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Jews): 이것은 이방인들 사이에 사는 히브리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서 특히 바빌론 포로 생활 이후에 많이 사용되었다. 물론 이 말은 그들의 조상 유다에서 나왔다(왕하16:6; 에2:5).
유대인: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 하나님의 말씀들을 맡음(롬3:1-2).
히브리 사람들(Hebrews):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약속의 땅을 차지한 사람들. 히브리라는 말은 아브라함 에게 가장 먼저 적용되었으며(창14:13) 오래 산 족장들 중의 마지막 사람인 헤벨(혹은 에벨)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창10:25). 그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자신의 6대 후손들보다 더 오래 살았으며 아브라함의 죽음 이후에도 얼마 동안 이삭과 야곱의 조상 중 유일한 조상으로 살아남아 있었다. 히브리 사람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의 자손’이라는 말과 대비되어 이방인들에게 잘 알려진 유대인들의 명칭이다. 유다에서 나온 유대인들이라는 명칭은 후에 유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다(왕하 16:6).
유대 민족의 창시자인 아브라함은 유랑하는 목자, 그의 아들과 손자인 이삭과 야곱도 그의 발자취를 따랐다. 열두 지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야곱의 아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기근의 때에 자기 가족을 이집트로 불렀다. 여기서 큰 민족을 이룬 뒤에 그들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불순종으로 인해 첫 세대는 죽고 모세도 죽었다. 그 뒤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모든 지파에게 배분해 주었다. 이때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두머리들과 재판관들과 부족의 치리자들의 통치를 받으며 사무엘 시대까지 이르렀다(행13:16-23).
그 후에 왕정이 시작되어 사울이 초대 왕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이 그의 뒤를 이었으며 그의 가족은 바빌론 사람들의 침략이 있기까지 유다 왕국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그의 손자인 르호보암 시대에 통일 왕국은 분열되어 북쪽의 열 지파는 이스라엘 왕국을, 남쪽의 유다와 베냐민은 유다 왕국을 형성하고 서로를 대적하며 지내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에 포로로 끌려감(BC 721년), 마지막 왕 호세아(왕하17:6-23).
아시리아의 이주 정책(왕하17:24-41): 사마리아 사람들의 기원
유다 왕국은 그 뒤에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감(BC 606, 597, 586).
1차 포로기에 다니엘이 잡혀감(단1:1).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왕하25장)
바빌론에서의 70년 포로 생활(BC 606에서 536까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유다인 귀환 선포(대하36:22-23).
세 번에 걸쳐 포로들이 귀환함.
1차 귀환: 스룹바벨(BC 536, 에스라 1-6장), 둘째 성전 완공(BC516)
2차 귀환: 에스라(BC467, 에스라 7-10장),
3차 귀환: 느헤미야(BC 454, 느1-13장), 성벽 중수
에스더기는 1차와 2차 포로 귀환 사이에 일어남.
마지막 대언자 말라기(BC441), 400년간의 침묵기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점령(BC331), 알렉산더 사망(BC 323), 네 왕국으로 나뉨
팔레스타인은 시리아에 근거한 셀레우코스 왕조와 이집트에 근거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사이에 껴서 많은 전쟁과 고난을 겪음.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돼지를 성전에 드림(BC 168, 단11:21-35)
이로 인해 마카비 반란: 맛다디아와 그의 다섯 아들(마카비)에 의한 해스모니아 왕조가 설립됨(BC 63년에 로마가 다스릴 때까지)
이 기간에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이 등장함.
바리새인: 그들은 구약성경의 기록된 말씀이 유대교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금식, 기도, 구제, 이방인과 세리들과 접촉하는 것 등의 외적 의식에 관한 한 여러 가지 전통과 규례를 첨가하였다(마6:5; 9:11; 23:5; 막7:4; 눅18:12). 그래서 미신과 자기 의를 세우려는 형식의 틀에서 천주교와 비슷하다. 그들은 겉으로 경건하게 드러났고 거룩하게 보였으므로 보통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그리스도께 서는 여러 차례 그들의 위선과 교만과 탐욕을 책망하셨다(마6:2, 5; 23:1-39; 눅16:14; 18:9; 요7:48-49; 8:9). 한편 그들 중에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와 시므온처럼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도 있었다(마 27:57; 눅2:25; 요3:1). 다소의 사울 역시 엄격한 바리새인이었다(행26:5; 갈1:14).
사두개인: 사두개라는 말은 예수님이 오시기 300년 전에 살면서 이 파를 창설한 사독에서 나왔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이 귀중하게 여기던 전통과 기록되지 않은 법규를 다 무시하였으며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만 유대교의 근원이고 규칙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의 마귀론을 거부하 고 천사나 영의 존재를 부인하며 몸이 죽을 때 혼도 죽고 따라서 부활이나 보상 등에 대해서도 믿지 않았다(마22:23). 주로 고위층 사람,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 중 다수가 사두개인이었다(행23:6-9).
이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왔으나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음(요1:11-13).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로마에 의해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로마 사람들은 주후 70년 티투스(Titus)의 지휘 하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그 뒤에 예루살렘이 재건되었지만 1948년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수립되기까지 유대인들은 독립 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땅의 모든 민족들 사이로 들어가 타국인으로 멸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히브리 사람들의 통치 체제는 신정(神政) 통치인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일에서 하나님이 모든 권력을 발휘하시며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군림하시는 체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치 체제는 모세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재판관들과 왕들과 대제사장들 하에서 여러 차례 변천 과정을 겪었다. 이렇게 외적 통치 체제는 변천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군주로 여겨졌다. 모세 시대, 여호수아와 재판관들의 시대, 재판관이요 대언자인 사무엘 시대에 왕을 요구함(삼상8:6-7).
히브리 사람들의 종교: 족장들 시대에 그들은 직접적인 계시에 따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였으며 기도와 희생 예물을 통하여 그분께 경배하고 우상숭배와 무신론을 배격하며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의 봉인으로 할례를 베풀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은혜와 믿음의 빛을 허락하는 법규들을 따랐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은 이집트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우상숭배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그래서 모세의 기적들과 우상을 피하라는 강력한 율법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진영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스런 표적 등도 그들의 가슴 속에 간직된 우상숭배 성향을 제거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들을 체험하고도 곧바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였고 사울과 다윗도 그들의 강한 성향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공중 앞에서 감히 하지 않는 미신적인 행위들을 몰래 사적으로 실행하였다. 그들은 산당에서 희생물을 바쳤고 점치는 자들과 마술사에게 물었다. 심지어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솔로몬조차 이스라엘에서 우상숭배의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그는 페니키아와 모압과 암몬 사람들의 거짓 신들을 위하여 제단들을 세우고 자기 아내들이 그런 것들에게 경배 드리는 것을 허용했으며 또 스스로 그것들을 동경하였다(왕상11:5-7).
포로 생활 이후에 그들은 더 이상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부패해서 하나님을 떠났고 영광의 주님을 거절하고 죽이면서 자기들의 죄의 잔을 가득히 채웠으며 그 결과 나라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고 1948년에 나라로 부활하기까지 약 2000년 온 세상으로 떠돌아다니는 저주의 백성이 되고 말았다.
유대인들의 미래: 1948년에 팔레스타인에 돌아옴, 1968년에 6일 전쟁을 통해 구 예루살렘을 회복함, 성전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음. 7년 환난기(단9:25-27),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 성전에 적그리스도가 들어감(살후2:3-4), 7년 환난기 이후 천년왕국이 이루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