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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의 춤추는 비경을 장안산에서 담아오다
(기행 수필)
루수/김상화
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계절이 떠나려고 몸부림친다. 길섶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뭇가지엔 몇 개의 나뭇잎이 덩그러니 매달려 추위를 견디며 외로워한다. 그나마 떨어진 잎새는 바람에 날려 뒹굴며
늦가을의 운치를 더해준다. 또 어떤 녀석은 운 좋게 사람들 발에 밟혀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행복하다고 속삭인다. 아직 나무에 매달린 잎은 바람이
불면 외롭다고 울어댄다. 그러나 떨어진 잎은 바람에 날려 비행을 하다 뒹구는 놈도 있다. 또 운 좋게 발에 밟혀 행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웃는 녀석도 있다. 모두 가을을 깊어가게 만드는 장본인들이다. 이렇게 무르익은 가을은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이별하기 시작한다.
참으로 아름답고 풍성했던 가을은 아쉬움만 남겨놓고 떠나려나 보다
올해의 마지막 단풍을 보고 즐기고 싶다. 또 억새가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아름다운 율동으로 춤을 추는 것도 보고 싶다. 그래서 가을에나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감상하려고 서울을 떠난다. 멀리
떨어진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군립공원인 장안산이 좋다고 하여 떠나는 날이다. 회원들은 모두 신이 난 듯 싱글벙글하며 차에 올랐다. 가을의
마지막 여행을 한다는 행복한 꿈의 나래를 달고 필자도 차에 탔다. 한 달에 한 번 보는 반가운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미소를 날렸더니
답례로 아름다운 미소가 날아온다. 미소는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향기와 행복이 쏟아진다. 잠시 후 김정돌 회원이 차에 오른다. 보는 순간 그리
반가울 수 없다. 김정돌 회원과 같은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버스는 회원들의 부픈 꿈과 행복을 싣고 고속도로를 타고 장안산을 향해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논에는 흰 비닐로 벼 집을 돌돌 마른 덩어리가 썰렁한 논을 지키고 있다. 이것은 공룡 알이라고도 부르며 학명으로는
"곤포사일러지"라고 한다. 산은 오색 찬란하게 물들었던 나뭇잎이 거의 떨어져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다. 가을걷이가 얼추 끝난 농부들은 한가로운
모습으로 뒷짐을 집고 어슬렁거린다. 비록 가을이 끝을 맺고 겨울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평화로운 날갯짓을 하는 것 같아 아름답다. 풍성하고
화려했던 가을을 음미하면서 옆에 앉은 짝꿍 김정돌 회원과 대화를 한다. 웃는 모습이 늘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회원이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오르지 나라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말이 대부분 차지한다. 많은 상식과 지식이 풍부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국가관이 남다른 분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행복을 싣고 달려온 버스는 어느덧 목적지인 장안산 무릉 고개 주차장 등산코스 입구에
정차했다. 장안산은 해발 1,237m의 군립공원으로 백두대간의 기운을 충청도와 전라도에 전하는 호남의 종산이다. 장안산 동쪽 능선에는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져 있어 가을이면 산 능선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있다고 한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 계남면, 번암면 장계면 등 4개 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뻗어 전국의 8대 종산중 제일 광활한 위치를 차지한 금남호남정맥의 기봉인 호남의 종산이다. 동쪽에
백운산(1279m), 서쪽에 팔공산(1,151m)이 솟아있고 북쪽 물줄기는 금강으로 남쪽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김종배
회장의 구령에 맞춰 가볍게 몸을 풀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등산하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등산로는 돌이 없어 발걸음을 편하게 할 수 있게 흙으로
덮여있다.가을의 엷은 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올해 마지막 단풍을 보면서 가을의 신비롭고도 황홀한 세계에 빠져 보고 싶었는데 이게
웬일일까? 단풍은 어딜 가고 찾아볼 길이 없다. 화려함을 자랑하던 잎이 떨어진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겨놓았다. 벌거벗은 나무는 닥쳐올
엄동설한을 걱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한참을 올라가서 사방을 내려다보니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감탄사가 연발 터져 나온다.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비경으로 둘러싸였다. 주변 일대의 계곡은 빗살처럼 뻗어 내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지금은 비록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이지만 한여름 숲이
울창하게 있을 때의 경관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군립공원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와서 보니 이산은 광활하게 펼쳐있는 억새가
오색 단풍보다 더 아름답다. 억새는 바람이 불면 쉬쉬 소리를 내며 하얀 손을 흔들며 파도 타듯 춤을 추는 모습이 장관이다. 장안산은 100대
명산 중 84위라고 한다. 역시 아름다운 산이다. 올라오느라 힘이 들었나 보다. 얼굴은 차가운데 등에서는 땀이 흘러내려 속옷이 촉촉하게 젖었다.
바람이 불어 땀을 걷어가니 몸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6부 능선까지 온 것 같다. 여기서 7부 능선 쪽을 바라볼 때 마치 외국의 어느 유명한 곳을
오지 않았나 하고 착각할 정도로 이색적인 풍경에 매료되고 말았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 위에는 진한 밤색 칠을 한 나무판자로 아름답게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양옆엔 가을 햇살을 받은 억새가 황금색으로 변해 반짝이는 풍경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는 우리 일행을 보고 기쁨을 참지 못하고 잔잔한 소리로 어서 오라고 부른다.
모처럼 산을 타는
김정돌 회원이 힘든가 보다. 말없이 묵묵히 올라왔지만 풍기는 표정이 "나 지금 힘이 들어요" 좀 쉬었다 갈 수 없을까요 하는 표정이다. 필자도
역시 힘이 든다. 그래서 잠시 쉬기 겸 억새를 배경으로 기념이 될 사진을 찍어 댄다. 이 산악회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전윤연 회장이 김정돌 회원
옆으로 다정다감하게 다가와 힘들지요 하고 위로의 말을 한다. 빨리 회복되라고 빙그레 웃음까지 선물한다. 그러곤 함께 사진을 찍는다. 김종배
회장도 오늘은 회원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툭툭 유머스러운 말을 해 웃음바다를 만들어 낸다. 그리곤 멋들어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또
찍어준다. 석미정 총무는 또 어떠한가? 가을 햇살이 그녀를 더욱 예쁘게 만들어 준다. 황금색으로 물든 억새에 둘러싸인 얼굴은 불그스레 달아올라
가지나 예쁜 얼굴이 완전 미인으로 변한다. 김석기 회원도 함께 어울려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지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오늘같이 즐거운 날이 또
있을까?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칭찬하고, 좋은 공기까지 마신다. 또 땀을 흘려 몸속의 노폐물을 빼내니 즐겁고 행복하다. 이래서 우리는 산을
좋아하나 보다.
장안산 산마루는 잠시 송우 산악회 회원들의 대화 소리와 향기로운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으악새(억새)의 군무(群舞)를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원없이 감상한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장안산이란 표석이 보이는 순간 왜
이리도 반가울까? 약 오백평 정도 되는 정상에 세워놓은 표석이 반갑게 맞아준다. 많은 등산객이 모여들어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필자도 역시
흥분된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바빴다. 드디어 오늘도 1,237m의 높은 산의 정상을 밟았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더욱이 우리는 오늘
파란 하늘을 선물로 받았고 황금 햇살이 축하까지 해준다. 송우 가족은 기쁨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절정에 도달해 있다. 우리는 정상
한옆에 자리를 깔고 점심을 즐겼다. 여기서도 역시 전윤연 회장과 석미정 총무는 모성애가 발동한 듯 다른 회원들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점심을
마치고 장안산의 표석과 억새의 아름다운 군무(群舞)을 눈에 담고 이 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도중에는
김성중 부회장이 신바람이 났다. 아마 알코올이 적당하게 몸속을 파고들었나 보다. 노래도 얼마나 구수하고 아름답게 잘 하는지 듣는 회원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리고 장안산을 노래로 수놓았다. 주차장까지 내려온 우리는 모두 차에 올랐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 보따리를 내민다. 운전기사의
배려로 논개의 사당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으면 어떻겠냐는 질문이다.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이다. 논개 사당에 도착하니 드넓은 대지에 깔끔하게
기념관 생가 그리고 사당을 짓고 동상까지 세워놓았다.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역사 해설자가 반가이 맞이한다. 그러곤 논개에 대한 설명을 청산유수로
해댄다. 필자는 논개를 기녀로만 알았다. 나라와 부군의 원수를 갚으려고 진주에 있는 남강에서 왜장 모곡촌육조(毛谷村六助)을 끌어안고 뛰어내린
애국자다. 기생으로 태어나 죽음까지 훌륭했다고 알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해설자의 말을 들으니 내가 배우고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차이가 났다. 이렇게 훌륭한 애국자를! 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다음은 알림판과 인터넷을 이용해 발취한 글이다.
의암 주논개 생가지를 들렸다. 이곳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이다. 1593년(선조 26) 6월 남편 최경희(崔慶會) 현감을
따라 2차 진주성 싸움에 참석했다가 중과부적으로 성이 무너지고 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버린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생으로 가장하여 왜군
승전 연에 참석 왜장 모곡촌육조(毛谷村六助)를 진주 남강 변 현재의 의암이라 불리는 바위로 유인하여 함께 투신 순국한 겨레의 여인
주논개(朱論介)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논개는 성씨가 주(朱)씨라는 것도 여기와서 처음 알았다. 주논개(朱論介)는 1574년(宣祖 7) 9월
3일 이곳 주촌마을에서 부 주달문(朱達文)과 모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주촌마을의 원래 생가는 1986년 대곡저수지 축조로
수몰되었으며, 이곳은 논개 할아버지가 함양군 서상면에서 재를 넘어와 서당을 차렸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지역에 1997년부터 4년간에 걸쳐
넓히고 옮기는 사업을 통해서 2만 평을 조성하였다. 이곳에는 주논개(朱論介) 생가를 들어가는 관문인 의랑루(義娘樓),가 있고 연못과
정자(丹娥亭), 주논개의 석상, 의암 주논개의 사료를 정리한 전시관 및 생가가 있다.
단아정(丹娥亭)이란 곳을 보았다. 이곳은
의암 주논개가 어릴 적 또래들과 노닐던 곳으로 이른 봄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산새들의 고운 노랫소리가 주촌 골의 메아리를 불러 모은
곳이다. 이곳에 의랑(義娘)의 충절을 표상하기 위하여 정자를 세우고 "단아정"이라 이름하였다. 단(丹)은 우국단충(憂國丹忠)의 뜻이요,
아(娘)는 달 속의 선녀 항아(姮娥)를 일컬음이니 의랑의 단충과 효행이 항아 보다 더 아름다운 논개의 지극한 충성과 효심의 얼을 상징함이다. 그
어찌 그 위대한 충절의 넋을 다 이르리오! 이 거룩한 얼을 기리기 위하여 제12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지난 1986년에 생가를 복원하게
하였고, 오늘에는 이 정자에 단아정(丹娥亭)이란 친필을 남겨 그 뜻을 기리고자 하였으니, 그 얼이 높이 선양되어 영원히 빛날 것이다.
논개의 거룩한 죽음에 대해 알아본다. 대의를 위해 소의를 버릴 줄 알았던 여인 논개! 그녀의 죽음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이 정당성을 찾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시간과 사람들의 열정이 녹아 있다. 이로 인해 그녀에 대한 죽음은
오늘날에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찬란히 빛나고 있다. 진주사람들은 논개가 떨어져 죽은 자리인 "위암(危巖)"을 "의암(義巖)"이라 명명했다.
그곳에 전서체(篆書體)로 "의암(義巖)"이라고 새겨놓았다. 논개가 순국한 날을 기해 해마다 강가에 제단을 설치, 순국 영혼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논개가 순국한 지 147년이 지나도록 논개의 죽음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진주 남강 기슭을 떠도는 애잔한 전설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당시의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지배이념으로 굳어진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운명은 남성의 권위와 명예에 종속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사회는 관료들과 사대부의 의식이 지배하는 남성 중심 사회였다. 논개의 죽음이 지닌 충으로서의 고귀한 정신을 사실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남성들의
치욕이라 여겨 끝까지 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순국 당시 논개는 관기로 신분 위장을 하였기에 이와 같은 오해의 골은 더욱 깊어
갔다. 논개는 그 후 다시 태어났다. 기녀로 묘사된 논개는 민순지의 "임진록" 송병준의 "일휴당공신도비명" 권적의 "경상우병사 증좌찬성
최공시장" 등의 저술을 통해 기녀가 아닌 충의공 최경회의 부실로 점차 밝혀졌다. 또한, 현재 충의공 최경회의 집안인 해주최씨 가문의 "해주최씨
대동보"를 살펴보면 논개를 의암부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논개의 모습은 더욱더 확실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다가올
것이다. 논개의 아름다운 심성과 그녀의 훌륭한 업적을 우리는 오늘 듣고 보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라를 위해 죽음을 택한
논개의 갸륵한 마음씨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모의 그녀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애국 충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개가
숙여진다. 발길을 멈추고 다시 그녀의 얼이 설여 있는 사당을 뒤돌아보았다. 맑은 햇살은 그곳을 향해 아낌없이 아름답게 쏟아낸다. 그러나
저물어가는 가을은 막아낼 수 없나 보다. 조경해 놓은 나무는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초라하게 남았고 잔디는 황금색으로 변했지만, 그녀의 충정
어린 넋은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았다. 생각지도 않은 논개의 훌륭한 업적과 일생을 살펴보고 우리는 발길을 서울을 향해 돌려야 했다.
마지막 가을을 즐기려고 등산을 온 우리는 넉넉함 대신 삶을 뒤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인 것만 같다. 비록 오색 단풍은 보지
못했지만, 억새의 속삭임과 파도치듯 춤추는 군무도 보았다.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던 주논개의 갸륵한 죽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도 보람된 큰 선물을
안고 갈 수 있어 행복하다. 김종배 회장의 마무리 인사말을 한다. 저물어 가는 가을을 아름답게 장식하려고 우리는 멀리 장안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오늘 행복하셨지요? 나도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아무 사고 없이 산행을 끝내고 즐겁고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를
드린다는 향기로운 인사말로 끝을 맺는다. 이어 전윤연 회장도 생글생글 웃으며 여러분 오늘 즐거우셨나요? 하며 12월 산행은 일박 2일로 여러분을
모실 거라는 말로 인사말을 맺는다. 오늘은 참으로 행복한 날인 것만 같다.
2017년 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