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되어 종로경찰서로 끌려온 원노인(이순재)은 평생 장사만 한 사람을 끌고 온 이유가 뭐냐고 되려 소리친다. 미와(이재용) 경부는 원노인과 고문으로 초주검이 된 애국단원 최석규를 대면시키고 바른대로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 시간 함께 잡혀온 두한(안재모)도 가혹한 고문을 받는다.
뒤늦게 최동열(정동환) 기자를 통해 두한의 소식을 접한 친할머니(정영숙)는 두한이 독립군 대접을 받고 있는 거라며 기뻐할 일이라고 말한다. 최동열 기자는 친할머니의 의외의 반응에 기가 질린다.
미와 경부를 찾아간 친할머니는 두한을 잡아들인 진짜 이유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냐며 자신도 고문해 보라고 호통친다.
심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원노인은 조국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영광스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질린 미와 경부는 자신에게 빌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유치장으로 끌려가던 두한은 죽어가는 원노인을 보고 절규한다. 원노인은 강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한편 원노인의 죽음 후 두한은 미와 경부에게 꼭 복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우는데….
(지난 회에 이어..*)
거칠게 원노인을 돌려세워 역시 수갑을 채운다. 그러자 두한이 문달영을 밀치며 원노인을 막아선다.
두한 뭐요? 왜 이러는 거요?
문달영 어쭈, 이 자식 보게.
문달영이 두한의 뺨을 후려치는데, 그러나 두한에게 팔목이 잡혔다.
두한 당신들 누구야? 왜 이러는 거야?
문달영 이.. 이 자식이... 이거 놓지 못해? 놔, 임마. (붙잡힌 손목을 빼지 못하고) 뭣들 하나. 어서 체포해! 이 놈 붙잡아.
형사들이 달려들자, 두한이 문달영을 내지른다. 문달영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진다. 형사들이 한꺼번에 덮친다. 그들은 다시 두한에게 채이고 맞고 형편없이 나가떨어진다. 모두들 뻥해서 본다.
두한 할아버지, 피하세요!
원노인 두한아..
두한 어서요...
형사들이 그 사이에 다시 일어나 두한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두한의 놀라운 싸움 솜씨에 형사들이 다시 비틀거리는데, 그 때다. 요란한 총성이 그 곳에 울려 퍼진다. 두한이 놀라 돌아보면 오무라가 총을 들고 서 있다.
오무라 긴또깡.. 너 대단하구나? 그 동안 많이 컸어. 싸움은 어디서 그렇게 배웠나?
두한 ...........?
오무라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긴또깡,
독을 품고 노려보는 두한의 그 표정에서..
# 1 종로 경찰서 외경(낮)
일장기가 하늘 높이 위압적으로 휘날리고 있고, 그 앞 정문에는 정복 경관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펴고 있다. 그 위로
미와 (E)이게 누구신가? 사동옥의 주인장이 아닌가?
# 2 동 고문실
원노인이 의자에 손을 뒤로 묶인 채 앉아 있다. 미와와 오무라, 문달영, 김태서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미와 이 꼴이 뭔가? 쯧쯧쯧.. 한심해.. 너무나 안타까워..
원노인 대체 우리를 이 곳으로 끌고 온 이유가 뭐요?
미와 .....? 그걸 몰라서 내게 묻는 겐가?
원노인 평생 장사만 해 온 사람입니다. 이런 곳에 끌려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오마는...
미와 장사라... 대체 무슨 장사..? 독립운동도 장사에 속하는가? 하긴 그렇지. 제국을 뒤엎으려고 하는 것은 장사 중에 큰 장사가 될 수 있지. 나라를 흥정하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런 장사를 말하는 것인가? 그런 것이야?
원노인 저야, 설렁탕이나 파는 늙은이올시다. 그야 경부 나리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미와 끝까지 시치미를 떼겠다 이건가? 뭐, 쉽게야 불겠는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이미 다 예상했던 일이야. 김형사?
김태서 예.
미와 그 자를 들여보내.
김태서 예, 경부님.
원노인 ...........?
김태서가 문을 열면 형사1이 초죽음이 된 최석규를 데리고 들어온다. 원노인이 경악하며 바라본다.
미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설마 이 자를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바로 얼마 전에 만난 사람을 잊어버릴 만큼 노망이 들진 않았을 테구. 어떤가? 이봐, 늙은이. 그래도 모르겠는가?
원노인 나는 모르오.
미와 몰라? 모른다. 이봐, 최석규. 너는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늙은이는 모른다는구먼. 말해봐.
최석규 .....(눈치를 피한다)
미와 좋아,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고. 일단 데리고 나가.
형사1이 대답하고 밖으로 다시 최석규를 데리고 나간다.
미와 자, 다 끝났어. 이야기를 오래 할 터인가? 아니면, 서로 힘 자랑을 해볼 터인가?
원노인 나는 모르오.
미와 (겁을 주며) 여기는 고등계의 고문실이야. 알겠는가? 바른 대로 말해. 몸이 망가지고 말하면 다 늦어. 늦는다고, 이 늙은이야.
원노인 .... 어제... 우리 집에 온 손님일 뿐이오. 그밖에는 아무 것도 모르오.
미와 쉽게 가진 않겠다, 이 말이군. 할 수 없지. 딱하지만 이 미와가 잘 쓰는 방법을 다시 쓸 수밖에... 안타까운 일이야. 조선 놈들은 이 선량한 미와를 자꾸만 나쁜 놈으로 몰고 가고 있단 말이야. 왜 나를 그렇게 만들어? 이 착한 미와를 말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고문을 해달라고 애원을 한단 말이야.
원노인 ...........
미와 할 수 없지. 정말 할 수 없어. 허면, 시작해보자구. 아주 천천히 말이야. 천천히... 흐흐흐...(일어서며) 오무라 형사..
오무라 예, 경부님..
미와 연로하신 분이니까 살살 다뤄드리도록 하게. 너무 일찍 끝나면 재미가 없으니까. 알겠나?
오무라 예, 잘 알겠습니다.
미와 참, 긴또깡도 와 있다고 했지?
원노인 ..........
문달영 예, 경부님.
미와 그럼 그 녀석에게도 한 번 가봐야지. 겁도 없이 우리 형사들을 셋씩이나 때려 눕혔다구?
원노인 안 된다. 두한이는 안돼. 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미와 닥쳐라!
원노인의 뒷덜미를 곤봉으로 내리친다. 원노인이 정신을 잃고 고개를 떨군다. 미와가 한심하다는 듯 도리질을 친다.
미와 늙은이라고 사정을 둬서는 안 된다. 철저히 조사하도록 해.
오무라 예, 경부님.
미와 자넨 나를 따라오구.
문달영이 미와의 뒤를 따라 나간다. 김태서가 원노인을 깨워 세운다.
김태서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 빨리 일어나란 말이야, 이 영감탱이야.
# 3 종로 거리(인서트)
# 4 카페 비너스 안
김이수가 한쪽에서 술을 마시며 음악에 취해 있다. 고전 클래식이 계속해 흐르고 있다. 그 한쪽에서 최동열이 웬 낯선 사내와 접촉하고 있다. 사내가 보여주고 있는 여행증명서를 보고 있다.
사내 요즘은 옛날 같지가 않습니다, 선생.
최동열 ........(계속 증명서 보고)
사내 단속도 심한데다가 확인이 아주 까다로워서요.
최동열 고생했습니다. 여기...
사내 고맙습니다. 뭘 하시는 분이신데 이런 서류들이 자주 필요하십니까?
최동열 피차 모르는 게 좋다고 하지 않았소?
사내 알았습니다. 아무튼 그 증명서로 만주에 다녀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사내는 최동열이 준 돈을 확인하며 일어선다. 그리고 꾸벅 하고는 나간다. 최동열은 계속 서류를 본다. 그 증명서에는 두한의 큰어머니인 오씨의 사진이 붙어 있다. 그때 , 최동열이 일을 마치고 막 일어서려는데 기자 둘이 들어선다. 일전에 보았던 박기자와 윤기자가 들어선다.
윤기자 오, 최기자 아닌가? 여기서 뭘 하나..?
최동열 차 한잔 마시고 있었네. 막 일어나려는 참이야. 어디들 다녀오는가?
박기자 자네 몰랐나...? 종로서의 미와 경부가 또 한창 바쁘다네.
최동열 무슨 일이 있나..?
윤기자 정말 몰랐나..? 애국 단원들을 체포했다네. 임시정부의 테러리스트들 말이야. (흉내내며)탕탕....
최동열 그런 일이 있었나...?
박기자 이번 일은 아주 재미있어.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도 체포되었다네. 우리가 자주 가는 그 설렁탕집 노인도 말이야.
최동열 뭐라고....?
벌떡 일어서는 최동열의 모습에서...
윤기자 어서 가보게. 어쩐지 자네가 안 보인다 그랬지.
최동열 고맙네.
최동열이 그렇게 급히 달려나간다. 기자들은 자리에 앉고 취한 김이수가 멍하니 그런 최동열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음악은 한껏 고조되어 있다.
# 5 종로서 외경
# 6 동 다른 고문실
형사2가 두한의 뺨을 후려친다. 두한은 웃통이 벗겨진 채 천장에 매달려 있다.
형사2 야, 이 새꺄.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감히 대 일본 제국 형사에게 주먹을 휘둘러? 아이고, 아직도 턱이 다 얼얼하네. 이놈아, 지금 이빨이 석 대나 흔들거려, 이놈아. 아이구, 내 이빨...
두한 ....(희미한 냉소)
형사2 어쭈, 이 자식이 웃어? 어디서 눈을 부릅떠? (다시 따귀를 때리고) 너 오늘 아주 죽어 봐라.
겉옷을 벗어제끼고 채찍을 든다. 그리고 사정없이 내리치는데.. 그때 미와가 들어온다.
미와 지금 뭐하는 겐가?
형사2 .... 잠시 버릇을 고쳐주고 있었습니다.
미와 누가 자네에게 이러라고 했나? ... 물러나 봐.
미와 긴또깡.. 아주 오랜만에 보는구나.
두한 .............
미와 못 본 사이 아주 어른이 되어 버렸구나. 길에서 마주치면 전혀 몰라보겠는걸. (입가의 피를 닦아주며) 쯧쯧... 그러길래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면 안되지. 형사를 때리는 건 아주 큰 죄야.
두한 ......(냉소 계속)
미와 그 눈빛은 여전하구나. 난 말이야, 너의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여기서 며칠 있다 보면 달라질 거야. 겁먹은 강아지의 눈처럼 아주 온순하게 변하지.
두한 할아버지는 어디 있어?
미와 할아버지? 아 그 영감 말이냐? 아주 잘 있으니까 걱정 말거라. 조금 있으면 그 영감의 노래 소리를 듣게 될 거야. 아주 기분 좋은 노래 소리지. 흐흐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노인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미와 오, 벌써 들려오는군.
두한 우리 할아버지를 어떻게 하는 거야?
미와 저 영감은 대 일본 제국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범한 사람이다. 마땅히 그 죄가를 치르는 것이야.
두한 할아버지를 풀어 줘. 그렇지 않으면..
미와 그렇지 않으면..?
두한 널 가만두지 않겠어, 미와.
미와 뭐, 가만두지 않겠다? 나를 말이냐? 어떻게? 하하하하....
두한 풀어 줘. 할아버지를 풀어 줘.
미와 (싸늘히 웃음기가 걷히며) 똑똑히 들어라, 긴또깡. 일이 그렇게 쉽게 될 일이 아니다. 이건 아주 큰 사건이야. 우린 지금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알겠냐?
두한 .........
미와 그 사동옥이라는 곳은 아주 오래 전부터 비밀이 많았던 곳이다. 네가 어렸을 그때부터 말이다. 너도 그건 알고 있지?
두한 할아버지를 풀어 줘.
미와 암, 서로 이야기만 잘 되면 풀어주고 말고. 그러나, 그러기는 어렵게 되었다. 전혀 씨가 안 먹혀. 네가 있던 그 사동옥은 독립군들의 비밀 은거지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희들은 사형감이야. 독립군들은 모두 사형이니까. 사형, 사형..!
두한 우리는 모른다. 할아버지도 아무 것도 모르신다.
미와 몰라? 교육 한 번 제대로 받았구먼 그래. 그러나, 모두 말하게 된다. 누구든 여기에 오면 다 말하게 된다.
두한 우리는 모른다.
미와 말하게 된다고 했다. 안되었구나, 긴또깡. 네 어미가 여기서 죽어 나갔다. 흐흐흐... 네 어미 알지? 무섭지 않느냐? 너도 잘 못하면 네 어미처럼 여기서 죽어 나간다.
두한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너는 나의 원수다. 너는 언젠가 내 손에 죽을 것이야.
미와 하하하... 이래서 이 아이가 마음에 들어. 그 아비에 그 아들이란 말이야. 사내란 이런 맛이 있어야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러나, 말이다. 여기는 지금 경찰서야. 그리고, 고문실이지.
두한 ...........
미와 너는 우리가 묻는 대로 무엇이든 말해야 한다. 알겠느냐? 참으로 우리는 질긴 인연이구나. 질긴 인연이야. 아니 그러냐, 긴또깡?
두한 ..........
미와 너는 말해야 한다. 네 할아버지란 자가 누구와 만나, 무슨 일을 했는지 하나도 빠짐 없이 털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 역시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알겠나 긴또깡?
두한 ..........?
미와 ... (싸늘한 미소)...요이, 여기도 시작해라, 시작해!
형사2 예, 경부님.
미와 기가 막히게 한 번 다루어봐. 고문 기술은 이런 데서 배우는 것이야. 고문도 기술이란 말이다. 알겠나?
형사2 예, 경부님.
미와 고문 기술을 확실하게 익힐수록 좋은 형사가 되는 것이야. 고문 기술 말이다.
# 7 복도
미와가 걸어 나오고 있다. 최동열이 기다리고 있다가 미와를 발견하고 급히 다가간다.
미와 오, 최기자가 오셨구만.. 오늘은 좀 늦으셨구먼. 무슨 일로 오셨소?
최동열 두한이가 이 곳에 끌려왔다 들었소.
미와 ...... 쥐도 새도 모르게 데려왔는데, 역시 기자들은 달라. 최기자가 벌써 세 번째야. 어느새 냄새들을 맡는다는 말이야.. 대체 우리 순사들은 보안 관리를 어떻게 들 하고 있는 건지.
이들 함께 미와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 8 동 미와의 사무실
미와가 거만하게 자리에 앉으며 녹차 다기 셋트를 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끓는 물을 붓고..
미와 그래, 뭐가 그리 궁금하오...?
최동열 두한이는 아직 어린애요.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한 거요? 죄목이 뭐요, 죄목이...?
미와 왜 이렇게 흥분을 하시오? 아 하긴 최기자는 오래 전부터 긴또깡에게 관심이 많았었지.
최동열 이유가 뭐냐고 물었소.
미와 원노인이라는 자는 옛 신민부의 국내 조직책으로 드러났소.
최동열 .......? 확실한... 증거가 있소?
미와 물론이지. 우리는 오랫동안 증거를 수집했고, 이번에 일망타진을 하게 된 거요.
최동열 두한이도 말이오?
미와 긴또깡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고하지 않은 죄요. 불고지죄라는 말이오.
최동열 그건 말이 되지 않소. 신민부가 존재할 당시 두한이는 그야말로 지금보다도 더 어린 아이였소.
미와 수사는 우리가 하는 것이오. (녹차를 붓고 물을 붓는다) 기자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
최동열 뭐요?
미와 돌아가시오. 지금은 수사 중이니까 나중에 결과 발표를 할 때 오시오.
최동열 두한이는 지금 어디에 있소? 만나게 해주시오.
미와 수사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일체 면회가 금지되어 있소.
최동열 그건 인권 유린이 아니오?
미와 인권? 불령선인들에게 무슨 인권이 있단 말인가?
최동열 뭐요? 지금 그 말, 신문에 그대로 보도해도 되겠소?
미와 뭐라?
최동열 면회를 시켜 주시오.
미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최동열 이 보시오, 미와 경부?
미와 절대 안돼! (외면한다) 면회는 안돼. 지금 취조 중인데, 어떻게 면회를 한단 말인가? 그건 안돼. (녹차를 따르며) 자, 차나 한잔 하실까..? 녹차 어떻소..? 이건 보성서 올라온 녹차요. 우리 일본 사람들이 다 사라져 가는 보성 녹차 밭을 대대적으로 일구었지. 맛이 아주 좋아. 향도 깨끗한 것이... 들어보시겠소, 최기자...? 향이 맑고 깨끗하다고...
최동열 .....(분노처럼 본다)
미와 이 다완 좀 보시오. 조선인들이 만든 것을 하나 얻었지. 일본에서는 이런 거 어림도 없소. 기가 막힌 예술품이야. 허나 조선 도자기는 그렇지를 못해. 아주 형편없는 망종들이라고... 한잔하시겠소..? 차 말이오. 향이 맑고 깨끗하다니까...?
최동열 ... 뱀 같은 자식...
최동열은 그렇게 나가버린다. 미와가 낄낄거리며 계속 웃어 제친다. 그러다가 정색을 하며 최동열이 나간 쪽을 본다. 고약한 그의 표정에서........
# 8-1 종로 거리(해질 녘)
최동열이 몹시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다.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도리질을 친다. 그때 반대편에서 한 사내와 어깨동무를 하고 오던 구마적이 최동열을 보고 반색을 한다. 그는 이미 낮술에 취해 얼굴이 발그레하다.
구마적 하 이거 최기자님이 아니십니까?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그려.. 하하하...
최동열 ....아 마적이구만...
구마적 요즘 통 못 봬서 경성을 떠나신 줄 알았습니다. 살아 계셨군요, 하하하... 고향에서 오랜만에 불알 친구가 올라와서 한 잔 했습니다. 이보게, 인사하게.. 유명한 신문사 기자님이실세.. 조선 최고의 기자님이시지.
친구 처음 뵙겠습니다.
최동열 (고개 숙이며) 아 예..
구마적 잘 됐습니다. 한 잔 더 마시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가시죠? 이 마적이 근사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최동열 아닐세... 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구마적 뭐가 그렇게 바쁘십니까? 특별히 급한 일이 아니라면...
최동열 다음에 마시도록 하세.. 그럼...
최동열이 구마적을 지나쳐 간다.
구마적 하 이거야... 하는 수 없지.. 가세. 번거롭지 않게 마시려고 부하 놈들도 떨쳐버렸으니 오늘 한번 제대로 마셔 보세나. 종로에서 한 잔 마셨으니 이번엔 명치정 구경 좀 해볼 텐가? 고향 친구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나는 종로의 오야붕이야. 종로의 오야붕은 조선 전국의 오야붕이지. 허나 친구에게는 어울리지가 않는 말이야. 건달도, 주먹도, 친구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라구...안 그래?
친구 고맙네. 우리 고향친구 모두 자네 소식은 훤히 듣고있다구. 와보니까 정말 대단하네. 대단해.
구마적 하하하... 이 사람아 자네도 씨름으로 황소께나 탄 사람이 아닌가? 날 보고 대단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따라오게 오늘 코 비뚤어지게 한번 마시세.
구마적이 그렇게 고향친구와 함께 거리를 활보하며 간다.
# 8-2 명동/어느 일본 술집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고급스러운 술집이다. 종로와는 달리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구마적이 친구와 함께 떠들썩하게 그 곳으로 들어서고 있다.
구마적 핫하하.. 그래서.. 그 왜놈 고리대금업자의 허리를 분질러 놓았단 말인가? 자네가 말인가? 하하하... 그거 참 볼만했겠구만 그래.. 아주 볼만했겠어.. 이 사람 그러다가 건달 되겠네 그려.
친구 말 말게. 고향에도 있지 못하고 만주로 갈 참이네. 거기 가서 장사나 해볼까 해.
구마적 만주 좋지... 만주 좋지..
웨이터가 다가와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웨이터 (일어로) 어서 오십쇼. 두 분이십니까?
구마적 임마, 보고도 몰라? 여기 마담 있지? 좀 데려오라구. 알았나? 자 앉자구..
웨이터 .........?
구마적이 성큼성큼 걸어가 어느 테이블에 가 앉는다.
구마적 야, 뭐해? 어서 술 가져와.
웨이터 하이..
웨이터가 난감해 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주변의 말쑥한 정장차림의 손님들이 구마적의 안하무인격 행동에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다시 구마적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잠시 후 날카로운 눈매의 야쿠자 사내들이 들어와 구마적 쪽을 살핀다. 그들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다시 나간다.
# 8-3 혼마찌깡 외경(밤)
야쿠자 사내들이 곳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하야시 (E)(태연한 어투로) 구마적이 명치정에 나타났다?
# 8-4 동 거실
하야시가 칼을 부드러운 천으로 닦고 있다.
하야시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예까지 행차를 하셨을까? 설마 하니 영역을 확장하려고 온 것은 아닐 테고..
가미소리 부하들은 얼마나 데려왔다고 하던가?
미우라 한 사내와 함께 왔다고 합니다.
가미소리 단 둘이 말인가?
미우라 예..
하야시 명치정 술맛이 생각났던 모양이구만.. 조용히 마시고 가도록 배려를 해주도록 해.
가미소리 하지만 오야붕, 이건 명백한 나와바리 침범이 아니겠습니까?
하야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건 없다, 가미소리.. 어쨌든 내 구역에 온 손님이다. 우리와는 적이지만 그래도 그 자는 종로의 오야붕이다. 합당한 대접을 하도록 해라.
# 8-5 다시 일본 술집
구마적이 친구 사내와 술을 마시고 있다.
구마적 근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오라는 마담은 안 오고 말이야? 야 웨이터...!
친구 바쁜 모양이지.. 놔두게..
구마적 아니야.. 이 자식들 혼 좀 내줘야겠어.. 사람을 뭘로보고 말이야..
웨이터가 다가온다.
웨이터 찾으셨습니까?
구마적 임마, 너 귓구멍이 막혔어? 내가 마담 데려오라고 한 거 들었어, 못 들었어?
웨이터 죄송합니다. 지금 중요한 손님과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 중이라서요.
구마적 뭐야? 그럼 우리는 하찮다 이거야?
웨이터 그런 것이 아니라... 잠시만 기다리시면...
구마적 지금 당장 데려와. 어서.
웨이터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마담이 다가온다.
마담 죄송합니다, 손님. 저쪽 손님분과 이야기가 길어져서요..
구마적 당신이 마담이야? 앉아.
마담 곧 손님들이 나가실 겁니다. 거듭 죄송하지만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시면..
구마적 앉으라고 그랬어.
마담 손님....
그때 저 쪽 테이블의 손님이 다가온다.
손님 이 보시오, 듣자 하니 너무 지나치지 않소? 여긴 당신들만 술 마시는 곳이 아니오.
구마적 (어이없어) 뭐야?
손님 (마담에게) 마담, 가겠네. 기분 좋게 한 잔 하는가 했더니 다 잡쳐버렸어.. 여긴 무례한 조센징들이 드나들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는데 다시 올 곳이 못되는구만..
구마적 뭐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뭐 조센징?
손님 내가 틀린 말을 했나?
구마적 이 자식이...
그대로 벌떡 일어나 다가간다.
마담 안돼요! 그 분은......!
그러나 이미 구마적의 우악스런 주먹이 그 자의 면상에 꽂힌 뒤다. 마담과 웨이터가 급히 다가가 부축을 한다.
마담 정신 차리세요. 정신 차리세요, 국장님(?)...
구마적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구, 국장?
마담 그래요.. 이 분은 총독부에 계시는 분이세요.
구마적 ............?
친구 이보게.. 초, 총독부 인사라면 큰 일이 아닌가?
구마적 더럽게 됐구만... 재수 옴 붙었어.. 마시세. 그렇다고 일어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래봬도 나는 종로의 구마적이야. 자, 술 마시세.
친구 그래도 그렇지. 이보게...?
구마적 마시라니까? (따르고 마시고) ... 괜찮아. 여기서 피하면 조선 주먹들이 우스꽝스럽게 된다고...
그런 구마적의 애써 태연하면서도 난감한 모습에서...
# 9 종로서 앞(밤)
두한의 비명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카메라는 그 고문실의 작은 창문들을 스쳐 간다.
# 10 종로서 그 고문실
두한에게 고춧가루 물을 먹이고 있다. 수건을 덮고 고춧가루 물을 먹이고, 형사1,2가 함께 달라붙어 있다. 미와가 웃으며 보고 있다.
미와 말해야 한다. 말해. 말해라. (사이) 더 부어라. 고춧가루 물을 더 부어.
두한 몰라,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미와 어린것이 아주 맹랑하구나. 이 고춧가루 세례를 잘도 견뎌내는구나. 요이, 무얼 하는가? 고춧가루 물을 계속 코에다 부어.
형사1 예, 경부님. 거기를 잘 잡아.
경사2가 버둥대는 두한을 잡고, 형사1이 계속 고춧가루를 붓는다. 그 고통과 비명소리, 웃는 미와와 그 두한의 극한 비명에서......
# 11 삼청동 산비탈(부감)
# 12 삼청동 두한의 집
친조모와 오씨, 그리고 최동열이 와 있다.
조모 (놀라)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우리 두한이가.. 어찌 되었다구요?
최동열 말씀 드린 그대롭니다. 지금 종로 서에 구속이 돼 있습니다.
조모 무엇 때문에 말입니까? 우리 두한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최동열 원노인과 박군도 모두 붙잡혀 갔습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돌아가신 김좌진 장군과의 관계가 드러난 모양입니다.
조모 (놀란다) 아니 그럼...?
최동열 형편이 무척 나쁘게 된 것 같습니다. 원노인과 접촉했던 독립군 두 사람이 붙들렸고 그들이 자백을 한 것이라 놔서...
오씨 ...어머님, 이 일을 어떡하면 좋습니까?
조모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최동열 그나마 두한이는 불고지죄가 적용되어 있어 다행입니다만... 원노인과 박군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모 ...........
오씨 어떻게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님?
조모 .........그러고 보면 장한 일이다.
두 사람 ........?
조모 두한이가 벌써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가 아니냐? .....벌써 일본 순사 놈들에게 끌려가고 독립군 대접을 받고 있어. 이 얼마나 당당한 일이냐? 지하에 있는 아범이 알면 기뻐할 일이다. 아니 그렇소, 기자양반?
최동열 아, 예.....(할 말이 없다. 기가 질린다)
조모 그 아이는 이제 다 컸어, 암. 우리 모두 침착 하자꾸나. 그 애는 이제서야 어른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야. 암....
오씨 ...........
조모 이렇게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최기자님이라고 하셨던가요?
최동열 예..
조모 여러 가지로 저희 집에 고맙게 해주신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최동열 아, 아닙니다.
조모 어멈아.
오씨 예, 어머님.
조모 차비를 하거라. 두한이에게 면회를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독립군 손주에게 말이다.
최동열 아, 하지만 지금은 면회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조모 그래도 가봐야지요. 준비하거라.
오씨 예, 어머님...
오씨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최동열의 난감한 모습에서.
# 13 종로서/고문실
원노인이 처참한 모습으로 계속해 전기 고문을 당하고 있다.
오무라 다시 한 번 묻겠다. 김좌진에게 군자금을 보낸 사실이 있지?
원노인 ......그런 일.......없다.
오무라 그렇다면 이 비밀 장부는 뭔가? 정기적으로 거액의 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뭘로 설명할 것인가?
원노인 .....모른다.
오무라 몰라? 좋아.. 갈 데까지 가 보겠다는 건데...
박군이 욕조에 처 박혀 발버둥치고 있다. 문영달이 형사3과 함께 사정없이 박군의 머리를 짓누른다.
문영달 더 물을 먹기 전에 말해라. 영감쟁이가 누구와 주로 만났는가? 돈을 어디로 붙였어? 매달 돈을 붙였단 말이다. 누가 와서 돈을 가져가던가? 그거 독립군 군자금이지?
박군 몰라요, 나는....(물에 허우적거리며) 나는... 몰라....
문영달 더 쳐 박아라. 죽기 전에는 여기서 못 나간다. 너 하나 죽여봐야 아무도 꿈쩍 안 한다. 박아라. 더 쳐 박아.
형사3 예...
형사3이 계속 물에 처박았다 들기를 계속 한다 몸서리치는 비명과 몸부림이 계속 된다.
# 15 두한의 고문실
두한도 여전히 천장에 매달린 채 손깍지에 나무를 들어 넣어 조이고 있다.
형사2 긴또깡, 네 손이 정말 세더구나. 어린놈이 그렇게 센 건 처음 봤다. 자, 이 막대기 보이지. 이걸 네 놈 손가락 사이에 넣고 비트는 것이다. 네 손가락이 다 부서져 나갈 것이다. 자, 한 번 맛을 보겠느냐? (힘을 주며) 어떠냐?
두한이 방안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른다. 형사2는 계속해 힘을 주었다 풀기를 반복한다.
형사2 말을 해. 말을 하란 말이야. 네 놈이 보고들은 걸 다 털어놓으란 말이야, 긴또깡!
형사1 (한참 보다가) 어린놈이 이렇게 독종은 처음이네. 안 그런가, 최형사? 그렇게 맞으면서 한 마디도 불지를 않아. (다가가) 긴또깡.. 이렇게 버티면 너만 손해야. 지금이라도 다 털어놓으면 넌 그 길로 석방될 수 있어. 젊은 놈이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다가, 네 놈 몸뚱이 다 부서진다.
두한 ..........(말이 없다. 그 눈빛만은 더욱 무섭게 노려본다)
형사1 안되겠군. 이걸로는 안되겠어. 전기 맛을 좀 봐야겠는데 그래. 그 전압기를 좀 준비해.
형사2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지독한 놈...
두한 .........?
형사1 그래, 하나 하나씩 바꾸어 보자구. 결국은 피똥을 싸며 살라달라 애원하게 될 테니까...
두한 아무리 해봐라, 이 쪽발이 앞잡이 새끼들아!
형사1 허허, 이 놈이 갈수록 귀여운 소리만 하고 있네. 어서, 그 전압기를 걸어. 이 어린놈을 오늘 한 번 잡아 보자구. 허허허..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보자. 다 걸었나?
형사2 예.
형사1 돌려봐. 전압을 올려봐.
형사2 예.
형사2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며 마구 전압기를 돌려 댄다. 김두한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기절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 16 종로서 미와의 방
미와가 인상을 찌푸리며 책상 위에 발을 얹고 앉아 있다 오무라가 막 들어와 앉으며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든다. 그런 오무라를 보며 미와가 찌푸린다.
오무라 영 이틀이나 되는데도 아무 것도 소득이 없습니다, 경부님.
미와 처음부터 독종들이라는 걸 알아 봤어. 순순히 털어놓을 자들이 아니야. 안되겠어.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오무라 늙은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긴또깡 그 어린놈도 여러 가지 고문을 끄떡없이 받아 내고 있다고 합니다.
미와 그 씨가 누구 씨인가? 김좌진의 씨야. 어린놈이 그 몸체 좀 보게나. 영락없는 강골이야.(도리질하며) 씨를 어떻게 숨기겠는가?
오무라 만나시면 괜히 골치만 아프지 않겠습니까?
미와 어차피 만나야 할 사람이야. (담배를 피워 물며) 긴또깡의 할머니라..? 그렇다면 김좌진의 어머니가 아닌가? 그 김좌진의 에미 말이야.
오무라 왜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 늙은이지요.
미와 한 번 보고 싶었어. 도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그런 아들을 낳았는가 말이야. 김좌진...조선 놈들이 모두 그 이름만 들으면 그저 기가 산단 말이야. 하긴 김좌진은 대단했지. 그 청산리 전투 말이야. 내 동생이 거기서 죽었다고. 거기서 말이야.
오무라 알고 있습니다.
미와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데, 친조모, 오씨가 순경의 안내를 받아서 들어선다. 미와가 그들을 보다가 책상 위에 발을 얹은 채 한 마디 한다.
미와 어서 오십시오. 긴또깡의 할머니가 되신다구요?
조모 그렇소. 내가 두한이의 친할미요.
미와 오 그래요? 그렇다면, 김좌진의 어머니가 되시겠구먼.
조모 그렇소이다. 내가 김좌진 장군의 에미요.
미와 (벌떡 발 내리고 소리치며) 장군은 무슨 장군?
모두들 ..........?
미와 대 일본 제국의 죄인이오. 어디서 장군 소리를 하는가?
조모 일본에게는 죄인일지는 몰라도, 조선에는 위대한 장군이오. 나는 그 장군의 어미요.
미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칙쇼!.... 여긴 무슨 일로 온 겐가?
조모 우리 두한이를 당장 풀어주시오.
미와 뭐, 뭐야 누구를 풀어 줘? 긴또깡을 풀어 줘?
오씨 그 아이는 이런 곳에 끌려올 아이가 아닙니다. 이제 열 일곱 살입니다.
미와 나이가 몇이던 간에 죄를 지었으면 조사를 받아야 하오.
조모 그 죄가 무엇이오? 어디 한 번 들어봅시다.
미와 지금 조사중이오. 조사... 이미 혐의가 다 드러났소. 엄한 죄를 받게 될 것이오.
조모 설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소. 어서 두한이를 내놓으시오.
오무라 억지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오.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시오.
조모 네 이놈들! 내가 너희 놈들의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미와 (놀라서 뻥해서 본다)....?
조모 두한이를 이곳에 끌고 온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 그 아이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냐? 내 말이 틀렸느냐?
미와 어허, 이 보시오! 장군, 장군 또 그 소리?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장군을 운운하는가?
조모 그래, 내가 장군의 에미 되는 사람이다. 어디 나도 한 번 고문을 해보거라. 어서..나도 해보거라.
미와 허 이런... 요이, 뭣들을 하는가? 다 끌어내라. 끌어 내.
조모 내놓아라. 내 손주를 내 놓아라, 이놈!
미와 어서 끌어 내, 어서.
순경들이 와서 두 여인을 끌어 내가고 있다. 친조모는 가면서 계속 소리 지른다.
조모 놓아라, 이놈들아. 더러운 왜놈들! 이 손 치우지 못할까?
그렇게 끌려나가면 미와가 도리질을 한다. 오무라가 그런 미와를 본다.
미와 집 안 식구들이 모두가 똑같구먼. 하나 같이 똑같애. 모두들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어. 그런 점은 존경할만한 일이야.
# 17 우미관 외경(밤)
상하이 (E)예, 큰형님께서 달려가셨다구요?
# 17-2 동 사무실 안
구마적의 부하들인 상하이, 평양박, 제비, 뭉치, 셔츠들이 앉아 있고, 구마적과 술을 마시던 친구가 와 있다.
상하이 어떻게 된 겁니까? 자세히 좀 말씀해 보십쇼.
친구 그게... 오랜만에 고행친구라고 만나 가지고 명치정에서 술을 마시다가 어떤 사람과 시비가 붙어서... 한 대 쳤는데...
평양박 그래서요?
친구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총독부 관리라고 합디다.
제비 예? 초, 총독부 관리라구요?
친구 .............(침통하게 끄덕인다)
뭉치 큰일 났구먼.. 큰일 났어.
친구 내가 말렸어야 하는 건데... 면목이 없습니다.
모두들 둔기로 맞은 표정들이다. 난감한 그들의 모습 위로 가미소리의 웃음소리가 더블 되면...
# 17-3 혼마찌깡/거실
하야시와 가미소리, 미우라, 시바루가 앉아 있다.
가미소리 하하하... 이거야말로 손안대로 코 푼 격이 아니겠습니까, 오야붕.. 총독부 관리를 때려 상해를 입혔으니 한 몇 년쯤은 감방에서 푹 썩게 될 것입니다.
하야시 ........(생각)
미우라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우리에겐 좋은 기회가 되겠습니다.
하야시 ........?
가미소리 구마적이 없는 종로는 종이 호랑이일 뿐입니다. 신마적이 있다지만 그 자는 술주정뱅이에 불과 하구요.
하야시 (한참만에 조용히 미소) 미우라.
미우라 하이, 오야붕..
하야시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연결해라.
미우라 (의아해) 예?
하야시 악연도 인연인데 모르는 척 할 수야 없지..구마적을 꺼내 줘야겠다.
시바루 ........?
가미소리 오야붕,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구마적을 꺼내주시다니요?
하야시 그 자가 오늘은 운이 좀 안 좋았던 모양이다.
가미소리 하지만 오야붕, 구마적이 없는 지금이 종로를 접수할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기회를 놓치신다면...
하야시 이봐, 가미소리.. 이 하야시는 명예를 아는 야쿠자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덕을 보고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종로에 구마적만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미소리 .........?
하야시 구마적이 잡혀 들어갔다 해서 순순히 떨어질 종로가 아니야.. 오히려 더욱 독기를 품고 수많은 주먹들이 저항을 해올 것이야...
모두들 ..........
하야시 하지만 우리가 이번에 구마적에게 은혜를 베푼다면 상황은 아주 많이 달라지지.. 그것이 바로 총독부가 펼치고 있는 문화정책의 핵심이야.. 구마적만 잡으면 돼.. 구마적이 우리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면 종로진출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라 할 수 있지...
하야시의 의미심장한 표정에서....
# 18 신문사 외경
국장 (E)그래 어떻게 됐는가? 왜 구속이 된 건가?
# 19 동 안
최동열이 편집국장 앞에 서 있다.
국장 그 어린아이가 어떻게 하다가 구속이 됐어?
최동열 예상대롭니다. 그예 일이 터진 겁니다.
국장 예상대로라니?
최동열 그 설렁탕집의 원노인이라는 사람은 오래 전부터 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많은 일을 하셨지요. 이번에 모두 탄로가 난 것 같습니다.
국장 그래? 그렇다면 심각한 사건이 아닌가?
최동열 예, 그렇습니다. 두한이도 그 사동옥에 있었구요.
국장 큰일이로구만... 허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아닌가?
최동열 일본 순사들이 어디 아이와 어른을 구분해야지요. 두한이 어머니 박계숙이라는 여인도 그렇게 죽었지 않습니까? 고문을 받다가 말입니다.
국장 그러게 말일세. 이 일은 사장님께서도 상당히 궁금해하시네. 함께 들어가 보고를 하세.
# 20 동 사장실
여운형이 착잡한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쉰다.
여운형 일이 그렇게 된 것이로구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국장 일단 기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
여운형 그렇게 하시오. 그리고... 그 원노인이라는 분은 어렵겠지만 백야의 아들만큼은 조속히 풀려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봐야겠어요. 보아하니 그 미와라는 자의 장난 같은데...
최동열 그렇습니다. 돌아가신 백야장군께 원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여운형 모쪼록 심한 고문은 당하지 말아야 할 텐데...
최동열 이미 고문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고도 남는 자들이지요.
여운형 (끄덕인다) 그럴 수도 있어. 아무튼 최기자, 고생이 많네. 이 일은 자네가 끝까지 신경을 좀 쓰게. 우리라도 그렇게 해 주어야지. 그래도, 백야의 아들이 아닌가?
최동열 예, 사장님...
# 21 고문실
미와가 와 있다. 원노인이 비명을 지르다가 그예 혼절한다.
김태서 이 이상은 무립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경부님.
미와 계속해. 죽어도 상관없어.
김태서가 물을 끼얹으면 원노인이 간신히 깨어난다.
미와 어떤가? 이제 버틸 만큼 버티지 않았는가?
원노인 ....소용....없다....내가.. 살아야...얼마나 살겠는가?
미와 결국 죽음을 택하겠다, 이 말인가?
원노인 그래, 난 죽음을 택했다.... 평소에 이런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지.
미와 뭐라고? 준비를 했다?
원노인 오냐, 이런 것이 바로 독립군의 죽음이 아니냐?....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고맙구나, 미와 형사...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미와 ......(기가 질린다, 그러나) 고맙다구? 뭐, 영광? 지독한 늙은이 같으니... 이건 어떻게 된 게 죽는 걸 무서워하지 않아. 요시, 살려 주겠다. 대신 나에게 빌어 보아라. 더 이상 고문을 하지 않을 터이니, 빌어 봐. 이 늙은이야?
원노인 어림없다.... 이 쥐새끼 같은 놈아... 나는 이미 죽는다.
미와 (원노인의 멱살을 잡으며) 이 더러운 독립군 놈들, 빌어 봐. 나에게 빌어보란 말이다. 이 놈들이 아주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나를 존경해 봐. 살려줄 테니까, 애원을 해봐. 이 더러운 독립군 놈들아. 나에게 사정을 해봐, 사정을 해보란 말이다.
원노인 듣기 싫다, 이놈.....
미와 지독한 놈... 계속해!
원노인 .. 장군님... 이제 이 몸도.... 장군님의... 뒤를... 따라 가렵니다.
김태서가 고문기를 계속해 돌린다. 원노인은 이제 비명을 지를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미와 더 올려라.. 더!
김태서 경부님?
미와 어서!
김태서가 더욱 전압을 올린다. 그러자 원노인이 동공이 풀린 채 한동안 경련을 하다가 결국 또 실신한다. 김태서가 다가가 흔들어 깨워보다가 도리질을 한다.
김태서 안 되겠습니다. 동공이 풀렸습니다.
미와 칙쇼... 더러운 늙은이 같으니...
김태서 (계속 원노인의 눈을 보다가) 이거 아무래도 오래 못 가겠는데요...? 숨결도 고르지가 않아요.
미와 ......(그러나, 독이 올라 있다)
오무라 경부님?
미와 이 방에서 조센징이 죽어나가는 게 한두 번인가..? 일단 의무실로 내다 놓았다가 죽거든 지병으로 죽었다고 하고 화장해 버려.
그들 하이, 경부님.
미와 더러운 조센징 놈들.... 이것들은 인간이 아니야. 하찮은 고깃덩어리일 뿐이야. 고깃덩어리... 조사는 더 어렵겠어. 박군이라는 놈과 긴또깡은 그만 유치장으로 보내라. 더 이상 나을 게 없어.
김태서 예, 경부님.
미와 일이 아주 더럽게 됐어. 또 우리가 졌단 말이다. 우리가 졌어. 저 지독한 독립군들에게 우리가 졌어. 우리가...!
핏발을 올리는 미와의 그 독기어린 눈에서...
# 22 동 복도
김두한이 형사들에게 부축되어 나온다. 두 발자국도 아니 갔을 때 원노인을 실은 간이 침대가 나오고 있다. 피투성이의 원노인은 죽어가고 있다. 김두한이 보았다. 절규하며 달려간다.
두한 아니...? 할아버지... 할아버지.........!
김태서 서라, 긴또깡. 조용히 있지 못해..?
그러나 김두한은 그들을 밀치고 오고 있는 침대를 붙든다.
두한 할아버지, 할아버지.....
원노인 두...한...아...
두한 (울며) 할아버지.....
원노인 ...나는...이제...죽는다...사동옥...설렁탕집도...문을...닫을 게다..우리...장군의 ..아드님이...이제..어디로...가실꼬..?
두한 할아버지.. 죽지 마세요...할아버지...
원노인 조국을... 잊지 마라....두한아...그리고...강해야..한다...너는...장군의...아들이다...조국.....조국.......조국...............(하다가 숨을 멈춘다)
두한 할아버지........할아버지.........(오열하며)할아버지......!
김태서 뭣들 하느냐? 어서 끌고 가지 않고....어서 끌고 가라. 끌고 가....
그렇게 소리를 내며 침대차는 멀어져 간다. 김두한의 절규와 오열이 길게 디졸브 되면서..
# 23 유치장
간수가 감방의 철문을 딴다. 구마적이 눈을 감고 정좌해 있고, 그 주변의 사내들은 그런 구마적의 눈치만 보고 있다. 사법계 형사가 와 있다.
사법 형사 이봐 구마적..
구마적 .........나 말이오?
사법 형사 석방이야.. 어서 나와.
구마적 (의아해) 석방.....?
죄수 형님, 축하 드립니다.
몇몇 죄수 축하 드립니다, 형님..
구마적 (여전히 의아해 바라보는데)........
사법 형사 뭐하고 있어? 어서 나오래두.
구마적 허 이거야.. (일어나 나가며) 한 몇 년쯤 뺑뺑이 돌 줄 알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사법 형사 그건 내가 물을 소리야? 혼마찌 하야시상과는 원수지간인 줄 알았는데 언제 그렇게 가까워진 거야?
구마적 그게... 무슨 소리요?
사법 형사 하야시상이 서장님께 탄원을 넣었어. 그래서 풀려나는 거야.
구마적 하야시가...?
구마적이 뻥해 있는데, 다시 유치장으로 통하는 철문이 열리고 김두한이 고등계 형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다. 두한은 상처투성이에다 곳곳에 피멍이 든 처참한 모습이다. 간수가 형사들에게 경례를 부친다. 구마적이 사법계 형사와 나가며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다.
구마적 되게 당했구만.. 쯧쯧..
형사1 어서 문 열어.
간수가 대답하고 한 방의 철문을 딴다. 그 방의 죄수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몰려든다.
간수 구경 났어? 어서 제 자리에 앉지 못해.
그러자 죄수들이 마지못해 뒤로 물러앉는다. 형사들이 열려진 문안으로 두한을 밀어 넣는다. 그대로 쓰러지는 두한. 간수가 철커덕 철문을 잠근다.
두한 ....할아버지...할아버지....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려 한다. 형사들이 간수의 책상에서 서류를 간수에게 건네고 있다.
형사1 사상범이니까 특별히 감시하도록 해. 알았나?
간수 예, 알겠습니다.
두한 (철창에 매달려 간신히)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네 놈들이 죽였다... 네 놈들이.....이놈들아.... 문 열어...
형사1 지독한 놈.. 가세.
형사들이 대답 없이 사라진다. 간수가 경례를 부친다. 두한이 철창을 부여잡고 소리친다.
두한 (울며, 절규) 문 열어... 어서.. 문을 열란 말이야.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 24 동 종로 경찰서 정문(낮)
형평사 단원들 수십 명이 몰려와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순경들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다. 순경들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다. 최동열과 기자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간간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단원1 서장을 만나게 해주시오. 우리는 부회장님이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소. 서장을 면담하게 해주시오.
단원들이 아우성친다. '서장 나오라 그래' '부회장님을 살려내라' 등등이다. 순경 하나가 메가폰을 들고 소리친다.
순경 해산하라! 5분 이내에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그러자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진다. 단원1이 다시 나선다.
단원1 맘대로 해보시오.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우린 단 한 발자욱도 물러설 수가 없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단원들 옳소! 쏘라고 그래! 여기서 다 죽어버리자구!
다시 아우성친다. 이번엔 순경들도 난감하다. 그때 정진영과 양코가 그 쪽으로 다가와 무슨 일인가 기웃거린다.
양코 무슨 일이지?
정진영 글쎄...
양코 가자. 괜히 여기 서 있다가 우리한테 불똥 튈라.
정진영 잠깐만...(주위를 살피다가 최동열을 본다) 아저씨, 최기자 아저씨? (최동열에게 다가간다)
최동열 ...........?
정진영 안녕하세요? 저 모르시겠어요? 두한이 친구 정진영이에요.
양코 안녕하세요?
최동열 ......(생각난 듯) 오 그래.. 두한이를 면회하러 온 모양이구나? 하지만 지금은 면회가 안 된다.
정진영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면회...라니요?
최동열 너희들..아직 모르고 있었나 보구나.
양코 ........(어리둥절)....?
정진영 두한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최동열 (끄덕이고) 여기 경찰서에 잡혀 와 있단다.
정진영과 양코가 놀란다.
정진영 왜요? 두한이가 왜요?
최동열 그런 일이 있었다. 얘기하자면 길다.
정진영 ..........?
그때 미와와 형사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단원2 미와다. 부회장님을 고문해 죽인 장본인이오!
그러자 단원들이 아우성을 친다. 미와가 비웃듯이 보고 있다.
미와 뭐하고 있나? 저런 오합지졸들을 아직도 해산시키지 못했단 말인가?
순경 곧 해산시키겠습니다. (순경들에게) 밀어붙여! 강제로 해산시키란 말이다.
순경들이 형평사 단원들을 밀어붙인다. 그 몸싸움 끝에 순경들이 곤봉으로 단원들을 무차별 가격한다. 사진 기자들의 플래시가 연신 터진다.
조모 그게... 사실입니까? 원서방이 정말....
최동열 예, 경찰에선 뇌졸중으로 사인을 발표했지만 그걸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조모 (눈물) 그예.. 그렇게 되었구만..
오씨 .....(역시 눈물)......
최동열 두한이는 유치장으로 옮겨졌습니다. 조만간 면회도 될 것 같습니다.
조모 원서방이... 원서방이 죽어서 우리 손주를 살렸구려.
최동열 그렇습니다. 저는 참으로 오랫동안 그 노인장을 뵈었습니다. 비록 백정 일을 하시고, 설렁탕집을 하셨지만 그 분은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저희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조모 그랬습니다. 아주 훌륭한 분이셨어요. 그야말로 순국을 한 겝니다. 나라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동열 그렇습니다. 하지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최동열 저 그리고... (봉투를 내민다) 지난번에 부탁하신 겁니다. 만주로 가는 통행증입니다.
조모 고맙습니다. 번번이 이렇게 신세만 집니다.
최동열 ...........
오씨 우리 두한이도 원노인께서 그렇게 되신 걸 알고 있겠지요?
최동열 아마... 그렇겠지요.
조모 어린것이 얼마나 가슴에 상처가 되었을꼬.. (한숨)....
# 27 유치장
두한이 유치장 구석에 기대앉아 있다. 죄수1,2가 두한을 보다가 간수의 눈치를 본다. 간수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때 철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들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한다. 형사1이 박군을 끌고 들어온다. 그도 초죽음이 된 상태다.
그렇게 흐느끼는 김두한의 모습에서..
# 28 거지촌 외경(밤)
양코 (E)뭐라고 써 있어? 두한이 얘기도 있어?
# 29 동 정진영의 방안
진영이 신문을 보다가 접는다. 양코가 계속 채근한다.
양코 답답해. 어서 얘기 좀 해봐.
정진영 두한이 아버지와 관련된 사건이야. 쉽게 나오지 못할 것 같아.
진영모 ....(놀라)..그, 그게 무슨 소리냐..? 두한이 아버지라니..그 분이라면...
양코 하지만 몇 년 전에 돌아가셨잖아?
정진영 예전 일이 발각된 거야.
양코 ..........?
정진영 두한이가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 거야. 심한 고문도 당하고...
양코 고...고문...?
진영모 그럼.. 두한이는 어떻게 되는 거냐? 감옥살이를 하는 거냐?
정진영 아마 그럴 거예요, 어머니..
진영모 (한숨)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정진영도 한숨을 내쉰다. 그 어두운 표정에서 디졸브 되면...
# 30 삼청동 외경(낮)
# 31 동 안
오씨가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앉아 있다.
조모 준비는 다 됐느냐?
오씨 예, 어머님.
조모 만약 일이 잘못되면 큰 곤욕을 치를 수가 있느니라. 매사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느니라.
오씨 잘 알겠습니다.
조모 네게 그런 위험한 일을 시켜 마음이 편치가 않다만, 어쩌겠느냐? 지금으로선 그 일을 할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오씨 아닙니다, 어머님. 마땅히 제가해야 할 일입니다.
조모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마운 일이구. 그리고 두한이 걱정은 말거라. 아범의 아들이 겨우 이만한 일로 꺾여지겠느냐? 최기자와 신문사의 여러 어른들이 힘을 쓰고 계시다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게다.
오씨 예, 어머님..
조모 자 어서 일어나 보거라. 차시간 늦겠구나.
# 32 유치장 안
죄수들이 벽에 기대어 무료하게 앉아 있다. 두한도 뭔가 생각에 잠겨 있다. 카메라, 그의 얼굴로 조여들면...
두한 할아버지...
두한의 모습 위로 원노인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려서 외조모와 함께 김좌진을 만나러 가던 만주벌판에서부터 다시 재회하는 장면, 그리고 자상하게 두한과 얘기하던 장면 등등이 스쳐 지나간다. 회상에서 돌아오면 두한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 그때 철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미와의 소리가 들려온다.
미와 (E)긴또깡은 어디에 있나?
두한 ..........?
간수 (E)예, 이 쪽입니다.
미와가 두한이 갇힌 감방 앞으로 다가온다. 두한이 분노 가득한 눈으로 서서히 일어난다.
미와 긴또깡..
두한 ..........
미와 어때, 지낼 만 한가?
두한이 서서히 철창 앞으로 다가간다.
미와 긴또깡, 넌 아주 운이 좋은 놈이야. 그 정도에서 끝난 걸 다행으로 알아라.
두한 미와 너지? 네가 그런 것이지?
미와 뭐가 말이냐?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긴또깡?
두한 니가 우리 할아버지를 죽인 거지? 그렇지?
미와 아 그 원노인 말인가? 나이도 많은 데다 오래 전부터 중병을 앓고 있었더군.
두한 아니야. 할아버지는 네가 죽였어!
미와 어허, 긴또깡? 다시 또 고문실에 들어가고 싶은가?
두한 기억해. 내가 꼭 복수를 할거야. 내 손으로 너를 죽일 거야. 죽여버릴 거라구!
미와 흐흐흐, 그래, 나하고는 아무래도 인연이 꽤 오래 갈 것 같다. 잘 지내보자꾸나.
두한 분명히 내가 너를 죽일 것이다. 꼭 죽일 것이야.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