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의료봉사를 다녀와서_ 의료봉사 수기
조수진 (서울대학교병원 간호부)
9월10일 4박 5일의 일정으로 우리 17명의 의료봉사팀은 발해의 땅이자, 고려인의 터전인 연해주로 떠났다. 인천에서 불과 두 시간 만에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동북아 평화연대와 현지에서 합류하였는데 이 단체는 재외동포사업국으로서 연해주 고려인 농업정착지원을 하고 있었다.
첫날은 블라디보스톡 의과대학 총장과의 환영식을 갖고 다음 일정을 점검하였다.
이튿날, 첫 번째 의료봉사지역은 순얏센 마을이었다. 이곳은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이후 다시 재이주하면서 발딛고 나갈 터전을 만들기 위해 넓은 황무지를 개간해 옥토로 바꾸어 농업을 하고 있는 농업정착마을이다. 이곳에는 10가구의 고려인 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미 우리들의 소식을 듣고 많은 주민 분들이 몰려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대부분이 러시아인이었다. 혈압, 혈당을 먼저 측정하고 진료를 본 뒤 필요에 따라 심전도, 초음파 등 검사를 하고 약을 받아 가는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언어장벽을 넘는 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현지 고려인중 러시아어가 가능한 분들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100여명의 진료를 보고 지친 몸으로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스파스크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였다.
다음날 아침, 연해주 스파스크군에 위치해 있는 치카일로프카 병원에서 현지의사와 함께 협동 진료 활동을 하였다. 낡은 건물에, 장비하나 없고, 물도 아주 귀한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서 2틀에 걸쳐 200여명의 진료를 보았는데 이들에게 우리의 의료장비인 심전도, 초음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번씩 다 검사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또한 치과파트는 아이, 어른 할 거 없이 너무나 사람이 몰려 중간에 기다리다 지쳐 그냥 가는 사람도 많았다. 이곳에서 진료를 마치고 스파스크에서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하면서 창 밖으로 넓은 벌판 위에 펼쳐진 검붉은 노을을 보면서 잃어버린 땅, 연해주의 슬픈 동포사가 떠올랐다. 1937년 연해주내의 고려인 들은 모조리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오지 벌판으로 강제이주 시켰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끌려갔고 저항하는 사람은 총살하였다. 소련당국은 별 준비도 없이 한인들을 추방시켰던 것이다. 1992년부터 연해주로 재이주가 시작되어 어느 정도 농업을 하면서 정착하고 있지만 의사나 의료시설을 접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소수민족의 서러움을 겪고 있는 우리 고려인 들을 생각하면 왠지 서러워졌다.
마지막 날, 우리는 긴 일정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동거리가 길어서 매일 5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하면서 피곤하기도 했었지만 우리 민족들이 사는 모습도 직접 보고 그분들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하였다. 예상외로 고려인 들을 많이 진료하진 못했지만 우리의 이번 의료봉사가 역사의 험한 시련을 딛고 서는 연해주 고려인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