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트레이드 제도와 선수의 인권에 대하여
LG트윈스 송신영 선수의 슬픈 눈망울을 생각하며
어렸을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나는 프로야구 LG트윈스의 오랜 팬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일 년에 몇 번 정도는 야구장을 찾아가 관람을 하였기에 아내와 아이들 모두 야구를 좋아한다.
어제 잠실야구장에서 이제는 성인이 된 아들 딸과 모처럼 시간을 맞추어 LG와 넥센의 경기를 관람했다. 9회말 5대5 상황에서 송신영 선수가 구원투수로 나왔다. 송신영은 넥센에서 이적되어온 선수다. 그는 9회를 안타 없이 잘 막았지만 연장 10회 초에 점수를 내줘 LG는 최하위인 넥센에 4연패를 당했다.
이성적 성향을 강하게 지닌 사람이 있듯이 정서적 성향을 강하게 지닌 사람도 있다. 내가 보기에 송신영 선수는 정서적 성향이 강한 것 같다. 이성적 성향의 사람은 환경에 대한 적응을 비교적 잘하지만 정서적 유형의 사람은 정에 약하고 바뀐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성향을 약점이 아닌 특성으로 보고 싶다.
송신영 선수가 LG로 이적된 후로 스포츠TV 중계 카메라가 자주 그의 얼굴 모습을 확대하여 보여주었는데 그때마다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원래 그가 잘 웃지 않는 타입인지도 모르겠지만 LG로 이적된 후 그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둡게 느껴졌다. 그의 굳어있는 얼굴을 대하면 나도 슬퍼진다.
어제 내가 아들 딸과 함께 잠실경기장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TV로 경기를 관람했는데 카메라가 송신영 선수를 계속 잡아주었다고 한다.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눈이 큰 송신영 선수의 얼굴이 곧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LG벤치에 앉아 친정팀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송신영 선수는 LG로 이적된 후 첫 경기에서 세이브를 올렸다. 그때도 LG팬들은 송신영을 연호했지만 카메라에 클로즈업된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는 이적되기 몇 시간 전에 갑작스런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건 그 때 같이 트레이드되었던 네 명의 선수 모두 마찬가지였다.
프로야구에서 트레이드는 서로의 전력을 보강하는 좋은 제도일 수 있다. 실제로 그때 LG에서 넥센으로 이적된 박병호 선수는 4번 타자로 줄곧 선발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제는 처음의 서운했던 마음을 잘 추스르고 이적한 팀에서 훌륭히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LG에 이상훈이라는 빼어난 선수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도 전형적인 정서적 인간형으로 느껴진다. (사실 이렇게 사람을 이런 저런 유형으로 나누는 게 바람직하진 않지만 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는 SK로 이적된 후 이전과 다르게 별 활약을 펼치지 못하다 선수 생활을 접고 로커로 변신했다. 영원한 LG트윈스맨임을 자처했던 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LG 선수들에게 공을 던지기 어려웠다."
프로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성적과 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로스포츠와 자본주의는 매우 밀접한 친분관계에 있는 것 같다. 성공한 프로야구 선수는 엄청난 명예와 부를 누린다. 최고의 선수는 최고의 대우를 받고 실력과 노력이 부족한 선수는 퇴출되기도 한다. 그 사이에 있는 선수들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이적되기도 하고 연봉 협상에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꼭 짚고 싶은 것은, 실력은 실력이고 사람의 인권은 언제 어디서나 존중되어야 하듯이, 프로야구선수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LG와 넥센이 7월 31일에 전격적으로 단행한 트레이드는 LG에서 심수창과 박병호, 넥센에서 송신영과 김성현이다. 이들 중 트레이드를 원했던 선수는 없는 것 같다. 짐작조차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이적 통보를 받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서둘러 짐을 쌌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송신영을 제외한 나머지 세 선수들은 서서히 적응을 해가는 것 같다. 하지만 송신영의 웃는 모습은 언제나 보게 될까? 운동선수로서는 그다지 키가 크지도 않고 힘이 세지도 않지만 오랜 노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성실한 선수가 이대로 스러지는 건 아닌지 프로야구 팬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안쓰럽다.
내가 프로야구의 세계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트레이드라는 제도에서 선수의 발언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선수의 동의 없이 구단끼리 일방적으로 정하는 트레이드가 과연 괜찮은 제도인지 의문이 든다. 적어도 당사자인 선수와도 충분한 협의를 거친 후에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프로의 세계는 그토록 냉정해야만 하는 것인지, 따뜻한 프로는 불가능한 것인지, 선수의 인권을 존중하는 트레이드는 불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다.
나는 LG트윈스가 성적이 안 좋을 때 더 많이 야구장을 찾았다. 관객이 적어 여유 있게 경기를 즐길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성적이 안 좋을 때, 나라도 찾아가 응원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성적과 관계없이 영원한 LG트윈스 팬으로 남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팀이기에 욕심은 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인권을 존중해주는 따뜻한 야구팀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