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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형준이
배경숙
형준이가 책상 위의 못 구멍을 막았던 껌을 급히 떼어냅니다. 구멍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던 개미가 천천히 더듬이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형준이의 입에서 웃음이 나옵니다.
“흐흐흐, 살아있을 줄 알았어.”
형준이는 주머니 속에서 과자 부스러기를 꺼내 구멍에 넣었습니다. 개미가 과자 부스러기로 다가갑니다. 형준이는 개미가 움직일 공간을 눈짐작으로 띄워놓고 껌으로 구멍을 다시 꼼꼼히 막습니다. 또 웃음이 나옵니다. 어젯밤에 집에 가서도 계속 개미 생각을 했습니다. 숨이 막혀서 죽었든지, 워낙 작으니까 살아있든지…. 형준이는 살아있는 쪽에다 99점을 줬지만 말예요. 살아 있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눈에 띄는 개미는 죄 잡아서 구멍에 넣으면 됩니다.
엄마가 거실바닥에 기어가는 바퀴벌레를 잡으려다 놓치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그저께 저녁입니다.
“바퀴벌레하고 개미는 저희들끼리 살고 사람은 사람끼리 살면 안 되냐? 아유, 소름 끼쳐!”
형준이는 엄마가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에 바퀴벌레와 개미를 잡으려고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엄마가 나와서 뭐하느냐고 물을 때까지 형준이는 개미 뒷다리도 볼 수 없었지만요. 그런데 용케 어제 교실 쓰레기통 옆에서 발견한 작은 개미 한 마리를 구멍 속에 가둔 것입니다. 집에서 못 잡은 것이 좀 아쉽지만 똑같은 개미인걸요.
“히히히.”
형준이가 웃는 입모양을 본 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말을 하려다 맙니다. 형준이는 얼른 쓰레기통 쪽으로 얼굴을 돌립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형준이가 소리 내서 웃거나 말하는 것을 아이들이 본적이 없습니다. 키가 커서 처음에는 형준이 눈치를 보지만 조금만 지나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늘 혼자서 노는 아이,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아이, 공부시간에도 만화책만 읽는 아이입니다.
학원 옆의 국화하우스에서 오늘도 꽃집 할아버지가 모자를 쓰고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십니다. 형준이는 책가방을 둘러멘 채 할아버지의 손끝만 바라봅니다. 큰 화분 가운데의 어린 국화가지를 가장자리 쪽으로 구부려 철사못 같은 것으로 살짝 누르십니다. 국화 줄기가 하나씩 화분가로 납작하고 둥글게 벌어집니다.
“손질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키만 쑥 자란단다. 그러면 국화농사 망치는 거지.”
형준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바싹 다가섭니다.
“4학년이냐?”
형준이는 급히 도리질을 하고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며
“2학년….”
하고 말끝을 흐립니다. 할아버지가 형준이를 힐끗 보시더니
“키는 큰데 살 붙은 데가 없어. 저거마냥.”
하고 손가락질을 하십니다. 할아버지 뒤편에 다른 것 보다 키가 훨씬 큰 국화가 화분에 심겨져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의자를 옆으로 옮겨가면서 국화 가지 구부리는 일을 계속 하십니다. 챙 넓은 할아버지의 모자 위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형준이의 눈을 쿡 찌릅니다.
“너 요 피아노 학원에 다니지?”형준이는 눈을 껌벅거리며 씨익 웃습니다.
“너희들이 피아노를 정성껏 치면 얘들이 더 잘 자라는데….”
피아노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건반을 아무렇게나 틱틱 누르는 소리, 쿵쾅쿵쾅 두들기는 소리. 할아버지는 화가 나지만 참는다는 듯이 입을 다문 채 국화를 만지십니다. 국화가 소리를 듣는다는 말씀일까요? 개미처럼 걷지도 못하고, 더듬이도 없고, 귀도 없는데…. 개미라면 모를까.
형준이는 2학년에 들어서서야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면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엄마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런데 친구도 없고 재미도 없습니다. 피아노는, 보고만 있어도 움직이는 개미 같지 않습니다. 한참을 못 보다 들여다보면 조금씩 키가 자라는 꽃나무와도 다릅니다. 형준이가 건드려야만 소리가 납니다. 그런데 피아노 건반은 형준이 손가락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일러주시는 대로 눌러도 선생님처럼 예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국화가 정말 형준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을까요? 건반 하나를 살짝 건드려봅니다. ‘딩….’ 형준이는 깜짝 놀라 귀를 기울입니다. 옆방 아이가 박자가 틀렸다고 선생님께 야단을 맞습니다. 다음 차례 아이들이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발자국 소리가 납니다. 개미도, 할아버지도, 국화도 듣지 않을 겁니다. 형준이는 건반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 올라갑니다. 점점 높고 날카롭고 가는 소리가 납니다. 선생님이 달려오십니다. 아이들의 눈이 형준이를 노려봅니다. 형준이는 급히 학원을 빠져 나옵니다. ‘구멍 속의 개미가 건반 위에서 뛰어 오르면 소리가 나요? 국화에게 정말 귀가 있어요? 왜 국화가 힘들게 휘어서 눌러줘요? 왜 키만 자라면 국화 농사를 망치는데요?’
국화하우스 안에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모자만 혼자 동그마니 의자 위에다 그늘을 만듭니다. 형준이의 어깨가 축 늘어집니다.
엄마가 하얀 분필 같은 것을 들고 집 안을 돌면서 벽 아래쪽에 선을 그리십니다. 개미나 바퀴벌레의 발가락만 선에 닿아도 죽는다고 합니다. 엄마는 꼼꼼하게 선을 다 그리고 나시더니 텔레비전을 크게 틉니다. 어떤 아줌마가 나와서 노래를 합니다. 엄마가 큰 소리로 따라 노래하십니다. 엄마 개미가 실수로 발가락을 선에 닿았다가 죽어가면서 새끼 개미에게 말합니다. ‘너는 절대로 이런 실수를 하지 마라. 으윽.’ 새끼 개미가 엄마를 붙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웁니다. 형준이도 눈물이 납니다.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엉엉 소리 내어 웁니다. 엄마가 깜짝 놀라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오십니다.
“개미가 불쌍해요. 엄마.”
가만히 형준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그냥은 안 돼. 매일 저녁에 공원에 나간다고 약속하면 혹시 모를까.”
형준이는 사람들이 많은 공원이 떠오릅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몸이 움츠러듭니다.
“엄마하고 손을 꼭 잡고 있으면 아무 것도 걱정할 거 없어.”
형준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엄마는 물걸레를 집어 들고 선을 따라 가면서 하얀 선을 꼼꼼하게 지우십니다.
형준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걷습니다. 아이들이 형준이에게는 말을 걸지 않습니다. 줄무늬 옷을 입은 강아지가 형준이에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립니다. 엄마 손을 잡은 형준이의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바람이 휘익 붑니다. 형준이는 화를 내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집니다.
엄마가 형준이의 옆구리를 간질이더니 저만치 물러나십니다. 형준이가 눈을 흘기며 엄마 쪽으로 내달립니다. 엄마가 돌아서서 달리는 척 하다가 달려오는 형준이를 꼬옥 받아 안으십니다. 형준이의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릅니다.
“형준아, 놀이치료연구소 김 선생님 생각나지?”
“예.”
“우리 내일 김 선생님 연구소에 가볼래? 한 달만 연구소에 다녀보자. 말도 잘 할 수 있고, 피아노도 잘 칠 수 있고, 친구도 많이 생기고…. 엄마가 매일 같이 갈게.”
형준이는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책상의 못 구멍 속에 갇힌 개미가 풀죽은 얼굴로 형준이 앞에서 징징거립니다. 과자가 산같이 쌓였어도 맛이 없답니다.
“새로 이사 온 이모 개미와 사촌이 온다고 했어. 친구들과 씨름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베짱이 바이올린 연주회에 초대를 받았단 말이야.”
형준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엄마가 눈을 부라리며 개미를 내보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개미는 이제 눈물까지 뚝뚝 흘립니다. 형준이의 콧등이 시큰해옵니다. 아, 그런데 어쩌면 좋아요? 형준이가 개미가 되어 있는 겁니다. 형준이가, 아니 개미가 있는 힘껏 껌 조각을 밀었더니 쭈욱 늘어나기만 할 뿐 꿈쩍을 않습니다. 모자를 벗은 대머리 국화 할아버지가 형준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습니다. 피아노도 못 치고 키만 멀대 같이 자란 국화는 뽑아 버려야 된다고 합니다. 형준이는 할아버지의 억센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할아버지 손을 입으로 물어뜯습니다. 그래도 꿈쩍을 않자 엄마를 소리쳐 부릅니다.
“엄마!”
“형준아, 왜 그래. 응?”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뜹니다.
“나쁜 꿈 꿨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형준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이튿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형준이는 국화하우스에서 꽃집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아침에 본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할아버지는 국화가지 하나에 기다란 막대 한 개씩을 묶어주십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묶어줘야 돼.”
“왜요?”
“반듯하고 예쁘게 자라라고 그러지.”
“국화가 힘들 텐데….”
형준이가 혼잣말을 합니다. 할아버지는 못 들었는지 아무 말씀도 않으십니다.
“국화가 음악을 들을 줄 알아요?”
“음악뿐이겠냐? 말도 알아듣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형준이가 묻습니다.
“귀가 없는데.”
“귀로만 듣는 게 아니란다. 가슴으로도 듣고 눈으로도 듣고.”
“정말요?”
“아무렴, 말을 하니까 좋구나.”
한참 말없이 국화 묶는 일을 하시던 할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말을 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아야 한단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가 있잖냐. 그런데 동물이나 식물은 말을 못하니 사람이 말을 걸어줘야 하고 들어줘야 하지.”
“어, 어떻게요?”
“글쎄, 옳지. 네가 동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식물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는 거야. 그러면 그것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을 수 있단다.”
교실에 도착한 형준이는 얼른 껌을 떼어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던 개미가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개미는 꿈속에서처럼 과자부스러기는 쳐다보지도 않고 구멍 밖으로 나갈 길만 찾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개미는 지금 형준이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어요.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어. 엄마도 보고 싶어. 네가 우리와 함께 사는 게 싫다면 엄마한테 숲 속으로 이사 가자고 할게. 바퀴벌레 친구들한테도 얘기해 볼게. 나를 내보내 줘. 응?”
형준이는 개미에게 손가락을 대어줍니다. 더듬이로 이리저리 탐색하던 개미가 손가락 위로 올라옵니다. 형준이는 개미를 쓰레기통 옆에 조심조심 내려놓습니다.
“잘 가, 너 이사 안 가도 돼. 너하고 나하고 말이 통하는데 이사 갈 게 뭐 있겠어? 엄마한테도 너희와 말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드려야겠어. 그래서 우리 함께 살자. 참, 엄마한테 오늘 연구소에 가겠다고 말하려고. 좋아하시겠지?”
개미가 쓰레기통을 돌아서 기어가다 뒤를 핼끔 돌아봅니다.
“그럼, 좋아하실 거야. 고마워. 내일 또 놀러 올게.”
형준이가 입을 크게 벌려
“하하하”
웃습니다.
찬희가 형준이의 웃음소리에 놀라 바라봅니다. 형준이는 고개를 푹 숙입니다. 화장실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올라옵니다. 형준이는 꾹 참고 고쳐 앉으며 교과서를 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