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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벼를 말 한다.
나락을 소리 한다.
쌀을 되새긴다.
밥을 이야기 한다.
먹을거리를 노래한다.
<참 베낀 그림 준 이 ; 권대웅>
벼는 여든 여덟 차례의 손길이 가야 밥이 되어 우리네 입으로 떠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 나이 여든여덟 살을 “쌀 목숨[미수(米壽)]“이라 하는 것이리다.
가뭄철에는 밭에 가는 산두[산도(山稻) ; 뫼벼 ; 메벼]도 있다.
씨앗 가는 철을 아는 것이 철이 든다는 말이다.
‘철부지(不知)’는 그것을 모른다는 뜻이다.
벼 심을 때 벼 심고, 보리 갈 때 보리 갈 줄 아는 것을 말한다.
봄
< 참 베낀 그림 준 이 ; 서정찬 >
긴 겨울을 어렵사리 보내고 쌀 가래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게 되는데, 철없던 어린 때는 여러 그릇 먹고 싶었지만, 나이 들면서는 떡국 먹는 것이 싫어졌다.
닭이 없어 꿩인가, 꿩을 못 잡아 닭인가.
설
가신님들을 기리는 큰 일[봉 제사(奉 祭祀)]이다.
첫 줄이 과일이다.
대추는 봄 늦게 잎과 꽃이 피어나고, 피어난 꽃마다 열매가 맺어 많은 나음[다산(多産)]을 뜻한다.
씨는 한 알이다.
모과가 봄 서두름을 맨 먼저 한다.
촐랑거림은 허ㅅ튼 짓이다.
밤은 심은 밤톨에서 새싹이 돋아나, 그 나무에서 첫 열매가 맺을 때 까지 뿌리에 붙어 있어 집안의 오랜 이어감[자손만대영(子孫萬代榮)]을 뜻한다.
씨알은 세 톨이다.
그래서 시집오고 장가가는 날 웃어른들께서 새색시의 치마에 대추와 밤을 이바지 하는 것이다.
밤꽃이 필 즈음이면 젊고 다소곳한 아낙들까지도 치마끈이 풀린다.
밤톨이 쏟아질 때는 힘차고 씩씩한 사내들이 치솟는 솟구침을 어찌할 바 모른다.
감은 어떤 가뭄과 장마에도 잘 견디며, 네 철 모두 먹을 수 있는데[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땡[생(生)]감은 우려서, 절로 익은 감, 저절로 말랑말랑 해진 감[홍시(紅柿)], 서리 마쳐 깎아 말린 곶감으로 늘 먹을 수 있다.
씨앗은 다섯 알이다.
첫 달 큰 보름.
쥐불놀이를 나간다.
말이 불놀이지 불 싸움이다.
논 밭 둑에 불을 놓는다.
들판에 불을 지른다.
들불이다.
겨울나기를 하는 나쁜 버러지[벌레]와 그 알들을 태워 나쁜 끼침을 미리 막아 넉넉한 열매 거둠이 이루어지기 바라는 것에서 비롯되었고, 이기는 쪽의 마을에 많은 거둠[풍년(豊年)]이 있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불 싸움에 목숨을 걸었던 것일까.
누런 미르 내[황룡강(黃龍江)]도, 떳떳 참됨 뫼[용진산(聳珍山)]도 그 까닭은 모르리라.
숲골[임곡(林谷)]은 구석진 터이지만 한밭[대전(大田)]에서 나무나루터[목포(木浦)]로 가는 쇠ㅅ길[호남선(湖南線)]이 지나간다.
불 깡통 쏘시개로 쇠ㅅ길 받침 나무[침목(枕木)]를 도려내다 쓰면 불땀이 으뜸이다.
검은 찌꺼기 기름[Coaltar]에 삶아 오래쓰기 위함이다.
아주 나쁜 짓거리다.
쇠ㅅ길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면[탈선(脫線)] 이 웬일인가.
끔찍한 짓거리다.
다 알음알이들인데 물 불 가리지 않고 덤비고 쫒는다.
머리통이 깨지고 고무신을 잃어버리면 어른들에게 많은 꾸중과 큰 시달림을 받는다.
둘째 달 첫 날[이월 초(二月 初) 하루]이면 콩 볶아 주머니에 넣고, 썩은 새끼줄 들고 뒷 뫼로 목매달러 간다.
죽자니 젊음[청춘(靑春)]이요, 살자니 힘듦[고생(苦生)]이라.
안 보이는 이[귀신(鬼神)] 씬[씨]나락 까먹는 소리한다.
지난겨울 잘 갈무리 해 놓은 씬나락을 꺼내 손질을 한다.
농투사니[농부(農夫, 農父, 農婦)]들이 씬나락 망태기를 들고 나오면 움트기를 한단다.
소금물에 담가 쭉정이는 짐승 먹이나 땔감으로 쓰고 잘 여문 열매만을 씨앗으로 삼는다.
바깥날은 아직 차다.
셋째 달 삼짇날 제비는 박 씨를 물고 오지 않았다.
주지 않는 바람은 없는 것이다.
제비는 산 나무 가지에는 앉지 않는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는 결코 거두어 보살피지 않는다.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만 집을 지으려 애를 쓰는지라 사람과 실갱[랑]이가 잦다
제비 둥지는 바가지 모양이고, 고운 맹매기는 넘어진 조롱박[뒤웅박] 모양의 집을 짓는다.
제비는 겨울나기 하는 곳으로 갈 때 고마움을 주고, 맹매기는 앙탈, 해코지, 미움을 준다고 믿고 있다.
까치가 나무 높은 끝에 둥지를 틀면 그 해는 바람이 적고, 낮은 가지에 보금자리를 만들면 그 해는 바람이 잦고 세다.
날짐승에게도 웬 느낌과 마음이 있다는 말인가.
지난해에 심은 자줏빛 구름 꽃[자운영(紫雲英)]이 논에 휘하다.
콩 뿌리 풀[콩과 식물(콩科 植物)]이라 땅을 걸게 한다.
쟁기로 갈아엎는다.
싱숭생숭 거리며 설레는 가슴을 안고 시골 어린 조무래기 계집들이 나물바구니를 들고 봄 푸성귀를 캐려 나왔다.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 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른다.
노고지리 노래한다.
들녘은 쑥밭이다.
시린 손을 비비고 입으로 불어가며 못자리를 만든다.
물 안 먹는 덮개[비닐(Vinyl]가 나오면서 부터는 그 것을 뒤집어 씌워 길렀다.
잘 자란다.
볕이 좋아지면 덮개를 벗긴다.
개울의 물막이도 손보고 도랑도 쳐서 물길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못과 둠벙, 웅덩이도 손 봐야 한다.
두레나 돌림 구름개[물레방아]로 물을 퍼 올린다.
힘든 사람들은 바가지로 품어 올린다.
집 앞 기름진 땅[문전옥답(門前沃畓)]은 여름 물대기보다는 가을 물 빼기가 어렵다.
미나리꽝과 이웃한다.
거머리가 많다.
풋나무 쪄다가 소 똥, 개 똥, 돼지 똥, 사람 똥과 버무려 두었다가 작두질해서 거름도 마련해야한다.
재와 오줌도 좋은 거름이다.
논을 파고 밭을 간다.
할아버지께서는 쟁기질과 써레질을 잘 하셨다.
암소는 힘이 좋았고 암캐는 싸[사]나왔다.
어머님은 뜬물[뜨물] 한 방울도 버리지 않으셨다.
소의 목마름을 가셔 주려고.
아버님은 지게질, 도끼질, 도리깨질, 삽질, 낫질을 무척 잘 하셨다 .
어머님은 키질, 호미질, 갈퀴질, 절구질, 확[독]에 보리쌀 갈기, 다듬이질, 길쌈과 바느질도 매우 솜씨가 좋으시다.
모를 찐다.
제 것으로 제 몸을 한 단씩 묶는다.
감자도 캔다.
소쿠리에 담아 옮긴다.
쪄먹는다.
삶다가 끓기에 앞서 뚜껑을 열면 콩나물은 비리고, 감자는 설익는다.
다시, 많이 불을 지펴도 끝내 잘 익지 않는다.
캐다 호미질에 생채기가 난 것은 물에 우려 풀을 만들어 옷 다릴 때 쓴다.
우리들은 모쟁이를 해야 했다.
손톱 밑의 흙은 말할 나위 없고 손톱이 닳아 아프고 제대로 자랄 겨를이 없었다.
모내기는 두레와 품앗이로 마을 잔치가 되었다.
못줄 잡이의 구성진 앞 노래와 일꾼들의 뒤 노래는 들판을 질펀하게 했다.
“ 얼럴러 상사디여 !
여보시오 ! 농투사니 ! 이 내 맴[맘]을 알랑가요[아시나요], 징허게도 고단허요.
얼럴루 상사디야 ! “
뜬 모를 때워야 한다.
뜬모 한다 했다.
피사리를 해야 한다 .
벼 포기 먼 곳에 있다가도 어느 틈엔가 벼 포기 가운데로 기어 들어간다.
비슷하거나 닮은 것들이 괴롭다 .
논에는 가래가 논둑에는 싸랑부리[고들빼기]가 잘 자랐다.
황새가 물고기를 낚고 제비가 벌레를 사냥한다.
감꽃이 피면 이른 콩을 심고, 감똑[꽃]이 지면 늦은 콩을 갈아야 한다.
하늘 높이 따오기가 날아간다.
봄빛 들새가 마실[을]을 간다.
여름
< 참 베낀 그림 준 이 ; 전 헌 >
김매기를 한다.
만드리로 마감을 한다.
“ 얼럴러 상사디야 !
여보시오 ! 농투사니 ! 지심 매고 새참 묵[먹]새, 허벌나게 심[힘]이 드네.
얼럴루 상사디야 ! “
우리들은 모추기기를 했다.
일은 빨라 잘 굴리는데 솜씨가 털털한 아저씨는 싫었다.
아주머니들의 호미질 솜씨는 곱다.
모가 호미질에 쓸리고 흙에 파묻히면 큰일 난다.
만드리 하는 날엔 아버지께서는 어김없이 지게를 타고 집으로 오셨고 어머니께서는 다리 긴 큰 닭[타조(駝鳥)]만 한 장닭[수ㅅ탉]을 잡아 큰 가마솥으로 가득 닭죽을 쑤셨다.
장날이다.
숲골[임곡(林谷)] 장날은 이틀, 그리고 이렛날이다.
구경거리가 너무 많다.
먹거리 집, 싸전, 쇠전, 대장간, 고무신 때우는 신기료 집이 보고 싶은 곳들이다.
대장간의 풀무질은 쉼이 없었고, 대장장이의 굵은 팔뚝은 쎈쇠[무쇠] 같았으며, 이마에서는 비지땀이 비 오듯 하고, 삼베 잠뱅[방]이는 구슬땀으로 범벅이었다.
낫, 호미, 괭이, 보습, 쇠스랑이 태어난다.
그 장은 터만 남았다.
싸움 틀[전차(戰車)]을 녹여 보습을 만들겠다는 서로 고루 나눔 이[사회주의자(社會主義者)]들의 붉은 깃발은 땅에 떨어져 버리고 있다.
오늘날은 지심[김] 먹어 죽이는 것[제초제(除草劑)]으로 우렁이, 오리, 미꾸라지를 키운다.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삶이 있을 터인데.
이름 없는 살 것들[잡초(雜草)]은 온 누리에는 없다.
이녁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다 이름이 있다.
하늘 밑은 푸르러진다.
옅은 푸름[연두색(軟豆色)]이 진한 푸름[초록색(草綠色)]으로 되어 간다.
촉촉한 들이 된다.
피사리를 해야 한다.
어렵다.
힘들다.
허리가 아프다.
손톱이 다 닳아 피가 맺힌다.
벼는 포기가 커지고 키가 훌쩍 자라기를 한다.
나라가 넉넉해진다.
모는 무럭무럭 자란다.
마중물로 물을 길러 물꼬를 지켜야 한다.
물꼬를 두고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멱살잡이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위아래고 뭐고 모두 없는 것이다.
오빳재[숲밑마을<하림(下林)>] 골짜기에 있는 사다리 꼴 논에는 다랑[랭]이 논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삿갓배미가 있다.
삿갓을 벗어 놓고 일을 마친 뒤 논 다랑이를 세어보니 한배미가 없더란다.
벗어 놓은 삿갓에 가려서.
하늘만 올려다보며 짓는 논밭일이 많다.
가뭄이 깊고 오래 이어지면 뫼 꼭지에 올라 비 내림[기우제(祈雨祭)]을 빌어야 했다.
세 해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는 견디기 어렵다고 어른들은 말씀 하신다.
맑음 빔[기청제(祈淸制)]은 거의 없다.
알맞게 맑고 촉촉한 날을 바란다.
어깨가 빠지도록 두레질을 해야 한다.
허벅지가 뒤틀리도록 물레방아의 발판을 밟아야 한다.
많은 날들이 흐른 뒤에는 품어 올림개[Pump ; 작두시암(샘)]로 길러 올린다.
스스로 돌림개[양수기(揚水機)]가 땅 위 땅 밑을 가리지 않고 마구 빨아올린다.
시나브로 물 모자람 나라가 되고 말았다.
논두렁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밟아 주어야 한다.
쥐와 두더지가 둑을 허문다.
논둑을 붙여야 한다.
드랭이[새까맣고 긴 물고기]도 논둑을 무너뜨린다.
구렁이는 둑 지킴이라 했다.
벌도 , 개미도 , 땅강아지도 지켜봐야 한다.
땅벌[오빠시]집을 잘 뒤지면 꿀을 얻을 수 있다.
벌떼의 앙갚음 받으면 큰 일 난다.
하늘이 맺어 준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천적(天敵)]도 꼬나 봐야한다.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잡아먹지만 줄기나 잎사귀에도 입을 댄다.
가꾼 이[농부(農夫, 農父, 農婦)]의 발자국 소리와 그림자로 살 것들[생물(生物)]은 자라는 것이다.
짚세기[신]도 날이 듬성듬성 한 미투리를 신고 개미집도 돌아가고 밟히는 그 무엇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죽을 목숨을 풀어주고 살려주는 것이 우리네의 가장 큰 보살핌이 아니었던가.
좋은 몸만들기에 안달복달 하는 우리네의 몸부림이 밉다.
머슴도 있고, 깔담살이[꼴머슴]도 있고, 더부살이도 들끓었다 .
맑은 날에는 짚세기 신고, 궂은 날에는 나막신 신고 물꼬를 보러 간다.
오늘날은 가죽신 신고, 우람한 움직이는 구름 틀[자가용 승용차(自家用 乘用車)] 몰고 열매 보살핌을 둘러본다.
신에 흙 묻지 않는다.
좋아지는 빠름이 느껴지지 못한다.
아픔이 온다.
부대낌이 온다.
아픔은 한 가지 뿐이다.
멸구[멸오(滅吳)].
가운데 땅[중국(中國)]에서 서로 아등바등 다투며 살던 때에 죽은 나라[멸 국(滅 國 ; 吳나라)]가 있었는데 이 벌레 때문이었고, 이 버러지를 잡으려면 땅 속에서 끌어올린 검은 물기름[원유(原油)]을 쓰임새에 따라 나눌[정유(精油)] 때 셋째로 얻어지는 돌기름[경유(輕油)]을 모래와 섞어 뿌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한 나라를 쓰러뜨린 벌레다.
다음의 모든 아픔들은 물 건너에 사는 사람이 만든 거름[화학비료(化學肥料)]이 들어오면서 따라왔다고 어르신들은 말씀하신다.
새로운 벌레들도 왔다 갔다 한다.
큰 늘려보는 거울[현미경(顯微鏡)]로 봐야만 보이고 맨눈으로는 안 보이는 버러지가 큰 걱정이다.
마파람을 타고 큰비가 센 바람[태풍(颱風 ; Typhoon), 열대성 저기압(熱帶性 低氣壓)]에 실려 온 소금 끼로 아픔 잡이를 한다.
키움의 미립을 깨닫는다.
덜 마른 짚단에 안 마른 쑥을 섞어 모깃불을 지펴 놓고 작대기를 부지깽이 삼아 가끔씩 뒤적거리며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본다.
밤 새워 울다보니 목에서 피가 넘어오면 게워낸 피를 다시 마시며 울어 자지러지는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솥짝 솥짝” 들리면 열매 걷이가 좋고[풍년(豊年)], “솥탱 솥탱” 들리면 열매 걷이가 나쁘다[흉년(凶年)] 했다.
사냥은 언제 하여 새끼들은 기르려나.
아심찮은[괜한] 걱정이 크다.
무더위가 꼭지에 올라 뽐을 내면 모는 포기가 많아지면서 푸(르)름이 날로 짙어진다.
보리타작은 아주 힘들다.
날씨는 덥고 보리, 밀 까시락[까끄라기]은 온몸으로 파고든다.
소도 몰고 나가 배가 빵빵하도록 풀을 뜨껴[먹여] 와야 한다.
몸도 깨끗이 씻겨야 한다.
누르 미리 내는 온 마을 사람들의 씻음 터이자 놀이터였다.
꼬마들은 키가 넘는 깊이이고, 맑기는 거울과 같다.
대사리[다슬기], 조개, 가재, 찡검새비[검정새우]가 수두룩했다.
물풀을 손으로 더듬어 잡고, 던질 그물로 싹쓸이도 했다.
때ㅅ쭉[죽]나무 열매를 으깨서 잠깐 죽음을 시켜 건저 올리기도 했다.
모래무지, 피리, 꼬까리, 날치, 빠가사리[동자개], 쏘가리 따위의 물고기 밖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무척 많았다.
큰 누님의 짝은 던질 그물의 꼭지이셨고, 나르는 참새도 잡을 수 있다며 장담이 높은 뫼였다.
햇볕을 온몸으로 쪼이면서 먹거리 열매 만들기에 눈코 뜰 새 없다.
땅은 기름져진다.
열[여름]논 물새가 마실[을]을 돈다.
가을
< 참 베낀 그림 준 이 ; 전 헌 >
하늘이 높다.
하늘이 파랗다.
개밥바라기별[샛별]이 동녘에 아주 밝다.
나무 온 날 붉은 꽃나무[베롱나무 ; 간지럼나무 ; 목백일홍(木百日紅)]가 세 차례 꽃을 피우면 쌀밥 먹는다 했다.
미리내[은하수(銀河水)]가 정재[부엌] 나들목[출입구(出入口)] 앞에 똑바로 오면 쌀밥 먹는다 했다.
기다림이 꿈속의 헛소리로도 질러졌다.
빨간 고추 천둥벌거숭이[잠자리]가 하늘 높이 맴을 돈다.
새를 봐야 한다.
줄을 치고, 붉으락푸르락한 헝겊을 매달고, 얻기 힘든 깡통도 매달고, 허수아비도 세우고, 뙈기도 친다.
채찍을 휘두른다.
매는 쇠좆매가 무척 아프단다.
뙈기는 짚으로 여섯 날 댕기 땋기를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가면서 차츰 가늘어지게 하다가 끝자락은 삼으로 새끼를 꼬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잘 돌려 내리치면 우레, 천둥소리와 같은 울림이 들녘을 뒤집어엎을 듯 쩌렁거린다.
한 마디로 벌건 대낮에 날벼락 치는 것이다.
참새도 어린 아이는 깔보는 것일까.
다른 쪽으로 떼 지어 몰려다니며 코 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뜬물을 모두 빨아 먹으면 열매가 여물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어 버린다.
어린 마음에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짜장 울고 말았다.
또래 가운데에서는 깜냥에 잘 한 걸로 생각한다.
이삭 하나 뽑아서 메뚜기와 땅개비[방아깨비]의 목을 꿰면 재미가 쏠쏠하다.
암컷과 수컷이 흘레붙은 것을 잡으면 너무나 옹골졌다.
간장 치고 볶아 먹으면 그 맛 훌륭하다.
고소하다.
감칠맛 난다.
메뚜기 한말 만 볶아 먹으면 외짝 들머리[문(門)]로 못 들락거린다 했다.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여자 글쓴이가 쓴 “큰 땅” 이라는 이야기 글에도 메뚜기 떼의 생채기가 잘 그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어떤 곳에서는 파리, 모기, 메뚜기 따위가 저마다의 삶을 살려고 끝없는 아등바등은 쭉 이어지고 있다.
말이 살찌니 가까이나 때로는 멀리 사는 나쁜 녀석들이 쳐들어 올 낌새에 시름한다[천고마비(天高馬肥)].
꼼수가 있다.
비아냥거린다.
들녘은 노란 열매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누렇게 익은 씨알을 거둔다.
이삭줍기는 즐거운 일이었다.
맛있는 열매들을 사 먹는 밑천이 되기 때문이다.
한가위는 고마움을 받드는 날이다.
지킴이는 세 짝이란다.
뫼 지킴이, 조왕 그러니까 부엌 지킴이, 뒷간 지킴이란다.
철륭에는 다섯 가지 먹거리 낱알을 단지에 담아 모셨고, 부엌 지킴 터에는 맑고 깨끗한 물[정화수(井華水)]을 날마다 새벽에 받쳤으며, 뒷간은 늘 깨끗하게 해 두라 하였다.
이른 가을엔 풋나락을 잡아 가신님께 받쳐야 한다.
베다가 솥에 쪄서 만든 올기[올벼]쌀이다.
군것질이다.
주전부리이기도 했다.
개[물 빠짐 고랑]를 친다.
물꼬로 물을 몰아낸다.
낫질을 한다.
논일이 잘 되는 해는 농투사니들의 어깨춤이 덩실덩실 절로난다.
“ 얼럴러 상사디여 !
여보시오 ! 농투사니 님네들아 ! 지난 논일에 흘린 땀 주섬주섬 거둬들이세.
얼럴루 상사디야 ! “
일 잘 하는 이가 벼 베기 하면 하루에 두 마지기 할 수 있단다.
여섯 모둠 잡이를 할 수 있으면 큰 일꾼이다.
가위 모둠으로 놓아야 한다.
그래야 벼 훑기 할 때 매끄럽다.
두세 날에 뒤집기 해야 한다.
손 친다 한다.
비설거지가 가끔은 있다.
단을 묶어 열 단씩 낟가리를 쌓는다.
한 짐을 꼬작[가위 모양의 지게등받이 위에 세우는 기둥]과 띠꾸리[동아줄]을 매지 않고 볏단의 흔들림과 작대기의 움직임으로 오랜 이력에 따라 집으로 나른다.
지게가 등에 붙는다 했다.
일이 몸에 배인 것이다.
팽이 모양으로 낟가리를 쌓아야 한다.
이엉으로 이고 꼭지에 우저리[짚 덮개]를 씌운다.
짐꾼들은 고기 끓임을 먹는다.
그 논에서 잡은 미꾸라지로 끓인 가을 물고기에 가을 꽃잎과 뫼풀 열매를 섞어 고듯이 졸여 진덤진덤하게 끓여 내신다.
혀의 맛으로 간직된 느낌이 옛살라비[고향(故鄕)]의 맛을 되돌려 새기고 있다.
가을 거둠이 아무리 적다손 치더라도 콩 한 조각을 열이 나눠 먹듯이 옆 사람을 보살피는 고운 마음씨가 있었다.
들판에 열매 거둠이 넉넉하면 뫼에는 열매 거둠이 적다고 한다.
다람쥐는 많은 계집을 얻어 밤, 잣, 상수리, 도토리 따위를 주어다 땅굴 깊은 곳에 겨울나기 먹이로 쌓아두고는 멀쩡한 암컷들은 다 몰아내고 청맹과니 아내 한 마리와 살면서, 지 놈은 밤, 잣 처먹고 장님 아내에게는 도토리, 상소리 준다 한다.
한가위.
다섯 열매 먹을거리와 온 과일[오곡백과(五穀百果)]을 가신님께 바친다.
가는 해에 고마움을, 오는 해에 넉넉한 거둠[풍년(豊年)]을 빈다.
나물은 다섯 가지다.
뫼에 자라는 것 가운데 뿌리를 먹는 도라지 따위가 으뜸이다.
뫼 사람 닮은 뿌리[산삼(山蔘)]가 첫째다.
바다에 나는, 그것도 가장 깊은 곳에서 자라는 붉은 풀[우뭇가사리]이 으뜸이다.
바닷물 깊이 차례다.
땅에서 자라는 것도 뿌리를 먹는 것이 으뜸이다.
무나물이 첫째다.
밭에서 자란 사람 닮은 뿌리[인삼(人蔘)]면 더욱 좋겠지.
하지만 푸른 콩[녹두(綠豆)]로 기른 나물은 빨리 쉬어서 가신님 기림 차림에 끼지 못한다.
아침이 고운 나라[조선(朝鮮)]의 내림 씀[역사(歷史)]에 생각이 으뜸인 한 선비[신숙주(申叔舟) ; 조선 세조 때의 문신, 본관은 고령으로 자는 범옹이며 호는 보한재, 희현당]의 발자취가 두 임금을 섬김으로써 아랫사람 됨이 올곧지[계유정란(癸酉靖亂) ; 조선 시대, 1453년에 수양 대군이 여러 대신들을 죽이고 반대파를 숙청하여 정권을 장악한 사건 ; 그리하여 녹두로 기른 나물을 숙주나물이라 함]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얼굴에 침을 뱉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두 길을 가는 선비님”
입에서 입으로 이어오는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고기는 손질과 갈무리가 힘들다.
말리거나, 소금에 절여두거나, 아니면 늘 불때두어야 한다.
바닷물고기는 상어가 으뜸이고, 짐승고기는 쇠고기가 첫째로 꼽힌다.
해돋이 쪽으로는 물고기를, 해넘이 쪽으로는 짐승고기를 차린다.
뼈있는 물고기도 대나무 꼬챙이를 꿴다.
가신님이시어!
뒤 따라 살아가는 핏줄[후손(後孫)]들을 굽어 살피서소 ! !
제비들이 물 건너 먼 길 떠나려고 높이 날기를 한다.
철새들이 겨울나기 길을 떠나려고 날갯짓을 하며 힘을 기른다.
갈[가을]볕 철새가 마실[을]을 간다.
겨울
<참 베낀 그림 준 이 ; 서정찬>
열째 달 끝 무렵에 벼를 거두어들이고 밀, 보리를 간다.
길고 추운 겨울나기를 해야 제대로의 구실을 한다.
밀은 다른 것으로 바꾸기[발효(醱酵)]를 하여 누룩이 된다.
꼬[고]두밥과 만나 술이 된다.
보리는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하여 엿기름이 된다.
밥과 만나 단물[식혜(食醯), 감주(甘酒)]이 되고, 그 단물을 끓이면 조청이 되고, 조청을 다시 쪼[조]리면 갠엿이 되며, 이 갠엿을 씨[시]기면 엿이 된다.
파와 마늘도 갈고 완두콩도 심어야 한다.
억지로 겨울나기를 가짜로 속여[춘화처리(春花處理)] 심어 가꾸기도 한다.
마당에는 고래 등 같은 낟가리 대여섯 채가 덩실했다.
쥐로부터 벼 이삭을 지켜야한다.
두거리[이삭을 담는 둥근 집]에 담은 씨앗은 노간주나무를 쪄다가 둘림을 하고, 얇은 폄쇠[양철(洋鐵)]가 나오자 그 걸로[것으로] 둘러치고 눈비막이로 썼다.
쥐는 미끄러진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빨래 줄을 따라 줄타기도 한다.
살아가는 것이 기똥차다.
개와 고양이를 길러 물리치고자 했다.
할아버지 막둥이 딸네 집[네 째 姑母 ; 양숙(良淑)]에서 데려온 ‘쫑’은 쥐 사냥이 매우 뛰어났다.
두거리 지붕을 작대기로 두드리면 쥐가 떨어지는 틈에 재빨리 낚아채서 멱을 물어 숨통을 끊어 놓는다.
무섭다 .
그 살가운 짐승이 .
닭살이 돋는다.
오금이 저린다 .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진돗개 세 마리면 호랑이를 잡는다 했던가.
쫑은 온 마을 암컷 지킴이로 가까이 사는 수ㅅ캐들은 우리 쫑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꼬리를 내려야 했으며, 어쩌다 뒤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 개는 피를 봐야했다.
한 마디로 꼼짝딸[달]싹을 못했다.
크나큰 조짐을 주웠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게 주검이 되어 먹히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말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참새가 뿌[부]사리 엉덩이에 위에 앉아 네 고기 열점과 내 고기 한 점과 바뀌지 않겠다고 거드름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마)만큼 맛있다는 얘기다.
지난 가을 날 그렇게 괴롭혔음에 이젠 내가 되치기를 한다.
참새는 밤 봉사다.
추녀 아래 처마 밑의 고드름 사이를 뚫고 사다리 위에 올라서서 둥지를 뒤진다.
여러 마리 잡아 털 뽑고 장작불에 구워 먹으면 어리석은 앙갚음에 기쁨까지 느끼곤 했다.
부질없는 짓거리였다.
많이 뉘우친다.
맑은 날 받아 벼훓기를 한다.
작은 아이들은 벼 떼기를 해야 한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듯 한다.
고사리 손이 조막손이 되고 만다.
홀태[벼훓이]질이다.
“ 얼럴루 상사디여 !
여보시오 ! 농투사니 님네들아 ! 훌세 그려 훌세 그려, 한 해 땀이 징허게 값진 것이여.
얼럴러 상사디야 ! “
나중엔 발 구름개로 타작을 했다.
스스로 움직틀[탈곡기(脫穀機)]로 벼 털기를 한 것은 요즘 일이다.
먼 동네 사는 키 작은 기 씨[奇 氏] 아저씨는 코끼리만한 기름으로 움직이는 스스로 움직틀[발동기(發動機)]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벼 이삭 털기로 한 철을 보내면서 짭짤한 돈벌이로 재미를 보았다.
가장 질기다는 사람 가죽[인피(人皮)]도 지푸라기 앞에서는 견디기 어렵다.
트고 갈라지고 피가 난다.
실로 묶어 아픔을 달래고, 고치기를 하는 것이다.
몹시 아프다.
묵지는 바람 좋은날 도리깨로 두들겨 드리워야 한다.
디딜방아 간에서 방아를 찧고, 절구통에서 껍질을 벗기고, 큰 살림살이의 방아는 연자를 돌리고, 맷돌을 돌려 가루를 내는데 손잡이가 없으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스쳐 갈 리 없다.
꿩 대신 닭을 넣어 끓인 떡국을 한 그릇 먹고 나이를 한 살 먹는다.
씨앗을 챙겨둔다.
우리네는 지푸라기로 모든 것을 만들었다.
겨울나기를 하려면 세 가지 마련이 있어야 했다.
땔감 마련, 김장하기, 지붕이기가 그것이다.
네 칸 겹집인 우리 집은 마람[이엉] 온 틀[백 장(百 帳)]이 쓰였다.
겨울 쉼 짬이면 새끼를 꼬고, 덕석[네모진 멍석]을 절고, 멍석[둥근 짚자리]도 만들고, 가마니를 짜고, 짚자리도 엮고, 신골에 덧씌워 짚신도 삼고, 비옷[도롱이]도 만들었다.
울타리도 막고, 새집도 얽고, 어치[짐승 겨울 옷]도 짠다.
달걀도 싼다.
열 알을 한 줄 한 꾸러미라 했다.
살림살이의 모든 곳에 쓰였다.
짚은 땔감과 짐승들의 먹이[여물]로 쓴다.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어 맨 겉껍질 왕겨는 땔감이나 거름으로 쓰고, 속껍질[누까]은 짐승의 입맛을 돋우는 고명으로 쓴다.
날새는 비도 맬 줄 알고, 갈퀴도 만들 줄 안다.
그리 호락호락한 일들이 아니다.
끈으로 쓸 땅 칡[기는 덩굴 칡]도 걷어다 손질해 두어야한다.
소나무 뿌리를 캐서 쪼게 놓으면 으뜸이다.
이녘도 몰랐던 그대를 난 오랜 먼저 날부터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결[겨울]밭 텃새가 마실[을]을 한다.
아홉 줄기 검은 미르 해 봄날
가르침 터에서
높 봄빛 들새
첫댓글
농사도 안 지어본 양반이 어찌 그리 사시사철의 멋을 꿰뚫으시는지...
그저 감탄
아니여,
농투사니의 아들이라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도록 하세.
飯,
睡,
糞.
높 갈볕 철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