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이세돌의 어림을 핑계로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싶다....
이창호와 하네의 제4회 춘란배 결승전이 벌어지는 한국기원 스튜디오. 이창호는 상변전투에서 상식을 깨는 묘수를 작렬시키며 하네의 막강한 세력을 유린하고 우세를 점하기 시작한다... 우하에 한칸뜀으로 중반에 이미 계산서가 나왔음을 시사한다... 좌하까지 지키자 하네는 삼삼에 침입... 패를 유도... 패를 하지 않고 살려주기만 하면 될텐데.. 하는 바둑TV와 인터넷 해설자의 공통된 우려에도 불구... 패를 결행...
패도 전투나 끝내기 포석과 마찬가지로 바둑을 두어나가는 한 과정이다... 이창호는 패를 결행하며 이미 그 패의 결과까지를 읽은 듯하다... 패싸움에서 흑의 일방가인 우변집을 초토화시킨다... 의례적인 몇 수를 더 놓아보다 하네는 그의 깨끗한 외모만큼이나 싹싹하게 돌을 거둔다... 이창호의 완승!!! 어떻게 보면 하네가 어떻게 할 틈을 주지않고 완력으로 찍어누르듯이 둔 이창호의 보기드문 한판이었다... 세계대회 결승이라기엔 너무 일방적인...
하네의 바둑을 대하는 자세나 깔끔한 매너는 칭찬할만하다...
대국자들이 바로 복기에 들어간다... 이때까지는 좋았는데...
복기를 시작하자 검토실에 있던 루이 장주주 이세돌등 기사들이 옆에서 복기를 지켜보며 간혹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간단한 의견을 펴곤한다... 이세돌도 창호옆에 바짝 붙어서서 복기에 참여한다... 여기까지라면 좋으련만,
세돌은 아예 반상의 돌을 치우고 들어내가며 말이 통하지 않아 복기를 멈추고 바라만 보고 있는 하네는 염두에도 없는듯 복기를 주도해나간다... 승부처 몇곳을 지어내고 자신의 수를 놓아보며 창호에게 묻곤한다... 창호는 곤혹스럽다... 친한 후배기사이며 자신의 자리를 끝없이 넘보는 몇안되는 실력자중 하나인 세돌이 철없이 하는 행동을 제지하기엔 자리가 너무 크다... 마지못해 한마디씩 대꾸하는 창호의 표정이 굳어진다... 맞은편에선 패장 하네가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앉아있다... 禮를 중시하는 큰사람 창호의 얼굴이 더욱 굳어지고 달아오른다...
프로기사가 대국후 복기를 하는 자리는 승자에겐 승리의 여운을 느끼게하고 패자에겐 한번밖에 없는 기회에서 자신의 실수를 확인하고 다음대국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새로이 다지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세계정상의 실력자들간의 대국이고 게다가 세계대회의 결승국에서는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 그들이 언제 이렇게 마주앉아 자신들의 그리고 상대방의 바둑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복기의 주인공은 대국자 당사자가 주인공이고 그들의 복기에 간간히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루이와 장주주가 중국인이기에 한중일의 최정상급 기사들이 게다가 여류최강까지 합세한 화기애애한 복기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바둑팬의 입장에서 흐뭇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복기가 시작되자마자 세돌이 끼어들며 주인공들의 난처해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며 괜시리 나까지 무안해졌다...
이창호는 누구나 인정하듯이 큰사람이다... 조국수는 나이 50이 넘어서도 이제까지 칭찬 아닌 비난을 접한 적이 없는 입지전적인 큰 인물이다.. 워낙에 큰사람이다보니 세돌의 그것을 창호와 조국수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나또한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세돌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이미 알려져 있다... 굳이 신세대의 특권까지 갖다붙이지 않아도 그의 화끈한 전투바둑에서 배어나오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성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승단대회 불참도 그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박영훈을 연락도 없이 홀로 앉아 빈 바둑판만 바라보게 한 것도 나름대로 그의 입장에서 이해해주려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같은 경솔함이 다시 몇차례 반복된다면 그가 프로기사로서 성장하고 이창호를 꺾고 세계바둑에 큰이름을 날려도 결코 공인으로서 그를 사랑할 순 없을 것 같다...
난 바둑을 둘 줄도 모르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기사... 이창호, 서봉수, 서능욱, 이세돌, 루이나이웨이, 조훈현, 박영훈, 유창혁, 다께미야 등의 바둑을 즐길뿐이다.. 물론 이세돌은 내가 좋아하는 다섯에 꼽힌다...
오늘 이창호는 친한 형도 선배기사도 아닌 국제대회 결승전의 대국당사자였고, 세계가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하고 연구하고 칭송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일인자였고 하네도 세돌이 언제든지 싸워서 이길수 있는 만만한 기사가 아닌 일본이라는 한 국가를 대표하고 어렵고 높은 관문을 통과해 세계대회의 결승까지 올라와 이창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당당히 겨룬 매너 깨끗한 선수이며 우리의 손님이었다...
나이 스물전에는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다... 세돌이 차지하는 위치는 저 위에 높이 있지만 아직 어린 나이로 큰 잘못을 해도 실수나 경솔함으로 이해받고 용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스물이 넘어서도 이런 행동을 거듭한다면 그때는 인간적인 됨됨이가 의심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디 내가 좋아하는 훌륭한 기사가 실력뿐 아니라 인격적인 면에서도 세인들에게 큰사람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면 하찮은 팬 입장에서 너무 큰 욕심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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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에..이걸로 답글들이 잘 올라와서 바둑마당으로 옮겻습니다. 근데 리플로 할줄 몰라서..저렇게 되버렷네요..ㅜㅜ. 흠..
ㅋㅋ 수고하셧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