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둔한 이유
1. 듣고 순종하든가 아니면 당신 자신의 길로 가든가.
예수님은 죽어 있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살아계시고 당신과 나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문제는 우리가 듣기에 둔해졌다는데 있다. 우리는 세상이 그 모든 소음과 선전과 광고들을 통해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것에 너무 마음이 팔려서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알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살아계시며 그분의 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예언자)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How will we be able to know except there is one given to us(prophet) to be able to hear for us.)
나는 어떤 특별한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 위에 있는 자로 당신에게 찾아 가지 않는다. 나는 단순히 메시지, 즉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복음의 진리를 전해주기 위해 온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므로 나는 이것을 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모르므로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일들을 개인적인 예언을 통해 계시하신다. 선지자로부터 예언을 들음으로써 당신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흥미(unction)와 열망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일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일 우리가 기도한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내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을 귀가 없다면 하늘에서의 그분(예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당신이 영으로 거듭났다면 하나님은 영과 영으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비유로 말씀하시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육으로 오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함께 걸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당신과 나는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영으로 거듭난 우리는 영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것은 도전이다. 이것은 당신이 그냥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당신에게 일어날 때,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 듣고 순종하든지 아니면 당신의 길을 가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희생이나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시길 원하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온다. 당신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아들을 주님과 구원자로 인정하도록 하나님께 부름받지 않았는가? 당신이 죄인이었음을 마음 깊이 아는 것은 성령의 증거(conviction) 때문이었지 않은가? 그러나 당신은 복음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것은 성령께서 당신에게 오셔서 말씀하실 때 뿐이다. 그때가 당신이 선택해야 하는 때인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생명을 그리스도를 위해 드리는가 아니면 자신을 위해 유지하고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가 우리의 생명을 드리고 난 뒤에 모든 것이 형통하면 다시 돌아와서 그 생명을 도로 취하는가? 우리가 고통 중에 그리스도께로 갔을 때 그분은 우리의 문제를 고치셨다. 이제 모든 것이 형통하니 여기서 떠나겠다고 당신은 주님께 말하는가? 한 가지 문제는 당신이 반복해서 동일한 상황에 쳐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분의 구원은 반복해서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순종이 성경에 나온 약속들을 받아 누릴 건지를 결정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의 권세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본 것만을 하셨고 또 하나님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만을 말씀하셨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할 길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생명을 그리스도께 드린다면 그 의미는 앞서 말한 것(아버지가 하시는 것, 말씀하시는 것만을 하고 말함: 역자주)이 전부이다. 당신이 이세상에서의 비참한 삶을 눈물도 병도 고통도 없이 예수님과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과 바꾸었을 때 당신은 계약적인 협정, 즉 언약을 체결한 것이다.
우리는 천국이 어떠한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곳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보다 훨씬 훨씬 크다는 것은 알고 있다. 구원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에게 천국이 없다고 말해보라. 그들은 천국에 다녀온 적이 없다. 그러나 천국이그들의 마음판에 하나님의 손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천국이 있음을 안다. 그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살도록 선택되어졌음을 알고 있다. 문제는 이 땅에서의 삶이다! 우리는 장남감 요요와 같이 우리의 생명(삶)을 주고 또다시 그 생명을 받기를 반복한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도로 가져가서 우리 좋을 대로 살기를 원한다. 그러면 그 생명의 소유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나의 종들은 자신을 낮추고 기도할 것이다. 너희 자신을 내게 주고 내가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 지켜 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기꺼이 그 길을 따라 줄곧 나아가고자 해야 한다. 그 길이 어떤 것이든!
불행하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번영과 결혼 그리고 행복한 삶만을 위해 그리스도를 원한다. 그것은 온전한 교환이 아니다. 당신은 그분이 이 땅에서의 당신의 생명으로 무엇을 하시길 원하시든지 그것을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그분께 드려야 한다. 그것으로 인해 당신이 고통을 당한다해도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그분의 것이다(그분이 알아서 할 것이다-역자주). 모든 것이 다 끝났을 때, 그 결과는 당신이 스스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취하고자 하시는 것들이 있다. 그분께서 우리로부터 벗겨내시려는 것들이 있다. 그분은 거울을 돌려서 우리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이며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를 알게 하시기 원하신다. 그 목적은 오직 우리가 날마다 조금씩 우리 자신에 대해 죽고 그분이 자신의 길로 나아가시기 위해서 우리가 진정 어떤 존재인가를 알 때 치유받게 하시기 위함이다.
2. 풍성한 삶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마13:10-11). 이 말씀에는 연관성과 차이성이 존재한다. 불신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불신자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우리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이 보는 것은 모두 껍데기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미쳤거나 바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특별한 존재임을 안다. 우리는 그들이 바라는 생명을 갖고 있다. 그분이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가 그분에게 갔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 갈지 안갈지는 우리가 선택한다. 영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령의 증거(conviction)를 거부하고서 밖으로 나가 비참해진 뒤에야 울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문이 열렸을 때, 당신은 곧바로 그 분을 통과해 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당신이 선문이 열리는 것은 당신의 선택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회는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문을 여실 때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면 누구도 당신을 위해 그 문을 열어줄 수가 없다. 성령의 증거(conviction)가 임함을 느낄 때, 당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할 수 없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12)
이 구절은 하나님 왕국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당신이 기도할 때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또 천국으로부터 계시를 받을 때 그 계시대로 행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에서 언급된 풍성한 삶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그들 스스로는 그런 풍성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은 사단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그들의 삶 속에 들어오는 이유를 모르고 있다. 그들은 왜 이런 일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나는지 질문하지만 순종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순종은 겸손을 요구한다, 즉 순종이 당신의 삶 속에서 실재로 역사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실 때, 당신은 마음 속으로 그 말씀에 대항할지도 모른다. 육과 영 간에는 싸움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육을 십자가에 못박고서 당신의 혼으로 생각하거나 말씀대로 행했을 때의 결과를 생각해보지 않고서 단순히 그 말씀을 따라야 한다. 당신은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당신을 계속해서 축복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는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3-16)
이 말씀은 육신의 눈과 귀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영계에서 보고(환상) 듣는 것에 대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다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토록 많이 기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무덤으로 가시기 전에 4일을 기다리셨다. 그분은 즉시 혹은 3일째 되는 날에 가실 수가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때에 일어나야 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늘과 땅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께 주어졌다.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당신과 나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그분은 현재 우리를 위해(to us) 기도하시는가? 그분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위해(to us) 중보하시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 왕국의 비밀(mystery) 중 놀라운 것은 그분이 편재하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들을 모두 동일한 시간에 처리하실 수 있으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들은 단지 듣기에 둔할 뿐이다.
예수님이 회당에 매일 가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라. 그 사람들은 구약의 말씀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도는 알지 못했다. 종교적이 되는 것은 너무나 쉽기 때문에 당신은 삶 속에서 당신이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를 놓치게 된다. 당신은 너무 교만하고 거만해져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구원을 받지 못한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멸시할 수도 있다. 당신은 듣기에 너무 무감각하고 둔해져서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것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을 수 있다. 당신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육적인 눈으로 판단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당신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축사를 받아 담배를 끊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흡연가들을 손가락질 하고 비난하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로써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급속히 혼란에 빠지고 눈이 멀게 되어 소경의 인도함을 받는 소경처럼 걸어가게 될 것이다.
3. 한 몸, 한 머리
나는 오늘날 교회가 위의 사실을 잊어버린 것에 대해 개탄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사람에 의해 절단되어 교회로부터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자, 교사들이 제거되었다. 몸의 모든 지체가 제거되어 남은 건 배꼽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처음상태로 돌아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지체들을 다시 하나로 엮기 시작하고 계신다. 그리고 잃어버린 몸들을 다시 찾을 때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저지할 수 없다.
머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 이상의 머리를 가진 몸은 괴물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다. 성령은 신경계와 흡사하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는 언제나 그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성령께서 몸 속으로 운행하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육적인 생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연합시킬 수 없다.
사람들은 기사와 표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하는 것보다 더 큰 일들을 너희가 하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셨다. 어떻게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그분이 아버지께로 가시고 교회를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성령과 우리가 해야할 일들, 즉 위임명령을 보내셨다.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의 해답이 우리 앞에 있고,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 만약 당신 안에, 전지하시며 천국과 지옥을 정복하시고 당신 안에 살고 계신 그리스도가 계신다면, 당신은 당신이 직면한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비난하신 바리새인들처럼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문제는 없다. 바리새인들은 뱀, 독사, 위선자들이었다. 그런 함정에 빠지는 것은 너무도 쉽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탄식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과 또 하지 않고 있는 일들을 그분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5:39-40). 여기서 예수님은 어떤 종류의 삶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그분은 풍성한 삶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그분은 성경에서 영생이 있는줄 당신이 알기 때문에 성경을 상고한다고 말씀하신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알고 있었다. 사실,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모세오경을 암송해야 했다. 그들은 성경이 쓰여진 박스를 이마에 붙이고 다녔다. 박스의 크기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성경을 암송하고 있는가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몰랐다. 당신은 성경을 구구절절 인용할 수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손을 찾는데 있어서는 마치 박쥐처럼 눈이 먼 사람들을 본적이 없는가?
예수님은 당신이 그분을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당신이 그분을 알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그분에 대해 증거하고 있는 성경 속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음차(音叉, tuning fork)”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계시한다. 당신은 “생명의 양식”을 먹을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끌고 인도하고 지도하실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은 성경 속에 머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성경 66권을 고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즉 기록된 모든 것들이 이미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나게 될거라고 믿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새로운 믿음의 차원, 즉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의 차원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당신은 그리스도에 대해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이 그분을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There is a lot more to the church then having the knowledge of the scriptures. Far more. 우리는 교육체계 속에서 성경을 마치 교과서처럼 읽도록 가르침 받아 왔다. 우리는 성경을 암송하게되면 능력을 갖게 될 것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렇게 확신했었다(Pharisees and Sadducees were evident of that).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당신이 그분의 모든 말씀, 그분의 모든 계명들을 기꺼이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행하시는 일은 그분이 나를 위해 행하시는 일과는 다를 것이다. 그분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그분이 당신을 사용하시는 방식은 그분이 나를 사용하시는 방식과는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clones로서 창조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 안에 독특하고 특별한 영(gifting spirit)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하도록 창조되었는지를 알아낼 필요가 있다.
내 생애 중 많은 해 동안 나는 거룩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방향을 지시하셨다. 나는 성경에 너무도 무지했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사역으로 부르셨을 때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이 뭔지도 몰랐다. 나는 성경에는 무지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경을 읽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고 계심을 알고 있었다. 나는 성경을 읽기 전부터 삶 속에서 성령에 의해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나는 예수님이 “내 양은 내 음성을 안다”는 말씀을 하셨음을 알기도 전에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당신의 지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당신이 얼마나 알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누구룰 알고 있고 또 누구를 따르기 원하는가의 문제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추종할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멘토는 누굽니까? 당신의 영적인 아버지는 누굽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나의 멘토는 성령님이시다.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시다. 그러면 그들은 계속해서 물을 것이다. “당신의 스승은 누굽니까?”라고. 지상의 그 누구에게도 당신의 스승이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 왜냐하면 오직 한 분만이 당신의 스승이요 아버지이신데 그분은 하늘에 계시기 때문이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같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같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인도함 받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의 몸은 한 몸과 한 머리 안에서 연합해서 일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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