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의 마무리 ‘웰다잉’ 가이드 라인
아름다운 삶을 위한 품위있는 죽음 준비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지만, 죽음을 예비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없다. 사람들은 현재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매달린다. 병상에서 말기암으로 회생 불가능 판정을 받고도 생명연장 치료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의료기술 발달로 인한 수명 연장으로 우리 사회는 급속히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삶의 질을 뜻하는 ‘웰빙(well-being)’과 더불어 ‘웰다잉(well-dying)’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죽음학회(위원장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웰다잉(well-dying) 가이드라인을 소개한다. 학회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유언장을 꼭 작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죽음을 예비하는 것은 삶의 시작=죽음이란 말이 오해를 많이 받듯이, 죽음준비란 말 역시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죽음준비란 말을 사람들은 마치 죽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듯싶다.
그러나 죽음준비는 유한한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있게 보내라는 말과 같다. 죽음은 갑자기 찾아올 수 있으니까, 죽음이 불현듯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를 하자는 의미다. 죽음준비는 주어진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있게 영위함으로써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자는 의미이므로, 죽음준비는 죽을 각오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한 마디로 삶의 준비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늦게, 실제로 자신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므로, 지나간 삶을 후회하면서 죽는 사례가 많다.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례가 많고, 자살 사망률이 최근 들어 급증하는 상황이고, 또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밝은 미소 속에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해볼 때, 죽음에 대한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라=자필 유언장의 경우 별도의 공증절차 없이 법적인 효력을 가지는데, 유언장에는 전문(내용)과 날짜, 주소, 성명, 날인의 5가지가 필수요건이라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유언장에는 임종방식과 장례방식, 유산상속, 금융정보 등도 함께 적어야 한다.
특히 병이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가 됐을 때 어떤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를 미리 문서로 작성하는 사전의료의향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가 시행돼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임종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성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임종과 관련해서는 존엄사 여부를 밝힌다. 거동이 불편한 경우에 간병과 요양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의사표시를 하는 게 좋다. 거동이 불편할 때 의탁할 사람, 치매 등의 불치병에 걸렸을 때 요양시설에 입소하기를 원하는지, 요양원인지 요양병원인지, 그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유언장에 쓰고 미리 가족에게 알리면 가족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 시한부 삶이라면 일기를 써라=일기 쓰기도 권장된다. 임종을 앞두고 가족, 혹은 자신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적어두면 유언장이 된다.
일기에 가족에게 남기는 말도 중요하지만, 사후정리에 필요한 정보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는 것도 좋다. ▲어떤 식으로 임종을 맞을 것인지 ▲장례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제사 등 추모행사 내용 ▲금융정보와 재산내역 등도 메모해야 한다.
금융 정보는 되도록 상세히 기록하는 게 좋다. 평소 재산목록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은행예금, 보험, 증권, 부동산 권리증서, 주식과 채권의 통장이나 증서를 챙긴다. 이 밖에도 국민연금, 세금영수증, 자동차등록증 등의 각종 증명서류와 현금이나 귀금속을 보관한 장소, 신분증과 인감도장을 보관한 장소를 기록한다. 은행대출이나 빚에 대한 정보도 남겨야 한다.
시신이나 장기 기증에 서약했다면 동의서와 관련기관 연락처 등을 적어두고, 가족에게 평소 알려준다. 보호자는 사망 후 즉시 사랑의 장기기증본부로 연락을 줘야 한다. 뇌사가 아닌 자연사인 경우 사후 장기기증이 가능한 것은 각막이나 조직 정도인데, 각막은 6시간 이내, 조직은 15시간 안에 적출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언 신탁서비스 상품=금융권에서 제공하는 유언장 작성에서부터 유언 집행에 이르는 모든 절차를 대행해주는 유언신탁 서비스도 있다.
증권사에서는 고객 유언장을 최대 40년간 보관해주는 유언신탁 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또 변호사, 세무사들과 함께 유언서 작성을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준다. 일정 수수료를 더 내면 고객이 사망한 후 유언 내용에 따라 재산 분할 등 유언 집행을 대행해준다.
은행권에서는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유언신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변호사와 세무사가 유언 작성을 상담해주며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을 줄여준다.
유언서처럼 법적 효력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나 재산 목록 등을 적은 문서, 즉 ‘유훈(遺訓)’이 있다면 은행 금고에 보관해 준다.
유언신탁 상품도 있다. 기본 계약을 맺으면 유언서 작성에 대한 상담을 제공하고 유언서를 보관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유언서 보관 수수료를 내면 된다.
고객이 원하면 사후에 유언서 내용대로 은행이 유언을 집행하거나 신탁을 설정해 자산을 운영ㆍ배분해 주는 서비스까지 선택할 수 있다.
한국죽음학회는 “죽음은 우리가 모두 받아들이고 소통하면서 아름답게 임하는 삶의 한 장면으로 승화해야 한다”며 “죽음을 무섭고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성장의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영기기자 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