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 스페인, 각종 영화제 수상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87년)는 스페인 코메디 영화다. 라틴어는 말이 상당히 빨라 보인다. 빠른 대사와 왁자지껄 꼬이는 사건과 사람들의 연쇄가 이 영화를 전형적인 코메디 영화로 느끼게 한다.
영화를 보면 나는 여성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우선 작가가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여성관이다. 별 볼 일 없는 한 남자를 둘러싸고 여성들이 얽히고 설킨다. 주인공 페베는 신경쇠약이 심해 수면제를 상용해야만 할 정도로 남자를 너무나 사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행위는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일 뿐이다. 이런 모습만 일관되게 보인다면 이 작품은 형편없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배신한 남자를 구하고 돌아서는 페베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페베가 헛된 사랑의 망상-굴레에서 스스로를 구출하고 진정한 휴식을 얻게 됨을 느낀다. 처음 사랑은 우리에게 지독한 올가미가 된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할 때 사랑은 한 꺼풀을 벗고 다시 태어난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의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 과도한 욕망과 집착이다. 나중의 포기를 통해 페베는 내적 성숙과 휴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랑을 주제로 하면서, 여성의 정체성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사랑에 집착할수록 여성은 종속되고, 히스테리와 신경쇠약, 정신병에 걸리게 된다. 끝내 바람난 남편 때문에 파멸한 여자를 보라. 오히려 욕망에서 나온 사랑의 환상을 깰 때 자유롭고 진정한 여성으로서 다시 태어난다. 온전한 사랑은 그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몇 년 뒤 작가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99년)이라는 영화를 통해, 이성, 동성의 사랑을 뛰어넘는 모성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주인공 마뉴엘라는 아들을 잃고 성전환자인 아비의 아들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레즈비언과 약물중독자, 에이즈로 고통받는 순진한 수녀 등을 만나고, 수녀의 아이를 맡게 된다. 그녀는 결국 그녀를 버리고, 수녀에게 죄를 범해 잉태시킨 지금은 여자이기도 한 남편을 이해하고 연민을 느낀다.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간혹 모성에 대한 집착은 남성들의 신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나는 모성(어미의 사랑)을 여성에 제한해서 이해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지우고, 사회적 차별과 제약의 합리화로 이용하는 것이라면 그런 모성은 거부한다. 모성은 절대 구속의 조건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모성은 나 아닌 남을 사랑하는 데 있다. 희생이 모성의 생명이다. '자기 희생'이라는 사랑의 고갱이가 빠진다면, 모성은 별 볼 일 없는 집착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성은 여성만의 것이 아닌 남성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방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성은 존재를 지탱하는 기본법칙이고 진리이다. 세상은 모든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위대한 모성(어머니 마음)은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내 자식만 사랑하는 편협한 사랑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또 하나의 이기적 자기애일 뿐이다. 진정한 모성(엄마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모성 스스로가 극복되어야 한다. 특수한 사랑이 아니라 보편적 사랑이 되어야 한다.
알모도바르의 여성에 대한 영화는 한번쯤 주목해 볼 만 하지 않을까? 결코 역사적으로 한번도 주목 받아보지 못한 여성의 위대한 힘, 나는 평범에 숨어 있는 이 '엄마 마음'을 하나의 구원방식으로 이해한다. 세계는 여성의 안에 있는, 또한 남성의 안에 있기도 한 모성에 의해 구원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