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엠마오의
저녁 식사>, 1629년
무렵,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파리
그림을 밝히는 광원은 모두 둘이다. 그림
구성은 철저하게 빛과 어둠의
변증법에
의해 지배된다. 빛과
어둠은 서로 배격하고 반목하지만 친숙하게 한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색채의 사용을 극단적으로 제한했다는 점에서 오직 한 가지 단색 그림을 고집했다는 고대 화가 아글라오폰과 닳은
구석이 있다.
렘브란트는 원근의 공간을 둘로 구분한다. 왼쪽 원경에 위치한 여관 주인은 부엌일에 분주하다. 전경에는 식탁이 놓여 있다. 식탁주위에 예수와 제자들이 모여 있다.
제자들의 눈이 밝아진 것은 예수가 빵을 떼는 순간이다. 이 순간 암흑과 광명이 예수의 윤곽을 경계로 충돌한다. 제자들은 단박에 예수의 존재를 알아보았다. 한 사람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해 시선을 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은 나무 의자를 박차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렘브란트는 두 단계의 반사 행동을 연극의 진행형식으로 구분해 두었다.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예수는 엠마오 만찬의 주인공이 아니다. 화가는 예수의 얼굴을
작렬하는 빛의 이면에 감추어 두었다. 그의 표정은 자연히 짙은 실루엣으로 처리되었다. 고대 화가 티만테스가 친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는 아가멤논 왕의 격한
감정을 붓으로 마땅히 표현할 길이 없어서 얼굴 위에 두건을 덮어두었다는 일화를
렘브란트도 알고 있었다. 화가의 인문주의적 배려는 보는 이가 상상력의 손을 내밀어 예수의 숨은 표정을 더듬어 완성하도록 이끈다.
그림 복판에는 놀란 표정의 제자가 자리잡고 있다. 그는 어둠을 외면하고 빛을 바라본다. 코끝에 명암의 경계가 걸쳐진 그의 얼굴은 완전한 무지로부터 절대적 인식까지의 거리를 한달음에 건너뛰었다.
예수는 어둠을 자신의 몫으로 선택했다 그의 모습은 촛불을 사르는 심지처럼 어둡다. 제자들이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순간 그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 봄날 아지랑이처럼 어둠은 빛 속으로 사라진다. 그의 존재도 육신의 암담한 허울을 벗고 빛무리 속에 녹아들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30리 가량 떨어진 엠마오를 향해서 두 사람이 길을 걷고 있었다. 이들은 길을 가면서 예수의 수난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골고타에서 십자가형이 집행되었을 때 그 자리를 지켰거나 가까이에서 소문을 들었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 골고타의 사건을 모르는 어떤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눈이 가려져서' 그 사람이 예수인 줄은 알아보지 못했다.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었다. 엠마오에 거의 다다른 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저녁
식탁에 앉았다. 예수가 빵을 들었다. 감사 기도를 드리고 빵을 떼는 순간 이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눈으로 본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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