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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4 |
♣ 수채화 선생님 수채화반 선생님 눈 속에 핀 매화같은 선생님 이젤 앞에 앉아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여기가 수도원인가 싶다. 어쩜 그렇게 정성스럽게 점 찍고 선 그으시는 지 수행하는 수도자의 모습이 저러할까. 마음이 고요하니 정갈하니 두 손이 가지런해진다.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사물들 이름 하나씩 부르며 생명을 부여한다. 연필 쥐고 붓놀림으로 세상을 창조한다. 나도 가만 흉내내다 보면 세상의 근심 걱정이 물 위에 뜬 기름되어 저만치 물러나 있다. |
2007. 03 |
♣ 비내린 저녁에 소낙비 긋고간 저녁 무렵 달팽이 따라 걸음 연습하는 한 늙으신네 반쪽이 껍질된 육신 끌고 미끄러질 듯 넘어질 듯 껍데기에 숨어 틀어박혀 있다 가파른 가파른 길 나서네 달팽이 바다를 꿈꾸다가 달팽이 먼산 보다가 달팽이 그를 인도하고 젊은 날의 그 일 듯한 그을린 골격 닮은 이 껴안듯 부축하고 |
2007. 03 |
♣ 라면 이 라면이 요술 라면이라면 좋겠어요.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북한에도 보내고 아프리카에도 보내고 굶주리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
2007. 01 |
♣ 천인형 따뜻한 사람 바라만 보아도 따뜻한 사람 포근한 사람 생각만 해도 포근한 사람 인형만큼만 따뜻하고 포근했으면 |
2007. 01 |
♣ 자전거 타기 품 속의 꼼지락거리는 인형으로 있을 것만 같던 아이와 자전거 타는 시간 짝궁이 바뀌었다느니 점심시간 좋아하는 반찬이 나왔다느니 천사가 있느냐느니 이제는 내 손 닿지 않는 사소한 이야기가 둥글게 둥글게 풀려 나와 엷은 감빛으로 하늘을 물들인다. 세상 속으로 달려가는 저들에게 나는 말없이 자갈길과 흙길과 포장길을 보여주며 넘어지는 법과 일어서는 법과 다시 달리는 법을 스스로 익히게 한다. 멀리 바라보며 중심을 제대로 잡으라고 자꾸자꾸 되풀이하는데 내 뒷머리가 아까부터 당기운다. |
2006. 12 |
♣ 둥지 날짐승 제 둥지 깃들 때 쯤 채 돋지도 않은 날개로 나는 연습하고 온 조그만 아이에게 시린 등을 내민다. 불안스레 떠돌던 핏줄은 어느새 제 흐름을 찾고 겨자씨만 하게 살 속에 숨어있는 외로움 이라든가 두려움 이라든가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겨자씨만 하게 뼛속에서 불어오는 벌판의 바람을 낮은 노래로 달래며 풀이름, 나무이름 부르며 한 포기 풀이 되었다 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 한다. 내가 자란 둥지를 흉내내며 내가 자란 둥지를 그리워하면서 |
2006. 12 |
♣ 과한 욕심 갯벌에 가서 맛조개 잡는 방법이 있단다. 제 몸 모양으로 길게 난 구멍 속에다 맛소금 솔솔 뿌려 놓으면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갑자기 깊은 곳에서 조개 선 채로 솟구쳐 오르는데 손으로 그냥 쑥 뽑으면 되는 게야 지천으로 늘린 소금물 살짝 가공한 눈속임에 무너지는 그 모습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니 |
2006. 11 |
♣ 나의 소원 이윽고 퇴근 시간이 되자 문 잠그는 소리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 그제서야 연필심 뾰족하게 깎아들고 하얀 종이를 펼치든 지 마음먹고 도서실에서 빌린 장편(長篇)의 책을 펼친다. 한적한 오솔길을 걷고 있나 하는데 걸려오는 전화 엄마 배고파 엄마 차 태워줘 그래 나는 밥이고 나는 바퀴인 것을 장편(長篇)은 장편(掌篇)으로 갈기갈기 찢기어지고 스물스물 기어나오던 문장들은 딱딱한 껍질 속으로 쏘옥하니 숨어버린다. 10분, 10분 동안의 무아지경 용케 아무도 찾지 않는 날 길들여진 습관은 30분이 지나고 부터 남의 신발을 신은 것처럼 남의 옷을 걸친 것처럼 불편해져 오는데...... 내 소원은 1시간 1시간 만의 여백 |
2006. 11 |
♣ 나의 꿈 나에게는 꿈이 있어요. 내보이면 금이 갈까 두려운 가두어두면 녹슬어 버릴까 두려운 금줄친 아가 모습 보여주 듯 들려 드립니다. 시인이 되고자 시를 쓰는 게 아니예요. 화가가 되고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예요. 아니 시인과 화가를 버무려 놓기위해 쓰고 그리네요. 바로 동화를 쓰고 그림을 그려 넣기 위해 오늘도 난 쓰고 그리기를 멈추지 않아요.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난 행복할거예요. 꿈을 꾸며 살았고 꿈을 위해 살았기에 후회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보다 꼭 꿈을 이루고 싶어요. 고운 님들이시여, 제 꿈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봐주실래요. |
2006. 10 |
♣ 주전자 이 누런 주전자 됫박 가득 막걸리 받아다 우리 할아버지께 드렸으면...... ♣ 지독한 사랑 사랑방에 들인 소반 기름기 도는 쌀밥 한 그릇 뱅글뱅글 구르는 보리밥 한 그릇 그 집에서 제일 귀한 반찬 올려져있었지. 칠순의 할아버지 오늘도 위치를 바꾸시고 세살난 계집애 그 밥그릇 생각 없이 먹어 치우고 상물릴 시각 밥그릇 위치는 처음 그대로였네. 지붕아래 그 누구도 알 지 못한 10년을 넘긴 세월 세월 당신의 살을 파먹고 당신의 혼을 빼 먹는 동안 재건이니 새마을 운동이니 당신의 어깨 위로 스쳐 지나가고 당신의 목숨은 서서히 사위어갔지요. 열병처럼 찾아든 사춘기 죽음을 부둥켜안고 고스란히 보내고 갈 바를 모르고 무게가 쌓이는 날 무덤 가에 가만 누워 깜박 잠들면 꿈인 듯 생시인 듯 모습을 뵈었지요. 아 다시는 오지 못할 흉내조차 못 낼 심지로 박혀있는 그 큰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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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0 |
♣ 엄마의 장독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서로 다른 사람 속에서 서로 다른 색깔로 살아가는 이들을 잇는 접착제, 고리 |
2006. 10 |
♣ 운동화 신데렐라 유리구두와도 안 바꿔요. 고흐의 구두와도 안 바꿔요. 이 운동화 한 짝에는 내 땀이 녹아 있어요. 한 짝 그리고 나니 진이 다빠져 손이 장갑처럼 무너져 나머지 한 짝은 그릴 수가 없었어요. |
2006. 09 |
♣ 아침 이미지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챙기고 치우고 협박하고 달래고 밀어 넣고는 빨간 신호대 솟대인 양 올려다보고 고단한 능선 닮은 눈썹 하나 그려 넣다. 길은 멀기만 한데 짐은 무거워만 오고 |
2006. 09 |
♣ 빨래를 하며 아이가 벗어놓은 옷 얼룩 속으로 세상이 비집고 들어오고 무릎의 빛나는 생채기만큼 세상은 아이를 받아 들이고 나는 향비누 한 장 꺼내들고 포로롱 새 한 마리 날려 보낸다 |
2006. 09 |
♣ 축구공 곰돌이랑 축구공이랑 모자랑 인쇄하여 쪽지글 쓰고 코팅해서 작년 애들 나누어 주었지요. 멋지게 싸인 날려서 제 담임 화가인 줄 알아요. 올해도 써 먹어야지요. 애들 골목대장하며 잘 놀고 있어요. |
2006. 08 |
♣ 꽃담 화려하나 전서체같은 굴곡 많은 참고 견디어내는 세월 빚어 흙벽돌로 구워낸 구중궁궐 담장 어느듯 담벼락에 햇살이 퍼지고 꽃이 피어나고 벌 나비 새가 날아들고 달이 머물고 보여지는 것은 매란국죽 정제된 아름다움이지만 저는 담장 밖 안부가 궁금하다 |
2006. 08 |
♣ 직장여성 2 주말에 무얼 했어요 피로를 베고 깔고 덮고 잤어요 휴일에는 무얼 해요 밀린 집안일 하고 애들이랑 놀아줘야죠 시댁에도 가야 하고 먹을 것도 준비하고 나랑 꼭같네 여자라서 행복해요 사막의 신기루 같은 팔등신의 미녀가 요술램프 연기 꼬리로 사라지며 주문을 외는데 일련번호로 분류되어 직장인, 주부,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첨부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넘어지고 주저앉고 깨어지고 갈등하고 긴장하며 나는 날마다 어딘가로 전송된다 여자라서 고달파요 여자라서 더 고달파요 |
2006. 08 |
♣ 그림자 그가 구깃구깃 구겨져 있습니다. 다림질에 데일까 물 적셔 유리창에 좌악 펴 놓았습니다. 그가 웃습니다. 따라 웃습니다. 그가 쓸쓸해 합니다. 이 맘 때면 늘 덧나는 병이라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가 축 늘어져 있습니다. 뒤돌아 보며 어릿광대 흉내를 내어 봅니다. 사람들은 그를 검둥이라 하나 아침 노을빛, 저녁 노을빛 선명히 구분되는 그는 내 그림자입니다. |
2006. 07 |
♣ 관심 이전에 보지 못한 것 이제야 보이나니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마음의 눈을 뜬 만큼 보이는 법 사랑하는 만큼 보이는 법 바라보는 것 생각하는 것 나의 촉수는 님에게로만 뻗어 있어요. 한번 더 보고 뒤집어 보고 나의 시선은 님에게로만 향해 있어요. |
2006. 07 |
♣선물 원어민 강사가 본국으로 돌아갔다. 무슨 선물 할까 하다 이 캔 맥주 인쇄 해서는 코팅하여 한 줄 적어 주었다. 오, 원더풀 헐리우드 액션으로 좋아라 하던 모습이란. 포천 막걸리 병 그렸으면 더 좋았을텐데...... 쩝쩝 교본에 없어서. |
2006. 06 |
♣ 약속 일주일 중 그 하루는 나를 설레게 하고 일주일 중 그 하루는 나를 꿈꾸게 하고 일주일 중 그 하루는 나를 혼자있게 하고 일주일 중 그 하루는 나를 찾아가게 하고 일주일 중 그 하루는 나를 깨어있게 하고 일주일 중 그 하루는 나를 사랑하게 하고 일주일 중 그 하루는 나를 행복하게 하네. |
2006. 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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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5 |
♣ 첫만남 어느날 그가 나에게 왔다. 처음보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라일락 그 꽃향기만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쳤으리. 그 향기에 취해 있는 동안 세상은 연보라빛 꿈이었으니 황사 닦아낸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늦지 않았냐고 2006년 4월 하순의 일이었다. |
첫댓글 딴데서 펼쳐보이면 기펴고 신나게 떠들텐데... 영 서 있는 자리가 자리인지라 꺼내기가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재롱잔치라는 것도 있지요. 실수하고 틀려도 마냥 귀여운... 예쁘게 봐주세요.
홍솔님 저희카페로 가져갑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것 같아서요 ^^*
에고 부끄러워요. 그림에 구멍난 것도 때워야 하는데...... 물감 마르지 않았는데 덮어 가지고말예요. 황송하여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일년치의 기록이 담겨있는 소중한 스케치북을 보여 주셔서 감사 홍솔님의 발자취를 보는듯 합니다.^^
다음에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보여드릴게요. 별의 별 게 다 올라오죠. 적나라한 나의 모습에 좀 수위조절을 해야겠어요. 혼자 떠들자니 좀 거시기 하네요.
원래가 그런것 같습니다. 쳐다봐 주지 않아도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듯 한것이 카페에 나의 모습을 보이는 것과 비슷한것 같습니다.^^
너무 인상적입니다. 첫 스케치북~~~~~~
오랫만이네요. 바위섬님. 펼치긴 부끄럽지만 요걸 보고 있노라면 전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