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과 상상력이 빛나는 영화다. 우주에 식민행성 홈스테드2를 개척하고, 그곳으로 지구인이 진출한다는 발상은, 지구라는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구인의 삶을 우주적으로 확대하려는 인류의 야망에 부합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다. 120년에 걸친 긴 항해로 인해 오천 명의 탑승객 모두가 동면할 수밖에 없다는 설정과 항해 중 한 남자(주인공, 짐 프레스턴)가 기기 작동 오류로 동면에서 깨어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도 충분한 흥미 유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볼거리도 풍부하다. 블럭버스터답게 우주선 아발론호의 웅장한 외양미와 더불어 내부의 첨단 장치들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 영화의 다양한 우주 장비들과 배우들을 통한 간접적인 우주 경험은, 인간을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우주 세계로 안내하는 사다리 역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잖다. 수영하던 여 주인공 오로라 레인이 중력이 사라지면서 물방울 속에 갇히는 장면은 관객들의 지적 호기심을 체험으로 뒷받침하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관객이나 영화 평론가들의 평가도 밑바닥 수준이다. 왜일까? 문제는 빈약한 스토리에 있으나 풍부한 이야깃거리는 논외로 치더라도 싸구려 삼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남여 간의 과도한 애정 행각은 우주 공간을 다루는 SF영화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반전이 없다는 것도 큰 흠이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라는 그럴듯한 떡밥을 뿌려 놓았지만, 운석과의 충돌이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짐으로써 영화의 긴장감이 무너지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우주공간에 식민 행성을 개척할 정도의 최첨단 기술력으로 제작한 우주선이 단 한 번의 충돌로 핵심 장치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는 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오히려 사고의 원인을 단순한 충돌이 아닌, 식민 행성을 지배하려는 음모나 갈등으로 설정하여 이를 반전으로 연계하는 뻔한 상상력이라도 동원했더라면 하는 강한 아쉬움마저 남는다. 더구나 기기 작동 오류로 동면에서 깨어난 짐 프레스턴이 여자 승객인 오로라 레인을 동면에서 임의 해제시키는 장면은 도덕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예민한 페미니즘 성향의 관객이나 평론가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야기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신중하지 못한 연출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이 영화는 앞서 열거한 여러 한계로 인해 일억천만 불의 제작비와 특급 배우들을 투입하고도 한국 영화시장에서 백만 관객에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탄탄한 스토리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적 측면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더라도 인간의 삶을 본질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중량감 있는 주제는 흥행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찾아야 한다. 깨어난 이유를"이라는 이 영화의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운석 충돌이라는 미시적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사고 이후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영화는 우주선의 고장 원인을 찾으려는 피나는 노력과 좌절에 이은 자살 시도, 막막한 우주 공간에서 절대 고독에 몸부림치는 주인공 짐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페니미즘 논란을 불러일으킨 오로라에 대한 동면 해제도 실은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실존적 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한 연출에 다름 아니다.
동면에서 임의 해제된 오로라와 짐의 만남 역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꿈과 희망과 좌절의 여정이다. 이들은 서로 갈등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활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탈출구 없는 억압된 공간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은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더구나 이런 극단적인 상황의 지속은 이들에게 스스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포기하게 하는 심각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마치 신화 속 시시포스의 "의미 없는 삶"처럼.
아시는 바와 같이 시시포스는 매번 산 정상에 돌을 올려놓기를 반복하지만, 돌은 올려놓는 즉시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시시포스의 이 의미 없는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삶은 애당초 의미 없는 것이며, 없는 의미를 찾으면 찾을수록 시시포스가 돌을 옮기는 것처럼 "의미 없는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결국, 신화의 결론은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귀착된다고 하겠다. 짐과 오로라의 삶 역시 시시포스의 무의미한 삶과 다르지 않다고 볼 때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영화가 시시포스의 철학적 의미를 반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짐과 오로라는 "의미 없는 삶"을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오류에서 벗어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사람만이 동면할 수 있는 닥터독의 이용 기회를 서로가 포기함으로써)하고 우주선의 중앙홀에 초록 식물을 키우며 생을 마감하게 된다. 초록 식물이 번성하고 있는 중앙홀은 그들이 살아온 "의미 없는 삶"의 보잘것없는 흔적이지만, 영화는 그들이 키워 낸 초록 식물을 우주의 희망이자 낙원으로 암시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의미 없는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