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지켜주는 보디가드
요즘 간편하게 아침식사 대용으로 흔히 먹는 콘플레이크를 만든 이는 19세기 말의 존 하비 켈로그 박사였다. 그런데 켈로그 박사가 콘플레이크를 만든 데는 좀 색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의 목적은 바로 남성들의 자위행위를 막는 데 있었다. 옥수수를 으깨서 만든 콘플레이크를 먹으면 정액을 만드는 단백질 섭취가 줄어들어 자위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9세기말 까지도 이처럼 정액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중국에서는 정액을 생명의 원천으로 여겼으며, 신이 정액으로 만물을 창조했다는 고대 이집트 신화도 있다.
정액은 한 번 사정할 때 2~5㎖ 정도 배출되는데, 1㎖의 정액 속에는 약 6천만 마리의 정자가 포함되어 있다. 정액은 정자가 여성 질 속의 난자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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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액에서 나는 냄새는 밤꽃 향기와 아주 비슷하다. |
정자가 이동할 때 완충 작용 및 윤활유 역할을 하고, 정자가 운동하는 데 필요한 영양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또 약알칼리성을 띠는 정액은 질 내부의 강한 산성을 중화시켜 정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정액의 약 60%는 정낭에서 만들어지며 약 30%는 전립선, 그리고 나머지는 요도주위선 등에서 만들어진다. 그 중에서도 정액이 갖는 독특한 냄새와 점성 등 정액의 주요 성분을 만드는 곳이 전립선이다.
방광과 요도 사이를 빙 둘러싸고 있는 전립선은 마치 밤톨을 뒤집어놓은 모양처럼 생겼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정액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는 6월에 흐드러지게 피는 밤꽃 향기와 아주 비슷하다.
밤꽃 냄새를 흔히 양향(陽香)이라 하는데, ‘밤꽃이 피면 과부가 바람난다’거나 ‘밤꽃 향에 얼굴을 붉히면 처녀가 아니다’는 말이 나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액에서 나는 밤꽃 향은 전립선에서 분비되는 스페르민이란 성분이 휘발성 알데히드로 변하면서 내는 냄새이다.
성생활 활발하면 왜 난소암 안 걸릴까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 정액이 단순히 정자들을 좀 더 오래 살도록 해주는 기능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유익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배석년 교수팀은 정액 속의 아연과 구연산 복합물질이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를 죽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14일 발표했다.
HPV에 감염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한 배 교수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정액에서 추출한 복합물질로 치료받은 76명 중 49명(64%)에게서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액 속의 복합물질이 HPV가 복제하는 유전자 전사과정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 교수팀은 지난 2003년에도 남자의 정액 속에 난소암 세포를 죽이는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바 있다. 당시 배 교수팀이 정액 속에서 추출해 농축한 ‘시자르’란 물질은 난소암 세포를 81% 이상 죽이는 탁월한 효과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성생활이 활발한 여성일수록 난소암에 잘 걸리지 않은 현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낼 수 있었다. 또 외국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정액이 유방암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정액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년에 미국 알바니 뉴욕주립대의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남성의 정액 속에 항우울제 기능이 들어 있다는 것. 연구팀은 정액 속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아연과 칼슘, 포타시움, 단백질 등의 성분이 여성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우울 증세를 없애준다고 밝혔다.
때문에 섹스를 할 때 콘돔을 사용하면 정액을 흡수할 수 없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암컷 몸무게 10배 이상 늘어나게 해
정액의 다양한 역할은 각종 동물들에게서도 밝혀졌다. 아프리카 소에 붙어사는 암컷 진드기는 수컷과의 교미 후 더욱 게걸스럽게 피를 빨아먹는 특성이 있다. 얼마나 많이 먹는가 하면 교미 후 4~7일 만에 몸무게가 10배 이상 늘어날 정도.
그런데 이 같은 식욕의 증가 원인이 수컷의 정액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수컷 진드기의 정액 속에서 암컷의 식욕을 증가시키는 폭식인자가 발견된 것. 아무리 암컷을 위하는 것도 좋다지만 이런 기능이라면 날씬한 몸매를 중시하는 현대 여성들에게는 ‘노생큐(No thank you)’라는 말을 들을 게 틀림없다.
정액 속에 엄청나게 많은 수가 정자가 들어 있는 것은 다른 개체의 정자가 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자살 특공대 정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액도 그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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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액은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는 기능도 한다. |
전 세계에 흔히 분포하는 큰흰나비 수컷은 정액 속에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벤질시아나이드라는 성분을 배출해 자신과 교미한 암컷에게 다른 수컷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또 여러 마리의 암컷과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침팬지의 정액 속에는 사정 즉시 굳어버리는 단백질 분비물이 있어 다른 수컷의 정액이 암컷의 질에 들어오지 못하게끔 예방조치를 한다.
하지만 그처럼 철통같은 정액에도 빈틈이 있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HIV에는 HIV-1과 HIV-2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이 중 발병속도가 더 빠른 HIV-1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바이러스로서, 이때까지 6천만 명 이상을 감염시켰다.
그런데 HIV-1 감염의 90%는 남성의 정액에 의해 이루어진다. 에이즈를 전염시키는 범인은 전립선에서 생성되는 PAP 라는 성분이 만드는 가느다란 ‘아밀로이드 원섬유’로 밝혀졌다.
아밀로이드 원섬유는 마치 나룻배처럼 HIV-1을 태워서 표적세포로 나르는데, 이로 인한 감염 증강률이 50배 이상이었으며, 특정한 상황에서는 10만 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액 속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PAP는 애초에 무엇을 실어 나르기 위해 이같이 가느다란 나룻배를 수없이 만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