.
그러나 행복하고자 하는 욕망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 같다.
나는 요즘도 바쁜 강의 일정을 쪼개서라도 꼭 시간을 내는 일이 있다.
귀중한 시간을 쪼개 쓰는 만큼 강의보다 더 큰 돈벌이가 되는 일이냐 하면, 전혀 아니다.
십 원 한 푼 벌지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일이기에 나는 기꺼이 시간을 투자한다.
내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산책이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 일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하면서 난마처럼 얽힌 생각을 내려놓는다.
행복해지고 싶은 것은 모두의 공통된 욕망이다.
그러나 소유에 의한 행복은 항상 2%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돈은 물론 중요하지만 돈만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2%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삶의 자세다.
왜 우리는 좋은 목소리를 얻고자 하는가?
왜 변화하고자 하는가?
결론은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목소리만 바꾼다고 행복해질까?
아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삶의 자세다.
삶의 자세를 바꿀 때,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원하는 음성을 내게 될 것이다.
2장 나는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나
비주체적인 목소리
“Lead me, Follow me, or Get out of my way! 이끌든지, 따르든지, 아니면 내 길에서 비켜라!”
바로 세계 최고의 뉴스 전문 프로그램인 CNN의 창립자 테드 터너가 한 말이다.
자신이 조직에 속해 있다면, 조직의 목표를 위해 충실히 따르든지,
리더가 되어 이끌든지 해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면 기업에서 떠나는 게 기업뿐만 아니라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 목소리는 주체적인가, 비주체적인가?
오늘 내가 했던 말들은 긍정적이었나, 부정적이었나?
비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육체적으로도 속이 휑하고,
축 처진 어깨에 고개가 숙여져 병목현상의 도로처럼 발성기관 자체가 꽉 막혀 있다.
따라서 발음은 항상 어눌하고, 성량은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를 낸다.
마음 또한 몸의 발성기관을 억압한다.
목소리는 삶을 오롯이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이들은,
똑같은 상황을 겪어도 나쁜 점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 하더라도 완벽한 시스템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비주체적인 목소리의 인물들은 꼭 단점만 발견한다.
만약 비주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목소리와 삶의 태도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찾아야 할 때다.
주체적인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이다.
항상 자신에게 질문하라.
나는 인생의 무대에서 이끌고 있는가, 따르고 있는가?
정답은 이끌면서 따르고, 따르면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당신의 삶뿐만 아니라 조직 자체가 손해일 뿐이다.
난 목소리 VS 된 목소리
비싼 값을 내고서라도 질 좋고, 믿을 만한 고기를 파는 음식점을 찾는 것처럼
100데시벨의 소음 공해보다 무서운 말의 공해를 피해서 좋은 말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소음보다도 무서운 말들 중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를 꼽으라면,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잘난 체’하는 소리일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는 차치하고 몰매를 안 맞는 게 다행인 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물론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을 가지고 뭐라 그럴 사람은 없다.
문제는 잘난 맛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고통스러워진다는 데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명언들이 오히려 가청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공해다.
이럴 때 괜히 귀를 후비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니다.
진정 귀에 딱지가 앉으니 오죽할까. 하기야 고막에 이상이 없는 게 다행이지 싶다.
이와는 반대로 ‘소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보약’이 되는 말들이 있다.
입에서 십전대보탕 같은 진국만을 토해 내는 것이다.
‘온정이 깃든 말은 삼동 추위도 녹인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
사람이 된 소리’를 내는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된 소리를 내는 이들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롭다.
여기저기서 아는 것들을 끌어다가 채워넣는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목소리에 상대방이 들어올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하는 소리를 낸다.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바위에 부딪히고,
가파른 협곡을 지나 낮은 곳으로 흘러 결국에는 바다라는
거대한 여백을 만들어내는 물과 같은 목소리를 낸다.
벼는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실력은 높이고 마음의 자세는 항상 낮춰야 한다.
그것이 최고의 변화를 위한 ‘된 목소리’인 것이다.
항상 자신의 말을 경계하라.
지금 내가 상대방에게 하고 있는 소리가 혹시 나를 뽐내는 소리는 아닌지.
향기로운 목소리 VS 냄새나는 목소리
아는 분들 중에 경찰서장으로 재직하고 계신 분이 있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꽃향기를 맡는 착각에 빠져든다.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일찍 진급을 해 ‘경찰의 꽃’인 총경에 오른 그는 선․후배 경찰들 사이에서도
사람 좋기로 소문난 분이다.
한번은 강의를 끝내고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차라도 한잔 마시자고 내가 청을 넣었다.
그랬더니 그분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바쁜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하던 차에 그분 스스로 겸연쩍은 미소로 설명을 했다.
“하하, 제가 요즘 제빵․제과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빵․제과 학원이라니! 그분의 대답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하루하루 딱딱한 경찰 업무만 하다보니 어느새 성격 자체가 딱딱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뭘 한번 배워볼까 하며 거리를 걷던 차에 갓 구워낸 고소한 빵 냄새가 솔솔 코끝을 건들지 뭡니까?
고개를 들어보니 베이커리더군요.
아하! 무릎을 쳤습니다.
빵 만드는 취미를 한번 가져봐야겠구나, 하며 말이죠.
그 길로 곧장 학원에 등록했죠. 그런데 의외로 재밌지 뭡니까!”
명함의 앞뒤에 수십 개의 직함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무슨 단체며 클럽은 그리도 많은지, 그네들의 명함을 받아들면
앞뒤가 빼곡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헛갈릴 정도이다.
재밌는 것은 그들은 그 명함의 직책에 맞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목소리에서 정체불명의 악취가 날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목소리의 유통 기한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지금의 내 모습, 나를 둘러싸고 있는 위치에 휘둘리지 말고,
항상 새롭게 나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자만이 신선하고 향기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진리를 좇는 구도자처럼, 하루하루 끊임없이 운동하는 운동선수처럼 말이다.
우리는 결코 어제의 호흡으로 오늘을 사는 게 아니다.
오늘을 신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오늘의 호흡이 필요하다.
하루 죽고, 하루 다시 사는 마음으로 살 때만이 신선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의 이름 앞뒤에 붙은 수식어들, 경력과 재력,
명예와 권력의 헛된 수식을 과감히 떼고 인생의 무대에 설 때,
비로소 목소리에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목소리에도 온도가 있다
음식이 고유의 참맛을 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가 필수!
목소리 또한 차갑게 식으면 맛이 별로다.
반면에 따뜻하고 정감있는 목소리는 진하게 우려낸 한 잔의 커피처럼 달콤하고 맛이 좋다.
그럼 목소리가 원하는 가장 알맞은 온도는 과연 몇 °C일까?
“저 사람은 똑똑하기는 한데, 되게 피곤한 스타일이야!” 가끔 우리는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는, 괜히 얄밉게 보이는 이들….
이런 유형은 좋은 메시지는 있지만, 좋은 메신저가 없음을 의미한다.
좋은 메시지만 있으면 오히려 남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공식만을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이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말하는 사람도 쉽게 상대방이 변화하지 않기에 스스로가 맥 빠지고 피곤해지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실제로 강의 현장에서 가장 변화시키기 힘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배우자를 지목한다.
그때 다시 물어본다.
“여러분은 사모님보다 위에 있습니까?” 50명 중에 48명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안타까운 것은 어느 기업을 가나 비슷한 비율이라는 점이다.
나는 손을 들지 않은 48명에게 강조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사모님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변화라는 것은 자신이 밑에 있다고 여기며, 상대방을 개선의 대상이 아닌,
섬김의 대상으로 여길 때만 일어나는 현상이니까요.
” 이제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만 한다.
‘섬김’이라는 것은 약자가 강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복종’일 뿐이다.
진정한 ‘섬김’이란 강자가 약자를 위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었던 것처럼 ‘섬김’의 자세를 지니고 상대방을 대할 때만이
가장 알맞은 온도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나올 수 있다.
3장 목소리를 변화시키는 14가지 원칙
목소리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원칙은 있다
개개인의 외모와 성격이 다르듯 목소리 또한 천차만별이지만,
상대방이 듣기에 거북할 정도가 아니면 굳이 목소리를 바꾸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목소리를 낼 때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기본으로 제시하는 원칙은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는 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변화의 원칙이며, 나아가 리더십의 핵심이다.
또한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진실한 목소리를 내는 원칙을 지킬 때,
우리는 비로소 목소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원칙,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소리를 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다는 말처럼,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할 때,
끊임없이 노력할 때에야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은 열릴 수가 있는 것이다.
Parlato & Naturale
한 번은 지방 강의를 위해 차를 몰고 가던 중에 룸미러에 비친 덥수룩한 머리가
눈에 거슬렸던 적이 있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약속시간에 여유가 있어, 나는 처음 가보는 낯선 거리에서
눈에 띄는 미용실을 찾아 무심코 들어갔다.
그리고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문 앞에서 미용사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만 원도 안 되는 커트를 하며 왕 못잖은 대접을 받자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의 영업 방식이 과연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섰다.
그들의 영업 방식은 농도가 너무 진했다.
농도가 너무 진해 원액의 수준이었다.
알다시피 원액은 마실 수가 없다.
친절에도 농도가 있는 법이다.
받는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친절, 과례는 비례라는 말처럼 적절한 농도의 친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일이었다.
적절한 농도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무대에 서면서 무장을 해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가(大家)의 연기는 억지스럽지 않다.
일상적이며 자연스럽다.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를 잊을 정도로.
그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이유는 무대와 일상의 컬러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대 밖에서 허리띠를 질끈 동여매지,
무대 위에서 허리띠를 동여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무대 위에서 허리띠를 풀어버린다.
이처럼 마음의 무장을 해제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며,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우리는 지금 무대 위에서 허리띠를 동여매고 있는가,
아니면 풀어내고 있는가, 허리띠를 동여매고 있다는 것은 무대 밖에서 게을렀다는 반증이다.
만약 삶과 무대의 목소리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무대 위에서 거짓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삶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익숙한 목소리를 버려라
익숙하다는 것은 몸에 딱 맞는 옷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기를 원한다.
어른이 되기를 원하는 아이처럼 커가기를 꿈꾼다.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는 현재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에서 나오는 소리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또한 나태함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익숙한 소리를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소라게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껍질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보다 좋은 목소리를 얻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익숙한 껍질 밖으로 몸을 뺄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다. 바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 나를 부끄럽게 하는 누군가가 있는지 반문할 때다.
만약 현재의 익숙한 삶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발 벗고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은 진리일수도 있고, 나를 부끄럽게 하는 친구일 수도 있으며,
전문적인 코치일 수도 있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라.
안정감 있는 목소리
P그룹 사원 30명과 호흡 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서른 후반의 김 모 대리였는데, 훤칠한 외모와 발군의 능력으로 사내에서 인정을 받는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잠시 잠깐의 호흡 훈련조차 소화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었다.
대학 동창이 로또에 당첨되어 해외에서 떵떵거리며 산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부터라고 한다.
여태껏 살아왔던 삶에 회의를 느꼈을 게 뻔했다.
결국 김 대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로또를 한 장 두 장 사기 시작했고,
업무보다는 토요일 밤의 대박을 학수고대하며 매 주를 들뜬 마음으로 보냈다.
그렇게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들뜨고 낙담하고,
낙담하다가 다시 들뜨는 일과를 반복하니 당연히 안정된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는
요원한 일이었을 터였다.
안정된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 또한 안정되고 편안하게 한다.
지금 나는 혹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들뜬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나 자신은 모르지만 목소리를 듣고 있는 이들은 벌써 내 목소리가 안정됐는지
들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목소리에 쉼표를 찍어라
우리는 노래방에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목청을 돋우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파탄이 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쉼표에서 호흡을 쉬지 못하고 내쳐 부른 결과다.
노래를 잘 부르려면 무엇보다 호흡의 분배가 중요한 법이다.
즉 제대로 노래 부를 줄 아는 사람은 쉼표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을 실현하는 척도는 단연코 ‘돈’이다.
이 점을 부정할 생각은 결코 없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가치가 전도되어 ‘돈’을 벌기 위해 ‘행복’을 희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행복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쉼표가 빠진 인생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 기관차일 뿐이다.
한계를 넘으면 막다른 외길밖에 갈 수 없는 폭주 기관차.
이제 하던 일과 생각을 잠시 멈추고, 가족과 자연으로 나가서 쉼표를 찍어야 한다.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의 행복을 위해 잠시 쉼표를 찍을 줄도 알아야 한다.
쉼표는 노는 것이 아니다. 쉼표는 중요한 일과라고 생각해야 한다.
쉼표는 팍팍한 당신의 소리에 넓은 여백을 만들어줄 것이다.
깨어 있는 목소리
백화점에는 시계와 창문이 없다. 휘황찬란한 상품에 현혹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 중독에 빠진 고객들에게 시계와 창문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환기시키는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카지노는 한술 더 뜬다. 시계와 창문은 고사하고, 그 흔한 거울마저 카지노에는 없다.
잃어버린 돈을 되찾으려고 침식을 잊은 채 카지노를 전전하는 고객들이 거울에 비친 제 몰골을 보는 순간
정신을 번쩍 차리지 않을까 저어하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시계, 창문, 거울은 인간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주위를 환기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사물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자들은 ‘인간’ 또한 거울, 즉 전범으로 삼기를 권한다.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 앞에 서면 반성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시계, 거울, 창문, 그리고 모범이 될 만한 사람뿐만 아니라
스스로 회광반조하듯 매 순간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자세다.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자만이 항상 깨어 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때에만 언제나 깨어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카지노 딜러의 목소리
게임에서 이기려면 집중은 하되, 빠지면 안 된다. 집중은 이성적인 작용이나,
몰입하고 빠지는 것은 감성적인 심리 작용이기 때문이다.
인생 또한 한판의 되돌릴 수 없는, 낙장불입의 게임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집중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혹 집중하다 못해 빠지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생이라는 게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판 자체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자신이 판을 만들어 끌어야 한다. 판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대박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무대와 인간관계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카지노의 딜러처럼 적절한 휴식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만약 지금 자신의 감정에 빠져 있거나 상황에 휘둘리고 있다면,
그만큼 위험한 결정을 성급히 내리기 쉽다.
또한 상대적으로 결과에 대해 후회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는 인생에서도 40분 게임하고 20분 휴식을 취하는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생의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7척 하지 않는 목소리
우리의 일생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척을 하는가?
여성은 예쁘건 말건 무조건 예쁜 척을 한다.
남 앞에서는 약한 척하고, 착한 척한다. 남성이라고 다를까. 잘난 척에다가, 센 척, 아는 척, 있는 척, 별의별 척을 다한다.
두드러진 점은 여성들이 미와 관련된 척을 주로 한다면, 남성들은 힘에 관련된 척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척하는 목소리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른 앞에서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돼 짐짓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경우도 있다.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위해, 즉 예의상 척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척하는 목소리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마음이 자연스럽지 못하니 목소리 또한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또한 척하는 목소리는 듣는 상대방이 짐짓 모르는 척할 뿐이지 쉽게 알아챈다.
이처럼 어깨와 브래지어에만 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 무서운 것은 생활에 배인 뽕이다.
우리는 거짓되고 과장된 뽕을 뺄 수 있을 때에만 진실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을 웃을 수 있고, 깨끗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다.
혹 지금 우리는 뽕이 잔뜩 들어간 척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은가?
‘솔’ 음정의 비밀
음정상으로 상대방을 환대할 때의 밝고 상냥한 목소리는 ‘솔’음에 가깝다고 한다.
최근 심심찮게 걸려오는 텔레마케팅 콜 센터의 젊은 여직원들의 목소리도 백이면 백 모두 ‘솔’ 음정을 띠고 있다.
문제는 의외로 솔 음정의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좋게 들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외려 불쾌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기 일쑤이다.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을 환대하고 있는지, 무시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에모토 마사로의 저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 따르면 무기물인 물조차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의 옆이나 깨끗한 환경에서는 완벽한 결정을 이뤄 오래도록 마실 수 있지만,
부정적인 사고와 환경에서는 쉽게 결정이 어긋나고 상해 버린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굳이 마음에도 없는 ‘솔’음정을 낼 필요는 없다.
‘솔’음정이 아니라도 ‘환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다.
진심 어린 애정이 있다면 목소리가 어떻든지 상대방은 당신의 목소리에서 아름다운 결정을 볼 것이다.
주도적인 목소리
단순히 자리에 맞추기 위해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내는 것과,
‘주인 의식’을 갖고 행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목소리는 천양지차다.
사사건건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노예 근성’의 평사원과 ‘주인 의식’을 갖고 노력하는 평사원의 미래는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사원일 때 사장처럼 일하지 않은 자는 결코 사장이 될 수 없다.
혹 사장이 된다고 해도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던 대로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을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최고 경영자처럼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항상 불투명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자신의 꿈과 행복을 둔다.
그런 그의 목소리는 이끌지도 따르지도 않는 소리다. 잊지 말자.
현재 우리가 위치한 이곳은 우리 삶의 마지막이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삶과 직장의 최고 경영자라는 것을.
주인 의식을 갖고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는 순간, 이미 우리는 성공의 길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즐기는 목소리
현대는 모든 영역에서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발전하는 세상이다.
기술 발전 속도는 너무 빨라 제대로 따라갈 수조차 없다.
그렇다고 따라가지 않을 수도 없다. 바짓가랑이가 찢어져도 멀찌감치 보이는
문명의 뒤꽁무니를 쫓아 무조건 헐레벌떡 뛰어야 하는 세상이다.
그래야 밥벌이를 하고, 낙오자가 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때문에 외려 더욱 중시되는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을 ‘여유로움’이라고 강조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처럼 바삐 사는 중에도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어야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진정으로 세상을 즐기는 게 가능하다.
삶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여유롭고 아름답다.
쳇바퀴처럼 헛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보자.
바쁜 세상살이에 무조건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삶의 속도를 스스로 제어하는 것,
때로는 빠르게, 또 때로는 여유롭게 삶을 즐길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을 진정으로 즐기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종 치는 사람 VS 종을 울리는 사람
봉사 활동을 하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봉사가 마약보다 끊기 어렵다고 말한다.
자신의 봉사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때, 상대방이 받는 것보다 자신이 얻는 행복이 훨씬 더 크며,
상대방의 마음을 울리는 행복 지수가 얼마나 큰지 몸소 체험했던 것이다.
또한 봉사 활동에 적극적인 분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힘들었던 지난 시절,
누군가로부터 잊지 못할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받은 게 있기에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 줄도 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종을 울리는 사람과 종을 치는 사람과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종을 울릴 수 있는 사람들은 종 울림을 당해 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봉사 활동처럼 자신의 몸에 그 울림이 남아 있는 자만이 다른 이의 종도 울릴 수가 있다.
상대방의 종을 울리기 위해서는,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의 종이 울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종 울림을 당해 본 적이 없으면서 남의 종을 울리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
신선한 목소리
새벽시장의 산책을 통해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싱싱한 삶의 활력’이다.
새벽을 깨우는 닭의 울음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혹서와 혹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에 시작되는 그네들의 활기찬 삶의 모습들 속에서 삶의 자세를 저절로 배우는 것이다.
또한 새벽시장에서 사람의 목소리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가령 싱싱한 채소와 과일, 고기를 파는 상점 주인의 목소리는 유독 더욱 싱싱하다.
파는 물건이 주인을 닮아선지, 주인이 파는 물건을 닮은 것인지, 같은 물건조차 여타의 것들보다
훨씬 좋아 보일 정도이다. 신선한 목소리를 내려면 신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해묵은 감정과 생각들을 말끔히 떨쳐버리고, 그날그날 들어오는 과일처럼 새롭고 싱싱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어제의 것을 오늘 해결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그날 들어온 과일은 그날 다 팔아버리듯, 어제 생각하고 고민했던 일들은 어제부로 해결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찍 일어나 새로운 마음으로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싱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의 두 가지 핵심
“영어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더라구.”
언젠가 친구 녀석이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을 갔다 와서 하는 말이다.
영어를 할 줄 몰라도 충분히 외국인들과 이야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몸으로 하는 언어, 즉 보디랭귀지와 얼굴 표정만으로도 상대방과 쉽게 의사소통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말하는 언어, 즉 시선이다.
즐겁고, 화가 나고, 슬픈 감정들은 눈빛 하나만 봐도 대충의 뜻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목소리는 단순히 성대에서 나오는 음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표정과 시선, 손짓, 발짓을 포함한 온몸으로 말하는 게 바로 진정한 말인 것이다.
인생의 무대에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온몸으로 말하는 언어,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4장 살아 있는 목소리를 위한 발성훈련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라
목소리를 바꾸는 과정은 인생을 바꾸는 과정이다. 지나온 삶의 모습은 얼굴만이 아니라 목소리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어려움 없이 살아온 이는 평이한 외모와 함께 그 목소리 또한 특별한 고저 없는 무난한 소리가 나기 쉽다.
신산한 삶을 살아온 이에게는 또한 그 나름대로의 목소리가 있다.
밭고랑과 같이 깊게 팬 주름살과 함께 탁주와 같은 목소리가 나는 것이다.
또한 권력과 재물, 헛된 명예욕에 빠져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에는 공허한 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이처럼 목소리는 개인의 삶을 온전히 나타내기에 목소리를 바꾸는 것은 외과적 시술을 요하는 작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발성법 훈련으로 목소리 향상이 가능하다.
그러기에 앞서 목소리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이 판단하기는 어렵다.
목소리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목소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주관적인 자신의 판단이 아닌 객관적인 목소리의 검증 과정이다.
녹음기 한 대를 준비하자. 잡음이 많은 낡은 녹음기든, 고가의 녹음기든 상관없다.
단지 내 목소리가 저장될 수 있는, 나의 목소리를 되새김질하듯 다시 들을 수 있는 녹음기면 된다.
그리고 나의 하루를 녹음하라. 아내와 남편, 친구들, 직장 동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부터 세일즈를 위해 만난
고객과의 공적인 대화까지 하루에 일어나는 모든 대화를 녹음해야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깜짝 놀라 소리친다. “어!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녹음기에서 재생되는 목소리는 바로 상대방이 듣는 나의 목소리다.
녹음기나 캠코더, 설문을 통해 평소 고민하던 목소리의 객관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확실한 방향을 설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쁜 목소리를 만드는 두 가지 결정적 원인
나쁜 목소리의 문제점들을 크게 분류하면 육체적인 문제와 심리적인 문제로 나눠볼 수 있다.
혀가 짧다거나 성대 결절 등 여타의 문제로 인해 목소리가 안 좋은 경우,
남자인데 목소리가 가늘다거나 여성인데 목소리가 허스키한 경우는 무엇보다 병원에 가야 한다.
치료가 가능한지 우선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치료가 가능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러나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육체에 문제가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인생에 문제가 있다는 수식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수많은 명사 가운데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치료를 못한다면 단점이라는 생각을 바꿔 장점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현대는 개성의 시대다. 오히려 평범한 것이 홀대 받는 세상이다.
독특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으로 믿고 극대화시킬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물론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심리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내가 만난 이들 중 심리적인 원인으로 말을 제대로 못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를 잠깐 예로 들어 보자.
명성교회에 전도사 한 분이 계시다. 일의 특성상 신도들 앞에서 교리를 설명하고,
목회를 주도하는 일이 많은데 그분은 남들 앞에만 서면 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 병을 앓고 계신다.
초등학교때 아버지 앞에서 크게 창피당한 일 때문으로 추측된다.
어릴 적에 받은 정신적인 상처들을 전문 용어로 ‘트라우마’라고 하는데,
성인이 된 후의 행동 장애에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위의 전도사님의 대인 공포증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할 때에는 전문적인 정신 상담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잘못된 습관이나 가벼운 심리적 원인들로 인해 목소리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제대로 된 마음가짐과 반복된 연습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목소리를 고칠 수가 있다.
따라서 레슨 또한 두 가지의 방법으로 분류를 해야 한다.
심리적인 레슨과 육체적인 레슨이다. 어느 것 하나만으로 목소리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양자 모두의 훈련을 통해 목소리를 바꿀 수 있다.
살아 있는 목소리를 위한 발성 훈련
1 STEP - 자세 교정 : 살아 있는 목소리를 위한 첫걸음은 균형 잡힌 자세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된다.
목소리는 단지 성대에서 나오는 음성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목소리를 위해서는 온몸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2 STEP - 호흡 훈련 : 발성의 99%는 호흡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흡법은 일정하고 안정적인 호흡을 지향한다.
호흡은 일정하고 시원스럽게 막힘없이 나가야 아름답다.
호흡은 훈련을 통해 충분히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여러 호흡법이 모든 이에게 유용할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호흡을 키우는 방법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체질에 맞는 호흡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호흡보다 중요한 것은 화자의 마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뛰어난 호흡 능력과 발성법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가짐에 따라 발성의 수준은 달라진다.
3 STEP - 발성 훈련 : 아름다운 발성은 모두의 꿈이다.
그러나 말은 음성으로 전하는 메시지다. 발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메시지,
감정을 충분하게 전달했느냐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 외국어를 몰라도 좋은 팝송을 들으면 흥겨워하는 것처럼,
그 말의 느낌과 메시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발성 훈련은 기교상의 방법론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하며 훈련에 임하자.
에필로그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닙니다.
상처 주고, 상처받은 까닭을 좇아 들어가면 그 바탕에는 사소한 오해와, 사소한 실수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소한 오해와 실수들의 거의가 말 한마디 때문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게 사소한 말 한마디 잘못해 영영 사이가 벌어지는 무수한 경우를 만날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 피해를 보는 경우를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말이란 과연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 무색무취의 말이 대체 뭐기에 이렇게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사랑하십시오. 인생이라는 멀고 먼 여행 중에 마주치는 무수한 만남에서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려면 사랑하십시오.
우리가 믿을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상대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십시오, 그래야만 진정으로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뜻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