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제시문을 잘 읽고, 문화의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논술하되, 반드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라. (800자 내외)
(가) 개고기를 먹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일부 서구 사회에서는 야만적인 행위로 비추어지고 있다. 우리는 식인 풍습을 야만적이라고 여기나, 일부 아프리카 부족에게는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거 바라문은 천민 계급에게 여아가 태어나면 칼로 다져 짐승에게 먹이로 주도록 강요했다. 천민계급의 부모들 역시 자신의 여아를 살해하는 것을 용감한 행동으로 여겨, 여아가 태어나면 산파로 하여금 질식사 시키게 하거나 갠지즈강에 던져 악어 먹이가 되게 했다. 여아살해 관습은 힌두사회의 전통으로 남아 지난 50년간 인도에서 매년 백만 명의 여아가 부모의 손에 혹은 마을 산파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추측도 있다. 우간다 ‘IK’ 부족의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를 마지못해 3년 동안만 젖을 먹여 키운 후 버린다. 아이가 생존하지 못하더라도 그에 대한 죄책감은 물론 느끼지 않는다. 자연히 그들 사이에 효도에 대한 인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에스키모는 노쇠한 부모를 설원에 유기해 동사케 하건 곰의 먹이가 되게 했으며, 일부 북미 인디언들 역시 연로한 부모를 벌판에 유기해 그곳에서 생을 마감케 했다. 반면, 고대 로마인들은 부모가 연로해 질수록 더욱 편하게 장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기록을 접할 수 있다. 여진족의 경우 “어버이가 늙고 병들어 살 가망이 없으면…가죽자루에 넣어 나뭇가지에 걸고 활을 쏘는데 화살 한 개로 죽이는 아들이 참된 효자로 칭찬 받는다 했다.” 우리의 경우, “살아비(아버지를 죽이는) 바위니 노사암(노인을 버리는 바위), 노사굴(노인을 버리는 굴)” 등 병들고 늙은 노인을 죽이고 버리던 지명이 남아 있으며...세종 때 기록에 보면 늙고 병든 부모를 숨지기 이전에 밖에 버려 죽게 했다. ...50~60년 이전까지만 해도 야산에 병막이라는 것이 있어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이곳으로 옮겨놓고 죽어가게 했던 것이다.“ 과거 허드슨만 인접 지역의 한 부족에게는 부모가 늙어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면 자식이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 관습이었다. 묘 자리를 파 놓으면 늙은 부모는 그 속에 들어가 자식과 함께(자식이 없는 경우 친구와 함께) 술을 한두 잔 마신 후 마음의 준비를 마친다. 그러면 자식은 부모의 목에 가죽 끈을 감고 양쪽에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힘껏 잡아당겼다. 자식은 이러한 의식을 치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으며, 부모 역시 부족을 위해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한 사회의 성원들조차 각기 다양한 신념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신념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프랑스인들은 개고기 식용 문화를 경멸하고 있다. 그러나 1870년 프러시아군에 포위된 파리 시민들은 개와 고양이의 잡탕까지 먹었으며, 낙타 등 동물원 동물뿐 아니라 심지어는 쥐까지도 먹어 치웠다고 한다. 고려장, 노비제도, 일부다처제는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어른 앞에서 썬글라스를 끼는 것도 N세대에게는 더 이상 무례한 행위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기성세대가 될 시기에 이르면 부자 혹은 부녀 지간의 맞담배 역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공공 장소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은 일상적인 행동이었으며, 구한말 아들을 낳은 여성은 가슴을 자랑스레 드러내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러한 장면들은 목격되지 않는다. 말기 환자에게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것이 과거 우리 사회의 정서였다. 그러나 점차 그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 역시 다를 바 없다. 그들의 관계를 수직 관계로 이해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기 어려우며, 오히려 환자의 권리가 강조되고 있다. 인류학자들의 주장대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옳다고 여기고 있는 것 중 과거 우리 사회 혹은 어느 사회에서인가 옳지 않다고 여기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임종식, [개고기를 먹든 말든?] 중에서)
(나)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지만, 릴리퍼트와 블레퍼스크라는 강력한 나라들은 지난 36개월 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전쟁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습니다. 계란을 먹기 전에, 그것을 깨는 가장 오래된 방법은 넓고 둥근 방향의 끝부분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왕의 할아버지께서 아직 소년이었을 당시 그 동안의 관습대로 계란을 깨다가 손가락을 베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의 아버지였던 당시의 국왕이 새로운 법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계란을 깰 때는 좁은 방향의 끝부분을 깨도록 명령하고 이것을 어기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엄한 벌을 내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역사책을 보면, 한동안 국민들은 이 법에 대하여 몹시 화가 나서 이 문제로 인해 여섯 차례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반란에 휘말렸던 어느 국왕은 목숨까지 잃었으며, 왕위까지 잃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란은 언제나 블레퍼스크에 의하여 선동되었으며, 진압이 되고 난 다음 반란을 주도하였던 주동자들은 언제나 그 왕국으로 망명을 하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그 동안 1만 1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여러 차례에 걸려 좁은 방향의 끝부분으로 계란을 깨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넓은 방향의 끝부분을 깨는 것에 대하여 옹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출판과 판매의 자유가 금지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법에 의하여 그들은 공직에도 취임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일어나는 동안 블레퍼스크의 국왕은 가끔씩 대사를 통해 우리의 행위가 브런데크랄(소인들의 성서) 제54절에 있는 위대한 예언자 러스트롱의 가르침을 위배하기에 종교의 분리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서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불과합니다. 원래의 기록에는“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계란의 편리한 방향의 끝부분을 깨도록 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계란을 깨는 것이 편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 스스로의 마음에 달린 일이지만 나는 국왕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란의 넓은 방향 끝부분을 깨어 먹는 파에서 망명을 한 사람들은 블레퍼스크의 국왕으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고 있으며, 또한 고향인 릴리퍼트에 있는 자기 파의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도움과 격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지난 36개월 동안 두 나라 사이에는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중에서)
(다) 미국 국경 내에서도 각별히 노력하지 않고는 거의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시간을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남서부에 거주하는 푸에블로 인디언의 시간 감각은 시계에 얽매여 사는 일반 미국시민의 습관과는 전혀 다르다. 푸에블로 인디언의 모든 일은 사태가 무르익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리오그란데 부근의 푸에블로 마을에서 25년 전에 참석했던 크리스마스 무도회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45마일의 험한 길을 달려야 했고 7천 피트 고지에서 맞는 한겨울 새벽 한 시의 호된 추위는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마을에서 추위에 떨면서도 무도회가 시작될 기미를 계속 살피고 있었다. 실외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이따금 나직한 푸에블로 북소리가 깔리고 문 여는 소리가 들리거나 한밤의 어둠을 스치는 불빛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무도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는 교회에는 도시에서 온 몇몇 백인들만이 발코니에 옹기종기 웅크리고 앉아 얼마나 더 고생해야 하는지 기미를 살피고 있었다. “작년에는 열 시에 시작했다던데요.” “목사님이 오셔야 시작할걸요.” “도대체 언제쯤 시작할지 알 길이 없군요.” “모두들 추위로 인해 이를 부딪치거나 혈액순환을 위해 발을 구르고 있었다.” 갑자기 한 인디언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난로에 불을 지피자 모두들 ‘이제 시작할 모양’이라고 서로 끄덕였지만 또 한 시간이 지나갔고 또 다른 인디언이 밖에서 들어와 교회의 회중석을 가로질러 다른 문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정말로 시작하겠지, 두시가 다 돼 가는데 말야.” 백인들이 가버리기를 바라는 짓궂은 심사에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넘겨짚은 사람도 있었다. 푸에블로인 친구를 가진 어떤 사람은 그 집에 가서 언제 무도회가 시작되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무도 아는 자가 없었다. 그러다가 백인들이 기진맥진해 있을 때 갑자기 어둠을 뚫고 깊은 북소리와 덜컹대는 소리, 그리고 남자들의 나직한 노랫소리가 밀려왔다. 예고도 없이 무도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일을 경험한 후에는 몇 년이 지나도록 건전한 상식을 지닌 백인들은 그 의식이 언제 시작되는지 감히 예측하려고 하지 않았다. 경험을 통해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 무도회가 어느 특정한 시간에 시작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스케줄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무르익었을 때’ 시작되는 것이다! 나바호인과 유럽계 미국인은 10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서로의 시간개념을 적응시키고자 노력해왔지만 아직까지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구세대의 나바호인에게 시간은 공간과 같다. 즉 지금 여기만이 실재하며 미래라는 것은 현실감을 거의 주지 못한다. 나바호 마을에서 성장한 나의 옛 친구는 그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바호인은 말을 사랑하고 경마로 내기하기를 즐기지. 그런데 만약 나바호인에게, ‘자네 지나 독립기념일에 플래그스태프에서 경주를 온통 휩쓸었던 내 말을 기억하지?’ 하고 물었을 때, ‘그럼, 기억하고말고’ 하면서 그 말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끄덕인다 해도 그에게 다시, ‘그 말을 가을에 자네에게 주겠네’ 하고 말하면 그는 낙담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가버릴 것이네. 그러나 만약, ‘내가 방금 타고 온 저 비루먹은 말 있지. 영양실조에다 안짱다리인 저 늙은 말을 떨어져 나간 재갈과 해진 안장과 함께 자네에게 줄 테니 바로 저놈을 타고 가게나’ 하고 말하면 그 나바호인은 희색이 만면하여 악수를 청한 다음 자신의 새 말에 훌쩍 올라타서 사라질 것이네.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선물만을 실감할 뿐, 장래의 이익에 대한 야속은 고려할 가치조차 못 느끼는 것이지.” 트루크에서는 시간이 약이 되지 않는다! 트루크인들에게 과거의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중되어 현재를 무겁게 짓누른다. 그들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마치 방금 벌어진 일처럼 다룬다. 그 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그 섬을 점령한 직후에 일어났던 다음과 같은 사건으로 입증된다. 마을 사람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군정 사무실에 달려와서 마을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살인자가 태연하게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이 말에 군정관은 너무도 당연하게 놀라서 살인범을 체포하려고 헌병을 파견하려다가 문득 ‘원주민’을 다룰 때에는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누군가의 경고를 기억했다. 몇 마디 질문 끝에 그 피해자가 살인범의 아내와 ‘놀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범행 장소와 시각을 알아보기 위한 상례적인 조사 끝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살인은 몇 시간 전에, 아니 며칠 전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17년 전의 일임이 밝혀졌다. 티브족의 일주일에 해당하는 기간은 5일에서 7이이지만 달이 변하는 단계와 같은 주기적인 자연현상과 부합되는 기간은 아니다. 요일의 명칭은 가장 가까운 ‘시장’에서 팔고 있는 물건들에 따라 붙여진다. 그것을 미국에 적용한다면 월요일을 워싱턴에서는 ‘자동차’, 볼티모어에서는 ‘가구’, 뉴욕에서는 ‘직물’로 부를 수 있다. 각각의 요일은 각 도시마다 ‘가전제품’, ‘주류’, ‘다이아몬드’ 등으로 명명될 것이다. 이 말은 여행하는 곳에 따라 요일의 명칭이 바뀐다는 의미다. (에드워드 홀, [침묵의 언어] 중에서)
*** 학생글:박혜원(양평중 3)
문화라는 것은 당시의 사회상과 배경을 반영한다. 또한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을 문화적으로 추구하므로, 세상 사람들이 개성적인 만큼 문화 또한 나라와 민족에 따라 무수한 다양성을 띤다.
우리는 문화의 차이에서 나오는 충돌을 얘기할 때, 흔히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예를 든다.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아주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보신탕용 개도 단순히 돼지나 소처럼 식용을 위해서 길렀을 뿐이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산 오리를 불에 구우면서 입에 대롱을 끼워 콩을 그 안에 넣어서 요리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 또한 우리나라의 시각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것보다 더 잔학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문화라는 것은 어느 누가 미개하고 누가 교양있는가를 시비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인도인들이 옛부터 소를 숭배하는 것도, 단순히 소를 맹목적으로 신성시했다기보다는 소를 잡아먹지 않도록 하여 사람들과 더불어 살게 하는 것이 인도인들의 생존에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에서 벗어나려면 그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내려오던 고려장 풍습이 있다. 얼핏 보면 굉장한 불효이고 악습이지만, 당시 일반 서민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필요한 풍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식구들은 넘쳐나고 식량은 부족한데, 이때 한 식구라도 더 살리려면 일단 약자, 즉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을 버리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중략]
문화의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나와 다른 타인을 한 인간으로서 그의 개성을 존중해 준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타인의 문화를 수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세속적인 교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결국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으로서 너무 이기적으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 총평.첨삭
전체적으로 글쓴이의 주장이 분명하고 쉬워서 재미있게 읽힌다. 배경지식이 풍부해서 적절하고 구체적인 예들을 자유롭게 활용한 것도 돋보인다. 문단의 구성이나 문장의 정확성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스스로 완성한 글을 다시 한번 고쳐 쓰는 연습을 해봐야 한다. 가령 첫 문단의 경우 의미를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고쳐 써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그 사회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므로, 각자에게 개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와 민족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문단은 한 가지 중심 생각을 담은 문장들의 모임이다. 중심 문장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보조문장들로 구성된다. 우리의 개고기, 프랑스의 오리고기, 인도의 소 숭배 등은 모두 식문화와 관계된 것이므로 두 번째 문단과 세 번째 문단의 전반부까지는 한 문단으로 묶어주는 것이 좋겠다. 거기에 그 문화를 탄생시킨 배경을 함께 설명해 주면서 문화 간에 우열이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한다면 탄탄한 문단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고려장은 조금 다른 차원의 예이다. 제시문에 주어진 다른 여러 민족의 살인 문화와 연결시켜서 문화의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글의 끝 부분에 쓴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자세'와 마찬가지로 '지구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회와 민족에 대한 존중이요, 예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편이 좋겠다. 박 양의 글은 무려 1400자에 가까웠다. 요구한 분량은 800자였다.
오길주 문예원글로피아 원장
*** 다음 주제는
중학생 대상 논술코너를 격주로 운영합니다. 중앙일보 joins.com의 논술카페 '우리들의 수다(cafe.joins.com/suda)' 중학논술방에 글을 올려주세요. 매회 20명을 골라 문예원글로피아 연구원들이 총평을 해 드립니다. 또 우수 논술 한 편을 골라 총평과 함께 지면에 게재합니다.
◆ 다음 주제=두발자유화에 대해 찬성과 반대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해 논술하되, 양쪽 핵심 논점을 모두 정리한 뒤 이를 논박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라.(800자 내외)
◆ 공지=그 다음 주제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입니다. 미리 읽어두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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